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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08화 (108/146)

〈 108화 〉 빛의 신전.(4)

* * *

“빨리도 사라지는군. 마치 빛이라도 된 거 마냥.”

자색의 총탄이 되어 예배당으로 향한 현성이 지나간 자리를 보며 교황이 혀를 찼다.

“교황 성하. 한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기사들을 해산시킨 알렉세이가 계속해서 펌핑 해놓은 근육을 수축시키며 교황에게 무언가에 대해 물으려했다.

“구태여 발키리들의 얘기를 꺼내 그를 도발한 이유가 궁금한 겐가?”

“...예.”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4년 전, 성국 반파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그것도 혼자서.

중간에 용사와 성녀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필시 교황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그 싸움을 가까이서 봤던. 아니, 실제로 그 싸움의 중심에 서 있었던 그는 단언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런 그를 상대로 구태여 도발을 할 필요가 있는 건가. 알렉세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발키리 자매들을 강제로 데려간 거라면 모를까, 그녀들은 그녀들의 자의에 따라 그를 새로운 마스터로 모시며 따라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레이를 업어든 채 그들의 곁에 다가와 있던 플뢰르도 알렉세이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궁금하다는 얼굴로 교황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해본 말이었네. 그와 진짜로 싸울 생각은 없었으니까.”

어깨를 으쓱하며 장난이라는 듯 가볍게 말하는 교황.

“예..?”

그런 그를 본 알렉세이와 플뢰르 얼굴은 벙찌게 되었다.

입을 떡. 벌린 채로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팔라딘들을 보며, 교황이 끌끌대며 웃었다.

“나도 교황이기 이전에 인간일세. 당연히 아픈 건 싫지 않겠나. 몸이 반으로 나눠지는 고통은 한 번으로 족하네.”

“아니 그러면 왜...”

“그가 진정으로 발키리들을 아끼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지.”

“확인한다고요?”

“7년일세. 7년. 그가 발키리들을 데려간 뒤 지난날이. 아무리 그녀들이 극상의 여식이라고 하지만 좋은 음식도 너무 많이 먹으면 질린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까... 7년 전에 현성 형제님이 말씀하신 말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도구라느니 돌려달라느니 도발을 하셨다 이겁니까..?”

교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멈출 타이밍을 못 재고 있었는데 내 로브를 잡아줘서 다행이었지.”

“하... 하하...”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흘리는 플뢰르. 알렉시이 또한 난처하다는 듯 쓴웃음을 짓고만 있었다.

“...일단 전 레이 자매님을 모셔다 드리고 오겠습니다.”

“아니. 돌아올 필요 없이 그대로 예배당으로 가게나. 도움은 그쪽에 필요할 테니. 알렉세이 자네도. 자네는 먼저 옷부터 입고.”

무어라 물어볼 게 더 있는 플뢰르였지만 등에 업혀 있는 레이가 부스럭거리며 깰 기색을 보이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났다.

“저... 한 가지만 더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플뢰르의 모습이 사라지고, 자리를 떠나려던 교황은 아직 남은 질문이 있는 듯한 알렉세이의 말에 예상이 간다는 듯 질문 없이 바로 답을 내놓았다.

“그가 예배당으로 향한 이유가 궁금한가보군. 그것도 저렇게 빠르게.”

“예. 성녀님의 노랫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서요.”

그런 것 치고는 근육이 떨고 있더군요. 마치 두려움에 떠는 것처럼. 라고 알렉세이는 덧붙였다.

“관찰력이 좋군, 자네. 그러면 그 관찰력에 의거하여 한 가지만 묻지. 자네는 성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가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한 답은 주지 않고 역으로 성녀에 대한 걸 물어오는 교황에 알렉세이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일단 대답하기로 했다.

“외모면 외모. 실력이면 실력. 인성이면 인성.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죠. 괜히 성국의 모든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타국의 사람들에게까지 존경을 받으며 자애의 성녀, 헌신의 성녀라고 불리시는 게 아니니까요.”

정식 명칭은 부활의 성녀지만요. 라고 마지막에 덧붙이는 알렉세이.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던 교황은 이내 나이에 맞지 않게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성녀가 유일하게 못 하는 게 있다네. 그것도 그냥 못하는 게 아니라 끔찍하게 못 하는 정도로.”

“설마...”

그쯤되니 알렉세이도 교황이 무엇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지 눈치 챌 수 있었다.

