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97화 (97/146)

〈 97화 〉 성국 사크룸.(7)

* * *

“...”

“...”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을 깨기 위해 좋은 말이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하려고 뇌를 굴려봤지만 그럴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레이의 속옷차림에 뇌가 반대로 굴러가며 방금까지 한 생각들을 지워 버렸다.

먼저, 이성을 유혹하는 거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검은색의 브래지어와 팬티. 소위 어른의 속옷이라는 놈이다.

다음으로, 팬티보다 더 안쪽을 관통하는가터벨트야말로 가장 은밀한 속옷이라는 말이 있는, 은밀한 속옷 주제에 대놓고 보여 일반 속옷보다 더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검은색의 가터벨트를 착용한 상태였다.

그리고 저 영롱한 검은색 스타킹을 보라. 가터벨트와 세트로 취급되는 스타킹답게 가터벨트에 찝혀 올려져 있는 스타킹이 매끈한 다리와 어우러져 가뜩이나

어딜 봐도 이성을 미치게 하려고 작정한 듯한 의상이었다.

거기다가 간간이 풍겨 와 코를 간질이는 달콤한 과일의 향기. 서큐버스에게서 흘러나오는 미향이었다.

“...”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내가 쉽사리 입을 열지 못 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성을 잃고 그녀를 덮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나마 정신력이 좋은 나니까 이렇게 멍하니 보고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녀의 몸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건 실례라고 생각했기에 이대로 고개를 돌리며 자연스럽게 문을 닫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뇌와 달리 몸은 움직일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기는 했다.

‘자, 잠깐... 왜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

다만 문밖이 아닌 방의 안을 향해서 움직이는 게 문제였다. 개미가 기어가는 정도였지만 내게는 확실히 느껴질 정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든 몸을 멈추려 해봤지만 도저히 자의로 멈춰지지가 않았다.

두근두근 두근. 어느새 심장 또한 빠르게 뛰고 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고, 눈앞이 빙글. 돌기 시작했다.

‘설마... 매료..?’

서큐버스의 매료에 걸린 사람에게서 들었던 것과 똑같은 현상이 내 몸에도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성녀의 마력이 담겨 사악한 것들을 몰아내는 반지가 있었다.

아무리 서큐버스 퀸에게서 물려받아 그녀 또한 서큐버스 퀸 급의 매료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성녀의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정신 보호를 뚫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 생각하며 왼손을 살피자 당연하다는 듯 텅 빈 왼손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아, 반지 깨져서 성국에 온 거였지.’

매료에 걸려서 정신까지 가출해 버린 모양이었다.

차라리 몸을 가리면서 비명이라도 질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마저 들었다. 그렇다면 정신을 차리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황급히 문을 닫고 잠시 도망갔다가 돌아와서 사과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스타킹을 올리고 있는 자세 그대로 나를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녀 또한 쉽게 입을 열지 못 하는 것 같았다.

그때문에 내 몸은 점점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매료 또한 무의식적으로 걸고 있는 거겠지. 내가 아는 그녀는 자의로 매료를 걸고 다닐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아 참! 현성님!”

“으악!!”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에 여탕을 훔쳐보고 있다 들킨 사람처럼 몸이 크게 떨렸고, 나도 모르게 문을 쾅! 하고 닫았다.

“괘, 괜찮으세요..?”

옆을 돌아보니 조금 전 대화를 나눴던 주황 머리의 여인, 소피아가 서 있었다. 나를 부른 건 그녀였던 모양이었다.

내가 갑작스럽게 큰 소리를 내서 놀랐는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가슴을 손을 올리고 있었다.

그래도 덕분에 매혹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분명 레이를 침대에 넘어뜨리고 말았을 테니까.

“아, 아... 미안.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멍때리고 있다가 놀란 것뿐이야. 왜 불렀어?”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린 소피아가 두 손을 내밀며 말했다.

“요금은 선불이예요!”

* * *

‘부끄러워..!’

현성이 소피아에게 숙박비용을 지급하고 있을 때, 가져 왔던 검은색의 잠옷차림으로 갈아입은 레이는 한창 베개를 때리는 중이었다.

현성이 방으로 오기 전에 세레나에게 들었던 ‘모처럼 같은 방도 쓰시겠다, 진도를 나가보시는 건 어때요?’ 라는 말과 그녀가 해준 조언에 따라 입어보지도 않았던 어른의 속옷을 입고 현성을 유혹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한 번에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현성은 그녀가 그를 유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보통의 소녀였다면 조금 전의 상황에서 꺄악! 이라며 비명을 지르며 몸을 감싸거나 보지 마세요! 라면서 베개를 던지는 등 상대방을 쫓아내려 하는 게 자연스러웠을 거라고 레이는 생각했다.

하지만 레이가 행한 일은 자신을 덮치라며 유혹하는, 마치 창녀의 그것같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선생님께서 나를 헤픈 여자라고 생각하시면 어쩌지?’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현성에게 이상하게 보일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부끄러움과 동시에 기쁜 마음도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매료를 건 것을 눈치채지 못 했기에, 순수하게 현성이 자기 몸에 관심을 가져 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저기... 레이? 옷 다 갈아입었어? 들어가도 될까?”

