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00화 (100/146)

〈 100화 〉 여왕의 요람.(3)

* * *

“아...으... 흐윽...”

레이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마룻바닥의 색이 변질되어 갔다.

잊고 있었던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들과 잊고 싶었던 과거의 기억이 물밀듯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루터기에서 장작을 패던 아버지를 보며 멋있다며 칭찬하자 그녀를 향해 엄지를 들어 준 아버지의 모습.

물을 먹어 무거운 빨래들을 낑낑대며 옮기는 그녀에게 기특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 어머니의 상냥함.

그네가 타고 싶다는 그녀의 어리광에 근처의 나무에 줄을 매달아 그네를 만들어 줘 기쁘게 그네를 타던 그녀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던 부모님의 얼굴.

꽃이 피는 봄이면 어머니와 함께 만든 도시락을 싸 들고 꽃구경을 갔던 일.

더운 여름이면 욕조 통에 물을 받아 같이 물놀이했던 일.

시원한 가을이면 근처에 열린 밤나무를 찾아 밤을 따러 가던 일과 가시에 찔려 우는 그녀를 달래던 부모님의 얼굴.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다 같이 눈사람을 만들거나 언덕에서 썰매를 타던 일.

그 모든 것들이,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깨지며 조각조각 흩어졌다.

“아악..! 아아악..!”

미어터질 것 같은 가슴의 옥죄임이 그녀를 덮쳤다.

닫아놨었지만 열려진 마음의 문으로, 막아놨었지만 벌려진 마음의 틈으로, 물밀듯이 쏟아 들어오는 감정의 파도.

기억하는 추억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슴의 격통도 심해져갔다.

“아으아악..!! 아아아아.. 악..!!”

계속되는 가슴의 격통에 가슴을 움켜잡으며 토하듯, 오열하듯 구슬픈 소리를 토해낸다.

옛날에는 이렇게 울고 있으면 부모님이 와서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던지 괜찮다고. 자신들이 옆에 있으니 무서울 건 없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괜찮다고 말해 줄 어머니도, 옆에 있으니 안심하라고 말해 줄 아버지도.

모두 사라졌다. 그녀만 남기고 가 버렸다. 이 세상에, 지금 상황에, 그녀는 혼자였다.

“흐윽... 흐으으...”

차가웠다. 주변 공기가.

추웠다.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어두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앞이.

깊었다. 그녀를 삼키는 어둠의 깊이가.

깨져 버린 기억의 파편들은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진 상태였다.

바닷속으로 잠기듯 공허뿐인 어둠 속으로 그녀의 의식이 점점 빨려 들어갔다.

어느샌가 그녀의 머리에는 뿔이 돋아나 검은빛을 내뿜으려 하고 있었고, 허리에는 박쥐 모양의 검은 날개가 그 크기를 점점 더하고 있었다.

만월제의 밤과 마찬가지로 마력이 폭주하려는 조짐이었다.

“괜찮아.”

그때, 나긋나긋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와 함께 어둠뿐이던 공간에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왔다.

한없이 따뜻하고 편안하며,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빛.

빛의 사이로 누군가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신을 잡으라는 듯 내민 그 손을, 레이는 맞잡았고,

“아..?”

정신을 차리자, 자기 몸이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는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흑발이었지만, 레이는 이 흑발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옆에 있으니 안심해. 어디 안 가니까.”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말하는 흑발의 남성, 진현성. 처음 들어 보는, 따뜻하면서 그녀를 안심시켜 주는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서 나긋함의 선율을 연주했다.

“그리고 넌 혼자가 아니잖아?”

그의 말에 하나둘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친해지지 않으려 거리를 두던 그녀에게 포기하지 않고 마음의 거리를 좁히고자 먼저 다가와 준 연보랏빛 머리의 소녀 세레나.

첫 만남 때는 그녀의 기에 눌려 죄송해요를 남발했지만, 그녀의 안에 있는 마음의 상처를 누구보다 빨리 눈치채고 배려해준 분홍 머리의 소녀 루아.

항상 활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그녀에게 조그맣지만 확실한 즐거움을 주던 라네즈와 라헨느 자매.

여러 소중한 사람들과 쌓아온 추억들이 그녀 주위의 차갑고 어두운 기운을 몰아낸다.

“흑... 흐윽..!”

이미 눈물을 쏟아 낼 대로 쏟아 내 눈물샘의 눈물이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눈물이 맺히며 흐느끼기 시작하는 레이.

“엄마..! 아빠..!”

이제는 없는, 충분한 추억을 쌓아왔음에도, 오히려 충분한 추억을 쌓아왔기에 잊지 못 하는 사람들을 부르짖는 그녀를, 현성은 아무런 위로의 말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안고 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픔은, 그 또한 잘 알고 있었기에.

