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빛의 신전.
* * *
신전의 깊숙한 곳에 있는 한 장소가 있다.
신전에서 지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장소. 그 장소에 들어갔다 나오는 건 오로지 젊은 남자 사제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 장소에 들어갔다 나온 남자들은 대부분 지친 얼굴로 나와 이튿날 아침에 몸이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렇기에 장소를 갔다 온 사람들만 봤지 가보지는 않은 수녀들이나 사제들은 도대체 뭐 하는 곳인가 궁금해했다.
아니. 가보지 않았다기보다는 가지 못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곳은 팔라딘 중 한 명인 ‘알렉세이 블라드노프’의 허가없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소문은 점점 불어만 갔고, 개 중에는 신전의 안에서 금기시되는 여색을 즐기는 게 아닌가 하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교황이나 성녀가 그 장소에 대해 아무런 제제를 가하지 않았고, 알렉세이 블라드노프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상한 곳일 리가 없다고 확신해 더 이상 그 장소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런 장소의 안에서, 거대한 쇳덩어리를 들고 있던 거구의 남성이 현성의 신전 방문으로 인한 소란이 신경 쓰이는 듯 그의 옆에서 그보다는 조금 작은 쇳덩어리를 들고 있는 남성에게 물었다.
“형제님. 밖이 꽤 소란스러운데, 무슨 일 있습니까?”
낮고 굵은 목소리가 남성의 귀에 들어가자 그가 들고 있던 쇳덩이를 내려놓았다.
후. 하며 짧게 숨을 고른 남성이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기사들에게 물어보니, 성국의 모든 성기사들이 진현성이라는 남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플뢰르님의 명으로요.”
“플뢰르 자매님께서 모든 성기사들을 움직이셨다고요? 잠깐, 그 전에. 진현성이라고 했습니까?”
“네. 확실하게 들었습니다. 진현성이라는 남자를 찾으라고.”
진현성이라는 이름에 남자는 잠시 과거를 회상하듯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군요.”
“아시는 분입니까?”
“인연, 아니. 근연(??)이 있는 분이죠.”
철커덩! 쇳덩이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거구의 남성이 몸을 일으켰다.
“잠시 갔다 오죠. 제가 갔다 올 동안 몇 세트 더 하고 계시길.”
말을 마친 남성이 등을 돌려 그가 있던 장소를 떠났다.
그가 떠나자 남성은 다시 쇳덩이를 들었다 내렸다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방금 나간 남성이 놓고 간 쇳덩이의 무게가 궁금해져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살펴보았다.
“와...”
양옆으로 100이라고 써져 있는 둥그런 쇳덩이를 보면서, 남성이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얼마나 노력해야 저걸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이 들고 있던 쇳덩이를 보자, 30이라는 숫자를 볼 수 있었다.
‘역시 대단해..!’
언젠간 꼭 그와 같은 걸 들고 마리라.
그렇게 생각한 남성이 하던 걸 계속하기 위해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던 찰나.
방금 나간 남성이 쇳덩이를 들기 전에 근처의 기다란 벤치에 놓아둔 흰색의 사제복이 눈에 들어왔다.
“...옷 안 입고 가셨네?”
* * *
자신을 필립이라고 밝힌 기사를 따라 신전의 안으로 들어가 얼마 동안 걸었을까, 내가 머무는 학교와 비슷한 크기의 정원과 분수대가 나를 반겨 주었다.
나를 반겨 주는 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백색의 갑옷을 입고 있는 은발의 여인, 플뢰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는 무수히 많은 기사들을 세워 놓은 채로.
마치 군대에 투스타가 방문했을 때 같은 풍경이었다.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항상 깨끗함을 유지하는 신전이기에 미화 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려나.
훈련장이 아닌 정원의 한가운데에서 일사정련하게 모여있는 기사들의 모습이 진귀한 광경이라는 듯 근처를 지나가던 수녀나 신관의 무리가 흘끔거리며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환영 인사 참 거하게 하네.
플뢰르가 앞으로 나오더니 내게 경례를 올렸다가 손을 내리며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현성님.”
“딱히 기다릴 필요는 없었는데.”
