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86화 (86/146)

〈 86화 〉 그의 부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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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건물을 나와 어딘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연보라색 머리의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세레나 크리샤. 아벨 왕국에서 국왕 다음 가는 권력을 가진 왕성 귀족 4가문 중 하나인 크리샤 가문의 차녀이다.

현재 그녀는 기분이 꽤 좋은 건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고, 발걸음은 저대로 계속 뛰다 보면 언젠가 높이 날아오르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한없이 가벼웠다.

등까지 내려오는 연보라색의 머리가 걸음걸음마다 휘날렸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세레나가 도착한 곳은 원형 형태의 건물의 앞이었다.

오다가 봤던 길 안내판에 적힌 이곳의 명칭은 투기장이었다.

다른 아카데미였다면 대련을 통해 서로의 실력을 향상시키거나 서열 정리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곳이었다.

하지만 세레나가 머무는 곳의 학생들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서열정리가 확실하게 되어 있었고, 실력 향상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귀족 소녀들이었다.

게다가 실력 향상에 관심이 있는 몇몇 소녀들도 연무장에 가서 혼자 실력을 쌓을 뿐이었기에, 투기장이 활성화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물론 예외도 있었는데, 아직 현성이 학교에 총괄 선생으로 부임하기 전에 총괄 선생의 자리를 꿰차러 온 20명의 강자들을 왕성 귀족인 그녀들이 상대할 때가 그 예외였다.

하지만 21번째 도전자인 현성이 총괄 선생으로 부임함으로서 귀족 소녀들은 투기장에 발을 들일 이유가 사라졌고, 그대로 방치되게 된 것이었다.

그런 곳에 세레나가 발을 옮긴 이유. 그것은 그녀가 투기장의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이질적인 마력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질적인 마력의 정체는 현성일 가능성이 컸기에, 비록 배우지는 못할지언정 자신이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마법들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로서는 충분히 메리트가 있었다.

어차피 방으로 돌아가서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어라? 세레나 언니다!”

투기장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내딛던 찰나, 그녀의 뒤에서 앳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등을 돌린 세레나의 시야에 분홍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독보적인 가슴을 지닌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양손은 귀여운 외모의 금발 소녀들에게 한 손씩 잡혀 있었고, 그중 오른손을 잡은 소녀가 세레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너희가 여긴 어쩐 일이야?”

손을 흔들고 있던 소녀, 라네즈 아리아가 세레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라네즈랑 정원 산책 중에 루아 언니를 만났어! 그래서 어디 가냐고 물어 봤는데...”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은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투기장에 간다고 했어. 재밌을 것 같아서 따라왔어.”

라네즈의 동생인 라헨느 아리아 또한 새로운 장난감을 찾은 아이마냥 눈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라네즈와 라헨느의 말에 세레나의 시선이 자동으로 그녀들의 손을 잡은 분홍 머리의 소녀, 루아에게 향했다.

“너도 느낀 거야?”

세레나는 자신이 느꼈던 투기장 내에서 흐르는 이질적인 마력의 기운들을 루아도 느낀 건가 싶어서 그녀에게 물었다.

라네즈와 라헨느는 그저 루아를 따라온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제, 제가 느낀 건 아니지만요... 루나가 투기장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으니 가보면 재밌을 것 같다고 해서...”

“루나? 루나가 누군데?”

처음 듣는 이름에 세레나가 고개를 기울이자 루아가 머리를 묶고 있던 끈을 풀었다.

또 다른 인격이 나온다는 신호였다.

“나지롱~!”

“꺄악?!”

하지만 그 신호를 알 리가 없었던 세레나는 갑작스럽게 평소와는 다른 발랄한 소리를 내며 양손을 펼치는 루아의 행동에 깜짝 놀라게 되었다.

그대로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지만, 루아가 재빠르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괜찮아?”

“으, 응...”

갑작스러운 루나의 등장에 잠시 당황한 세레나였지만, 다른 소녀들처럼 루나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금방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루아...”

다시 한번 세레나가 루나에게 그녀 또한 투기장의 이질적임을 느낀 거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루아 언니가 아니라 루나 언니야!”

라네즈가 루아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달을 뜻하는 이름이랬어.”

왼손을 잡고 있던 라헨느 또한 동조했다.

“루나 언니라고?”

