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악몽의 원인.
* * *
“주인. 반지, 부서졌잖아?”
그렇게 말하며 내 왼손을 가리키는 앨리아. 그녀를 따라 내 시선 또한 자연스레 왼손으로 향했다. 더 정확하게는, 왼손의 약지로.
원래라면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어야 할 흰색의 반지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인큐버스인 아스모를 상대하느라 억누르던 마력을 개방한 여파로 깨졌으니까.
“그건 알고 있었지. 문제는 반지가 없는 게 악몽이랑 무슨 상관이 있냐는 거지.”
아침에 악몽을 꾸고 일어났을 때는 내 마력의 출처가 스승인 만큼 마력을 억눌러 주던 반지가 부서진 것과 레이의 그릇을 재구축하기 위해 마력을 꽤 많이 사용한 여파로 인한 피로함이 더해져 생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많았다.
마력을 억눌러 주던 반지가 없을 때도 악몽은 꾼 적이 없었고, 몸이 피로 했다면 휴식에 관련된 꿈을 꿨을 테니까.
그리고 어째서 꾼 꿈이 하필이면 악몽이었던 걸까.
사람이 나쁜 꿈을 꾸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대표적으로는 스트레스와 심리적 불안감이 있다.
하지만 어제의 내게는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나 심리적으로 불안할 만한 일이 전혀 없었기에, 이것들로 인해 악몽을 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날의 일이 꿈으로 나올 정도면 웬만한 스트레스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텐데, 최근에 들어서는 그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일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심리적 불안감을 심어 줄지언정 내 자신이 심리적 불안감을 느낀 건 스승을 만나기 전 밖에 없었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악몽을 꿀 이유가 없었다.
“흐음...”
그렇게 계속 악몽의 원인을 생각하고 있던 와중, 앨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이건 내 생각인데.”
“응?”
하던 생각을 잠시 접고, 고개를 들어 앨리아와 눈을 마주쳤다.
“주인이 그냥 꿈도 아니고 과거에 있었던 일을 꿈으로 꾼 이유는 주인이 인큐버스와 싸울 때 마지막에 사용한 마법이 원인인 것 같아.”
그녀 또한 나와 같이 악몽의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지, 한 가지 가설을 내세웠다.
“마지막에 사용한 마법?”
‘내가 어제 아스모와 싸울 때 마지막에 무슨 마법을 썼더라?’
기억의 톱니바퀴를 돌려 시간을 어젯밤, 아스모와 싸우던 때로 바꿔보았다.
몇 차례 공방 후 갑자기 미친놈 마냥 웃더니 하늘로 날아올라 마력을 모으길래 필살기 같은걸 날리려는 줄 알았고, 나도 그에 따라 필살기 격인 마법으로 대응해줬었지.
“응. 뭐였더라? 주인이 이름 붙이기를 스승의...”
“스승의 금지마법.”
스승이 금지한 일곱 개의 마법 중 일곱 번째 마법인 암룡비상.
신화 속에서 태양을 삼켜 세상에 어둠을 몰고 왔지만 천신 네리아에 의해 퇴치되었다고 전해지는 암룡 다크니스의 모습을 마력으로 재현해낸 마법이라고 스승이 말했다.
다크니스의 환영에 먹힌 자는 자아가 소멸되어 영혼 없는 빈껍데기의 몸만 남게 되는 마법이다.
그 마법을 배우고 난 뒤에 마력으로 만들어 낸 환영이 진짜와 똑같냐고 묻자 직접 봤으니 똑같이 재현해낼 수 있었다고 스승이 말했었지.
“그래, 그거!”
정답이라는 듯 앨리아가 손뼉을 짝! 치며 손가락을 나를 가리켰다.
“그런데 금지 마법을 쓴 거랑 악몽을 꾼 거랑은 무슨 관계인데?”
지금까지 금지 마법을 쓴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앨리아의 말대로라면 금지 마법을 쓸 때마다 악몽을 꿨어야 했는데, 부득이하겠지만 금지 마법을 몇 개씩 사용한 이튿날도 악몽은커녕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 햇볕을 맞이했으니까.
