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성녀 납치 사건.(3)
* * *
갑작스럽게 예배당을 습격해 난장판을 벌인 흑발의 남성.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리사의 몸을 굳게 하는데 충분했다.
“뭐긴 뭐야. 사람이지. 새장 속에 갇혀있는 새를 꺼내러 온 사람.”
“..!”
새장 속에 갇혀있는 새를 꺼내러 온 사람이다.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7년 전, 단신으로 신전에 쳐들어와 그녀 자신을 포함한 신전 내 병력의 3분의2를 쓰러뜨리고 성녀를 납치하기까지 했던 남성.
처음에는 한없이 불쾌한 기운을 풍기다가 어느 순간 냉랭한 기운을 풍기기 시작하던 남성.
그랬던 그가 성녀의 방으로 향하는 길목을 막은 그녀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러니 다치기 싫으면 비켜.
당연히 비킬 리가 없어 그에게 덤벼든 그녀를 가볍게 쓰러뜨리고, 몸의 대부분을 얼린 남성.
그리고 꼼짝 못하는 자신의 몸을 마음껏 희롱했던 남성.
“읏..!”
그때의 감각이 기억나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양 팔로 가슴을 가렸다.
“설마... 당신은..!”
* * *
“리사. 당신도 제가 새장 속에 갇혀있는 새로 보이나요?”
“예?”
11살의 성녀의 입에서 갑작스럽게 흘러나온 질문에 리사는 당황하여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새장 속에 갇혀 있는 새라뇨?”
할 수 있는 건 단지 되묻는 것 뿐.
“아까 알렉세이 형제님이 그러시더군요. 저를 보면 새장 속에 갇혀 있는 새가 생각난다고요.”
‘알렉세이라면 분명 블라드노프 가문의 장남이었지.’
신성력으로 몸을 강화시켜 적과 싸우는 블라드노프 가문의 젊고 호리호리한 수도사. 24세의 나이로 성국에 단 3명뿐인 팔라딘의 자리에 올랐다.
그것이 리사가 알고 있는 알렉세이 블라드노프의 전부였다.
그런 그가 어째서 성녀에게 그런 말을 한 걸까. 리사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리사도 알렉세이와 같은 생각인가요?”
다시 한 번 물어오는 성녀를 보며 리사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난처했다.
새장 속에 갇혀있는 새.
어찌보면 성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라고 그녀 또한 생각했으니까.
그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성국의 밖을 단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었다.
아니, 성국의 밖이 아니라 신전의 밖을 나가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는 신전의 안에 있는 고아원에서 지냈고, 신성력을 각성해 공석이었던 성녀의 자리에 올라서고 나서 고아원을 나오긴 했어도 신전의 밖으로 나간 적은 없었으니까.
강림제 때나 얼굴을 잠깐 비치고 다시 신전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그래. 마치 새장 속의 새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새장 보다 조금은 더 넓은 새 새장에서 산책을 시켜주듯이 말이다.
그런 그녀를 오랜 시간 봐왔으니 새장 속에 갇혀있는 새라는 그녀의 말에 내심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리사는 결국 원래의 생각을 시인하기로 했다. 거짓말을 해봤자 성녀 또한 그녀를 오랜 시간 봐왔기에 들킬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그런가요.”
오랜 시간 자신의 곁을 지켜주던 리사 또한 같은 대답을 내자 쓴웃음을 짓는 성녀.
“성녀님...”
리사는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갑갑함을 느끼고 있을 그녀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직접 성녀를 데리고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었지만, 교황이 그것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성녀와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 뿐이었다. 그것을 위해 팔라딘의 자리를 거절하고 성녀의 호위기사로만 남았으니까.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았는지, 성녀가 쓴웃음을 미소로 바꾸며
“괜찮아요, 리사.
“성녀님..!”
11살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자, 잠깐만요 리사..! 답답해요..!”
“아..! 죄, 죄송합니다!”
황급히 성녀를 풀어주는 리사.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성녀가 혀를 베 하고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
“농담이에요. 리사의 품이 답답할 리가 없잖아요.”
소악마 같은 그녀의 미소에 리사는 자신이 당했음을 깨달았다.
