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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12화 (112/146)

〈 112화 〉 성녀 납치 사건.(4)

* * *

그렇게 돼서 현재, 성녀를 들쳐 메고 달리는 중이었던 것이다.

중간에 플뢰르와 알렉세이의 모습이 보였던 것으로 보아 그들도 예배당의 근처에 도착한 듯하니 뒷일은 그쪽에서 알아서 잘 처리해 주겠지.

그러니 난. 아니, 우리는 그들이 사태를 진정시키는 동안 어디 가서 시간을 좀 보내다 오면 될 일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보낼 장소는 이미 정해 놨고.

“현성니임..!!”

등 쪽에서 들려오는 앙탈부리는 듯한 목소리. 성녀의 목소리였다.

4년 만에 찾아와서는 뭐하는 짓인가. 묻고 싶은 거겠지.

당장이라도 대답해주고는 싶지만, 아직 때가 아니다.

계속해서 앙탈부리는 그녀를 애써 무시한 채, 계속해서 달린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신전의 구석진 곳에 다다랐다.

이쯤이면 되겠지.

계속 달려가면서 소환 마법을 영창했다.

“계약에 따라 나, 그대를 부르노니.”

성녀를 잡고 있지 않은 왼손 위에 푸른빛의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마법진을 움켜쥔 다음에 야구공을 던지듯 힘껏 던지며 계속해서 마법을 영창했다.

“내게로 와라. 고대빙룡 스카지나!”

영창을 끝내자 마법진이 일순 번쩍이더니 그 크기가 방금 전의 10배 이상 커졌고, 이내 한 마리의 드래곤이 마법진의 안에서 튀어나왔다.

온몸이 푸른 비늘로 뒤덮인 드래곤은 고개를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더니 나를 발견하고는 물었다.

“뭐야, 왜 불렀어? 그것도 용의 형상으로? 아까 내 마력을 빌려가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거야?”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크게 도약하며 등 위에 착지했다. 이어, 실레스틴의 등을 타고 올 때처럼 용의 비상으로 인해 떨어지지 않도록 내 주위에 보호 결계를 펼쳤다.

“설명은 나중에. 일단 출발해.”

스카지나의 등을 탕탕 두드리며 비상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는 듯 스카지나가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거대한 날개를 펼쳤다.

“꽉 잡아.”

“보호 결계 걸어놨으니까 안심하고 올라가.”

고개를 끄덕인 스카지나가 거대한 날개를 한 번 펄럭였고, 주변의 나무들과 풀들이 강풍에 의해 뽑혀 날아가는 것을 봄과 동시에 우리는 성국의 하늘에 떠 있었다.

“출발하긴 하래서 날아올랐는데, 어디로 가?”

그렇게 물으며 나를 돌아보는 용의 머리에게 저 멀리 보이는 절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태양이 뜨는 절벽으로.”

* * *

예배당에 도착한 알렉세이와 플뢰르.

“아이고...”

“꽤나 날뛰셨네요.”

현성이 난장판을 벌이고 간 예배당의 모습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여기! 잔해 속에 깔린 사람이 있어!

예배당 안의 의자들은 어느 것 하나 멀쩡한 게 없었다. ‘의자였던 것’들로부터 여기저기 박혀있는 사람의 형체로 보이는 무언가를 꺼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 와서 얼음 깨는 것 좀 도와줘!

누군가에게 달려들던 자세 그대로 얼음 덩어리 속에 갇힌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신성 계열 마법 의외에는 배우지 않는 사람들이었기에, 신성력으로 육체를 강화해서 얼음 덩어리들을 깨고 있었다.

­이 얼음, 도대체 언제 녹는 거야?

­꼼짝도 못 하겠어!

발만이 얼어버려 끙끙대고 있는 단상 위의 성가대도 볼 수 있었다.

­벽 무너지지 않게 조심히 꺼내!

­그쪽 팔 좀 잡아줘!

여기저기 벽에 박혀 있는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도 진행 중이었다.

­괜찮아요? 이거 몇 개인지 보여요?

성가가 울려 퍼질 때 연주되는 피아노에는 구멍이 나 있었고, 파아노를 뚫고 날아간 사람으로 추정되는 신관 앞에서 수녀가 손가락으로 숫자 2를 표시하며 정신에 문제가 없는지 체크하고 있었다.

­세, 세 개?

아무래도 병실에 입원해야 할 것 같았다. 이내 들것에 실려 가는 남성. 플뢰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의자들의 잔해 사이에 나 있는, 단상으로 가는 길목의 중간이었다.