애초에 금지 마법을 쓸 때마다 악몽을 꿨으면 금지 마법을 진짜로 금지 마법으로 만들었겠지.
내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앨리아가 부연 설명을 덧붙여주려는 듯 입을 열었다.
“주인이 꾼 꿈이 기억하기 싫은 그날의 일이라며? 주인이 내게 들려 준 얘기로 기억하기로는 금지 마법 5번, 영혼을 멸하는 자색 불꽃이랑, 어제 사용했던 암룡비상으로 아는데?”
“...그러니까 네 말은 과거에 사용한 것과 똑같은 마법을 사용해서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일이 뇌리에 떠올랐고, 그것이 꿈의 형태로 나타났다?”
앨리아가 이제야 눈치챘냐는 듯 답답한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
그저 마법을 쓴 것뿐인데 그 마법을 보고 무의식중에 같은 마법을 사용했을 때가 떠올랐고, 그것이 꿈의 형태로 나타났다?
솔직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앨리아의 가설이 들어맞으려면 암룡비상을 사용한 날들의 이튿날에 같은 꿈을 꿨어야 했기에, 톱니바퀴를 계속 돌리며 과거의 기억을 뒤졌다.
‘내가 언제 언제 암룡비상을 사용했더라.’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며 스승에게 마법을 배운 시점을 기준으로 천천히 기억을 뒤져 봤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암룡비상을 쓴 적은 악몽으로 나온 그날과 어제밖에 없었다.
‘진짜로 앨리아의 말이 맞는 건가?’
다른 가설들도 몇 가지 세워 봤지만 앨리아의 가설 만큼 들어맞을 만하다고 말할 만한 게 없었다.
물론 앨리아의 가설도 신빙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그녀의 말이 맞을 수도 있으니 앞으로 암룡비상은 금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악몽을 꾼 것이 나 혼자라면 그냥 며칠 기분이 더럽고 끝일 텐데, 나를 포함해 33명의 사람이 같은 날에 악몽을 꾼 것이다.
게다가 내가 만난 사람만 쳤을 때가 33명이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악몽으로 고통받는 학생이 있을 수도 있었다.
이것에 대해 앨리아에게 묻자.
“학생들이 악몽을 꾸는 것도 주인의 영향일 거야.”
라는 답을 내놓았다.
“나 때문에?”
“응. 마력을 억제해주던 반지가 사라짐으로써 주인이 자는 사이에 미처 억누르지 못한 마력이 퍼져나가서 주인의 방 근처에 있던 사람들도 주인의 마력의 영향을 받게 된 거지.”
“그래서 악몽을 꾸게 된 건가.”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아카데미의 모든 사람이 악몽을 꾸게 될 수도 있어. 그것도 매일.”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겠네.”
성국에 가서 성녀의 마력, 즉 신성력을 담은 반지를 얻어와 내 마력을 억누르는 것.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성녀를 이곳으로 부른다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신성력을 나눠받는 처지인 을이 갑을 오라 가라 할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앨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정했으면 당장 움직여야겠네.”
괜히 시간을 더 지체했다가 악몽을 꾸는 학생들이 늘어나면 안 됐기에,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듯이 바로 성국으로 향할 준비하기로 했다.
그렇게 소파에서 일어나 대충 짐을 싸고 있던 중, 앨리아가 물어왔다.
“학교는 어쩌고? 또 습격이라도 있으면 어떡해?”
“갔다 오는 데 얼마 안 걸릴 것 같으니까 프리무스 일행에게 며칠만 더 있어 줄 수 있냐고 부탁해 보려고. 안 되면 뭐... 최후의 방법을 써야지.”
내 대답에 납득이 갔는지 앨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보통 사람들도 아니고 왕성 귀족 쯤 되면 며칠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 게다가 그 신약의 발키리들까지 학교를 지키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
“응? 발키리 자매들도 데려갈 건데?”
발키리 자매들을 데려간다는 내 말에 앨리아가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발키리 자매들을 데려간다고? 성국에?”
“응. 왜?”
의외라는 듯한 앨리아의 얼굴에 나는 무슨 문제있냐는 눈으로 화답했다.
“아니... 데려가도 괜찮은 거 맞아?”