기다릴 거면 강림제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것이지.
그렇게 말하자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흥. 누가 쫄 줄 알고.
“그래서, 나는 왜 보자고 한 거야?”
“...정말 몰라서 물어보시는 거예요?”
어이가 없다는 듯 허. 하며 힘이 빠지는 소리를 내는 플뢰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하세요!”
“뭐가.”
그러더니 대뜸 너무하다며 나를 질책하는 플뢰르. 모르겠다는 투로 되묻자, 플뢰르가 내게 얼굴을 가까이하며 내 가슴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대기 시작했다.
“정말.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정말로. 몰라서?”
“모르겠는데? 그리고 한마디 할 때마다 손가락으로 찌르지 마. 아프니까.”
“단련된 근육과 체외에 마력을 두른 몸으로 단단히 보호하고 계시면서 아프긴요!”
“용케 기억한다? 최근에 만난 게 4년 전인데. 그리고 정말로 모르겠으니까 계속 찌르는 건 그만둬.”
아프진 않지만 간지럽단 말이야.
강인한 육체에 강인한 마력 깃들리.
내 스승이 항상 나한테 하던 말에 따라 꾸준히 근육 운동을 해온 덕분이었다.
물론 헬 창 급의 근육까지 가지는 않았다. 내가 원하는 건 적당한 양의 탄탄한 근육이었으니까.
그리고 예전부터 암살이나 습격을 대비해서 항상 몸에 반지가 버틸 정도의 마력을 두른 상태로 지내 왔기에, 마력이 담겨 있지 않은 여성의 손가락 찌르기 정도야 간지러움을 느끼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본제로 넘어가서, 나는 그녀가 왜 저런 행동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오기 싫어서 안 오고 있는 것뿐이었는데, 지가 찾아 놓고 왜 나한테 너무하다고 하는 건지 원.
정말로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자, 그녀가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어째서 성국에 왔다고 말하지 않으신 거예요? 성녀님께서 현성님이 성국에 들어온 걸 모르고 계셔서 망정이지...”
뭐야 그거였나. 난 또 뭐라고.
“강림제가 끝나면 찾아가려 했어.”
“그 전에 성녀님께서 현성님이 성국에 와 있다는 것을 눈치채셨으면 어쩌려고요!”
“내가 혼나는 게 아닌데 왜 신경을 써? 꼬우면 매년 강림제 때마다 관문에서부터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찾았어야지.”
지가 안 찾아 놓고 괜한 사람한테 트집을 잡고 있어.
“그리고 너, 솔직히 말해서 내가 토마스에게 해준 사인을 토마스가 자랑하려 기사단에 들고 오지 않았으면 강림제가 끝날 때까지 내가 성국에 들어온 거 몰랐을 걸? 아니야?”
“윽...”
정곡을 찔렸는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린 플뢰르.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하나 더. 아무리 성녀한테 한 소리 듣는 게 싫다고 하지만 기사들을 전부 풀면 되겠어? 어? 가뜩이나 갑옷도 무거운데 네 재촉에 따른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녔을 거 아니야.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도, 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내 말에 동조하듯 몇몇 갑옷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사들 중에서 그나마 짬이 좀 찬 사람들인 것 같았다.
“솔직하게, 나에 대해 모르고 그저 팔라딘이 찾으라고 해서 찾은 기사, 손.”
확실하게 하기 위해 그녀의 뒤에 있는 기사들에게 물었다.
기사들은 들어도 되나 안 들어야 되는 건가 갈등이 서는 듯 주춤거렸다. 아무래도 상대가 팔라딘인 만큼 자기 의견을 냈다가 눈에 찍히는 게 아닐까 싶은 거겠지.
이대로 있으면 분명 아무도 손을 들지 않을 게 뻔했으므로,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그런 그들을 위해 플뢰르를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편하게 대답하라고 말했다.
“내가 얘보다 높은 사람이니까 눈치 보지 말고 들어도 돼. 뭐라 하면 내가 혼내줄 테니까.”