성국에 있을 리가 없는 아이스 드래곤이 브레스라도 날린 듯 일직선으로 뻗어있는 얼음의 길이 있었다.

그리고 얼음의 길의 시작점으로 보이는 곳에는 그곳을 기준으로 안에서 밖으로 뾰족하게 나 있는 얼음의 원이 있었다.

현성이 아이스 드래곤이라도 소환한 걸까, 생각하는 플뢰르와 알렉세이.

하지만 드래곤이 날뛰었다기에는 피해가 미미했다. 드래곤이 아니라 와이번이 날뛰었다고 해도 예배당이 겉으로는 본연의 모습을 지키고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사람이 드래곤의 힘을 다룬 것 마냥 보이는 예배당 안의 모습에, 플뢰르와 알렉세이는 현성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환수의 마력을 빌려오는 ‘합일’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데리고 있는 소환수 중 ‘얼음의 브레스’를 사용하는 소환수는 단 하나뿐이었다.

고대빙룡 스카지나. 그것이 그의 소환수의 정체였다.

“날뛰긴 하는데 조절해서 날뛰신 거군요.”

드래곤의 마법이 아닌 고대룡의 마법이다. 그가 진심으로 고대룡의 마법을 사용했더라면 여기 있는 인원 모두가 영원히 녹지 않는 차가운 얼음 덩어리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한 때 저 얼음 덩어리에 갇혀본 적이 있던 알렉세이로서는 얼음 속에 갇히는 기분이 어떤지 잘 알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서 도대체 뭐 때문에 그분께서 이런 일을 벌이신 건데요? 혼자만 알고 계시지 말고 좀 알려주시지 그래요?”

이곳에 오기 전에도 물었지만 알렉세이는 현성에게 물어보라는 대답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현성은 지금 성녀를 업어든 채로 도주중이지 않는가.

교황에게 들어서 사건의 진상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알렉세이와 달리 성녀의 입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 것을 모르는 플뢰르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신도들부터 진정시키시지요.”

하지만 알렉세이의 입에서 나온 건 당연하게도 그녀가 원한 대답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두 번이나 비슷한 맥락으로 물어봤지만 비슷한 맥락으로 피하는 알렉세이에 이 이상 물어봤자 대답해 줄 리가 없다고 생각한 플뢰르는 일단 난장판 상태인 예배당의 상황부터 진정시키기로 했다.

자신만 왕따 당하는 것 같은 느낌에 ‘혹시 나에 관련된 건가?’ 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무슨 추태라도 부린 적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 * *

“이 기운은...”

한편 그 시각. 발키리들과 함께 신전의 복도를 걷고 있던 교황은 신전의 한구석으로부터 느껴지는 이질적인 마력의 기운에 눈을 가늘게 뜨며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고의 존재께서 그 옥체를 일으키셨나봅니다.”

교황의 뒤에서, 다른 발키리들의 앞에서 걷고 있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천사처럼 하얀 깃털 날개가 매력적인 금발의 여인이었다.

천신의 권속이라고 불리는 발키리 13자매 중 첫째, 브륀힐데였다.

현성이 7년 전의 일을 재현하기 위해 소환한 고대빙룡 스카지나의 존재를 느낀 브륀힐데는 스카지나가 소환된 방향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다.

신들의 시대부터 존재한 고대룡 중 하나인 그에게 보내는 경의의 표시였다.

그 말을 들은 교황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 수염을 쓸어내리더니.

“꽤나 좋은 방법을 택했구먼.”

라고 말하며 끌끌대며 웃었다.

“예?”

무슨 소리냐는 듯 묻는 브륀힐데.

교황은 과거를 회상하는 듯 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브륀힐데여. 그대는 7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가?”

“7년 전이라면?”

“성녀 납치 사건 말일세.”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기억하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성녀 납치 사건은 성국 반파 사건처럼 한때 성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사건 중 하나였으니까.

다만 그것이 현성이 벌인 일이라는 건 성국의 상층부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브륀힐데를 포함한 13명의 발키리들에게는 특히나 더 뇌리에 강하게 남는 사건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성녀를 납치한 현성을 추격했을 때 봤던 푸른 머리의 남성 때문이었다.

흑발의 남성, 진현성과 백발의 소녀 성녀의 옆에서 배꼽이 빠져라 웃던 푸른 머리의 남성.

왜인지 푸른 바탕에 흰 구름이 그려져 있는 잠옷을 입고 있던 남성.

