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16화 (116/146)

〈 116화 〉 납치 작전 개시!

* * *

신전에 상주하는 수녀들이나 플뢰르, 리사 등 여성들만이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교황조차 플뢰르의 동행이 없이는 들어올 수 없는 절대 금남의 구역.

4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의 맨 꼭대기에는 단 3개의 방 만이 있었는데, 그 중 성녀의 방은 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그 방의 안에서 창문을 열고, 목을 기다랗게 빼고, 좌우로 고개를 돌리면서 밑의 상황을 훔쳐보고 있던 흑발의 소녀, 성녀가 혀를 내둘렀다.

“진짜 빼곡하게도 몰려있네...”

평소였다면 이 시간쯤에는 밤 산책을 나서는 수녀들의 모습만이 간간이 보일 터.

하지만 지금은 어딜 봐도 눈에 들어오는 청백의 갑옷들의 행렬이 그녀가 있는 건물뿐만이 아닌 신전 전체를 덮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수십은 훨씬 넘을 법한 행렬이었다.

이 정도 병력을 운용할 수 있는 건 성국을 통틀어서 단 한 사람뿐이었다.

성국의 통치자이자 천신교의 수장인 교황 율리시스 카이사르.

그가 이번 성녀 납치 사건의 전말을 듣고서 병력을 움직인 것이었다.

정작 본인은 이 사태에 끼어들지 않고 본인의 방에서 ‘천신의 눈’으로 모든 상황을 지켜볼 게 뻔했지만.

“관문을 지키는 기사들만 빼고 다 불러온 건가?”

철그럭 거리는 갑옷소리가 그녀의 귀에까지 들려오며 일정한 리듬을 연주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어깨에는 주변 반경을 비춰주는 마법, 라이트(Light)가 구체의 형태로 띄워져 있었다.

하늘에서 그들을 비춰주는 달빛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기에.

그들은 순찰을 돌듯이 일정한 간격을 왔다 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따금씩 이상한 점을 묻는다든가 수상한 사람을 찾았는가. 하는 등의 말들만 들려왔다.

신전을, 정확히는 성녀를 지키고 있는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메이스, 철퇴, 목봉 등 각자의 무장을 들고 있는 신관들과 사제들이 있었으며, 그런 그들과 3인 1조로 그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수녀들이 같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성국의 거의 모든 병력이 모였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광경이었다.

“정말로 고대룡의 도움 없이 저길 뚫고 올 수 있을까?”

빈틈이라고는 전혀 없어보이는 기사들의 모습을 보며, 성녀는 낮에 봤던 고대룡의 도움이 없어도 성국의 성기사쯤이야 문제가 없다고 말하던 흑발의 남성, 진현성의 모습을 떠올렸고, 정말 그가 성국 탈출이라는 자신의 비원을 이뤄줄 수 있는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리사가 그런 말만 안 했어도 쉽게 갈 수 있었는데...’

고아원에서 지낼 때부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특별히 아껴주고, 자신이 성녀가 된 뒤에는 팔라딘의 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의 호위기사로 남은 리사.

그녀만큼은 자신의 편이라고 어디가서 당당하게 말하고 다닐 수 있을 만큼 믿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볼을 잡아당기며 화를 낼 때도 모르는 사람들을 덜컥 믿고 따라가려는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있기에, 성국 탈출에 도움을 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교황이 성국의 전 병력을 신전에 투입한 이유가 그녀가 성녀 납치 사건을 교황에게 알렸기 때문이었고, 현재 그녀는 조만간 방해꾼들을 모두 처리하고 올라올 남자를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성녀의 방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저는... 돕지 않겠습니다.”

“네?”

리사의 입에서 나온 거절의 표시에, 성녀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어째서요..? 리사는 제 편이 아니었나요..?”

“성녀님의 편이기 이전에, 성국의 성기사라는 거겠지.”

대답을 대신 해준 것은 스카지나였다.

그의 말에 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분의 말씀이 맞습니다. 저는 성국에 속한 몸이고 성녀님이 성국의 밖으로 나가시는 행위는 성국에 반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내 편 아니었냐고.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매정한 말을 하는 거냐고.

그렇게 말하기 위해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

“냅둬 성녀님.”