그녀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세레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라네즈와 라헨느의 말대로, 나는 루아가 아닌 루나야. 원래는 또 다른 루아라고 했지만, 오빠가 내게 새 이름을 주었어. 그러니 루나라고 불러줬으면 해. 언니~”

빠르게 지나가는 그녀들의 말에 세레나는 뭐가 뭔지 뇌가 따라가지 못 했지만, 지금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하튼, 언니처럼 나도 주변의 마력을 읽는 것에 꽤 도가 터서 말이야. 투기장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격돌에 이곳으로 오던 중에 얘들을 만나서 같이 왔어. 재밌을 것 같아서 자기들도 데려가 달라길래.”

어깨를 으쓱하는 루나. 다음은 말을 안 해도 눈앞에 펼쳐져 있는 그녀들의 모습으로 설명이 될 테니 구태여 말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렇구나. 라며 세레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입구에서 계속 얘기를 나누다가는 투기장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끝날 수도 있었기에, 남은 말이 뭐가 됐든 일단 투기장 안에서 하자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그렇게 기다란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올라 관중석에 도착한 그녀들.

관중석에 들어가자, 투기장 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상대방의 남은 HP나 대련 중 HP가 전부 줄어 탈락하게 된 사람들을 보여주는 전광판이 예전의 일로 인해 아직 고쳐지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그녀들은 투기장의 한가운데를 직접 봐서 전투의 동향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투기장의 한가운데로 시선을 옮기자 한창 계속되는 중인 전투를 볼 수 있었다.

왼쪽 진영에는 하얀색과 검은색이 섞인 제복을 입고 있는 현성이 있었다. 검은 갑옷, 다크 나이트와 인큐버스를 상대할 때 보여줬던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그도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조금이나마 진심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그런 현성을 상대하는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전위에는 크루세이더 클래스이자 탱커인 프리무스가 마력으로 만들어진 방패를 앞세우며 현성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그가 공격을 막아 내며 현성의 공격을 집중시키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양옆에서 리안의 창과 루이네의 검이 현성을 향해 쇄도했다.

그것을 현성이 막고 반격하는 식의 공방이 계속되었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파티의 공격 방식인데, 무언가 하나가 부족한 것 같다고 세레나는 생각했다.

똑똑한 그녀는 이내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바로 파티의 후열을 담당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었다.

원래 후열은 정령 술사인 하이네가 맡았어야 할 터. 하지만 왜인지 하이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리타이어 당했을 경우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을 보여주는 전광판이 고장나 있는 상태라 전황을 확인할 수 없어 세레나는 답답한 기분이었다.

“세레나? 그리고 루아랑 라네즈 라헨느까지? 어떻게 알고 찾아왔데?”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관중석의 한 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보라색 머리의 청년을 볼 수 있었다.

“하이네 오라버니?”

반가움과 의문이 섞인 얼굴로 그녀들을 맞이하는 보라색 머리의 청년이자 세레나의 오빠인 하이네 크리샤.

마침 앉을 자리도 찾고 있었기에, 그녀들은 하이네의 옆자리에 앉은 세레나를 기준으로 나란히 앉았다.

자기 옆에 앉은 세레나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투기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알고 온 거냐고 묻는 하이네.

그녀는 이질적인 마력의 흐름이 느껴져서 왔다고 말해주었다. 루아와 라네즈 자매와는 투기장의 앞에서 만났다고도 덧붙였다.

“그렇구나. 하긴, 넌 마력을 잘 읽는 체질이었지. 그러니 저들의 마력이 격돌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전 세계의 강함 순위 100등 안에 드는 프리무스와 루이네, 리안이다.

그런 그들과 그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강함을 가지고 있는 현성이 대련이라고는 하지만 격돌했으니, 마력을 느끼는데 특출난 재능을 지닌 세레나로서는 투기장에서 일어나는 싸움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고 하이네는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과 오라버니 일행들은 왜 싸우고 계신 거예요?”

그녀로서는 그들의 싸움을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니 상관없긴 했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궁금증도 들었다.

“현성님께서 부탁을 하나 하셨는데, 들어 주는 대신에 침대에만 있느라 굳어 버린 몸도 풀 겸 대련 한 번만 해 달라고 루이네가 말했거든. 프리무스랑 리안은 덤으로 끌려들어갔고. 저 둘은 현성님을 놀린 전과가 들통 났거든. 참고로 밀고자는 나야.”

하이네가 꼬시다는 듯 킥킥대며 웃었다.

“무슨 부탁이요?”

세레나의 질문에 하이네는 웃음을 멈추더니 흐음. 거리며 과거의 일을 떠올리려는 듯 손으로 턱을 짚었다.

"그게 말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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