“물론 이건 전 세계에서 나와 현성, 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네. 나와 그를 제외하고 성녀의 노랫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은 너무나도 거대한 충격에 모두 기억을 잃어버렸으니까. 그녀 자신조차도 말일세. 이제는 셋만 아는 비밀이 돼버렸군. 하지만 자네는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닐 만한 사람이 아니기에 말해주는 거라네.”

­쾅!!

그때, 예배당이 있는 방향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그가 도착했나보군.”

예배당의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되돌아온 교황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제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는 알렉세이에게 말했다.

“뭐하고 있나? 어서 가지 않고.”

* * *

현성이 막 신전에 들어왔을 시간, 신전의 구석에 위치한 고아원에서는 수 십 명의 아이들로 가득 찬 공간에서 수녀복을 입은 한 여인이 의자에 앉아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하얀 눈을 담은 듯 한 순백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등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동화책의 글귀에 향한 눈동자에는 바다를 담아놓아 글귀들이 눈동자 속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나갈 때마다 여인의 입에서 나오는 맑고 고운 목소리에 아이들은 황홀함을 느끼며 그녀의 목소리가 그려내는 동화책의 세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공주를 구해낸 왕자님은 공주님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야기의 끝을 맺는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탁. 하며 책이 닫혔다.

“어때요? 오늘의 이야기는 재밌었나요?”

그제야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아이들.

“”“네~!!”“”

미소를 지으며 눈앞의 아이들에게 묻는 여인에게 아이들이 활기차게 대답해주었다.

“아, 고마워요.”

활기찬 아이들의 대답을 들으며 만족한 듯한 얼굴을 한 여인에게 그녀의 옆에 서 있던 호위 기사로 보이는 푸른 머리칼의 여자가 물병을 건네주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또 봬요.”

다 마신 물병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채비를 하는 여인.

“한 권만 더 읽어주시면 안 돼요?”

“또 듣고 싶어요!”

그녀가 가는 것이 아쉬웠는지 간절한 눈빛으로 아이들이 여인을 올려다보았다.

여인 또한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굽혀 맨 앞에 있던 아이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미안해요. 저도 몇 권이고 읽어주고 싶지만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대신 내일은 꼭 두 권을 읽어주도록 할게요.”

“정말이죠?”

“그래요. 약속할게요.”

그렇게 말하며 새끼손가락을 내미는 여인. 맨 앞에 있던 흑발의 소녀가 자신의 손가락을 걸며 환하게 웃었다.

“약속한 거예요!”

“네. 천신께 맹세코.”

기쁘다는 듯 활짝 웃으며 팔짝팔짝 뛰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준 여인이 고아원을 나왔다.

“성녀님~!”

그녀를 부르는 앳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고아원에 상주하는 소녀 중 한 명이 그녀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성녀의 지근거리에 도착한 갈색 머리의 소녀가 작게 숨을 고르며 성녀를 올려다보았다.

“혹시 하나만 여쭤봐도 되나요?”

질문에 대해 물어보기 전에 성녀라 불린 여인은 기사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다음 일정까지 얼마나 남았고, 질문에 대답을 할 시간은 있냐는 뜻이었다.

기사가 그 정도 시간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성녀는 무릎을 굽히며 소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뭔가요?”

“성녀님에게도 왕자님이 있어요?”

“...네?”

예상치 못 한 질문에 성녀는 순간 벙찐 얼굴이 되었다. 입을 벌린 자세 그대로 잠시 동안 굳어있던 그녀는 이내 헛기침과 함께 본래의 온화한 얼굴로 돌아왔다.

“왜 제게 왕자님이 있냐고 물어본 건가요?”

“동화책을 읽어주실 때 마치 동화책의 내용이 성녀님의 이야기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으셔서요!”

성녀가 오늘 아이들에게 읽어준 동화책은 ‘파랑새 공주’였다.

사악한 마녀의 저주에 걸려 평생 궁전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공주와 그런 공주를 창문너머로 우연히 본 뒤로 한 눈에 반한 왕자가 그녀를 저주에서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끝내는 저주를 건 마녀를 죽이는데 성공해 공주를 구해낸 다음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하고 끝나는 전형적인 동화책의 내용이었다.

강림제나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신전의 밖에 나가본 적이 없는 그녀와 비슷하다고, 아마 소녀는 생각한 것 같다고, 그렇기에 자신을 구하러 올 ‘왕자님’이 있는지 물어본 거겠지.