그런 그녀를 이번에도 스카지나가 막았다.

“저 아가씨도 나름대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일 테니까. 우리가 지금 생각해야 될 건, 이미 우리 편이 아니게 된 저 리사란 아가씨를 설득하는 방법이 아니라 저 녀석이 말한 밤에 있을 성녀님의 납치를 위한 작전을 세우는 일이야.”

“...알겠어요.”

이 이상 말해봤자 이미 마음을 먹은 사람을 상대로는 시간만 끌 거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스카지나의 말에, 성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밖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얘기 끝나시면 말씀해주시길,”

말을 마친 리사가 등을 돌려 응접실을 나섰다.

“리사...”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성녀가 애틋한 얼굴로 그녀가 나간 문을 응시하고 있을 때.

“저거, 아무리 봐도 그거지?”

똑같이 문을 응시하면서, 스카지나가 현성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성녀에게는 들리지 않을 법한 작은 목소리로.

“감시역으로서의 마음과 성녀를 향한 마음이 충돌한 거?”

“응.”

“뻔하지 뭐.”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현성. 그와 스카지나는 이미 리사가 성녀를 감시하기 위한 수단임을 눈치채고 있었다.

“분명 밤에 당신은 제 편인가요..? 라면서 진심어린 질문을 하겠지?”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히 저는 언제나 성녀님의 편입니다~ 이러겠지.”

“그러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헤벌레 미소를 지으며 헤헤 거리겠지?”

“열한 살이 그렇지 뭐.”

앞으로 벌어질 뻔한 상황을 상상하며 낄낄대며 웃는 그들.

어느새 문으로부터 시선을 뗀 성녀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두분 다 뭐하세요?”

그녀의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본래의 얼굴들로 돌아오는 현성과 스카지나.

“응? 아냐. 아무것도. 그래서, 우리 소환사님의 작전은 뭘까?”

너스레를 떨며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를 넘겼다.

“작전? 작전이랄 게 뭐 있어?”

무슨 소릴 하냐는 듯한 현성의 얼굴을 보며, 스카지나는

“...설마 정면으로 당당히 쳐들어가서 방에 있을 성녀를 납치해오자. 이러는 건 아니지?”

“미쳤어? 정면으로 쳐들어가게?”

“그렇지? 휴. 난 또 네가 막무가내로 가지고 있는 힘만 믿고 성녀한테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을 신전의 병력들을 전부 해치우면서 가자고 하는 줄 알았잖아.”

“그건 맞는데?”

“...뭐?”

스카지나가 자신이 잘못 들었냐는 듯 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귀지는 나오지 않았다.

“정면으로 안 쳐들어가는데 어째서 신전의 병력을 전부 해치우자는 말이 되는 거야...?”

그로서는 이해를 할 수 없었기에 그렇게 물어보는 말끝이 떨렸다.

“정면이 아니라 공중으로 침입할 거니까.”

“아니... 오히려 공중으로 침입하면 성녀의 방 창문에 가까이 댄 다음에 성녀만 데리고 날아가면 그만이잖아..?”

속전속결. 싸움 하나 없는 평화로운 방법이 눈앞에 있는데 어째서 신전의 병력을 상대한다는 가시밭길을 걸어가려는 건지, 스카지나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런 스카지나를 보며, 현성은 아직도 모르겠냐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야, 생각을 해봐. 저 리사라는 호위 기사가 왜 이 타이밍에 밖으로 나갔겠냐?”

“설마, 일러바치려고 나갔다는 말이야?”

“아마 밤 쯤 되면­”

“리사가 그럴 리가 없어요!”

탕! 하고 테이블을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며 성녀가 상체를 강하게 일으켰고, 그 때문에 말이 끊기게 되었다.

제법 큰 소리라 놀랄 만 했지만, 스카지나와 현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야, 어떡해? 말할까?”

“밤이 되면 대충 눈치 챌 테니까 냅두자.”

단지 귓속말로 속삭일 뿐이었다.

“뭐, 성녀님의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밤 되면 알게 될 테니까 나중에 확인하고, 다시 작전 얘기로 돌아가 보자면, 나는 스카지나의 등에 타고 있다가 시간이 되면 신전의 중앙에 착지할 거야.”

