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96화 (96/146)

〈 96화 〉 성국 사크룸.(6)

* * *

“여기야?”

“네. 적어 주신 종이에 따르면 이곳이 맞아요.”

페레우스에게 건네받은 쪽지에 적혀 있는 장소이자 그들이 묵을 여관에 도착한 레이 일행.

중간에 배고프다고 하는 라네즈와 라헨느를 달래기 위해 잠시 다른 길로 새서 간단한 음식을 먹고 돌아오느라 시간이 지체되기는 했지만 아직 현성은 오지 않은 듯했다.

현성이 그녀들을 앞질렀다고 해도 페레우스가 보낸 손님임을 증명하기 위한쪽지는 그녀들에게 있었기에 여관에 들어가려고 해도 못 들어갈 것이 분명해 밖에서 기다린다는 선택지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여관의 근처를 봐도 현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관의 앞에 선 그녀들. 아직 정식으로 오픈하지 않은 곳임을 듣고 왔기에 세레나와 레이는 노크해야 하나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나 망설이고 있을 때.

“어라? 혹시 손님이신가요?”

뒤에서 들리는 그녀들을 지칭하는 듯한 소녀의 목소리에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단발의,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인이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인 건지 대파로 추정되는 것의 끝부분이 장바구니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레이 일행을 본 그녀는 볼에 손을 올리며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먼 길 찾아오셨는데 죄송해서 어쩌죠..? 저희 여관은 내일부터 열기로 되어 있거든요... 물론 여관으로서의 준비는 다 되어 있지만 귀족분들이라고 해서 편의를 봐 드릴 수는 없어서...”

그런 그녀에게 세레나가 페레우스로부터 받은 쪽지를 건넸다.

“그래서! 이걸 받아왔죠!”

“이건?”

쪽지를 받아 든 그녀의 눈동자가 좌에서 우로, 쪽지를 훑어갔다.

“은인의 지인분들이시니 6명이 묵을 곳을 안내해주렴... 사랑하는 딸에게, 페레우스가...”

쪽지를 다 읽은 그녀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버지도 참... 이렇게 갑작스럽게 쪽지만 달랑 보내시는 게 어딨어요... 준비가 안 되어 있었으면 어쩌려고...”

“아버지?”

“아, 제 소개가 늦었네요. 무러스 가문의 소피아 무러스라고 합니다. 현재 철벽의 요새라는 이름의 여관을 관리하는 여주인을 맡고 있어요.”

양손을 배에 올린 소피아가 레이 일행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럼, 들어오실까요?”

* * *

여관의 안으로 들어와 각자 원하는 방을 고르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가던 중, 소피아가 입을 열었다.

“아 참, 저희는 모든 방이 2인실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모든 방이 2인실이라고요?”

“네.”

“호오...”

모든 방이 2인실이라는 얘기에 세레나의 눈이 번뜩였다.

‘이거, 기회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는데?’

레이와 현성의 관계를 조금 더 발전시킬 기회라고 생각한 세레나가 라네즈에게 눈짓을 보냈다.

처음에는 고개를 기울이며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은 라네즈였지만 레이를 향해 고개를 까딱. 흔드는 세레나의 추가 설명에 레이와 현성을 같은 방에 보내자는 뜻임을 눈치채고는 재빨리 라헨느의 팔에 팔짱을 꼈다.

“라네즈는 라헨느랑 같이 잘 거야!”

“응. 둘이서. 같은 방.”

라헨느 또한 처음부터 그렇게 정했다는 듯 라네즈의 팔을 강하게 껴안았다.

“그러면 저는 루아와 같이 잘게요!”

바로 이어서 세레나가 루아의 팔을 잡아끌며 강제로 팔짱을 끼웠다.

“네, 네? 저랑요..?”

자신이 제일 마지막에 남아 남는 방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한 루아가 예상치 못 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왜? 나랑 자는 건 싫니? 싫으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선생님과 자는 수밖에... 루아가 언니와 같이 자기 싫다는데 어쩔 수 있겠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어깨를 늘어뜨리는 세레나. 흑흑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시늉은 덤이었다.

