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89화 (89/146)

〈 89화 〉 하늘을 날아.

* * *

평범한 사람들은 그 존재를 보는 것도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날갯짓만으로 마을을 부수고 숨결만으로 성을 부순다고 알려진 존재들이자 세계에 단 일곱밖에 존재하지 않는 고대룡.

목숨을 걸고 그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 그들에게 마법을 배운 자들은 모험가 랭크 상위권에 위치해 있으며 그들을 숭배하는 곳도 있으니 그들의 위엄이 어느 정도인지는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그런 존재의 등 위에 올라탄 체 하늘을 유영하고 있으니 세레나로서는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저 귀족일 뿐인 자신이 고대룡의 등에 타고 있다는 것을 불경하게 여기고 있는 게 않을까.

“그래도 생애 한 번쯤은 이런 체험을 해 보는 것도 좋지 않아?”

“너무 좋아서 심장마비가 올 것 같은데요... 비룡이라면... 아니, 드래곤까지는 어떻게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도 만끽할 텐데, 고대룡이나 되시는 분의 등에 올라타 있는 건 좀...”

손을 꼼지락거리며 불안한 듯한 얼굴로 여기저기 흘끔거리는 세레나.

“이럴 땐 그냥 즐기는 거야. 정 불편하면 여기서 내릴래?”

“아, 아뇨..! 그, 그냥 여기 있을게요! 아, 아~! 편안하다아!”

그녀는 누가 들어도 어색하다고 말할 정도의 말투로 말하며 벌러덩 드러누웠다. 입으로는 편안 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식은땀을 흘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그나저나 꽤 많이 날아온 것 같은데, 여기가 어디쯤이지?’

손목시계가 없어서 시간을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체감상으로는 꽤 오랜 시간을 비행한 것 같았다.

하지만 밑으로 보이는 건 구름뿐이고 위로 보이는 건 태양뿐이니 여기가 도대체 어디쯤인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야, 실례스틴! 고도를 조금만 더 낮출 수는 없어? 보이는 게 구름이랑 태양밖에 없잖아!”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보려면 주변의 경치를 살펴야 할 필요가 있기에 그녀의 비늘을 탕탕! 치며 조금만 내려가 달라고 부탁을 해 보았다.

“여기서 더 내려가면 내 모습이 보일 거 아니야!”

앙칼진 소녀의 목소리가 어림도 없는 소리 말라는 듯 불만을 표출해냈다.

여기서 경치가 보이는 곳까지 내려가봤자 구름이 위에 있는지 아래에 있는지의 차이일 뿐일 텐데 누가 본다고 저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모르겠다.

“아니, 적어도 어디까지 왔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야. 이대로 가다가 지나치면 어떡해?”

최악의 경우에는 왔던 하늘길을 그대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었기에, 현재 우리가 있는 위치가 어딘지는 알아야 했다.

“성국에는 결계가 펼쳐져 있잖아! 근처에 가면 느껴질 거 아니야! 느껴지면 알려줄 테니까 잠이나 자던가!”

실례스틴의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한 말에 나는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아, 맞다. 그랬지? 가는 건 4년 만이라 까먹고 있었네.’

실례스틴의 말대로, 지금 우리가 향하는 성국에는 성국 주변의 위험으로부터 성국의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성국 전역에 보호 결계가 쳐져 있다.

게다가 결계를 펼친 사람보다 강한 사람에 의해 깨지기 십상인 보통의 보호 결계와는 달랐다.

성국의 결계는 천신 네리아의 환생이라고 불리며 신성력으로는 세계 최강인 성녀와 성검의 선택을 받아 인마 전쟁 때 연합군을 이끌고 최전선에서 싸운, 전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인 '용사'가 같이 펼친 것이다.

웬만한 공격으로는 금도 가지 않을 뿐더러 부정한 것들을 태워 버리는 ‘성화’의 작용도 하고 있어서 허가를 받지 않고 들어오려고 했다가는 ‘정화’되어 재 한줌 남기지 않고 소멸할 수 있었다.

나나 고대룡인 실례스틴 정도면 결계를 깨뜨릴 수 있겠지만 우리는 성국에 선전포고하러 가는 것이 아니기에 결계의 신성력이 느껴지는 곳에 다다르면 대충 그 근처에서 내려줄 테니 검문소로 가면 된다. 가 실례스틴의 틱틱대는 말에 담긴 숨겨진 뜻이었겠지.

“알았다, 알았어. 하여간 츤데레라니까.”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소환수인지 모르겠다. 그때처럼 침대에서 앙앙 울게 하여줘야 좀 주인으로 보려나?

실례스틴에게 말을 거는 것을 포기한 나는 한숨 자려고 생각했지만.

“쿠울...”

“흠냐흠냐...”

내 양 허벅지를 차지한 두 명의 꼬마 악당들에 의해 앉은 자세밖에 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자기는 그른 것 같네.’

내가 편하자고 움직였다가는 애들이 깰 가능성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정좌를 한 상태 그대로 성국에 도착할 때까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할 것도 없었기에 한 자리에 계속 머무는 태양을 보며,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도착하려나 생각하고 있던 와중.

