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고해성사.
* * *
고해성사란 무엇인가.
참회실의 안에서, 종교인, 그 중에서도 기독교인이 자신이 지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면서 사제를 통해 하느님께 죄를 고하고 용서의 은총을 받는 성사. 라고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다.
이 세계에서는 기독교 대신 천신교이기 때문에 천신교의 사제에게 죄를 고하고 천신 네리아에게 용서의 은총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것에 대해선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요컨대, 죄를 지었을 때 하는 일이라는 거다.
하지만 하늘에 맹세코, 나는 참회실에서 고해성사를 할 만한 죄를 지은 적이 없다.
분명 그럴 텐데, 지금의 나는 어째서 참회실의 안에 있는 걸까.
“...”
그것도 신성력을 사용해 상대를 묶는데 쓰인다는 ‘빛의 고리’에 몸을 묶인 채로.
게다가 내게 빛의 고리를 건 사람은 보통의 신관이나 사제가 아닌, 신성력으로는 교황도 한 수 접어준다는 그 성녀다.
그런 성녀가 어째서 내게 속박을 걸고서 참회실로 데리고 왔나.
“자, 어서 당신의 죄를 고하세요.”
그리고 어째서 고해성사가 아닌 취조를 하는 것처럼 말에 은근한 압박이 들어있는가.
그것은 신전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었다.
* * *
한 번 소환수를 소환한 곳이면 열 수 있는 포탈을 타고 도착한 곳은 예배당의 근처, 스카지나를 소환했던 곳이었다.
내가 떠날 때만 해도 내가 일으킨 사태로 인해 어수선했는데. 어느새 평소의 평온함만이 가득한 신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무래도 플뢰르와 알렉세이가 꽤나 고생한 것 같았다.
그 증거로,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사제들이나 수녀들이 우리들을 보고서 아무런 말도 없이 제 갈길을 갔으니까.
가끔 어머어머 거리며 남의 사랑얘기를 들은 소녀들마냥 우리 쪽을 향해 흘끔거리다 꺅꺅대는 수녀들이 있었는데, 왜 그런 진 모르겠다.
그 녀석들이 쓸데없는 걸 말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성가대 다음에 할 일은 뭐였어?”
원래대로라면 성녀는 성가대의 일정을 소비한 뒤에 다음 일정으로 향했을 게 분명했기에, 성녀에게 다음 일정이 뭐였냐고 물었다.
“성가를 부른 다음의 일정이요? 아마 방에서 쉬다가 식전 기도를 올린다음 저녁 식사일 거예요.”
그렇게 말하기에 일단은 그녀의 방으로 향하기로 했다.
물론 금남인 구역인 수녀들의 숙소 앞까지만.
아무리 나라도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건 조금 그랬으니까.
뭐랄까, 왠지 모를 배덕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어? 성녀님!”
그렇게 성녀의 방으로 향하던 중, 저 멀리 플뢰르가 우리를 발견했는지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그녀의 곁에는 익숙한 흑발의 소녀, 레이도 있었다. 알렉세이의 근육을 본 충격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괜찮아?”
적지 않은 충격에 기절까지 할 정도였으니, 뇌에 꽤 충격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걱정해 레이에게 괜찮냐고 묻자
“왜인지 머리가 아프긴 한데, 이제는 괜찮아요. 그보다, 신전에 도착한 기억은 있는데 어느순간 기억이 끊겼다가 돌아오니 플뢰르 님의 방이던데, 제게 무슨 일 있었는지 아시나요?”
라면서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레이.
아무래도 너무 강한 충격을 받은 여파로 뇌에서 기억을 지워버린 것 같았다.
불쌍한 녀석.
나는 그녀의 정신 건강을 위해 별 거 아니었으니 괜찮다고 말해주었고, 시원스런 대답을 듣지 못 한 레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오랜만이네요, 레이님.”
성녀의 지원 사격으로 화제를 돌리는데 성공했다.
“아, 오랜만이에요, 성녀님!”
