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성녀 납치 사건.
* * *
* * *
쾅!
달려가던 속도를 실어 내지른 발차기에 굉음과 함께 예배당의 문이 박살났다.
자욱한 흙먼지와 함께 떨어지는 나무 파편들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
빠르게 오기 위해 마력을 조금 개방한 상태이긴 했지만 너무 심하게 부숴먹은 것 같았다.
아예 산산조각이 났잖아?
그래도 한 두 개 정도는 부숴도 된다고 했으니 수리비를 물어내라던가 하지는 않겠지?
박살난 예배당의 문을 보며, 혹시나 나한테 수리비를 청구할 경우에 증거로 제출하기 위해 녹음이라도 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을 리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성녀가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도착해야만 했으니까.
교황, 그 영감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으니 나중에 딴소리가 나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예배당의 안으로 들어가 상황을 확인해보니 다행이 아직 노래를 시작하기 전인 것 같았다.
“...”
성녀를 포함한 성가대가 입을 벌린 채로 예배당의 입구 쪽을, 정확히는 나를 보고 있었으니까. 만약 노래가 시작됐다면 저렇게 많은 사람들의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지는 않았겠지.
문을 부수고 들어온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눈들을 보며 이제 어떡해야 하나 생각했다.
일단 노래를 시작하지 못 하게 한 건 좋은데... 이제 어쩌지?
예배당의 문을 부수며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좋았다. 노래가 시작되기도 전에 멈췄으니까.
하지만 달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성녀의 입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만 막겠다는 생각이 전부였던지라 미처 그 다음을 생각을 하지 못 했다.
뇌가 빠르게 회전하며 지금과 같은 서로 어색한 상황에 꺼낼 수 있을 법한 말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의 탐색을 마치고 내 입에서 나온 건.
“어... 안녕하세요?”
가벼운 인사말이었다.
* * *
레이를 자신의 방 침대에 눕혀놓고 책상 위에 ‘깨어나셔서 이 편지를 보신다면 중앙 정원으로 와주세요.’ 라는 말을 적어놓은 채로 예배당으로 향하던 플뢰르. 멀리서 알렉세이의 모습이 보이자 속도를 올려 그를 따라잡았다.
“알렉세이 형제님!”
땅울림을 동반하며 근육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달리고 있던 알렉세이가 들려오는 플뢰르의 목소리에 잠시 멈춰서며 고개를 돌렸다.
교황으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들은 알렉세이와 달리 플뢰르는 영문도 모른 채 그저 교황의 지시에 따라 예배당으로 향하고 있었을 뿐이었기에, 알렉세이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다급하게 가는 거예요? 그리고 방금 그 굉음. 그것도 이번 일과 관련이 되어 있는 건가요?”
어느새 옷을 갈아입어 새 사제복을 입고 달리던 알렉세이는 그에게 합류한 플뢰르의 물음에 난처한 기색을 표했다.
모든 것을 잘하는 성녀가 딱 한 가지 못 하는 것. 그것도 그냥 못 하는 게 아니라 엄청 못 하는 것이라고 교황에게 들었다.
그 못 하는 것이 목소리의 형태로 성국 전역을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다고, 현성은 그것을 막으러 간 거라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교황이 직접 세상에서 방금 전 알게 된 그를 포함한 3명만이 알고 있는 성녀의 비밀이라고 했으니, 더욱더 말하기가 불편했다.
“나중에 현성님께 여쭤보세요.”
결국 그가 현재 플뢰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당사자인 현성에게 물어보라고.
“일단은 가시죠.”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는 플뢰르였지만, 긴박한 상황인 것 같기에 일단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사제들과 수녀들의 ‘어째서 저렇게 뛰어가시는 걸까?’ 라는 의문이 섞인 눈빛을 받으며 예배당의 근처에 도착한 그들이 본 것은.
“잡아라!!”
“저쪽으로 갔다!!”
라는 다급한 사제들과 수도사들의 외침이었다.
‘왜 저렇게 다급하게 뛰어다니는 거지?’
그 광경을 보며, 플뢰르는 처음 보는 사제들의 다급한 모습에 고개를 기울였고.
‘도대체 어떻게 막으셨길래 저렇게 예배당의 문이 박살이 난 거야..?’
알렉세이는 현성이 낸 참상에 혀를 내둘렀다.
슈아악!
그 순간, 사람의 형태로 보이는 물체가 쏜살같이 그들의 눈앞을 지나갔다.
“...방금 봤어요?”
“...네.”
평소 단련으로 감각이 평균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들의 눈으로도 쫓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였다.