똑똑. 노크 소리에 이어 들려오는 현성의 목소리에 침대에 묻고 있던 그녀의 상반신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네, 네! 들어오세요!”

끼익.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현성이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앉았다.

“...”

“...”

잠시 어색한 기류가 그들의 사이에 흘렀다. 제 3자가 봤다면 공간이 일그러지는 게 보일 정도라고 말할 정도였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현성이었다.

그가 레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미안.”

“네?”

갑작스러운 현성의 사과에 당황하는 레이.

“노크도 없이 문을 열어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 장면을 본 거 말이야.”

그가 순수하게 옷을 갈아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본 것이라고 오해했다는 것을 알아챈 레이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사실대로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현성이 자신을 헤픈 여자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오해를 한 채로 놔두자고 생각을 바꿨다.

실수를 너그럽게 넘기는 이미지도 심어 줄 겸 말이다.

“아니예요. 옷을 갈아입으면서 문을 잠그지 않은 제 탓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이번 일은 불문에 부치기로 해요.”

현성이 고개를 들며 정말 그래도 되겠냐는 표정을 지었고, 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내일 있을 일정을 위해 휴식을 취하자고 현성이 말했고, 레이 또한 동의 하며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그들의 사이에서 흐르는 어색함의 기류는 사라진 상태였다.

“잘 자.”

“안녕히 주무세요.”

그렇게 서로에게 잠자리 인사를 하며, 그들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과 짹짹거리는 아침 새의 소리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나는 전혀 상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감은 눈과 뜬눈으로 번갈아 보내다 밤을 지샌 탓이었다.

“하...”

방으로 돌아와 레이에게 속옷을 본 것에 대해 사과한 것은 좋았다. 덕분에 어색한 기류가 사라졌으니까.

레이 또한 갈아입고 있던 타이밍이 나쁜 것뿐이었다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다만 어째서 비명을 지르거나 나를 쫓아내지 않았는지에 대한 답은 해주지 않았다.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았기에 그냥 넘어갔다.

그렇게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불을 끄고 침대에 몸을 뉘었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여관의 안에서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다 보니 조금 전 봤던 레이의 속옷차림이 계속 뇌에 맴돌아 하반신이 진정이 될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오랜만에 뇌쇄적인 것을 봐서 생긴 현상이었다. 근 4년 동안 성욕을 해소할 어떤 짓도 하지 않았으니 오랜만에 본 미소녀의 속옷차림은 내게 번뇌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화장실에 가서 시원하게 해결하고 오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학생을 딸감으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서큐버스가 꾸게 해주는 야한 꿈이 절실한순간이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유일한 서큐버스는 이미 작은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는 상태였고, 깨어 있다고 해도 야한 꿈을 꾸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기에 한숨을 내쉬며 서큐버스를 엔조이 용으로만 즐기고 보낸 과거의 나 자신을 질타했다.

창관이라도 들려서 해결해야 하나 생각도 해봤지만 신성한 성국에 그렇고 그런 가게가 있을 리가 전무했다.

결국 진정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는데, 겨우 진정됐다 생각했을 때가 다른 애들이 전부 기상한 9시였던 것이었다.

아침 운동을 가는 레이에게 내가 깨어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자는 척을 하느라 고생했다.

나를 힐끔 쳐다보는 레이의 눈길에 내가 깨어 있다는 것을 들켰나 싶어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으니까.

물론 잠을 자지 않아도 몸에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밤을 새느라 버린 아까운 시간과 잠을 자지 않았다는 찝찝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대충 얼굴을 씻고 1층으로 내려가니 운동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레이와 마주쳤다.

어제 있었던 일은 불문율에 부치기로 한 일에 따랐는지 싱긋 웃으며 그녀가 내게 묵례를 했다.

여기서 괜스레 시선을 피했다가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기에 나 또한 그녀처럼 싱긋 웃어 주며 운동하느라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씻고 선물을 사러갈 준비하겠다며 2층으로 올라가는 레이. 비어 있는 테이블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중 딸랑 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여관의 문이 열리며 소피아가 들어왔다.

빗자루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문 앞을 쓸고 온 것 같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 일찍 일어나셨네요? 10시는 넘어야 일어나실 줄 알았는데.”

“관광을 하려면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사실은 잠을 안 잔 거지만.’

“다른 애들은?”

침대에 누워 있었을 때 들은 발소리로 세레나나 다른 애들이 일어난 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방문을 노크해 봐도 1층으로 내려와봐도 그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에, 소피아에게 물었다.

“다른 분들은 1시간 전에 나가셨어요. 작은 아가씨가 놀러간다~! 라면서 입가에 미소를 가득 띄운 게 얼마나 귀여웠는데요.”

세레나한테 미행당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군.

말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내 말에 고개를 꾸벅인 소피아가 빗자루로 여관의 바닥을 쓸기 시작했고 그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가 레이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잠옷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레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빠르게 씻어도 꼼꼼하게 씻은 건지 새하얀 피부가 빛을 내뿜고 있었고, 향긋한 샴푸향이 내 코를 간질였다.

“가자.”

에스코트를 해주겠다는 의미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네!”

활짝 웃으며 내 손을 맞잡는 레이.

“다녀오세요~!"

그새 청소를 다 끝냈는지 카운터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피아의 인사를 받으며, 우리는 여관의 문을 나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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