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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92화 (92/146)

〈 92화 〉 성국 사크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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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봤던 아스모 씨의 얼굴. 엄청나게 당황한 얼굴이었지.’

처음 전속메이드로서 맡게 된 일이 학교 총괄 대리라니. 누구라도 아스모 씨와 같은 얼굴을 할 것이 분명했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돌아갈 때 뭐라도 사 가야겠네.’

일을 맡기면 그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신조다.

학교의 총괄대리라는 중책을 맡겨 놓고 그저 전속메이드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보상을 주지 않는 것은 내 신조에 어긋남으로 성국에서의 볼일을 끝마친 뒤에 돌아갈 때 선물이라도 사서 돌아가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뭘 사가야 되는 거지?’

아스모 씨와 알고 지낸지 일주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취미는 어떻게 되는지, 좋아하는 건 뭔지 등 하나도 말이다.

아는 거라고는 그녀가 서큐버스라는 것뿐.

그렇다면 서큐버스가 좋아할 만한 걸 사면 되나? 그런데 서큐버스는 뭘 좋아하는 거지?

내가 아는 서큐버스에 대한 지식은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에, 남성들의 정기를 흡수해 살아가는 하급 마족이라는 게 전부다.

서큐버스가 좋아할 만한 거라고 해봤자 남성의 정기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기에, 내 정기를 나눠 주면 좋아하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 정기를 흡수했던 프린세스 급은 황홀함에 미쳐 버릴 것 같다며 평생을 옆에 있고 싶을 정도라는 감상평을 남겨 주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스모 씨에게 총괄 대리를 열심히 이행해 줘서 감사하니 답례로 정기를 드리죠. 물론 방식은 어른의 밤놀이로.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게 서큐버스가 좋아할 만한 걸 고민하며 한시라도 빨리 성국 관광을 하고 싶은지 나를 잡아끄는 쌍둥이의 손에 이끌려 입국 심사대로 향하던 중,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세레나와 레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뭔 대화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세레나가 웃고 있고 레이가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세레나가 레이를 놀리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레이 녀석. 서큐버스와 인간의 혼혈이었지? 쟤한테 물어보면 되겠네.’

그것도 하급 마족인 서큐버스가 아닌 최상급 마족인 서큐버스 퀸의 딸이다.

서큐버스로서의 특성과 인간으로서의 특성을 둘 다 지닌,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최적의 상대라는 뜻이었다.

‘그 전에 방해꾼들부터 제외하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레이와 내 대화를 다른 애들, 특히 세레나에게는 들리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방해꾼들을 먼저 처리하기로 했다.

“라네즈. 라헨느.”

“응? 왜?”

“?”

쌍둥이를 부르자, 무슨 일이냐는 듯 걸음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는 라네즈와 라헨느.

“이 선생님이 레이 언니와 둘이서 할 얘기가 있는데, 저어기 루아 언니랑 세레나 언니 좀 데리고 먼저 들어가 있을래?”

턱으로 나와 쌍둥이들의 앞에서 걷고 있는 세레나와 루아를 가리키자.

“무슨 얘긴데?”

둘이서 할 얘기라는 말에 라네즈가 비밀의 냄새를 맡았는지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비밀 얘기..?”

라헨느 또한 관심이 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말을 해 줘도 상관은 없지만, 긴 얘기일 텐데 괜찮겠어?”

양손을 쌍둥이들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다시 한번 턱으로, 이번에는 하늘을 가리키며 고개를 까딱였다.

내 턱짓에 따라 그녀들의 고개가 하늘로 향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으며 석양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사람에게 본 모습을 보이는걸 싫어하는 실례스틴인지라, 우리를 내려줄 때도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성국의 입구에서 꽤 떨어진 곳에 내려 마차도 없이 걸어온 탓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도착할 시간에 맞춰서 마차를 섭외해 둘 걸 그랬다. 물론 나와 잘 아는 사람으로.

그나마 다행인 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길게 뻗어 있는 하얀색으로 포장된 길. 성국 사람들은 샤이닝 로드라고 부르는 길을 따라 곧장 걷다 보면 성국의 입구 중 하나가 나올 테니까.