* * *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괴로워하던 그녀를 달래기 위해 그녀를 껴안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저... 선생님...”

“왜.”

“저 다 울었는데요...”

“그런데?”

“놔주시면 안 되나요..? 조금 부끄러운데요...”

레이가 부끄럽다는 듯 내 품에서 얼굴을 떼며 고개를 돌렸다.

“안 돼.”

내 옷을 눈물 범벅으로 만들어 놓고 고작 몇 초의 포옹으로 무마하려 하다니. 말도 안 되지.

적어도 5분은 더 배 부근에 맞닿아 있는 부드러운 2개의 물체의 감촉을 느껴야 되겠어. 그 정도면 내 자신과 눈물범벅된 내 옷도 인정할 수 있을 테니까.

“으...”

내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레이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무어라 말을 더 하려고 입을 열려는 듯 몸이 옴짝달싹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내 포기하기로 했는지 가만히 있게 되었다.

그렇게 만족할 만큼 가슴의 감촉을 느끼고, 레이를 풀어 주었다.

몸을 일으키며, 장시간 동안 구부정하게 그녀를 안고 있었던 몸을 풀었다.

“뭐 해? 안 일어나?”

몸을 다 풀고 돌아가서 선물을 사기 위해 통나무집을 나오려고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여전히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앉아 있는 레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그게...”

몸에 문제라도 생겼는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는 레이.

“무릎을 굽힌 자세로 너무 있던 데다가 긴장이 풀리니 몸에 힘이 안 들어가서 다리가...”

“몸에 힘이 안 들어가서 다리가 안 움직인다고?”

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나는 정말로 어쩔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레이를 안아 올렸다. 이번으로 3번째인 공주님 안기 자세였다.

“서, 선생님?!”

레이의 당황한 얼굴이 나를 향했다.

“왜. 다리 안 움직인다면서? 미안한 말이지만, 슬슬 배가 고파오는지라 네 다리에 힘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 그러니 조금만 참아.”

더 이상의 반론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하게 말한 나는 여전히 당황한 얼굴의 레이를 안아 들고 통나무집을 나왔다.

* * *

레이를 안아 들고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자, 따사로운 햇빛이 수고했다는 듯 나를 반겨 주었다.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것 같지는 않았다.

밖에는 하얀 로브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배웅은 필요 없는데. 아니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성녀에게 알리고 온 건가? 그래서 신전으로 데려가려고 기다리고 있던걸야?”

하얀 로브의 남성이 고개를 저었다.

“혹시나 레이님께서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폭주할 경우를 대비해 모여 있던 것뿐입니다. 하지만 잘해결되신 것 같으니 저희가 나설 일은 없겠군요.”

남성이 손을 내저으며 뒤로 물러나라는 듯한 신호하자 그의 뒤에 있던 하얀 로브들이 닌자마냥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괜한 걱정을 다 하네.”

만약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폭주를 했다고 해도, 내가 막았을 것이다. 방황하는 학생을 바로잡는 것도 선생이 할 일이니까.

‘그나저나 폭주에 대해 말하는 걸 보면 레이가 반인반마에다가 서큐버스 퀸의 딸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성녀의 직속 기사들이라 성녀가 다 말해 준 건가?’

이곳을 지키고 있던 것과 레이의 얼굴을 보여줬을 때 보였던 반응에 따르면 확실히 레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직접 조사했을 리는 없으니 가장 가능성이 큰 건 성녀가 그들에게 얘기해 줬다는 것이겠지. 그것에 더해서 내 얘기까지.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레이의 폭주를 막기 위해 모여 있던걸지?

성녀가 내 얘기를 했다면 필시 내 강함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레이가 최상급 마족인 서큐버스 퀸의 마력을 물려받고 그릇의 재구축을 성공해내 웬만한 사람 이상의 강함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나라면 충분히 폭주한 레이를 막을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 저희가 현성님이라는 아군이 있는데도 레이님의 폭주를 막기 위해 모여 있는 건지 궁금하다는 얼굴이시군요.”

‘이런, 너무 쳐다봤나.’

그냥 갈 길을 갔으면 됐을 것을, 괜한 생각에 로브의 남성을 한참 동안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이미 들킨 이상 숨길 필요는 없겠지.’

예전 같았으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지금 하는 생각을 들키지 않게 했을 텐데. 라는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 나에 대해 성녀에게 들었다면 분명 레이의 폭주 정도야 손쉽게 막아 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어째서 밖에서 레이의 폭주를 대비하고 있던 건지 궁금해서 말이지.”

“저희가 대비하고 있던 건 폭주한 레이님이 아니었습니다.”

“뭐?”