“내가 옆에 있는데 문제 될 게 뭐 있어?”
“그건 그치만...”
“네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는데, 네가 걱정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내가 성국에서 일을 보는 동안 그녀들은 성역에서 신성력을 충전하고 있게 할 거니까.”
“그래... 주인이 알아서 하겠지...”
어깨를 으쓱한 앨리아가 무언가 또 생각난 게 있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들만으로 괜찮겠어? 물론 그들이 강하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만에 하나라는 말이 있잖아? 발키리 자매들이 없을 때 다크 나이트와 비슷한 급의 적이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그녀의 말대로, 다크 나이트와 비슷하거나 그를 넘은 강함을 지닌 적이 학교를 습격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다크 나이트의 습격도 상정하지 않고 있던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발키리 자매라는 든든한 아군이 없는 이상 그녀들과 비슷하거나 더 강한 아군이 필요했다.
이럴 땐 보통 외부에서 도와줄 인원을 불러왔겠지만, 지금 당장 떠나려는 나로서는 외부의 인원을 부를 만한 시간이 없었다.
“그들만이라니 무슨 소리야?”
“응?”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있지 않은가. 그녀들과 비슷한. 아니, 그녀들보다 더 강한 아군이. 그것도 눈앞에.
말없이 앨리아를 지그시 응시하는 내 시선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 깨달았는지 앨리아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 얼굴 보이기 싫은데...”
“누가 대외적으로 나서래? 그냥 뒤에서 도우라는 거야. 뒤에서. 너 정도라면 다크 나이트 급한테 지지는 않을 거 아니야.”
조금 띨빵하게 보여도 내가 데리고 있는 소환수 중에서 강함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녀석이다.
내가 그녀의 마력을 억제하고 있긴 하지만 억제된 상태에서도 다크 나이트 정도의 적과는 비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거라면 괜찮긴 한데... 그러면 주인이 맡은 학교 총괄로서의 일은 누가 해? 설마 그것도 내가 하라는 건 아니지?”
“너한테 행정 업무를 시킬 거였으면 내가 온 첫날부터 시켰지.”
“그러면 왕성 귀족 애들한테 시키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가뜩이나 바쁜 놈들에게 며칠 더 있어 달라고 부탁하는 입장인데 내가 할 것까지 시키면 쓰나.”
“오~ 주인이 남을 배려할 줄도 알고, 많이 컸는데?”
“...”
장난기가 가득 담긴 얼굴로 오~ 하며 감탄사를 내뱉는 앨리아를 보며 나는 말없이 손을 들었고.
딱! 하는 맑고 청아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왜인지 이마를 손으로 감싸며 부들거리고 있는 앨리아를 뒤로하고 뇌를 굴리며 생각해 보았다.
‘프리무스 일행들과 학생들을 제외하고 내 일을 잘할 수 있고, 학생들이나 메이드들과도 잘 지내며, 내 자동인형 메이드인 아인 자매들과 서로의 일 처리에 방해가 없는 데다가 학교 내에서 할 일이 뚜렷하게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여러 사람들이 뇌리에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가장 큰 지금 당장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조건에 들지 않아 염치를 무릅쓰고 프리무스 일행에게 부탁해야 되나. 생각하고 있던 와중,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아스모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방문 너머로 고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침 일찍부터 어딘가를 갔다고 들었는데,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것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 나는 광명을 찾은 기분이었다.
찾았다. 저 위의 조건에 모두 포함되는 사람을.
내 곁에서 내가 하는 일을 봐와서 내 일도 잘할 수 있고, 학생들과 메이드들과도 친하며 아인 자매들과 혐업을 해왔고, 내 전속 메이드로서 하는 일을 제외하면 학교에서 할 일이 뚜렷하게 없는 사람.
“아, 잠시만요.”
앨리아의 모습을 아스모 씨가 보면 안 되기에, 앨리아에게 손을 내저으며 들어가 있으라는 신호를 보냈고, 이내 보랏빛이 방 안에 번쩍였다.
“네. 들어오세요.”
방문이 열리고 들어온 흑발의 여인이 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볼일은 끝나신 건가요?”
