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85화 (85/146)

〈 85화 〉 연애? 상담.

* * *

상담할 것이 있다는 레이의 말에 그녀를 따라 그녀의 방 안으로 들어오게 된 세레나.

레이는 차를 내올 테니 찻잔을 가져가 소파에서 기다려 달라고 말했고, 세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앉아 가만히 레이를 기다렸다.

레이가 돌아올 동안 할 일도 없었기에, 세레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레이의 방을 구경했다.

그녀의 방에는 다과회니 뭐니 해서 여전히 필요한 가구만 있는, 그치만 허전하지 않으면서 깔끔하고 모던한 방이었다.

‘대부분의 가구가 검은색인 것을 빼면 참 좋은 방인데 말이죠...’

벽지와 바닥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가구가 검은색을 띠고 있었기에, 몸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 세레나였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의 방도 대부분 검은색 가구였죠...’

강한 사람들은 취향도 특이한 걸까. 생각하며 세레나는 차를 내올 레이를 기다렸다.

잠시 후, 홍차가 담긴 찻주전자를 들고 온 레이가 세레나의 맞은편에 앉았고, 각자의 자리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랐다.

쪼르륵. 거리며 차가 따라지는 소리와 함께 향긋한 홍차의 향기가 세레나의 코를 간질였다.

“아, 감사합니다!”

당연히 감사 인사는 잊지 않았다.

‘언니가 손수 타주신 홍차..!’

개인적인 만남이거나 다과회로 인한 모임일 때나 항상 메이드가 홍차를 타줬기에, 레이가 직접 탄 홍차는 레어도 10중 10에 해당하는 진귀함을 자랑했다.

최대한 아껴마시겠다고 생각하며 첫 한 모금을 홀짝인 세레나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상담이라는 게 무엇인가요?”

방에 들어오기 전에 보았던 레이의 얼굴은 무언가 심각한 일을 숨기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으므로, 속으로는 꽤 긴장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보이지 않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묻는 세레나.

한편으로는 항상 믿음직한 모습만 보여주던 레이가 자신을 의지해준다는 것에 대한 기쁜 마음도 들었다.

“그게... 아침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무슨 느낌인지 잘 알 수 없어서...”

그렇게 말하며 레이는 부끄럽다는 듯 세레나의 시선을 회피했다. 레이의 얼굴에는 종이에 물감을 몇 방울 떨어뜨린 정도의 홍조가 띄워져 있었다.

“정확히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데요?”

환자의 증상을 확인하는 의사처럼 레이의 증상을 파악해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보기로 한 세레나.

“선생님에 대한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두근거리고.”

레이의 말에 맞춰 동조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의 끝말을 따라 했다.

“선생님의 생각만이 뇌에서 맴돌고...”

“맴돌고.”

“얼굴이 뜨거워지고.”

“뜨거워지고.”

“덮치고 싶어져.”

“덮치고 싶어지는군요... 네?”

‘방금 제가 무슨 말을 한 거죠?’

앞과 같이 레이의 말을 따라 하던 세레나는 자기 입에서 나온 상스러운 마지막 말에 눈을 끔뻑이며 레이를 쳐다 봤다.

한 모금 마시기 위해 든 찻잔은 갑작스럽게 받은 뇌의 충격에 입의 근처에서 멈춰있는 상태였다.

“왜?”

자신이 문제가 될 법한 발언을 한 것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그런 세레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레이.

마시려던 찻잔을 내려놓은 세레나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 방금 하신 말씀이...”

“선생님을 덮치고 싶어진다는 거?”

“잘못 들은 게 아니었군요...”

항상 도도함과 차가움을 겸비하며 모든 일을 만능적으로 처리하던 언니가 어째서 누구를 덮치고 싶다느니 하는 말을 입에 올리게 된 걸까.

라고 생각하며 세레나는 이마를 짚었다.

“내가 이상해진 걸까..?”

걱정스럽다는 듯 침울해진 모습을 하는 레이를 보는 세레나는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레이 언니의 심정을 크게 변화시킨 것 같네요...’

그릇의 재구축으로 인해 레이의 몸의 상태가 나은 것은 세레나로서도 기쁜 일이었다. 더 이상 몸이 버티지 못 하는 고통에 괴로워하는 레이를 보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새로운 문제가 생겼으니, 레이가 느끼고 있는 몸의 변화가 현성을 향한 애정의 감정에서 나오는 것을 눈치채버리게 된 것이다.

그릇의 재구축이 이뤄지기 전까지 오로지 복수만 보고 달려온 레이였다. 그녀의 양아버지, 아이테르 데 르니아도 그런 그녀를 존중해 들어오는 혼담을 죄다 거절해 버렸다.

그러니 그녀가 연애니 사랑이니 하는 것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처음 느끼는 감정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지도 않았을 테니까.

세레나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연애 관련 지식은 아기나 다름이 없는 언니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언니가 느끼고 계신 건 사랑이라는 감정이니까 당장 가서 선생님과 한판 뜨셔서 기정사실을 만드세요!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언니께서 이상해진 건 아닐 거예요. 그도 그럴게, 언니는 서큐버스 퀸의 딸이잖아요? 선생님을 덮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아마 그릇의 재구축으로 인해 똑같이 강해진 서큐버스의 특성 때문일 거예요. 학교의 유일한 남성이시니까요.”

