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스노우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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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국 사크룸을 대표할 만한 것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것이다.
천신 네리아의 대리인으로서 성국의 1인자이자 그 자신도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무력을 가지고 있는 교황이라던가.
천신 네리아의 환생이라고 일컬어지며 그에 맞게 최강의 신성력을 지닌 성녀라던가.
천신 네리아의 권속인 13명의 발키리라던가.
성국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는 천신 네리아의 동상이라던가.
하지만 그중 제일을 뽑아보라면, 위의 셋을 모두 품고 있는 한 곳의 장소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빛의 신전.
천신 네리아의 동상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성국 전역과 성국의 밖에서도 보일 정도의 위용을 자랑하는, 천신 네리아를 모시는 신전이 그 장소였다.
“후...”
그런 신전의 안, 기다란 복도에서 한 은발의 여인이 손톱을 잘근거리며 계속 끝에서 끝으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가 입고 있는 백색의 갑옷에서 철그럭 거리는 소리 또한 그녀를 따라다녔다.
좁혀진 미간과 찡그려진 얼굴로 볼 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이따금 양 복도의 끝을 흘낏거리는 것이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느낌 또한 주었다.
‘제발... 성녀님께서 아시기 전에 찾아야 하는데...’
누군가에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들키면 안 된다는 듯 초조한 얼굴로 계속해서 복도를 왔다 갔다 하던 은발의 여인.
“플뢰르님!”
‘왔다!’
반대편 복도에서 들려오는 남성의 목소리에 은발의 여인, 플뢰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고개를 돌리자, 청백의 갑옷을 입은 기사가 뛰어오고 있었다.
‘왜 저렇게 느리게 오는 거야!’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성녀가 그의 존재를 눈치채기 전에 반드시 먼저 찾아서 데려와야, 모셔 와야 했다.
기사 또한 급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로서는 최대한 속력을 내는 거였지만 플뢰르의 눈에는 기어 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와 기사의 위치가 끝에서 끝이었기에 그렇게 느껴진 것이었지만 초조한 상태라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던 플뢰르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이고자 기사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헉... 헉...”
그렇게 중간 지점에서 만난 그들. 플뢰르가 수색 상황에 대해 물었다.
“수색 상황은 어떻게 됐죠?”
숨 가쁘게 뛰어온데다가 갑옷까지 입어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 기사가 겨우겨우 숨을 내뱉으며 힘겹게 말했다.
“며, 명하신대로 성국 전역을 샅샅이 살폈습니다만...”
“못 찾았다는 거군요.”
“예, 예... 헉... 헉... 하지만 혹시나 놓친 곳이 있나 싶어 수색을 계속 하는 중입니다..!”
“하아...”
좋지 않은 소식에 은발의 여인, 플뢰르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그녀를 포함한 3명의 팔라딘들을 제외한 성국의 모든 기사들이 성국 전역을 뒤진 지가 벌써 1시간이 넘었다.
사람 한 명 정도는 이미 찾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그들이 목표로 삼은 사람을 찾아내기는커녕 정말로 성국에 와 있는 건지 의심될 정도로 단서조차 못 찾은 상태였다.
그나마 찾은 단서인 ‘철벽의 요새’에 머물고 있다는 것도 목표가 외출했다는 소리를 여관의 주인에게 들음으로서 말짱 도루묵이 되어 버렸다.
‘그분의 친필 사인만 아니었어도..!’
성국의 모든 기사들이 훈련도 거른 채 성국 전역을 뛰어다니고 있는 이유.
그것은 몇 시간 전, 신입 기사들을 훈련시키는 곳에서 그녀의 눈에 들어온 단 한 장의 종이때문이었다.
* * *
2시간 전, 기사들의 훈련을 위해 훈련장에 도착한 플뢰르는 여느 때와 달리 시끌시끌한 훈련장을 보며 의문을 품었다.
평소였으면 그녀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항상 하던 대로 연습용 허수아비의 앞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 그들은 허수아비 앞에 모여 있지 않고 중앙에 구경거리라도 있는 것처럼 한 곳을 빙 두르며 몰려 있는 상태였다.
‘싸움이라도 벌어졌나?’