“현성님의 말씀대로, 현성님이라는 강한 분이 아군으로 계시는 이상 저희가 걱정할 건 없습니다. 애초에 현성님이 오신 시점부터 걱정은 하지도 않았고요.”

로브의 남성이 말을 이어갔다. 후드가 얼굴을 가려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왜인지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희가 걱정했던 건 레이님의 폭주로 인해 현성님이 레이님을 막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싸움의 여파였습니다. 레이님 자기 힘으로 인해 레이님의 소중한 곳이 파괴되면 안 되니까요.”

로브의 남성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나와 레이가 격돌했다면 최대한 힘을 뺀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저 집은, 레이의 과거가 담긴 저 통나무집은 부셔져 버렸을 테니까.

복구 마법을 쓰면 안 되는 거냐고 할 텐데, 복구 마법은 내 본래의 마법이 아닌 소환수에게 빌려온 마법이다.

성녀의 신성력을 웃도는 마력이 아닌 이상 어떤 마법도 성역의 안에서는 사용할 수 없기에 성역 자체를 부숴 버리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야 성역의 안에서 복구마법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솔직히 말해서, 남남이잖아.”

성녀의 직속 친위대로 임명되어 그녀에게 부탁받았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레이를 위해 이렇게까지 배려해 주는 것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레이의 친부모의 친척이나 지인 같지는 않아 보였으니까.

“저희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서 씁쓸함의 냄새가 풍겨 왔다. 그렇기에 더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럼, 얘기도 다 끝났겠다. 슬슬 가도 되지?”

느낌이 왔다.

이대로 계속 있으면 곧 울릴 배꼽시계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그렇기에 한시라도 빨리 여관에 가서 잠든 레이를 내려놓고 주방을 빌려 요리하던지, 밖에서 먹을 음식을 사오던지 해서 울리기 시작한 배꼽시계를 멈추고 싶었다.

“선생님... 무거우시죠..?”

나를 배려해 주는 건지 레이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물었다.

평소에 몸을 단련해 둔 만큼 레이 정도의 무게는 전혀 무겁지 않았다. 여관에 도착할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전혀 안 무거운데? 그리고 내려 준다고 해도 움직일 수 있어?”

“이, 이제 회복됐어요!”

그렇게 말하는 레이의 얼굴은 붉게 상기된 상태였다. 아무래도 나를 배려해준 게 아니라 내게 안긴 채로 돌아다니기가 부끄러운 것을 돌려 말한 것 같았다.

“그래? 알았어.”

시험 삼아 잠깐 내려주었다. 분명 얼마 못 가 강풍을 맞은 허수아비마냥 힘없이 스러질 것이다.

“오~”

예상과 달리 꽤 오래 버티는 레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버티는 레이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때요..! 혼자 걸을 수 있... 앗..!”

하지만 이내 다시 힘이 풀렸는지 레이의 몸이 풀썩. 무너져 내렸다.

“아하하...”

멋쩍은 웃음을 흘리는 레이를 향해 등을 돌리며 쭈그려 앉았다.

“선생님?”

“업혀. 안기는 건 부끄럽다면서? 그러면 업고 가야지 별수 있겠어.”

“진짜로 안 무거우신 거죠..?”

“내가 거짓말할 사람으로 보여? 잔말 말고 빨리 업혀. 배고파.”

“...네.”

어쩔 수 없다는 듯한숨을 쉬면서도 내 등에 업히는 레이였다.

“그러면 우린 진짜로 간다.”

“들어가세요. 그리고 레이님.”

“네?”

떠나려던 우리를, 아니 레이를 로브의 남성이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은지 레이의 고개가 그를 향해 돌아갔다. 그 덕에 모처럼 움직이자고 마음먹었던 내 다리도 멈추게 되었다.

왜 맨날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얘기를 꺼내는 거야? 미리미리 말하면 좀 좋아?

“언제든지 돌아오셔도 됩니다. 레이님에게는 항상 열어둘 테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 그런 그녀를 업어든 채로 이번에야말로 여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참.”

마지막 인사를 마친 뒤에 레이를 업은 채로 성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레이를 달래기 위해 통나무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로브의 남성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3명의 팔라딘 중 한 명인 플뢰르의 말에 의해 성국 전역을 기사들이 뒤지고 있었다고 했었지.’

이대로 돌아간다면 관문은 어찌저찌 통과한다고 해도 관문을 지나서 여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기사들에게 붙잡혀서 신전으로 끌려갈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위장할 게 필요했다. 그리고 그 ‘위장할 것’은 바로 내 근처에 있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보자 로브의 남성이 무슨 일이냐는 듯 물었다.

“잊고 가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나는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로브 2개만 빌려주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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