아스모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 그래도 그것에 관해서 현성님과 얘기하려고 온 거예요.”
무슨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 보고 내 얘기도 해야겠네.
서서 얘기할 수는 없으니 앉아서 얘기하자는 내 말에 아스모 씨가 내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래서, 할 얘기라는 건?”
“후...”
그녀는 심호흡을 하듯한 차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긴장한 듯 안절부절못 하는 그녀의 모습으로 볼 때, 뭔가 중요한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안절부절하기를 수십 초 째.
“현성님.”
각오가 섰는지 그녀의 얼굴에 비장함이 깃들었다.
“저를 계속 현성님의 전속 메이드로 있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네.”
아스모 씨의 부탁이 끝남과 동시에 내 입에서 긍정의 단어가 나왔다.
그도 그럴게, 뇌를 거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쉬운 대답이었기 때문이었다.
“네?”
내 일말의 고민도 없는 즉답에 아스모 씨가 당황한 듯 눈을 껌뻑거렸다.
“왜요?”
문제가 있냐는 듯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아스모 씨가 ‘아...’ 하고 당황한 듯한 소리를 흘렸다.
“아, 아뇨... 설마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곧바로 답을 내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요...”
“고민할 게 뭐가 있습니까? 오히려 제 쪽에서 계속 전속 메이드로 남아줄 수 있겠냐고 여쭤보려고 했는걸요?”
“그게... 제가 한 건 아니지만 또 다른 제가 벌인 일도 있고 하니... 의심하지는 않으실까 했는데...”
“저나 학교의 학생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하실 건가요?”
“절대 안 해요!”
절대 그럴 생각은 없다는 듯, 아스모 씨가 테이블을 탕! 내려치며 강한 부정의 뜻을 표했다.
“그러면 됐잖아요?”
레이의 마력을 흡수하기 위해 아카데미에 잠입했다고는 하나 그것은 서큐버스인 ‘아스모 씨’의 의지가 아닌 인큐버스인 ‘아스모’가 벌인 일이었다.
인큐버스인 ‘아스모’가 소멸한 지금 그녀가 학교에 위해를 가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슨 일을 벌일 생각이 있었다면 ‘아스모’의 마력을 사용해서 레이의 그릇을 재구축하는데 도움을 줬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한들, 세계적 위기가 아닌 이상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말라는 내 말에 아스모 씨가 대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젯밤에도 느낀 거지만 현성님은 그릇이 참 크신 것 같네요.”
대인배라던가 그릇이 크다던가 그런 소리를 꽤 많이 들어오긴 했지만 내 자신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럴 리가요. 그저 미인에게 관대할 뿐입니다. 만약 아스모 씨가 아닌 아스모가 똑같이 말했다면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면서 내쫓았을 걸요?”
재밌는 농담이라도 들은 듯 아스모 씨가 작게 웃었다.
“그런데 볼일은 뭐였나요?”
무슨 볼일이었기에 아침 일찍부터 나갈 필요가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아, 저를 이곳으로 보내신 분께 편지로 만월제가 끝났음에도 계속 남아 있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고 왔어요. 자신은 상관없으니 현성님의 허락을 구하라고요.”
그녀를 이곳으로 보낸 건 그녀가 이곳에 올 때 가져 왔던 르니아 가문의 인장이 찍힌 편지로 볼 때 아이테르 데 르니아 일 터.
하여간 여전히 쿨한 아저씨다.
“그런가요. 그러면 다시 한번, 앞으로 잘 부탁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고.
“저야말로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내가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부드러웠다.
그러면 절차도 끝났겠다. 바로 부탁을 해볼까.
“그러면 전속 메이드도 되셨겠다, 실례가 안 된다면 바로 한 가지 일을 부탁해도 될까요?”
“네, 뭐든지 맡겨만 주세요. 아침부터 밤까지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해 내보이겠습니다.”
밤까지?
순간적으로 밤의 일에 대해서 묻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런 생각을 읽었는지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앨리아의 ‘그럴 때가 아니잖아!’ 라는 질타에 정신이 들었다.
고개를 저으며 음흉한 생각을 떨쳐 낸 뒤에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저 대신 학교 좀 맡아주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