그렇기에 일단 지금은 물려받은 서큐버스의 특성 때문에 몸이 혼란이 오고 있는 모양이다. 라는 말로 대충 넘기기로 했다.

“그러면 프리무스 오라버니나 다른 오라버니들을 볼 때는 이런 느낌이 들지 않는데, 그건 왜 그런 거야?”

추가적인 질문이 날아왔지만, 그것도 대비하고 있던 세레나였다.

“그거야, 그릇의 재구축을 직접 주도하신 게 선생님이니까요. 재구축에 들어간 마력의 대부분이 선생님의 것일 텐데, 서큐버스로서의 본능이 더 향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사실, 그녀로서도 확실한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서큐버스의 특성에 따라 유일한 이성인 현성에 끌리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레이가 현성을 이성으로 보고 있는 건지에 대해서는 천천히 알아가면 되겠지. 라는 생각에서 나온 답안 들이었다.

“그래..? 그러면 내가 이상한 게 아닌 거지?”

“당연하죠. 언니가 이상한 사람일 리가 없잖아요.”

세레나의 밝은 미소가 곁들어진 대답에 레이는 그제야 안심하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며칠 지나도 계속 똑같은 상태시면 말씀해주세요.”

‘며칠 동안 직접 확인할 거긴 하지만요.’

당분간은 그녀를 따라다니거나 멀리서 지켜보는 등 레이의 상태를 관찰하기로 마음먹는 세레나였다.

“고마워. 세레나에게 물어보길 잘했어.”

“별말씀을. 언제든 의지해주세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하는 레이를 보며, 세레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기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어느샌가 찻잔은 전부 비워져 있었다.

상담도 끝난 것 같기에 슬슬 돌아가려 소파에서 일어난 세레나를 레이가 다시 불러세웠다.

“아, 혹시 하나 더 물어봐도 될까?”

“네? 아. 네! 말씀해 보세요.”

조금 전 꽤 충격적인 얘기를 들은 터라 지금 레이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든 충격을 받지는 않을 것 같기에, 세레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께 도움이 되고 싶은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다행이게도 정말로 평범한 얘기였다.

“선생님께 도움이 될 방법이요? 그걸 왜 저한테?”

“최근에 선생님이랑 꽤 많이 붙어 다니는 게 보여서.”

그녀가 현성의 옆에 거머리 마냥 붙어 있던 건 그에게서 새로운 마법을 빨아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레이로써는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친밀도가 높은 학생과 선생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세레나에게 물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성에 대한 정보가 없다시피 한 것은 세레나도 마찬가지였다.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며 손으로 턱을 짚는 세레나.

지나간 과거의 기억 속을 뒤져 보았지만 현성이 이곳에 어째서 오게 된 건지, 이곳에 무엇을 위해 온 건지에 대한 실낱같은 단서도 보이지 않았기에 턱을 짚은 손을 풀며 고래를 저었다.

“글쎄요... 제가 최근에 선생님과 많이 붙어 다니긴 했지만 대부분 선생님의 일을 도와드린 것뿐이라 이렇다 할 정보는 얻지 못 했어요.”

사실은 마법을 배우는 것에만 신경을 써서 그에 대한 것들을 듣지 못한 거지만, 기억이란 다시 쓰일 수도 있는 것이었기에 세레나 자신으로서는 자신도 모르게 기억이 왜곡된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었다.

“게다가 오라버니들께 듣기로는 명예나 권력에도 그렇게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고 하셨으니...”

방법은 잘 모르겠네요. 라고 말하며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알아봐 드려요?”

“어?”

세레나의 말에 한참 고민하던 레이는 결국 궁금증을 이기지 못 했는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그, 그... 내가 궁금해했다는 말은...”

“에이, 당연히 말 안 하죠~ 모든 건 제 주관! 언니는 상관없음!”

당연하다는 얼굴로 엄지를 치켜세우는 세레나였다.

‘겸사겸사 제 궁금증도 채울 겸 말이죠.’

“부탁할게...”

맡겨만 주세요! 라고 말하며 레이의 방에서 나온 세레나.

그녀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는 레이라던가 안절부절못 하는 레이의 모습 등 새로운 레이의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 기쁨을 가벼운 발걸음에 담아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라?’

레이의 방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그녀의 방문에 도착하자 갑작스럽게 몸에 느껴진 찌릿함에 발걸음을 멈추지만 않았다면 그대로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아무래도 어디선가 마력과 마력이 격돌하는 것 같은데요?‘

어렸을 때부터 마력을 잘 느끼는 체질, 즉 마력 감응력이 높은 체질이었던 그녀는 학교 내에 흐르고 있는 흐르는 이질적인 마력의 흐름을 몸으로 느낀 것이었다.

하지만 마력이 격돌한 것이 느껴지는 것치고는 너무나도 조용한 기숙사 건물이었다.

그 말인 즉 슨, 기숙사 건물에서 싸움이 일어났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학교에 소란이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싸움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답은 투기장이었다. 아무래도 그곳에서 의문의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침 방으로 돌아가서 할 일도 없었는데 잘됐네요.’

혹시나 새로운 것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콧노래를 부르며, 자기 방으로 향하려던 발걸음을 돌려 투기장으로 향하는 세레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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