“아, 아뇨..! 기뻐요..! 다만 지금까지 제 옆에 자려고 했었던 분이 없어서 그랬어요!”

그녀의 연기에 속아넘어간 루아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부정의 의사를 표했다.

“그래? 그러면 잘 부탁해!”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미소와 함께 루아의 팔을 강하게 안는 세레나.

“그러면 레이 언니는 어쩔 수 없이 선생님과 한 방을 쓰셔야겠네요?”

말을 할 선수를 빼앗겨 멍하니 있는 레이를 바라보며, 세레나의 입이 호선을 그렸다.

* * *

“하아...”

거의 녹초가 되어 여관의 입구까지 온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덧 태양은 완전히 넘어가고 달이 떠오르고 있는 시간이었다.

관문에서 여관까지의 거리가 마라톤 코스로 느껴질 만큼 기나긴 여정이었다.

백야의 광팬이라는 토마스란 사람에게 사인을 해준 뒤에도 한동안 그에게 잡혀 백야의 업적에 관해 떠드는 소리들을 듣고 대답하고 듣고 대답하고를 반복하느라 진이 다 빠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부모님 잔소리마냥 얘기의 끝에서 얘기가 시작되는 뫼비우스의 대화였다. 중간에 나 먼 곳에서 여행왔으니 피곤할 것 같다고 보내주는 게 어떠냐고 페레우스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아직도 관문에서 출발하지 못 했겠지.

중간에 끊고 왔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데, 마치 산타클로스를 직접 본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신나게 말하는데 어떻게 중간에 끊을 수 있겠어...

관문을 통과하기 전 마지막으로 백야에 관련된 것들은 어디서 들었냐고 물었더니 백야의 일원으로부터 무용담을 전해 들은 음유시인이 퍼뜨렸다고 했었지.

살아남은 백야의 일원 중에 남에게 무용담을 떠들고 다닐 만한 사람은 용살자 아재밖에 없을 거다. 예전부터 술에 취하면 개인정보를 술술 뱉어대던 사람이었으니까.

조심 좀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여관의 문 앞에 도착한 나는 고개를 들어간판을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여관의 이름이 철벽의 요새라니. 이곳에 오는 건 3번째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이름이란 말이지.’

보통 여관의 이름은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의 이름이 많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여관의 문을 열자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여관의 바닥을 쓸고 있던 주황 머리의 여인이 빗자루에게서 눈을 떼며 고개를 들었다.

“손님이신가요? 죄송하지만 저희 여관은 내일부터... 어라?”

난처하다는 듯 죄송하다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내게 말하던 여인이 내 얼굴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혹시... 현성님이신가요?”

“오랜만이네. 소피아.”

나임을 확인하자 화사함이 가득 담긴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피어올랐다.

“와~! 현성님! 이게 얼마만이예요!”

반가움이 가득 담긴말을 하며 내 양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드는 소피아.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내 어깨와 팔에서 들려왔다.

잠시 후, 너덜너덜해진 양팔을 애써 무시하며 그녀가 나를 기억해준 사실에 대해 기쁨의 마음을 담아 말했다.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네?”

그녀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4년 전 성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손님으로 미어터지는 여관의 특성상, 4년 전과 7년 전에 며칠 들렀다 간 사람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기억하죠. 제 뇌리에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박아 놓으셨으니까요.”

박아놨다고 하니 어감이 이상하긴 했지만 사실은 맞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잠시 과거 회상을 하는 듯 황홀한 표정을 짓던 소피아가 이내 본래의 얼굴로 돌아오더니.

“하지만 아무리 현성님이라도 철칙은 철칙이예요. 모처럼 방문해주신 건 감사하지만 묵는 건 내일 저녁부터예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응? 다른 애들 안 왔어?”

