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고해성사.(2)
* * *
“정말.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으신가요?”
참회실의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또렷한 말소리. 누가 봐도 화가 단단히 난 듯한 성녀의 목소리였다.
참회실의 가운데에 있는 벽 덕분에 저 너머의 성녀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싸늘함에 오랜 시간 그녀와 교류를 해온 나로서는 그녀가 어떤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을지 눈앞에 생생했다.
그렇기에 한시라도 빨리 성녀의 화를 풀어줘야 했다.
자, 생각을 해보자.
어째서 성녀는 저렇게 화가 난 것일까?
당연한 말이겠지만, 어떤 일이든 그 일을 일어나게 한 이유가 있다. 밥을 먹는 이유는 배가 고파서 라던가 잠을 자는 이유는 졸려서 라던가.
그러니 성녀가 저리 화가 난 것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절벽에서 돌아가자며 손을 내밀던 때만 해도 좋았던 분위기였으니 성녀의 감정변화는 필시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일 것이다.
뇌의 톱니바퀴를 돌려 과거의 장면을 살피자 플뢰르와 대화를 하고 돌아오던 길에 레이와 대화를 하고 있는 성녀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큐버스의 얘기가 진행되고 있을 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는다는 듯한 성녀의 얼굴.
내가 인큐버스를 상대하기 위해 반지를 깨뜨려 본래의 힘을 이끌어냈을 때 보였던 가늘게 뜬 눈과 의미심장한 얼굴.
금지마법을 사용했다고 했을 때 싸늘해진 얼굴까지.
역시 그때 막았어야 됐다.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어차피 반지가 깨진 것에 대해서 말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나왔을 얘기긴 하니 레이의 입에서 나오든 내 입에서 나오든 변하는 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뒤이어 와 전에 했던 생각을 지워버렸다.
“...생각해보니, 잘못한 게 있군요.”
그렇게 그녀가 화를 내고 있는 이유를 눈치 챈 나는 말 그대로 참회실에 죄를 고하러 온 사람처럼 두 손을 맞잡은 자세를 취했다.
“말해보세요. 천신께서 용서를 해주실 지는 잘 모르겠지만.”
“...”
거기선 모든 죄를 용서하실 겁니다. 라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참회실에서 하는 말까지 바꾼 걸 보니 진짜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후우...”
한숨을 한 번 내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녀님께서 하루를 꼬박 고생하셔서 넣어주신 신성력이 담겨 있는 반지를 깨뜨렸습니다. 그것도 한참 전에요.”
말을 함과 동시에 왜인이 과거의 기억이 흐릿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진짜 약속한 거예요? 지난번처럼 막 깨뜨리고 그러시면 안 돼요?
그래, 약속한 5년. 꼭 지킬게.
진짜죠?
걱정 말래도. 큰 싸움도 끝났고, 소환수들도 있으니 내가 직접 나설만한 싸움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여차하면 합일도 있고.
만약 5년을 못 채우실 경우에는 어쩌실 건데요?
그건...
이건... 4년 전의 기억인 것 같다. 성국을 반파상태로 몰고 간 교황과의 싸움이 일단락된 뒤의 일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째서 10년 20년도 아니고 5년이라는 약속을 한 걸까. 잘 모르겠다.
“그리고요?”
“사정이 있다고는 해도 충분히 금지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끝낼 수 있었지만 학생의 복수를 돕겠답시고 금지마법을 사용했습니다.”
또 다시 말과 함께 기억들이 저편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한편의 영화를 보듯 재생된다.
금지 마법인가 하는 거, 안 쓰시면 안 돼요?
왜?
아무리 죽음이라는 강을 건너기 직전까지 가서 적응을 마쳤다고는 하셨지만, 인간의 몸이잖아요. 그런 힘을 계속 사용하시다간...
하지만 이걸 안 썼으면 대주교한테서 널 구하지 못 했을걸?
그. 그건 그렇지만...
내가 걱정 돼? 너희를 잃게 되면 그때와 같은 일을 반복할까봐?
직접 본 사람으로서 걱정이 안 되겠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너희가 아니라 저라고 말해주시면 안 되는 거예요?
알았어. 안 쓸게.
에? 네? 정말요..?
우리의 성녀님께서 걱정해주시는데 어쩔 수 있나. 다만 아예 안 쓸 수는 없으니...
이건... 언제의 기억이지? 지금보다 가슴이 작고 첫 만남 때보다 가슴이 큰 걸로 봐서는 6년 전? 폭주라고 하는 걸 보니 5년 전인가? 이것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요?”
“그리고...”
그 이후로도 내가 생각하고 있던, 성녀가 화를 낼만한 죄목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불었다.
“하아...”
내가 죄를 고하는 것을 전부 들은 성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뱉는 한숨소리가 끝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뭐라 말을 하지 않아 참회실의 안에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잔소리라도 좋으니까 뭐라도 말 좀 해줬으면 좋겠다. 난 이런 숨막히는 분위기가 싫단 말이야.
그때, 벽 너머에서 의자를 뒤로 끄는 소리가 나더니 벌컥. 참회실의 밖에서 문이 열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성녀가 문을 열고 나온 건가?
