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90화 (90/146)

〈 90화 〉 성국 사크룸.(1)

* * *

성국 사크룸.

천신 네리아가 지상에 강림했을 때 최초로 발을 디딘 땅이라고 알려진 곳에 세워진 나라로, 나라의 1인자인 교황이 다스리고 있는 곳이다.

성국을 상징할 만한 것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있다면 성국의 중앙에 세워져 있는 천신 네리아의 동상과 성국의 끝 쪽에 위치한 네리아를 모시는 신전 정도려나.

“그런데 선생님.”

하얗게 포장된 도로를 따라 라네즈와 라헨느에게 양손을 뺏긴 체 성국의 입구를 향해 걸어가고 있던 와중, 세레나가 나를 불렀다.

“왜.”

“마차나 비룡을 타지 않고 고대룡이라는 특급 이동 수단을 이용한데다가 등에서 내린 뒤에도 마차를 타지 않고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계획하지 않았던 여행인 것 같은데, 맞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번 성국 방문은 예정에 없던 일이야. 성국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거나 리리에랑 놀아주고 있었겠지.”

“그러면 볼일이 끝나면 바로 돌아가는 건가요?”

“놀러 온 거 아니야?”

“바로 돌아가..?”

세레나의 말에 라네즈와 라헨느가 당일치기 여행이라고 생각했는지 아쉬워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카데미를 빙자한 요새에 갇히고 나서 밖에 나와 본 적이 아이리스 왕녀가 학교를 방문했을 때 도시 미드나에 간 것을 제외하면 없었으니까 오랜만의 외출에 들떴던 것 같다.

“걱정하지마. 너희들이 관광을 즐길 시각은 있을 테니까.”

볼일이 볼일인지라 성국 체류 기간을 2박3일 정도로 잡고 있었기에, 그녀들이 성국을 둘러볼 시각은 충분할 것이다.

“진짜?”

“놀 수 있어..?”

내가 미소를 지어 주며 고개를 끄덕이자, 언제 침울했냐는 듯 화사함이 가득한 미소를 짓는 라네즈와 라헨느.

어지간히 이번 여행을 기대하고 있던 것 같았다. 아마 숙소를 잡고 나서 레이나 루아 등 언니들과 동행한 자유시간을 주면 좋다구나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겠지.

나도 그편이 내 일을 해결하는데 편할 거고.

“서, 선생님..! 저도 질문이 있는데... 해도 될까요..?”

이번에 들려온 건 루아의 목소리였다.

예민한 거라도 묻는 듯 쭈뼛대는 모습이었기에, 나는 뭐가 궁금한지 그녀에게 물었다.

“뭐가 궁금한데?”

“그, 그게... 선생님께서는 어째서 성국에 오신 건지 궁금해서요... 아무래도 관광을 즐기러 오신 것 같은 얼굴은 아니셔서...”

뭘 질문하나 했더니 별거 아닌 평범한 질문이었다.

“그건 저도 궁금하네요. 실례스틴님의 등 위에 있을 때 봤던 선생님의 모습은 가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가는 사람처럼 보였거든요.”

세레나가 루아의 질문에 동조했다.

레이 또한 관심이 있다는 듯 나를 힐끔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의 귀가 쫑긋거리는 것 또한 간간이 눈에 들어왔다.

관심이 없는 건 머릿속이 성국을 관광할 생각으로 가득 차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라네즈와 작은 미소를 얼굴에 그리고 있는 라헨느뿐이었다.

내가 웬만해서는 오지 않는 성국에 프리무스나 다른 녀석들에게 며칠만 더 학교에 있어 달라고 부탁까지 해가며 온 이유.

“그녀에게 부탁할 게 있거든.”

* * *

내가 갑작스럽게 성국에 갈 일정을 잡은 것은 끌려간 집무실에서 시작된 루이네의 잔소리 지옥에서 겨우 생환을 한 직후에 보고 들었던 것들 때문이었다.

기가 다 빨려 미라처럼 복도를 터덜터덜 걷고 있던 내 귀에 들려온 목소리가 있었다.

“악몽을 꿨다고요?”

“응?”

학생 중 한 명이 악몽을 꿨다는 소리에 나는 모퉁이를 돌려던 발걸음을 멈추고는 벽에 등을 기대며 얼굴만 살짝 내밀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엿듣기 위해서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냥 자연스럽게 지나가다 들은 것처럼 상황을 꾸몄어도 좋았을 텐데, 그때는 왜 숨었는지 모르겠다.

“네... 그래서 지난밤에는 자다 깨다를 반복하느라... 하암... 제대로 자질 못 했어요...”

하품을 하느라 눈을 반쯤 감는 청발의 소녀. 그녀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적발의 소녀가 걱정스럽다는 듯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다시 주무시는 건 어때요?”

청발의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어요. 다과회 때 졸면 안 되니까요.”

