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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13화 (113/146)

〈 113화 〉 저를 납치해 주세요! (1)

* * *

7년 전, 성국 사크룸. 빛의 신전 트리니티의 한 곳.

“그러길래 내가 말했잖아. 돌아서 가자고. 왜 쓸데없이 결계를 깨뜨려서 이 사단을 만들어?”

푹신해 보이는 소파에 앉아 있는 흑발의 남성이 반대편 소파에 앉아있는 남성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현재 성국 결계 파괴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빛의 신전, 트리니티에 와 있는 상황이었다.

성국 전체를 흔든 거대한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라 살기를 흩뿌리면서 체포하러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인지 그들을 데리러 온 성기사들에게서 느껴지던 건 두려움뿐이었다.

그들에게 신전까지 동행해 달라고 말했던 성기사 중 대장 격으로 보이는 사람도 입고 있는 청백의 투구 너머로 긴장이라는 단어가 새어나올 정도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명령이 아니라 부탁, 더 가서 애원과도 같은 그의 목소리. 아마 그 원인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푸른 머리의 남성이라고, 흑발의 남성, 진현성은 생각했다.

감옥이 아닌 응접실로 그들을, 마치 극진한 손님을 모시듯 모셔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아니... 그냥 지나가는 것만으로 부숴질 줄은 몰랐지...”

정작 그 원인인 푸른 머리의 남성은 손가락을 톡톡. 맞부딪치며 멋쩍은 얼굴로 말하고 있었지만.

변명하듯 말하는 푸른 머리의 남성을 보며, 현성이 말했다.

“너, 고대룡 아니야?”

“맞아...”

“지고의 존재라면서? 신급이나 같은 고대룡을 제외하고는 너 못 이긴다면서?”

“응...”

“성국의 결계는 누가 쳤지?”

“성국의 성녀가...”

“그러면 성녀가 강해, 네가 강해?”

“내가 손가락만 까딱해도 이기지!”

그 대목에서 왜인지 가슴을 펴고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는 푸른 머리의 남성.

“...그런 네가 성녀가 펼친 보호 결계 위를 지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아까처럼 유리가 깨지듯 산산조각납니다...”

정답을 맞혔지만 전혀 기쁘지 않은 느낌을 받는 푸른 머리의 남성. 애초에 지금까지 한 질문은 정답을 맞추면 상품이라도 있는 퀴즈를 낸 것이 아니라 그가 했던 잘못을 되짚기 위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몇 십년 동안 잘 유지되던 보호 결계가 깨진 것을 본 성국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성국을 침공한 적이라고 생각해 패닉에 빠집니다...”

“그걸 누가 달래고 있죠?”

“성국의 성기사들... 팔라딘들... 수녀들과 신관들 등 많은 사람이 힘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뭐하고 있죠?"

"제가 강함을 눈치 챈 성기사들 덕분에 감옥에 가지 않고 지금처럼 편한 곳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잘못했죠?”

“네...”

고개를 숙이며 침울한 표정을 짓는 푸른 머리의 남성.

“하아...”

마치 친구의 장난감을 뺏어 놀다가 혼난 아이의 모습과 같은 그를 보며 현성이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여하튼, 너는 아무 말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사태가 해결되면 곧 사람이 온다고 했으니까.”

푸른 머리의 남성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응접실의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들려오는 거라고는 시계가 째깍거리며 다음 시각을 향해 흘러가는 소리와 이따금씩 들려오는 현성이 홍차를 마시는 소리, 그리고 푸른 머리의 남성이 놓아져 있는 과자를 아삭거리며 먹는 소리였다.

그러기를 몇 분 뒤.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푸른 머리의 남성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내가 잘못한 것처럼 되어있는 거야?”

“?”

무슨 소리냐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흑색의 눈동자를 보며 푸른 머리의 남성이 말을 이어갔다.

“아니... 네가 말했듯이 난 고대룡이잖아?”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게다가 지고의 존재고.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어.”

“그렇겠지.”

“나한테서 마법을 배워가 세상에 강자로 이름을 떨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나를 숭배하는 집단도 있지. 그런데...”

“그런데?”

“그런 존재인 내가 왜 인간이 친 결계를 부쉈다고 이렇게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있어야 하는 거야..?”

억울하다는 듯 말하면서도 중간중간 현성의 눈치를 슬금슬금보는 푸른 머리의 남성, 스카지나.

“...”

그의 말을 들은 현성은 팔에 턱을 괴며 생각했다.

스카지나의 말대로, 그는 세상에 몇 없는 고대룡이자 신들의 시대부터 존재해온 지고의 존재이다.

그가 지나가는 곳이 곧 길이요 그가 눕는 곳이 곧 침대니. 세상 무엇도 그를 막지 못했다.

그를 막을 수 있을만한 존재는 신들이나 같은 고대룡 뿐이었지만 신마전쟁 이후에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심할 때를 제외하고선 개입하지 않기로 했기에,그의 만행을 막을 만한 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렇게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살아왔던 그였으니 지금 자기가 왜 혼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했다.

방금 사과한 것도 그의 기에 억눌려서 그런 것일 뿐, 실제로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지는 않는다고 그는 생각했다.

나이만 많은 어린아이. 그의 스승이 스카지나를 가리키며 한 말이었다.정말로 잘 어울리는 단어라고 그 또한 생각했다.

‘어떻게 말해야 되려나.’

그가 스카지나를 데리고 여행길에 나선 것은 이동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함도 있지만 자신의 첫 소환수인 그를 나이만 많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고대룡 다운 고대룡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도 끼워져 있었다.