“성녀니임..! 그런 장난은 치지 말아주세요..! ”
“헤헤, 미안해요. 그런데, 아까부터 묘하게 소란스러운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성녀의 말대로, 근처를 지나가는 수녀들이나 신관들 그리고 성기사들이 뭐라 뭐라 자기들끼리 수군대고 있었다.
자신만 모르는 무슨 일이라도 난 건가 싶은 성녀가 리사에게 물었던 것이었다.
“누군가가 성국의 결계를 깨뜨렸다고 하더군요.”
“성국의 결계라면... 선대 성녀님께서 펼치신 보호 결계를 말하는 건가요?”
“네. 성국 전역에 펼쳐져 성국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던 보호결계를 누군가가 부쉈던 모양입니다.”
그렇군요... 라면서 고개를 주억거리던 성녀는 문득 어째서 성국의 결계가 깨졌다면 자신이 눈치채지 못 한 걸까? 라고 생각하며 리사에게 물었다.
“왜 저는 결계가 깨진 걸 눈치 채지 못 했죠? 깨졌다면 분명 큰 소란이 났을 텐데.”
“기도 중이셨으니까요.”
“아.”
납득한다는 듯 성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도실의 안에 펼쳐져 있는 방음 결계의 효과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도실의 밖에서 메테오가 떨어져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방음을 자랑하는 결계였기에, 성국의 소란을 듣지 못 한 것도 이해가 가는 성녀였다.
“그래서 현재, 결계를 부순 범인과 교황 성하께서 대화를 나누시는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교황 성하께서 직접 가셨다고요?”
의외라는 듯 성녀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신성력으로만 따지자면 성녀님의 다음가는 신성력을 지닌 전대 성녀님께서 펼치신 결계를 깨뜨린 거니까요. 이론상 드래곤의 브레스도 막는 결계를요.”
그것도 그냥 하늘을 날아서 지나가는 것만으로요. 라며 리사가 덧붙였다.
“지나가는 것만으로 성국의 결계를...”
“신전에 순순히 따라오셨을 정도면 고의로 부순 건 아니겠지만, 그 정도의 강함을 가진 인물이 난동을 부린다면 필시 인명피해가 크게 날 수도 있으니까 직접 가셨다고 들었... 성녀님?”
성녀에게 상황을 설명하던 리사는 자신의 얘기를 듣고 있지 않는 듯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는 성녀의 모습에 얼굴을 가까이했고.
“리사!”
“네, 넷!”
갑작스럽게 큰소리로 그녀를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펄쩍 뛰었다.
“아. 죄, 죄송해요. 갑자기 큰 소리를 내서...”
“...아닙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결계를 깼다는 사람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네?”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성녀를 보며 리사는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했다.
성녀라고는 하지만 아직 11살. 한창 호기심이 많을 나이였다. 거기다가 성국의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 성녀로서는 성국의 밖에서 온 의문의 강자의 등장이 흥미로운 주제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구태여 거절할 이유도 없긴 했다.의문의 상대와 함께 있는 건 성국 최강 전력들이고, 순순히 신전에 온 것을 보면 악의가 있어보이지도 않았으니까.
'만약 상대가 모험가일 경우에는 모험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교황 성하께서 안 된다고 하신다면 몰라도 아무 이유 없이 안 되지는 않을 겁니다. 성녀님은 성녀님이시니까요.”
“그럼 지금 바로 가도 되요?”
어지간히도 보고 싶었는지 성녀가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다음 일정은 뭔지 확인하던 리사는 다음 일정이 휴식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괜찮을 것 같네요. 가시죠.”
라고 말하며 의문의 상대가 있다는 장소로 성녀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성녀가 무언가를 꾸미는 듯 음흉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지 못한 채.
* * *
“설마... 당신은..!”
나를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리사.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며 그녀가 나를 기억해냈음을 알아챘다.
그때 했던 말을 그대로 하길 잘했네.
이제 내 이런 행동을 변호해줄 사람이 한 명 더 생겼으니 시간을 더 끌 거 없이 바로 성녀에게 직행해 저 결계를 부숴버리고 성녀를 납치하면 되겠지.
하압!!
잡아!!
하지만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드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자, 잠깐만요!”
상대가 나임을 눈치 챈 그녀가 내게 달려드는 사람들을 황급히 막아보려 했지만, 그들은 이미 나를 향해 몸을 날린 상태였다.