나도 나가도 되는 건가 싶어 상황을 살피고 있을 때, 발걸음 소리가 이쪽으로 향하더니 이내 내가 있는 쪽의 문이 벌컥 열렸다.
“...”
당연히 그 문을 연 건 성녀였다.
그녀는 잠시 나를 응시하더니, 이내 내가 있는 참회실의 안으로 들어왔고, 그대로 의자에 앉아있는 내 무릎 위에 걸터앉았다. 앞쪽이 아닌 옆쪽으로.
이대로 성녀를 안아 올린다면 공주님 안기 자세가 되겠지.
부드러운 엉덩이의 감촉이 무릎에 느껴졌다. 그녀가 내게 화를 내고 있는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계속 이러고 있고 싶을 만큼.
“...”
진짜 잔소리라도 좋으니까 뭐라고 말을 꺼내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성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반짝이는 푸른색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저 푸른색의 파도에 집어삼켜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기를 잠시.
“머리...”
“응?”
“머리 쓰다듬어주세요.”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며 내게 몸을 기대왔다.
“...알겠어.”
갑자기 왜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기분을 풀어줄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해 천천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사락. 사락. 부드러운 백발의 감촉이 손가락 마디를 타고 흐르는 게 느껴진다. 이 세계에는 린스가 없을 텐데도 이렇게 부드러운 머릿결을 유지하는 비법이 궁금해 질 정도였다.
그렇게 한동안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내 감촉을 느끼듯이.
하지만 예전에 머리를 쓰다듬어 줬을 때 보여줬던 기분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입가에 호선이 그려져 있지 않았으니까.
얼마나 머리를 쓰다듬었을까. 무언가 결심한 듯 천천히 눈을 뜬 성녀가 입을 열었다.
“현성님.”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멈췄다.
“응.”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대부분 ‘왜.’라며 자신을 부른 이유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테지만, 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필요가 없기에, 그녀가 나를 부르는 이유가 뭐든 받아주겠다는 의미로 ‘왜.’라는 질문 대신에 ‘응.’ 하고 대답한 것이었다.
“제가 현성님을 많이 사랑하는 건 알고 계시죠? 다른 분들보다 길게. 그리고 많이.”
“응.”
잘 알고 있지. 너무 잘 알아서 문제지만.
“동시에 걱정도 많이 하고 있다는 것도요?”
“잘 알지.”
“잘 아시는 분이 그래요?”
찌릿. 잘 알고 있으면서 왜 그러냐는 성녀의 가늘게 뜬 눈이 나를 찔러댔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이었다.
이내 한숨을 내쉰 성녀가 말을 이어갔다.
“...물론 어디 가서 다치고 오실 분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아요. 이런 걱정을 하는 것 자체가 현성님께 실례라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하지만...”
성녀는 말을 다 끝맺지 못했다. 꾸욱. 가슴이 답답하다는 듯 심장부근에 손을 가져다대는 그녀.
“...”
그녀가 화를 내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나를 싫어해서가 아닌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성녀는 왕녀 아이리스와 같이 6년 전의, 악몽의 형태로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는, ‘그 사건’때 내가 겪었던 고통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기에 더더욱 걱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미안.”
사과뿐이었다.
“...머리. 멈췄어요.”
“아, 미안.”
단시간에 두 번이나 사과를 하며, 성녀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동안 침묵의 쓰다듬만이 참회실의 안에서 행해지고 있었다.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만족한 듯 성녀가 내 무릎에서 일어났다.
이제야 나갈 수 있게 된 건가.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끼며, 나도 그녀를 따라 일어났다.
너무 장시간 앉아있던 데다가 무릎 위에 성녀를 올려놓기까지 해서 갑작스런 움직임에 풀릴 뻔한 다리였지만, 참회실의 벽을 짚는 것으로 무마시키는데 성공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있다가는 저녁 시간에 늦을 것 같았기에 레이가 있는 곳으로 가려던 찰나.
“현성님. 분명 4년 전에 약속하셨죠?”
내 앞을 걸어가던 성녀가 문득 움직임을 멈추고 말한 말에 움직이려던 발걸음을 그대로 멈추게 되었다.
“뭘..?”
뭘까. 저 약속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불안함은.
빙글. 반 바퀴 돌아 나를 바라보는 성녀의 입에는 호선이 그려져 있었다.
왜일까. 저 호선의 미소를 보자 울리는 몸의 경종은.
“어떤 이유에서건 5년 안에 반지를 깨뜨릴 시, 제가 원하는 거 하나를 들어주시겠다는 약속이요.”
내가 그런 약속을 했다고?
라고 말하기에는 방금 전의 고해성사로 인해 과거의 일이 기억났기에 차마 발뺌을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소원권을 남발해 대던 과거의 나를 욕하는 것 뿐. 내가 장담하건데 분명 이 새끼는 나중에 지가 뿌린 소원권으로 큰일이 한 번 날거다.
...그게 나여서 문제지.
한숨을 내쉬며, 제발 이상한 것만 아니길 빌며, 왜인지 입에 고인 침을 꿀꺽 삼킨 뒤에 말했다.
“...원하는 게 뭔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