“그리고 몰려드는 신전의 병력을 전부 때려눕히고 당당히 성녀를 납치하겠다?”

“그렇지. 너는 성녀의 방 창문 근처 하늘에서 최대한 기운을 숨기고 있다가, 내가 신호하면 바로 날아와 우리를 픽업해 가는 거야.”

“...그냥 중간 과정 생략하고 마지막만 실행하면 안 되는 거야?”

도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사람들을 때려눕히고 싶어하는 건데? 라고 묻는 스카지나를 보며 현성이 말했다.

“처음 봤을 때 내 안을 살피듯이 보던 눈이 마음에 안 들어서.”

“와...”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이딴 귀찮은 일을 벌인다고? 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감탄사였다.

물론 그에게 거부권은 없었다. 그는 소환수이고 현성은 소환사였으니까.

“그러면 성녀님. 밤에 보자고. 가자. 스카지나.”

말을 마친 현성이 여전히 그녀의 호위 기사가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에 잠긴 성녀에게 대충 인사를 건낸 다음에 스카지나에게 신호를 보냈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 스카지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는 겁니까?”

문을 열고 나가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리사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가야지. 이따 늦은 밤에 있을 일을 위해서 미리미리 힘을 비축해 놔야 하니까.”

“그래. 성국의 사람들이 대부분 잠드는 늦은 밤에 말이야.”

일부러 시간을 강조하는 듯한 그들의 말에, 리사는 자신이 부하를 시켜 성녀 납치에 대해 윗선에 보고했다는 것을 눈치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이 꽤 좋으시군요.”

“진심이 아닌 사람들의 생각을 잘 읽는 것뿐이야.”

“그럼 밤에 보자고~ 뭐, 난 못 볼 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남기고 뚜벅뚜벅 발을 옮기는 그들.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난 현성이 고개만 살짝 돌린 채로 말했다.

“성녀. 저래 뵈도 아직 열한 살이야. 그러니, 이따 밤에 대화 잘 하는 게 좋을 거야.”

당시의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긴 채로, 그들은 발걸음을 계속해 이내 모퉁이를 돌아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 * *

“리사. 거기 있죠?”

창문을 닫은 성녀가 방문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로 말했다.

분명 그녀가 아는 리사라면 방에서 나는 소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잠시의 정적이 있은 뒤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있습니다.”

고민에 빠진 듯 잠긴 그녀의 목소리.

“어째서 리사가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물어보지 않을게요. 대신, 하나만 대답해줬으면 해요.”

“...제가 대답해드릴 수 있는 거라면.”

그 말을 끝으로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성녀가 질문을 꺼내는 걸 주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지금 하려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어떻게 되냐에 따라 앞으로 있을 그들의 관계에 크나큰 변환점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잠시 주저하던 성녀는 겨우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리사는... 리사인가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는 질문이었다.

리사는 그제야 낮에 했던 현성의 ‘밤에 대화 잘 하는 게 좋을 거다.’ 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성녀님을 처음 모셨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저는 성녀님의 편입니다.”

“리사..!”

방문이 벌컥 열리며 성녀가 뛰쳐나와 리사의 품에 폭. 안겼다.

그런 성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리사.

그런 그녀를 올려다보는만족 그 이상의 대답을 들은 성녀의 얼굴은 감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만, 이번 일이 끝나면 설교는 할 겁니다.”

“엑...”

­가 한순간에 꼬꾸라졌다.

“그럼, 그냥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신전의 사람들이 모두 투입되는 이런 사태를 벌이셔놓고요? 그러니 그들이 저마저 넘고 작전을 성공시키기나 빌고 계세요. 그렇지 않다면 성국의 밖은 구경해보지도 못하고 제 설교를 듣게 될 터이니.”

“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방으로 돌아온 성녀. 앞으로 있을 기나긴 잔소리에 침울해진 성녀가 침대에 걸터앉아 양 다리를 왔다 갔다 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쾅!!!!

신전의 중앙에서 밝고 푸른빛이 번쩍였고, 동시에 거대한 땅울림을 동반한 굉음이 들려왔다.

‘시작 됐다!’

작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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