기사끼리의 싸움은 정식 대련을 제외하면 엄금이었기에, 혹시나 싸움이라면 말릴 생각으로 기사들의 무리에 다가 갔다.
“무슨 일이죠?”
“프, 플뢰르님!?”
상대가 그녀임을 확인한 기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재빠르게 각자의 목각 허수아비를 향해 흩어졌다.
그 때문에 기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갈색 머리의 청년, 토마스만이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원인은 저 남자에게 있는 것 같네.’
도도한 발걸음으로 토마스에게 향한 그녀가 토마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기에 방금까지 모여 있던 건가요?”
“그, 그게...”
토마스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성국의 3인자인 팔라딘을 봐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의 눈앞에 보인 그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도 있었다.
여자와 대화해본 거라고는 관문을 지킬 때 여자 관광객에게 형식적으로 말을 건 것을 제외하고는 없었기에, 항상 멀리서 보기만 했던 플뢰르의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보는 것 만으로도 긴장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내가 훈련할 때 너무 힘들게 해서 나를 무서워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플뢰르가 그를 달래기 위해 부드럽게 말했다.
“그냥 묻는 거니까 그렇게 떨지 않아도 돼요. 아니면, 제게 잘못한 것이라도 있는 건가요?”
마지막엔 짐짓 혼내는 느낌의 분위기를 내면서.
“아, 아뇨! 없습니다!”
“그러면 얘기해주세요. 무엇 때문에 제가 온 것도 모르고 당신을 기준으로 기사들이 몰려 있었는지.”
"후아..."
한 차례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킨 토마스가 플뢰르에게 한 장의 종이를 건넸다.
“이건?”
“어젯밤, 강림제를 맞아 성국을 방문하신 백야의 일원 중 한 분에게 받은 친필 사인입니다!”
“백야라면... 마왕을 물리쳤다고 알려진 스무 명을 뜻하는 건가요, 아니면 아벨 왕국의 기사단을 뜻하는 건가요?”
“마왕 토벌단의 일원 분을 말하는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 사람이 진짜 백야인지는 어떻게 안 거죠?”
“백강으로 만들어진 펜던트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진짜 백강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이야기를 하느라 방금처럼 모여 있었다는 거군요?”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별거 아니었네.’
싸움이 일어난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토마스에게 종이를 되돌려주려던 찰나.
‘그런데 누구의 사인이지?’
백야의 일원 중 몇 명은 알고 있던 그녀였기에,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의 사인인가 싶어 돌려주려던 손을 멈추고 종이를 살펴보았다.
[토마스에게 현성이]
“...”
“팔라딘? 손이 떨리고 계신 데, 괜찮으세요?”
토마스의 말처럼 어느 샌가 종이를 잡은 플뢰르의 손이 추위에 떠는 사람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토, 토마스.”
“예?”
몸과 똑같이 떨리는 플뢰르의 목소리에 토마스 또한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사인을 해준 사람의 인상착의를 다 기억하고 있나요? 어느 여관에 묵었는지는요?”
플뢰르의 질문에 토마스는 잠시 생각하는 듯 흐음... 거리며 턱을 문질렀다.
“아마 흑발에 키는... 180은 넘어 보였습니다. 의상은... 죄송합니다... 동경의 대상이었던 백야의 일원이었던 분과 만나서 흥분한 나머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관은 페레우스 님의 추천에 따라 따님이 운영하시는 여관인 철벽의 요새로 가셨을 겁니다. 아, 하나 더. 왕성 귀족의 영애분들과 같이 오셨습니다.”
“그 정도면 됐습니다. 훈련병. 집합하세요!”
플뢰르의 집합 신호에 허수아비를 치는 척만 하며 토마스와 플뢰르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다른 기사들의 몸이 움찔! 떨리더니 이내 오와 열을 맞춰 플뢰르의 앞에 늘어섰다.
“관문을 지키고 있는 기사들과 팔라딘을 제외한 성국의 모든 기사들에게 전하세요. 최대한 빨리.”
여느 때보다 낮게 깔리며 진지함을 드러내는 그녀의 위압감이 섞인 말을 들으며, 훈련 기사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당장, 하던 모든 것을 멈추고 진현성이라는 남자를 찾아 신전으로 데려, 아니 모셔오라고.”