그리고 이런 길이 없더라도 성국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천신 네리아를 모시는 신전이 저렇게 에펠탑마냥 위용을 자랑하며 굳건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길을 잃는다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이대로 얘기하면서 느긋하게 가다가는 성국의 통행시간에 맞춰 들어가지 못하게 될 거고, 꼼짝없이 밖에서 밤을 보내게 될 텐데 그래도 괜찮아?”

성국의 사람들은 밤을 천신 네리아가 잠이 들고 악신이자 마신인 나베리우스가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 해가 지면 성국의 결계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만 있다면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문제는 들어오는 사람도 막는다는 것이었다.

나베리우스의 권속이 방문객의 틈에 섞여 들어올 수도 있다. 라고 했던가?

악신의 권속이 들어와봤자 성녀와 용사가 펼친 결계에 재 하나 남지 않고 불탈 게 분명했기에 별 같잖지도 않은 말이었지만 어쩌겠는가.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를 수밖에.

“밖에서 자긴 싫어! 벌레 물릴 것 같단 말이야!”

“노숙... 싫어...”

모험심과 호기심이 넘치는 그녀들이었지만 푹신한 숙소의 침대는 포기하기 싫었는지 고개를 붕붕 저었다.

“그치? 빨리 가서 숙소의 푹신한 침대에 몸을 맡기고 싶지?”

“응!”

“응.”

“그러면 자...”

그녀들이 잡고 있던 손을 풀러 품속에 넣어 뒀던 펜던트를 꺼냈다.

백강(白?)이라는 언제나 하얀빛을 유지하는 희귀한, 찾는다고 해도 가공하는 것도 어려운 광물로 만든 세상에 단 20개뿐인 둥근 원 모양의 펜던트.

인마 전쟁 때 마왕을 쓰러뜨린 20명만이 가지고 있는 절대 위조가 불가능한 펜던트로, 붉은 달을 지게 한 흰 태양이라는 의미를 지닌 펜던트가 얼마 안 남은 태양 빛을 받아 반짝였다.

“펜던트?”

이걸 왜 꺼내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오는 라네즈. 그런 그녀의 손에 펜던트를 쥐여주었다.

“이거 가지고 세레나 언니한테 가서 내가 이거 전해줄 테니 먼저 가라고 했다고 말하면 대충 무슨 뜻인지 알 거야. 그리고 라헨느. 너는 루아 언니한테 가서 손을 잡아끌면서 빨리 가고 싶다고 재촉해. 그러면 루아는 어버버하다가 어느 순간에 너한테 끌려가고 있을 테니까. 할 수 있지?”

“응!”

자기 이름을 알릴 기회가 온 신입 모험가처럼 사명감에 가득 찬 표정을 지은 라네즈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라헨느 또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그녀들은 도도도. 하는 소리가 어울릴 법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각자의 목표를 향해 돌격했다.

“세레나 언니! 선생님이 이거 언니한테 주래!”

한창 레이와 대화하고 있던 세레나는 갑작스럽게 그녀에게 건네진 펜던트를 보며 당혹감에 휩싸인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먼저 가라고 전해 달라던 말은 그새 까먹어 버렸군.

“자, 잠깐..! 그렇게 급하게 가면..!”

제일 중요한 말을 까먹은 라네즈와는 달리 루아 담당이었던 라헨느는 루아의 팔을 잡아끈다는 제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해내고 있었다.

“빨리 들어가고 싶어.”

“그래도 선생님이나 언니들하고 같이 가야..!”

“선생님이 먼저 가 있으랬어.”

라네즈가 할 말을 라헨느가 대신해주고 있군. 물론 전달해야 할 대상은 루아가 아니라 세레나였지만.

‘결국은 내가 나서야 하네.’

애들이니 어쩔 수 없지 라는 생각과 함께 한숨을 내쉰 나는 레이와 세레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선생님?”

어째서 자기에게 이렇게 중요한 물건을 주냐는 듯 여전히 당혹감에 휩싸여 있는 세레나의 얼굴이 나를 향했고, 레이 또한 궁금하다는 듯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세레나의 손에 들려 있는 펜던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레이랑 둘이서 할 말이 있으니까 그거 가지고 다른 애들이랑 먼저 들어가 있어. 그거 보여 주면서 내 이름대면 별 절차 없이 통과할 수 있을 거야.”