그리고 그를 본 순간 느껴지는 심장조차 얼어버릴 정도의 한기.

그것을 어찌 잊을 수 있겠나.

“기억이 날 수밖에 없죠.”

그때의 느낌이 되살아나자 브륀힐데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태양이 뜨는 절벽으로 향하게나.”

갑작스런 출동명령에 순간 당황한 브륀힐데였지만 이내 다른 자매들과 함께 동시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존명.”

자리에서 일어난 6명의 날개가 펄럭거리며 한 번의 날갯짓을 한 것과 동시에 방금까지 교황의 뒤에 있던 발키리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남은 건 방금 그녀들이 있던 자리에서 흩날리는 하얀 깃털들 뿐.

흩날리는 깃털들을 뒤로하고 천천히 하얀 복도를 걸어가며, 교황은 고대룡의 등에 타 한창 날아가고 있을 현성이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네의 장단에 맞춰주겠네. 발키리들을 아껴준 것에 대한 보답이니 신경쓰지 말게나.”

당연하게도 고맙다는 등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교황은 만족한 표정으로 끌끌거리면서 가던 발걸음을 계속했다.

* * *

스카지나의 등을 타고 날아온 곳은 성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높은 절벽이었다.

떨어지면 곱게 다치지는 않을 법한 높이의 절벽. 지도에 적힌 지명은 태양이 뜨는 절벽이었다.

“오.”

그곳에서 한눈에 보이는 성국의 전망을 보니 절경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 같았다.빛의 나라라고 말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당연히 성국 전역에 펼쳐져 있는 보호 결계였다.

돔 형태의 그것은 은은하게 하얀 빛을 내뿜고 있었으며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는 기분이었다.

다음으로는 방금 나왔던 빛의 신전 트리니티.

성국에 온 첫날에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보기도 했지만 아래에서 본 것과 위에서 보는 것은 꽤나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성벽이나 나머지 건물들은 다른 나라에도 다 있는 것들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여기도 7년 만이네.”

그 절경을 보는 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

흘낏. 곁눈질로 왼쪽을 보자 그곳에는 한 명의 남성이 서 있었다.

그것도 파란색 바탕에 흰색의 구름이 그려져 있는. 시원해 보이는 잠옷을 입은 남성이.

방금 나와 성녀가 타고 온, 고대풍룡 실레스틴과 같은 종족인 고대빙룡 스카지나였다.

“넌 왜 또 잠옷이냐?”

아내인 글리아나 남편인 스카지나나. 어째서 볼 때마다 잠옷차림인걸까. 아니면 인간인 내가 지고의 존재인 고대룡이나 얼음 여왕의 딸을 인간의 시선으로 보는 게 잘못 된 건가?

“네가 소환할 때가 아니면 밖에 나가질 않으니까.”

글라시아보다 더한 놈일세. 그녀는 산책을 나가기라도 하지.

"그건 그렇고, 설마 계속 하나의 옷만 입은 건 아니지?”

지난번에 봤을 때도 저 옷이었던 것 같은데.

“이 옷은 내 비늘인데 갈아입을 필요가 있어? 애초에 옷을 입을 필요도 없는데 글리아에게 맞춰주느라 입은 거구만.실없는 소리 할 거면 슬슬 가보는 게 어때?”

“어딜?”

내가 목표로 한 곳은 이미 도착했는데 어딜 또 가라는 건지. 남은 건 여기서 시간 좀 뻐기다 돌아가는 것뿐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스카지나를 보자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돌아가는 상황으로 대충 눈치챘지만, 그렇지 않은 숙녀분이 있는 것 같거든.”

고개를 돌리자 내 뒤에는 방금 납치했던 성녀가 서 있었다.

천신의 환생. 자애의 성녀. 부활의 성녀 등등 각종 칭호를 지니고 있는 성녀.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성녀의 푸른 바다와도 같은 눈동자를 보니 아직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가려고 했어."

괜히 저 잠옷에 시선을 뺏겨가지고.

“저... 현성님?”

어째서 여기에 왔는지, 왜 오랜만에 봐놓고 아무 말도 없이 이곳으로 납치해왔는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말이 담겨져 있는 부름으로 그녀가 내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아무 말 없이 손을 까딱거리며 곁으로 오라고 신호했다.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내 옆으로 오는 성녀.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어떻습니까?”

밑으로 보이는 성국을 무덤덤한 표정으로 한 눈에 담으며.

7년 전, 11살의 그녀에게 해줬던 대사 그대로.

“11년 만에 맛보는 자유의 맛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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