* * *
‘그게 벌써 2시간 전인데...’
“도대체 어디로 가신 거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이었지만, 그녀의 지근거리에 있던 기사에게는 들렸다.
“성국이 워낙 넓기도하고, 며칠 뒤면 강림제라 사람이 몰린 관계로 수색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뻔한 얘기하는 기사에 플뢰르는 짜증이 섞인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자기 딴에는 의견을 표한 거지만 오히려 짜증만 더 북돋아버리게 되어 침울해져 버린 그를 뒤로하고, 플뢰르는 계속 생각했다.
‘아직 못 찾을 정도면 성국의 안에 안 계신 것 같아. 그렇다면 밖으로 가신 건가? 하지만 어디로?’
그가 갈 만한 곳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성국의 성역들은 모두 확인해봤어. 그 분이 가실만한 가게도 전부 사람을 보내 확인해봤고.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 누구도 그분의 모습을 봤다는 사람이 없었어.’
잠깐의 일이 있어서 하루 만 있다가 간 게 아닌가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그렇다면 관문지기들에게 물어 봤을 때 지나가는 것을 봤다고 했을 텐데, 성국의 모든 관문지기들에게 물어봐도 못 봤다는 소리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성녀님의 일정이 제일 많이 잡혀 있는 시간이라는 거야.’
기도, 성가대의 노래 감상, 교황 알현 등, 성녀가 주변에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기에, 그녀는 그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기사단원들은 전부 성국의 안을 뒤지느라 밖까지 살펴볼 여력이 없어. 다른 두 분의 팔라딘은 자신들의 일하는 중이시고, 나는 성녀님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신전의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계속해서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긴박한 일이라도 터진다는 듯 다시 초조하다는 얼굴이 되어 버린 플뢰르. 팔라딘들에 대해 생각하자 갑자기 짜증이 확 솟았다.
‘그나저나 페레우스 님은 왜 얘기를 안 해 주신 거야? 그분의 따님이 운영하는 여관에 왔다는 것을 버젓이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니, 본인이 추천까지 해줬으면서도! 어제저녁에 말씀만 해주셨어도 미리 사람을 보내서 모셔왔을 거 아니야!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관문에 나가 있고!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이제는 발을 쾅쾅 구르며 짜증을 내며 분을 표출하는 그녀.
그런 그녀를 본 기사는 계속 있다가는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든 불똥이 튈 거로 생각해 계속 수색하겠다는 말과 경례를 남기고 재빠르게 떠나갔다.
그런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목표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던 그녀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성기사들의 눈을 피해 여관으로 돌아오신 건?’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신빙성이 있는 가설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어느새 저 멀리 가 있는 성기사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예, 예?”
‘모퉁이만 돌면 끝이었는데..!’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려던 기사는 플뢰르가 그를 부르는 소리에 거의 울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멈춰 섰고, 다시 왔던 길을 따라 플뢰르에게로 향했다.
‘왜, 왜 또 부른 거지..?’
갑옷 안의 얼굴은 거의 울상을 짓기 직전이었지만, 그것을 알 리가 없는 플뢰르가 그에게 말했다.
“필립, 당신은 다른 성기사들에게 합류하지 말고 곧장 철벽의 요새로 가세요.”
필립이라고 불린 기사는 성국의 밖이 아닌 목표로 한 사람이 묵고 있다는 여관으로 가라는 말에 의문을 표했다.
“예? 성국의 밖을 찾는 게 아니라 철벽의 요새로 가라고요?”
“네. 어쩌면 지금쯤 여관으로 돌아오셨을 지도 모르니까요.”
“예, 예! 알겠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을 부르는 게 마지막이길 바라며, 필립이 갑옷을 철그럭거리며 빠르게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성녀님의 기도가 끝나기까지 30분... 기도를 마치고 나오시면 분명 신전 내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시고 내게 물어보시겠지. 물론 어쩌저찌 얼버무릴 수야 있겠지만 남은 일정을 처리하시다 보면 분명 위화감을 느끼실 거야. 그렇게 되기 전에 빨리 찾아서 모셔와야 해!’
제발 여관으로 돌아와 있어 달라고. 천신 네리아에게 여느 때보다 더욱더 강한 기도를 올리는 플뢰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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