다음으로 인사를 나누는 그녀들. 오랜 친구의 모습으로 보일 만큼 친근한 모습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성녀의 마력이 담긴 마력을 억제하는 약을 받아왔으니 친분이 쌓이는 게 당연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레이의 약에 대해서 말해야 되지?’
아이테르 그 인간이 나한테 떠넘긴 내가 레이의 그릇을 재구축해줌으로서 레이가 더 이상 약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
솔직히 말해서 까먹고 있었는데, 저 둘이 만나니까 자연스럽게 다시 뇌리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왜인지 플뢰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현성 형제님은 저와 얘기 좀 하시죠.”
뭐 저리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는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찔리는 느낌이다.
게다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 현성님에서 현성 형제님이 됐다. 저건 필시 진지한 얘기를 하겠다는 표시였다.
“왜.”
무덤덤하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왜? 왜에?? 지금 왜라는 말이 나와요?!”
갑자기 눈을 부릅뜨더니 소리를 질렀다.
그녀가 소리를 지를 만한 일을 벌인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는 말해주지도 않고 왜라는 말이 나오냐고 하면, 내가 뭐라고 해야되니?”
그렇게 말하며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플뢰르가 허. 하고 바람빠지는 소리를 냈다.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은 덤이었다.
“후. 후후. 후후후후.”
뭐야, 왜 저렇게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웃어? 무섭게시리.
고장난 기계마냥 삐걱거리는 웃음을 흘리던 플뢰르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제가 알렉세이 형제님과 현성님이 벌이신 일을 처리하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어째서 현성님께서 성녀님을 납치한다는 일을 벌이신 건지도 모르고요! 그 뿐 만인 줄 아세요?”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적어도 뭣 때문에 그런 깽판을 치신건지 설명이라도 해주셨으면 이러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무언가 알고 계시는 것 같은 알렉세이 형제님은 대답을 회피하며 현성님께 물어보라고 하지, 교황 성하께서는 웃기만 하시지! 제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알아요?”
그렇게 말하며 히끅거리는 플뢰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몰라.”
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그녀도 아니고 어떻게 그녀의 기분을 알겠는가.
대충 뭐 때문에 그런 건지 예상은 가지만, 모르겠다는 얼굴로 너스레를 떨자, 찌릿. 눈물이 맺힌 얼굴로 나를 노려보길래 시선을 회피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나저나 알렉세이가 알고 있다는 건 교황이 알렉세이에게 성녀의 비밀을 말했다는 뜻이겠지?
뇌까지 쇠질로 가득 찬 그라면 어디가서 말하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뭐, 괜찮겠지. 교황도 그것을 알고 있으니 그에게 말한 걸 테니까.
“그래서, 왜 이런 일을 벌이신 건데요?”
심호흡을 하며 자신을 진정시킨 플뢰르가 입을 열어 내게 물었다.
여기에서 나는 고민의 갈래에 들어섰다.
성녀에 대한 비밀을 얘기해서 납득을 시킬 것인가, 아니면 다른 부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들처럼 내 관할 아니라며 너스레를 떨 것인가.
잠시 고민을 하며 성녀 쪽을 힐끗 곁눈질 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평소대로 지내고 있어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는 레이와 성녀. 이쪽의 대화는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플뢰르라면 어디가서 떠들고 다니지 않을 것 같았기에, 나는 성녀의 비밀을 말해준다는 큰 결심을 했다.
“그러니까, 성녀님께서 유일하게 못 하시는 노래를 막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이신 거라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플뢰르는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지만,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이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었다.
“그런 거였으면 미리 말씀이라도 해주시지...”
“말할 시간에 막는 게 먼저였으니까.”
플뢰르나 알렉세이에게 상황을 설명했다면 분명 늦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으으, 상상도 하기 싫다.
내가 성녀를 막지 못 했을 경우를 상상하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여하튼, 내가 말했다는 건 절대 비밀이다?”
신신당부를 하며 플뢰르에게 말하자.
“그 정돈 알고 있어요!”