“그런데 선생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들려오는 세레나의 질문에 태양을 보던 시선을 내려 궁금하다는 듯한 얼굴을 하는 세레나와 마주했다.

“뭔데.”

“왜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지 않으신 건가요?”

워프 게이트.

각 국의 주요 거점들을 잇는 통로와도 같은 것으로, 마차로는 열흘이 넘게 걸리는 거리도 단 몇 분 만에 도착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미드나에 들려서 워프 게이트를 타고 갔으면 이미 도착했을 것 같은데요.”

세레나의 말대로, 전에 아이리스가 왔을 때 방문했던 도시인 미드나에도 워프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미드나까지 마차로 간 다음에 거기서 워프 게이트를 타고 성국으로 가는 편이 지금, 이렇게 실례스틴을 타고 날아가는 것보다는 확실히 빨랐겠지.

“비싸잖아.”

워프 게이트를 한 번 타려면 대략 평민 4인 가구의 한 달 치 생활비 정도가 들어간다. 그것도 1인당.

귀족이라도 백작이나 그 위가 아니라면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닌 이상 사용할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돈이라면 미리 말씀하셨다면 드렸을 텐데요. 아니면 가문에 서신을 보내셔도 됐을 테고.”

세레나의 말대로, 나와 같이 여행길에 나선 녀석들의 가문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부자 녀석들이었다.

아마 내가 일이 있다고 말하며 워프 게이트를 타고 싶으니 돈 좀 달라고 녀석들의 가문에다가 편지를 써서 보내면 흔쾌히 돈을 보내오겠지.

내가 여기서 귀족 소녀를 돌보느라 꽤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 테니까.

하지만 내게 있어서 문제는 돈이 아니었다. 워프 게이트를 탈 정도의 돈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내가 워프 게이트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자기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게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내 경우에는 모험가 길드에서 발급받은 ‘모험가 카드’와 마왕 토벌단, 백야에 있을 때 받았던 펜던트가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것에 해당했다.

하지만 둘 다 게이트 안내원에게 제출했다가는 이래저래 귀찮은 일이 생길 것이 분명했기에, 그런 불상사를 피하고자 실례스틴이라는 편리한 이동 수단을 선택한 것이었다.

“내 일로 남한테 손 빌리기 싫으니까. 그리고 너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워프 게이트를 타고 가는 것보다 웬만한 사람은 평생 못 해볼 경험인 고대룡의 등을 타고 날아가는 게 훨씬 좋지 않아?”

“뭐... 처음에는 이래도 되나 싶긴 했는데 익숙해지니 확실히 어디 가서 못 해볼 경험이긴 했죠...”

아마 평생 안줏거리로 삼아도 될 얘기일 것이다. 비룡도 드래곤도 아닌 고대룡의 등을 타고 하늘을 날다니.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거짓말도 정도껏 치라며 농담으로 치부하지 않을까.

“그럼 된 거지 뭘.”

그때, 구름들이 갑작스럽게 위로 올라갔다.

아니, 구름들이 올라가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내려가고 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결계 안에서 평온하게 비행을 즐기고 있었기에 상승하고 하강하는 것이 느껴지지 않아 구름이 올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례스틴이 하강하고 있다는 것은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소리였기에, 내 무릎을 차지하고 누워 쥐가 날 지경까지 이르게 만들 뻔한 꼬맹이들을 깨웠다.

“얘들아, 일어나라.”

“다 왔어..?”

“흐아암...”

눈을 비비며 일어난 라네즈는 주변을 둘러보는 듯 고개를 돌렸고, 라헨느는 그렇게 자고도 부족했는지 입을 크게 벌리며 하품했다.

순간 손가락을 라헨느의 입에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이 실행에 옮기기 전에 그녀의 입이 닫혔다.

실례스틴이 하강하는 것을 봤는지 루아와 레이가 돗자리를 접으며 자리를 정리했다.

세레나 또한 내릴 준비하는 듯 몸을 일으키더니 장시간 앉아 있어 굳은 몸을 풀려는 듯 체조를 시작했다.

부스스한 듯 보이는 꼬맹이들의 옷매무새를 정돈해주고, 나도 내릴 준비를 하며 그녀가 우리를 어디쯤 내려주려나. 하는 생각에 주변에 있는 것들로 대략적인 위치를 잡았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이었다. 나무들 사이에 내리면 걸어가는 길이 꽤 고달플 것 같았다.

나무들을 넘어 시선을 옮기니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잘 포장된 하얀 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저 도로를 따라 계속 가다 보면 성국의 입구가 나올 것이다. 아마 들키지 않는 선에서 저 도로 근처에 내려주지 않을까.

도로를 지나 조금 더 시선을 옮기자 저 멀리 높이 솟아 있는 흰색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건물의 근처에 있는 다른 것들이 점으로 보일 만 한 거리였는데도 눈에 똑똑히 들어왔으며 하늘을 찌를 듯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후에야 나는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 다 왔다.”

천신 네리아가 강림했다고 알려진 땅에 세워진 나라.

성국 사크룸에 도착했다는 것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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