부웅!
검, 목봉 등 각종 무기들이 나를 향해 휘둘러지거나 내리 꽂히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할 곳은 없었다. 상하좌우전후 모든 방향에서 공격이 날아들고 있었으니까.
저 무기들 하나하나 신성력이 발려져 있었고, 그들의 몸에서는 노란빛이 일렁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신성력으로 몸을 강화한 것 같았다. 그대로 맞는다면 꽤나 따가울 것이 분명했다.
당연하지만 그대로 맞아줄 생각은 없다.
“아이스 스톰.”
휘이이이잉!!
나를 중심으로 강력한 얼음 폭풍이 휘몰아쳤다.
큭..?!
뭐, 뭐야?!
추워..!
강력한 얼음 폭풍에 내게 달려들던 사람들은 강력한 바람이 밀려 날아가거나 그 자리에서 급속도로 얼어 얼음 속에 갇혀버렸다.
“꺄악!!”
내 근처에 있었지만 내게 달려들던 사람들보다는 멀리 있었던 리사는 하필이면 바람이 밑에서 시작된 바람에 그녀의 치마가 올라갔고, 잠깐 보였던 치마 속 미지의 물건을 내가 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오.”
나랑 동갑인 나이일 텐데 토끼가 그려진 팬티라니.
예전에는 갈색 토끼였는데 이번에는 흰 토끼였다.
“핫..!”
자신의 치마가 바람에 의해 올라갔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황급히 치마를 잡아 내렸다.
“보, 보셨어요?”
눈물이 맺힌 원망스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리사.
“뭘?”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제 팬, 팬...”
“토끼그림 팬티? 잘 봤지.”
“읏..!”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는 리사를 뒤로하고, 성녀가 있는 단상을 살폈다.
정신을 집중해!
보호막이 뚫려서는 안 된다!
폭풍의 범위가 꽤나 넓었는지, 여전히 몰아치고 있는 폭풍에 의해 보호결계가 깨지지 않도록 사제들이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었다.
아직 제대로 된 공격은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얼음 폭풍은 그저 보호결계를 부수는데 방해되는 방해꾼들을 처리하기 위함일 뿐, 보호결계를 부수기 위한 마법은 아직 사용하지도 않았다.
폭풍을 거두며, 마법을 영창했다.
“아이스 브레스.”
꽈득! 꽈드드득!
내 머리 위에 푸른빛의 마법진이 생기더니 얼음으로 이루어진 용의 머리가 입에 푸른 냉기를 모으며 서서히 마법진의 밖으로 나왔다.
또 온다!
준비 단단히 해!
“발사.”
콰아아아!!
푸른빛의 광선이 공기를 찢으며 맹렬하게 보호결계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지지지직!!
크윽..!!
버텨..!!
처음에는 비등비등하게 버티던 그들이었지만.
아, 안 돼..!
파캉!
이내 힘없이 깨져버리는 보호막. 투쾅! 소리와 함께 성가대의 전열이 날아가버렸고, 그로 인해 성가대의 가운데에 서있던 성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는 건 성녀 또한 내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어..?”
내 얼굴을 확인한 듯 성녀의 동공이 확장되는 게 눈에 들어올 정도였고, 입 또한 살짝 벌어졌다.
놀라는 표정도 귀엽네.
그런 그녀에게 씨익 웃어준 다음에 내게 달려들려는 듯 보이는 성가대의 발을 전부 얼려버려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성녀를 기준으로 원을 그리고 있어서 얼려버리기에 용이했다.
“흣차.”
하반신에 힘을 집중시킨 뒤에 가볍게 튀어 올라 단상에 착지했다.
“지, 진짜 현성님이세요..?”
여전히 내가 그녀의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충격에 빠진 그녀의 얼굴을 더 감상하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기에 아무 대답없이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읏차.”
쌀포대를 들 듯 어깨에 들쳐 멨다.
“자, 잠..! 현성님?!”
갑작스럽게 짐짝처럼 들쳐 메진 성녀가 놀란 듯 버둥거렸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등을 돌려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예배당 안의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성녀는 내가 데려간다!”
7년 전에 했던 대사 그대로.
“하하하하!”
웃음까지 빼먹지 않은 채로.
타앗!
땅을 박차며 쏜살같이 예배당을 빠져나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