뾰로통한 표정으로, 볼을 부풀리며 플뢰르가 대답했다.
* * *
플뢰르와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자, 여전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성녀와 레이를 볼 수 있었다.
“그나저나, 꽤나 부드러워지신 것 같네요.”
“제가요?”
주제는 레이에 관한 것 같았다.
“어디가요?”
“모든 게요.”
대체로 부드러워졌다는 성녀의 말에, 레이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네. 저번에 뵀을 때는 감정이 없는 듯 한 차가운 눈을 하고 계셨거든요. 레이 자매님의 나이대의 소녀들과 다르게요. 그런데 지금은 한창 때의 소녀와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계시네요.”
훨씬 낫네요. 라며 성녀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성녀의 말대로, 레이는 확실히 변했다.
말투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도도한 얼음 공주라는 이명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워졌으니까.
나 또한 지금 레이의 모습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고작해야 18살 먹은 소녀가 세상 다 산 것처럼 행동하고 있으니, 보기 좋았을 리가 없었으니까.
”무슨 변화라도 있으셨나요?”
무엇이 그녀를 변하게 했냐는 성녀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레이가 내놓은 답은.
“선생님께서 제게 베풀어주신 은혜 덕분이죠.” 였다.
왜인지 그 대목에서 이유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 말을 들은 성녀의 눈썹이 한 차례 움찔 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저 은혜에 대한 얘기가 레이의 입에서 나오게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를 막기 위한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앞으로 이어지는 일들이 필연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 이야기, 자세히 들려주시겠어요?”
“..? 네.”
갑자기 내려앉은 성녀의 목소리에 살짝 당황한 듯 눈을 껌뻑이던 레이, 이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성녀에게 말해주었다.
아카데미에서 인큐버스를 조우했던 것부터 시작해서 내가 그녀의 그릇을 재구축해준 얘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성녀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갔다.
인큐버스의 얘기가 나왔을 때는 확장된 동공으로 놀람을 표시했고, 내가 싸운 일에 대해 나왔을 때는 가늘게 떠진 눈으로 내게 불안함을 주었으며, 그릇을 재구축한 얘기가 나왔을 때는 자애의 상징은 어디가고 싸늘한 눈빛만이 그녀의 얼굴에 자리했다.
“그러니까, 현성 형제님께서 레이 자매님을 구하기 위해 인큐버스를 상대로 금지 마법인가하는 것을 사용하셨고, 그 다음에 레이 자매님의 그릇을 재구축하기까지 하셨단 말씀이시죠?”
“네? 네. 맞아요.”
그러시구나. 라면서 고개를 주억거리던 성녀.
“현성님?”
이내 내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에 담겨 있는 건 자애와 헌신이 아니었다.
“잠시, 저 좀 따라오시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성녀의 뒤로 낫을 든 사신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 * *
그렇게 되서 성녀를 따라 온 곳이 이곳, 참회실이었던 것이다.
무언가 불안한 낌새를 눈치 챈 나는 도망치려고 했지만, 성녀가 빛의 고리를 영창하는 속도가 훨씬 빨랐고, 그 때문에 이렇게 고리에 속박되어 참회실의 안에 있게 된 거지.
“저기...”
“네. 말씀하세요.”
부드러우면서 감미로운 목소리가 너머에서 들려왔다.
목소리의 정체는 내게 빛의 고리를 씌운 사람. 성녀의 목소리였다.
보통의 사제가 아닌 성녀가 직접 고해성사를 들어준다니. 천신교의 열렬한 신자들이 질투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천신교의 신자가 아니다. 고해성사를 하는 신성한 분위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난 아무것도 잘 못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모르겠다는 의미로 멋쩍은 듯한 목소리로 말하자.
“정말.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으신가요?”
아까 절벽 위에서 내게 미소지을 때와는 현저히 다른, 저 깊은 무저갱 속으로 내려앉은 성녀의 목소리가 한 마디 한 마디 내 귀를 꿰뚫었다.
...아무래도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