라고 성녀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에 따른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것도 아이들을 돌보는 성녀로서 해야 할 일.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를 보며, 성녀는 미소를 지으며 비밀이라는 듯 쉿. 하는 조용한 소리를 냈다.

“둘 만의 비밀이에요?”

무엇이 비밀인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대화의 맥락으로 봤을 때 소녀의 질문에 대한 대답임이 분명했다.

“네..!”

간접적으로나마 대답을 받은 소녀의 얼굴에는 화사함이 피어올랐고, 이어 함박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 *

고아원을 나와 고아원에 오기 전에 부탁받은 성가대의 대리를 위해 예배당으로 향하던 중, 성녀가 호위기사에게 물었다.

“리사. 당신도 제 얼굴에서 방금 아이가 말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나요?”

리사라고 불린 푸른 머리칼의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책장을 넘기실 때마다 입이 귀에 걸리시던데요.”

“그, 그렇게까지 티가 났다고요?”

분명 조금씩 미소를 짓기는 했다. 동화책의 이야기가 그녀의 인생의 이야기와 조금은 닮았으니까. 소녀가 물었던 ‘왕자님’도 실제로 있었으니까.

“상대가 아직 어린 애들이라 다행이지, 아카데미 중등부 정도의 애들만 됐어도 집요하게 물어왔을 겁니다.”

“우으...”

숨기고 싶었던 것을 들킨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터덜터덜 걷는 성녀.

“그래서, 최근에 그 왕자님에 대해 들은 건 있으신가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성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매년 강림제 전에 항상 편지를 보내시긴 했는데요... 이번 해에는 그것도 없어요...”

아까까지는 부끄럽다는 얼굴이었지만, 지금은 침울한 표정이었다.

“제게 질리신 걸까요?”

“질리신 거라면, 포기하실 겁니까?”

“그럴 리가요.”

방금까지의 침울한 표정은 어디가고, 고개를 든 성녀의 얼굴에는 비장함만이 가득 차 있었다.

“고작 7년 중 1년의 편지가 안 온 거 가지고 포기할 정도라면, 애초에 그 싸움에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말하는 성녀를 보며 리사가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편지를 보내지 않으신 이유가 이번 년도의 강림제에는 참석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

일리가 있을 법한 그녀의 말에 예배당을 향해 걸어가면서, 성녀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골똘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에 그렇다면 모든 성기사들을 동원해 당장 모셔 와서 강림제가 끝날 때까지 신전에서 지내게 하고... 그분은 신성력에 약하시니까 그분께 드리는 모든 음식에 신성력을 타서 조금씩 약화시키거나, 아니면 신성력에 중독되게 만들어서 내가 곁에서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서... 후후... 후후후후... 이번에야말로 그녀들보다 앞서 나가는 거야... 후후후후...”

조금은 위험한 생각을 하는 그녀를 보며 리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새하얀 눈밭과 같던 그녀의 마음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겨버린 ‘왕자님’이란 사람을 조금은 원망을 하면서.

“...성녀님. 예배당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 헤실거리는 얼굴은 좀 푸시죠.”

“핫!”

한참을 혼자 소곤거리며 위험한 계획을 짜던 성녀는 예배당에 도착했다는 리사의 목소리에 제정신으로 돌아왔고, 예배당의 안에 있을 사람들에게 지금과 같은 음흉한 얼굴을 보여줄 수는 없었기에, 심호흡을 하며 다시 원래의 온화한 얼굴로 돌아왔다.

예배당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예배당 안의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항상 이 시간에 성가대의 성가를 듣기 위해 예배당에 오는 성녀였지만, 오늘은 노래 감상이 아닌 노래를 부르기 위해 온 것이었으니까.

­오늘은 성녀님께서 성가를 부르신다면서?

­본래 목소리도 좋으신데 노랫소리는 또 얼마나 좋을까!

기대에 가득 찬 신도들의 목소리에 성녀는 이제부터 성국 전역에 퍼질 자신의 노랫소리에 긴장하며 단상으로 올랐다.

‘지금부터 성국 전역의 사람들이 내 성가를 듣는 거구나...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건 처음인데 괜찮을까..? ...어라? 처음?’

분명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는데 왜인지 처음이라는 생각에 위화감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위화감의 정체를 모르겠던 그녀는 꿈에서 불렀나보다. 라고 생각하며 단상위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스으...”

성녀가 지휘에 맞춰 노래를 시작하기 위해 숨을 들이마시던 그때.

­쾅!!

굉음과 함께 예배당의 문이 박살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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