내가 관문에 붙잡혀 있던 시간이 꽤 있었으니 중간에 다른 길로 빠지지 않은 이상 레이 일행이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라네즈와 라헨느라는 복병이 있기는 했지만, 그녀들의 카운터라고 말할 수 있는 레이가 있었기에 중간에 다른 길로 새지는 않았을 터.

“아..! 혹시 귀족분들의 동행자가 현성님이신 건가요?”

‘뭐야. 왔었네.’

“응.”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피아가 입을 벌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와... 현성님이 귀족분들하고 같이 다니실 줄이야...”

지금까지 꽤 여러 번 들어왔던 말이었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유연하게 대답했다.

“뭐, 이래저래 일이 있었어. 그런데 내가 귀족이랑 같이 다니는 게 그렇게 신기한 일이야?”

그녀의 아버지인 페레우스도 그렇고, 딸인 소피아도 그렇고, 기타 등등의 다른 지인들도 내가 귀족과 같이 다닌다고 말하면 대부분 ‘네가 귀족하고 붙어다닌다고?’ 라며 놀란 얼굴을 하곤 했다.

내 질문에 소피아는 예민한 것을 건든다고 생각했는지 우물쭈물하면서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다가.

“그게... 7년 전의 사건도 있었고...”

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난 또 뭐라고...’

별거 아닌 이야기였기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몇몇 나쁜 귀족 놈들이 내 소중한 사람을 앗아간 사건에 지분이 있어서 빚을 받아 낸 것뿐이고, 귀족을 싫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겉으로는 친분을 쌓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나를 어떻게 이용해먹을까 생각하는 놈들이 많아서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것뿐이야. 딱히 귀족 전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라고?”

‘그러시구나.’ 라며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는 소피아.

“그런데 이번엔 얼마나 있으실 생각이세요? 강림제에 맞춰 오신 걸 보면 3일?”

“일단 3일로 해 줘. 더 있게 되면 추가금을 낼 테니까.”

“접수 받았습니다~ 현성님의 방은 2층 제일 왼쪽이예요!”

뭐가 그리 기쁜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녀가 내게 방문의 열쇠를 건넸다.

“아침 식사 시각은 9시부터 10시고, 점심은 1시부터 2시, 저녁은 18시부터 22시까지니 여기서 드실 생각이시면 꼭 시간을 지켜 주세요~!”

“그래.”

“아 참! 내일은 저녁부터 오픈이니 아침과 점심은 알아서 해결해주세요~!”

“알았다, 알았어.”

대충 손을 흔들고, 배정받은 방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방을 향해 걷던 중, 문득 이 여관은 2인실 밖에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레이 일행 중 한 명과 같은 방을 쓴다는 얘긴 데...’

라네즈와 라헨느는 자매인 만큼 같은 방에서 잘테니 둘은 제외하고, 남은 후보는 세레나와 루아. 그리고 레이다.

나로서는 레이나 루아가 있는 편이 그나마 나았다. 세레나 녀석은 뭔 짓을 저지를지 몰랐으니까.

어쩌면 라네즈와 라헨느 자매와 한 방을 쓸 수도 있었다. 맨날 둘이서 하나! 라면서 몰려다니는 그녀들이었기에, 침대도 2개가 아닌 1개의 침대에서 몸을 부둥켜안고 잘 수도 있었으니까.

이런저런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방문의 앞이었다.

“후우...”

심호흡하고, 이 방 안에 들어 있는 게 세레나만 아니길 믿지도 않는 신에게 빌었고 혹은 세레나나 기타 당황할 만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도 유연하게 대체하자고 다짐하며 문을 열었다.

“...”

다행이 방 안에 있던 건 흑발이 매력적인 소녀, 레이였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을 수밖에 없었다.

어른의 속옷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검은색의 브래지어와 팬티. 그런 팬티와 잘 어울리며 요염함을 강조하고 있는 검은색의 가터벨트.

그것들에 더해 매끈한 다리의 섹시미를 강조하는 듯한 검은색 스타킹을 신고 있는 레이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수십 가지의 말을 생각했지만 단 한 순간에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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