하지만 단 하나. 단 한 가지는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흑발의 남성이 순백의 머리칼의 여인을 어깨에 들쳐 메고 있는 장면을.
빛의 신전, 트리니티의 안에서 그들이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다.
아니,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교황은 속도보다는 파워에 중점을 둔 타입이었고, 성녀 또한 ‘신체적’으로 속도하고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물론 신성력으로 육체를 강화시킨다면 또 모를 얘기였지만, 성녀로 추정되는 여인은 흑발의 남성에게 들쳐 업혀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저 흑발의 남성은 외부인이라는 소리인데, 그들이 눈으로 겨우 쫓을 수 있는 속도를, 그것도 한 명의 인간을 들쳐 메고 낼 수 있는 사람인데다가 외부인이 쳐들어왔음에도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신전의 반응으로 보아 범인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설마, 아니겠죠?”
“그분이라면 가능하실 지도요. 7년 전에도 그러셨고.”
“아, 팔라딘!”
의문의 남성을 쫓던 수도사들과 신관들이 그들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뛰어왔다.
흘러가는 분위기와 소란스러움으로 보아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것 같은 그들이었지만, 확실하게 하기 위해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알렉세이의 물음에 잠시 숨을 고른 사제가 다급하게 말했다.
“서, 성녀님께서 납치당하셨습니다!”
* * *
한 편 그 시각. 성국의 사람들은 아티팩트를 통해서 흘러나오고 있어야할 성가가 흘러나오지 않자 의문에 휩싸인 얼굴이었다.
아직 3시가 안 됐나?
그렇게 생각하며 시계를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시계는 15시 1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성국의 사람들은 더욱 더 의문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칼 같은 시간에 흘러나오는 성가였다. 그것은 아티팩트가 성국에 도입되고부터 한 번도 빠짐이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아티팩트에서 들려오는 건 성가가 아니라 치지직 거리는 잡음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신전 쪽에서 큰 소리가 들리던 것 같은데, 그거랑 관련이 있는 건가?
큰 소리가 들렸다고? 나는 못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가 무슨 일을 벌인 듯 하군.”
기념품을 고르고 있던 금발의 중년, 아이테르가 웅성대는 다른 사람들의 소리에 곁에서 같이 기념품을 고르고 있는 보라색 머리의 중년, 오스틴 크리샤에게 말했다.
“뭐, 7년 전처럼 성녀님을 납치라도 했나보지. 지금은 그런 것보다 이게 먼절세.”
성국의 2인자인 성녀가 납치당한 사건을 고작 ‘그런 것’이라고 말하며 그가 들어올린 것은 세잎클로버 모양의 목걸이였다.
“어때, 세레나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가?”
“아내가 아니고 딸에게 주는 선물이었나. 그녀가 알게 되면 질투하겠군.”
“무슨 소리야? 당연히 그녀의 선물도 준비했지.”
그렇게 말하며 네모난 케이스를 꺼내 여는 오스틴. 케이스의 안에는 네잎클로버 모양의 목걸이가 들어있었다.
“역시는 역시군. 그런데 어떻게 전해줄 생각인가? 우리가 그녀들이 머물고 있는 숙소로 돌아갈 시간은 없을 것 같은데.”
“그를 대신해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애들을 데리러 갈 때 겸사겸사 건네주면 되지.”
“자네다운 방법이로군. 아, 물론 나는 따라가지 않을 생각이니..."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네."
"아, 이건 어떤가?”
오스틴의 말을 가볍게 넘기며, 아이테르가 진열되어 있던 장식 중 하나를 들어올렸다.
은색의 나비 모양 머리 장식이었다.
“레이에게 줄 선물인가? 아니면 아내에게?”
“레이에게일세. 과거의 아픔을 극복해낸 보상이지.”
“그런 거라면 그에게도 보상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레이가 과거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그의 덕분이잖나.”
“자네가 웬일인가? 남을 칭찬할 줄도 알고.”
“...”
“농담일세. 그리고 걱정 말게나. 그에게는 이미 최고의 선물을 준비해뒀으니.”
그가 그것을 선물로 받아들일지는 그에게 달렸지만 말일세. 라며 아이테르가 말을 끝마쳤다.
그때, 아티팩트에서 다시 치지직.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여러 명의 목소리가 하나의 하모니가 되어 성국의 전역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소란스럽던 성국이 일제히 침묵했고, 개중에는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음. 아무래도 일이 해결된 듯 하군. 그러면 슬슬 로이드와 레인과 합류해서 돌아가세나.”
집어 든 장식품들을 계산하고,점주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그들은 다른 곳에서 관광을 즐기고 있는 가주들과 합류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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