군대에서 사건 터졌을 때 비슷하게라도 나오는 말 1순위. 다들 알고는 있겠지만 절대 이 말에 혹해서 넘어가면 안 된다.
하지만 상대는 군인이 아닌 성기사들. 그것도 이런 상황을 처음 겪어보는 풋내기들이다. 그런 판단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나는 간부가 아니므로 내뱉은 말에는 확실하게 책임을 질 거다. 그리고 플뢰르가 고작 의견 표현으로 쩨쩨하게 이름을 적는다든가 할 리도 없고.
확실히 팔라딘께서 경례를 올리고 저분이 반말을 하시는 걸 보면 괜찮을지도...
게다가 성녀님과도 잘 아는 사이인 것 같으시니...
내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들의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하나둘 갑옷들 사이에서 손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대부분의 갑옷이 손을 들었다.
열에 한 일곱 정도는 든 건가.
그 광경을 보며, 봤지? 라는 의미로 손을 펼쳐 갑옷의 무리를 가리켰다.
“하, 하지만..!”
플뢰르가 무어라 더 말을 하려 입을 떼던 찰나.
쿵! 쿵!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각으로 대충 위치를 파악해봤을 때, 내 뒤에서 조금 떨어진 곳 같았다.
“지, 지진?”
그 소리에 놀란 듯 기사들의 사이에서 술렁거림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도 뒤쪽에 서 있는, 좀 짬이 덜 차보이는 기사들에게서만 일어났고, 전열에 있는 기사들은 흔히 있는 일이라는 듯 무덤덤하게 가만히 있었다.
아니, 전열의 기사들 사이에서도 웅성거림이 일어나고 있기는 했다.
무언가 이상한 거라도 봤다는 듯 서로에게 고개를 돌리며 숙덕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
플뢰르 또한 내 뒤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놀란 얼굴로 어버버하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땅 울림의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선생님? 땅이 울리고 있는데...”
레이가 갑작스러운 땅 울림에 놀란 듯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지진은 아니니까 걱정 하지마.”
그래. 지진이 아니다. 지진처럼 느껴지는 진동일 뿐. 그것도 단 한 사람이 만들어 내는 땅의 울림.
“현성님!!”
굵직한 목소리의 울림이 내 귀를 강타했다. 로이드 아리아와 쌍벽을 이루는 귀의 따가움이었다.
쿵쿵쿵쿵쿵쿵쿵쿵!!
목소리를 따라 땅 울림의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달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이내 기합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라 마지막 굉음을 내며 내 앞에 착지하겠지.
첫 만남 때 그랬던 것처럼.
“레이.”
“네?”
“잠시만 눈 좀 감고 있어 줄래?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내 말에 레이가 어째서냐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내 얼굴을 보자, 심각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았다.
“하압!!”
그와 거의 동시에 우렁찬 기합 소리가 하늘을 날았고, 거대한 무언가의 그림자가 내 위에 드리웠다.
쿵!!!
여느 때보다 더한 굉음을 내며 땅으로 착지한 의문의 물체. 그로 인해 흙먼지가 정원에 가득하게 피어올랐다.
“꺄악!?”
레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굉음에 놀란 듯 소리를 질렀지만, 굉음에 막혀 나 의외에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내 말에 따라 눈을 뜨지 않으려고 노력하는지 파르르 떨리는 눈썹을 보며 기특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 흙먼지가 걷히자 나는 나와 기사들의 중앙에 있는 한 명의 남성을 볼 수 있었다.
키가 2미터는 훌쩍 넘을 듯한 거구의 몸집. 목에 걸고 있는 로자리오만 아니었다면 북방의 야만족이라고 착각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거구였다.
거기다가 근육 또한 엄청났다. 3대 1000이상은 칠 것 같은 몸이었다.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반달곰과 싸워서 이기거나 달리는 오토바이를 한 손으로 멈춰 세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오랜! 만입니다! 현성님!!”
말을 강조할 때마다 근육을 과시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는 거구의 남성.
그런 그를 보며, 어느새 내 입에서는 파공음을 내뿜으며 소리가 내뿜어지고 있었다.
“옷 입어 이 미친놈아!!”
레이의 눈을 가리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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