어찌보면 그것의 첫 단추를 꿰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상황에, 현성은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수십 초, 여전히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현성을 보며 자기가 뭐 잘못 말했나싶어 지레짐작으로 두려움에 떨던 스카지나.

괜히 말했다고 생각해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하려던 찰나, 생각을 마친 현성이 입을 열었다.

“스카지나. 너와 나는 무슨 관계지?”

“...? 친구지.”

“계약으로 맺어진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진짜 친구 맞지?”

“당연하지! 너는 내가 인정한 첫 인간이라고!”

그것만큼은 부정할 생각이 없다는 듯 푸른 머리의 남성, 스카지나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얘기는 왜?”

“스카지나, 방금 네가 말했다시피 나는 너와 같은 고대룡이 아닌 ‘인간’이야. 그리고 넌 현재 고대빙룡 스카지나가 아닌 인간 진현성의 소환수로 같이 다니는 중이고. 이것에 대해서는 출발하기 전에 네가 동의했지?”

“그랬지...”

“그러면 지금 일어난 사건은 고대빙룡 스카지나의 시선이 아닌 인간 진현성의 소환수의 시선으로 봐야겠지?”

“응...”

“그러면 인간의 기준에서 성녀의 결계를 부숴버린건 잘못한 걸까, 아닐까?”

“잘못한 거지...”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돼.”

“인간의 눈높이로 보고 행동해야 돼...”

“알았으면 됐다.”

다행이도 첫 단추는 아주 잘 꿰어진 것 같았다.

‘나보다 나이가 몇 백배는 많을 텐데 어째서 내가 아이를 돌보는 것 같이 된 건지.’

소파의 뒤로 고개를 젖히며 어린아이를 교육시키는 게 이런 기분인가 생각하면서 한숨을 내쉬며, 자신은 나중에 자식을 가지게 되면 어렸을 때부터 잘 키워야겠다고 생각하는 현성이었다.

­똑똑.

그때, 응접실의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문이 살며시 열렸다.

자세를 다잡은 현성은 알아서 잘 처신하라는 뜻의 눈빛을 스카지나에게 보냈고, 스카지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한 명의 노인이었다.

체격은 왜소한, 노인의 그것이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백은 전혀 노인의 그것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현성과 스카지나는 단번에 그가 이곳에서 제일 높은 존재라는 것을 눈치챘다.

노인의 뒤로 2명의 성기사가 따라 들어왔고, 가운데 의자에 앉은 노인의 양 옆으로 성기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자네들은 이만 나가보게나.”

그런 성기사들에게 손을 휘휘 저으며 괜찮으니 나가라는 노인.

“하지만...”

내키지 않는다는 듯 난처한 기색을 표하는 성기사들.

“괜찮네. 자네들이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으니.”

“...알겠습니다.”

그들도 노인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는지 그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떠나갔다.

“지고의 존재를 앞에 두고 실례가 많았습니다. 모쪼록 넓은 아량을 베풀어주시길.”

자신을 가리키는 듯한 노인의 말에 스카지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줄...”

“스카지나.”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성국의 결계를 부숴버려서 혼란이나 주고... 그러니 결계를 부순 결례,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푹. 숙이는 스카지나. 그런 그의 모습을 본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지고의 존재께서 지나가시는 곳이 곧 길인데, 그런 곳에 결계를 펼쳐둔 저희의 잘못이지요. 그러니 죄송하다는 말씀하지 마시길.”

말을 마친 노인은 스카지나에게 향하던 시선을 현성에게 옮겼다.

“그런데, 그 쪽의 분은 누구신지요?”

‘도대체 누구길래 고대빙룡인 스카지나가 그의 말 한마디에 꼼짝도 못하는가?’ 라는 의미가 내포된 질문.

당연히 그것을 눈치 챈 현성은 내포된 질문으로 자신의 본질을 꿰뚫어보려는 듯한 노인의 시선에 눈썹이 살짝 움찔하며 언짢은 기색을 표했지만 바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고, 스카지나를 향해 고개를 까딱인 다음에 입을 열었다.

“저 놈 친구이자, 보호자입니다.”

현성의 말에 스카지나의 정체가 고대룡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노인이 ‘호오..’ 하며 흥미롭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하나 여쭤봐도 되겠는지요?”

무언가 물어보려는 듯 운을 떼는 노인.

‘딱 봐도 인간인지 아닌지 물어보려는 거네.’

얼마 전 스카지나에게서 들었던 것과 비슷한 질문의 뉘앙스를 풍기는 노인의 질문에 현성이 어깨를 으쓱이며 그의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대답했다.

“저놈과 같은 고대룡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당연히 인간이죠.”

그렇게 말하며 양 팔을 활짝 펼치는 현성. 그런 그를 보며 스카지나가 허. 하고 짧게 콧웃음을 치며 넌지시 던지듯 말했다.

“마력이나 억누르고 그런 소리를 하지. 외견상으로는 너나 나나 다를 거 없구만.”

“크흠..! 그나저나, 남에 대해서 물었으면 그쪽의 분도 자기소개를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에게서 풍겨오는 기백과 성기사들의 태도로 그가 누구인지 대충 눈치 챈 현성이었지만, 당사자의 입으로 확실하게 듣고 싶었기에 일부러 물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 소개가 늦었군요. 나이가 들면 이런 게 안 좋다니까요. 중요한 걸 깜빡 잊을 때가 많으니...”

흠흠거리며 목을 가다듬은 노인이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천신의 대리인이자 성국의 교황인 율리시스 카이사르 13세입니다. 편하게 율리시스라고 불러주시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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