“그렇다고 늦잠을 자다가 늦으시면 안 된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메이드에게 깨워달라고 말을 해 놓을 거니까요.”

그렇게 얘기를 끝낸 그들은 한 명은 방문을 열어 자기 방으로 보이는 곳에 들어갔고, 다른 한 명은 등을 돌려 걸어갔다.

그런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머릿속이 꽃밭으로 이루어진 귀족 소녀도 악몽을 꿀 때가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다시 내 방으로 향하기 위한 여정을 계속했다.

얼마 가지 않아 계단에서 올라오고 있는 갈색 단발머리의 소녀와 마주쳤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꾸벅. 숙이며 내게 인사했다.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뭔가 기운이 빠질 만한 일이라도 있었는지 어깨는 축 늘어뜨린 상태였고, 얼굴은 며칠 밤이라도 샌 듯 퀭한 상태였다.

“안색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어?”

학생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선생으로서의 일이었기에, 누가 봐도 환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얼굴을 하는 그녀의 건강 상태를 물었다.

“선생님도 안색은 안 좋으신 것 같은데요...”

“나는 그냥 기가 좀 빨린 것뿐이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래서, 무슨 일 있었어?”

그녀는 잠시 멍하니 내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이내 한숨을 내뱉었다.

“그게 말이에요... 왜인지 악몽을 꿔서 잠을 설쳤거든요... 산책하면 좀 나아질까 했는데... 전혀 나아지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방에 가서 한 숨 자려고요...”

입을 가리며 하품을 하는 갈색 머리 소녀.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꿈자리가 사나워서 잠을 설친 영향으로 인해 피곤함이 남아 있던 걸였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알았다고 말하며 어서 가서 쉬라고 했다.

‘그나저나 오늘만 벌써 2번째 악몽을 꾼 사람이 나오다니, 우연인가?’

내가 이곳에 온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꿈자리가 사나움으로 인해 고생했던 소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뭐. 두 명 정도는 우연히 같은 날에 악몽을 꿀 수도 있지.’

언제 어떤 꿈을 꾸게 될지는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꿈인 것이다.

그러니 어느 순간 갑자기 악몽을 꾸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기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시 방으로 향했다.

빨리 가서 소파에 앉든 침대에 눕든 해서 푹신함을 느끼며 빨려 버린 기를 보충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 *

“...”

방에 도착해 소파에 기댄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아무리 봐도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였다.

한 두 명 정도 같은 일이 생겼다면 우연의 일치가 잘 맞아떨어졌네.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숫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연일 가능성은 떨어진다.

내가 방에 도착하기 전까지 듣거나 보았던 악몽을 꿨다고 하는 소녀의 숫자가 처음 2명을 포함해 32명이었다.

그냥 꿈을 꿨다고 하면 그러려니 할 수 있을 텐데, 한 명도 빠짐없이 악몽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딘가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오늘 아침에 악몽을 꿨었지.’

나를 포함해 총 33명의 사람이 같은 날에 악몽을 꿨다. 과연 이것을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이상하단 말이야. 최근에 악몽을 고사하고 꿈조차 꿔본 적이 없는데 오늘은 왜 꿈을 꾼 거지? 그것도 좋은 꿈이 아니라 악몽을.’

원인이 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주인!

내게 머릿속으로 목소리를 보내올 수 있는 건 내 소환수로 설정된 녀석들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머릿속으로 직접 말을 걸만한 녀석은 한 명밖에 없었기에, 나는 바로 목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왜, 앨리아.”

­악몽을 꿨다면서? 앨린에게 들었어!

아침의 얘기를 점심이 다 지나고 나서야 하는 건가. 참으로 뒷북을 잘 치는 녀석이다.

“그래. 덕분에 기분이 아주 더러웠어.”

그것도 제일 기억하기 싫은 날의 일을 말이다.

­방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며?

“그래.”

악몽을 꾼 탓에 마력이 잠시 폭주해서 방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었지.

“일단, 나와서 말해. 머릿속이 웅웅대서 머리가 아플 것 같으니까.”

머릿속으로 직접 말이 들려오는 것 때문에 뇌가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에, 손가락을 튕기며 앨리아를 맞은편 소파에 소환했다.

­응!

파앗! 하고 보랏빛이 눈앞에 번쩍였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 나타난 건 메이드복을 입은 보라색과 연보라색이 섞인 머리의 여인, 앨리아였다. 땋아 올려 묶은 듯 보이는 머리카락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두드러지게 하고 있었다.

내 맞은편 소파에 앉은 앨리아는 다리를 꼬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악몽은 왜 꾼 거야?”

“내가 알면 이렇게 고민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겠니?”

나는 내 얼굴을 가리키며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난 알 것 같은데?”

“알 것 같다고?”

“응. 오히려 모르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앨리아는 내 왼손, 정확히는 왼손 약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주인. 반지, 부서졌잖아?”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