“둘이서만요?”

“그래, 둘이서만.”

둘만이라는 말에 세레나가 음흉한 생각이라도 한 건지 눈을 가늘게 뜨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두 분이서만 할 얘기가 있으시다라~ 암요, 암요~ 방해꾼들은 물러나 드려야죠~”

크후후거리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날린 그녀가 라네즈의 손을 잡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착각을 단단히 한 것 같았다.

“뒤에서 우리도 가고 있다는 말은 꼭 하고!”

“네~! 걱정하지 마세요~!”

손을 흔들며, 그녀들의 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그렇게 레이와 둘만 남게 되었다.

세레나에게 말을 건 시점부터 왜인지 레이는 얼빠진 얼굴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상태였기 때문에 그녀의 어깨를 툭 치자.

“히얏?!”

교성을 내며 그녀의 몸이 크게 떨렸다.

‘...히얏?’

그녀의 교성을 들은 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교성을 낼 만한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교성은커녕 소리도 지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교성에 어색함이 우리 둘을 감쌓고, 그 어색함은 곧 침묵과 멈춰있는 걸음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계속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기에 어색함을 애써 무시하며 레이에게 일단 걷기 시작하자고 말했다.

“...일단 걸을까? 계속 여기서 가만히 있다가는 해가 져 버릴 테니까.”

“아, 아... 그러네요. 가시죠...”

그렇게 침묵에 휩싸여 길을 따라 걷던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였다.

“레이.”

“네헷?!”

‘...네헷?’

갑작스럽게 불러 놀라 혀를 씹은 건지, 발음이 억지로 막히는 소리와 함께 레이가 입을 손으로 가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보이고 싶지 않은 추태를 보였는지, 레이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몸이 부들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픽.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 웃지 말아 주세요..!”

혀를 씹은 게 꽤 부끄러웠는지 화를 내는 레이였지만, 내게는 그저 고양이의 하악질을 보는 느낌이었기에 귀여운 것을 보는 얼굴로 히죽거렸다.

어느샌가 우리 둘 사이에 흐르던 어색함의 기류는 사라진 상태였다.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레이가 나를 때리려 들길래 도망쳤고, 갑작스럽게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우리 둘 다 노멀한 상태에서의 속도는 호각이었기에, 잡힐랑 말랑하는 줄다리기가 펼쳐졌고, 어느새 우리는 세레나 일행을 지나친 상태였다.

‘그래, 이래야 인간답지.’

씩씩대며 쫓아오는 레이를 보며 생각했다.

전에는 항상 차갑고 딱딱한 모습만 보여 줘서 인간이 아니라 감정 없는 자동인형 같았는데, 이제야 좀 사람다운 표정과 행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뭐가 그녀의 성격을 바꿨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지금 같은 레이의 모습이 훨씬 보기 좋았다. 인간미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잠깐의 술래잡기는 성국의 입구에 거의 다다라서야 끝이 났다.

부끄러움은 술래잡기하면서 날아갔는지 상쾌한 얼굴의 레이. 그런 그녀를 보며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머리에 난 혹을 문질렀다.

'먼저 가라고 말했는데 어쩌다보니 제일 먼저 도착해버렸네.'

세레나 일행은 아직 저 멀리 있었다. 그녀들의 모습이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이럴 줄 알았으면 펜던트를 주지 말 걸 이라는 생각과 함께 잠시 입구의 근처에서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던 중.

“그런데 하실 말씀이라는 건..?”

레이가 말을 걸어왔다.

‘아, 맞다. 아스모 씨에게 줄 선물에 대해 물어보려고 말을 걸었었지?’

처음 보는 레이의 행동들과 전력을 다한 술래잡기에 정신이 팔려 그녀를 부른 목적을 까먹고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아, 그게 말이야, 물어볼 게 있어서.”

“?”

무슨 질문이기에 단 둘이서만 대화하는 걸까. 하는 듯 레이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성국에 온 김에 선물을 사고 싶은데, 좋아하는 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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