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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25화 (125/146)

〈 125화 〉 밤이 끝나간다.

* * *

장시간의 거사를 끝마치고, 성녀가 신성력으로 거사의 흔적을 지웠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레이에게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라고 말하며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지은 성녀. 꾸물거리며 천천히 올라와 내 왼쪽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나를 바라보는 옆으로 돌아누운 자세로, ‘이 정도면 확실히 각인됐겠죠?’ 라고 말하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각인이 안 될 리가 없다고 말하며슬슬 잠들 수 있을 것 같아 성녀에게 자자고 말했다.

나는 딱히 피곤하지는 않았고, 잠을 안 자도 상관없긴 했지만, 성녀는 강림제의 주역이라는 큰 일을 앞두고 있는 만큼 컨디션 조절에 힘을 써야 할 것이었다.

“벌써 주무시게요?”

성녀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안 자게?”

어두워서 시계가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새벽 늦은 시간대인건 확실해보였다.

거사를 치르고 있을 때만 해도 강림제의 전야제를 맞이해서 조금이나마 북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던 거리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기 때문이었다.

“강림제를 준비하려면 일찍일찍 지야지.”

성녀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신성력으로 정신을 정화하면 되니까 안 자도 상관없는데...”

볼멘소리를 내는 성녀에게 꽁. 하고 꿀밤을 먹여주었다.

“그런 곳에 쓰라고 신성력 준 거 아니잖아.”

얘가 못하는 말이 없어요.

“하지만... 강림제가 끝나면 현성님은 반지만 받고 다시 떠나실 거잖아요... 그러면 또 언제 볼 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만나고 있을 때 현성님의 안에 있는 제 자리를 더 넓히고 싶단 말이에요.’ 라면서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는 성녀. 오늘이 지나면 또 다시 나와 헤어지는 게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까 앞지를 수 있는 기회라고 한 거구나.

멀리 떠나는 주인을 보는 강아지 같이 침울한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뭘 더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오늘 밤은.

“대화요!”

아주 아주 길 것 같았다.

* * *

“4년 동안 뭐하고 지내셨어요?”

성녀가 맨 처음 꺼낸 주제는 4년 전, 성국을 떠난 이후에 뭘 하고 지냈냐는 것이었다.

“뭐하긴, 왕성 귀족한테 받은 저택에서 자리 잡고 놀고 있었지.”

인마전쟁의 공로로 르니아 가문의 별장을 하나 내게 줬기에, 할 것도 없겠다, 게으름 of 게으름의 방탕한 생활을 보내며 살았다.

그러다가 가끔 아이테르가 할 얘기가 있다며 나를 부르곤 하는 거에 어울려주고,

어떤 때에는 미드나에 가서 모험가들이랑 술 마시며 놀기도 했고. 얼마 전에 미드나에 가서 봤던 흑발의 청년, 카이도 그때 만났지.

만났다기보단 구했다고 해야 하나? 심심풀이로 던전에 혼자 들어갔다 죽기 직전인 그를 구출한 거니까.

“현성님이 안 구하셨으면 필시 천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모험가가 생겼겠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구하려고 해서 구한 건 아니야.”

“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어갔다.

“같이 갔던 모험가 놈이랑 술 내기로 신발 멀리 던지기 시합을 했거든? 그런데 내 차례 때 공짜 술을 마실 것에 신난 나머지 너무 힘을 실어버렸지.”

그게 던전의 벽을 몇 개씩 뚫고 날아가더니 타이밍 좋게 카이를 위협하던 마물의 머리에 맞아 그대로 마물의 머리가 터져버린 것이었다.

당연히 그걸 모르는 카이로서는 내가 그를 구해줬다고 착각했고, 그렇게 인연이 시작된 거지.

얘기를 끝내자 재밌다는 듯 성녀가 쿡쿡 웃었다.

“현성님답네요.”

그렇게 몇 가지의 이야기보따리를 더 풀었고, 어느새 이야기는 내가 아카데미에 간 이유로 향해 있었다.

“거래를 하셨다고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오른편에서 여전히 내 오른팔을 껴안은 채로 새근거리며 자고 있는 레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아카데미에서 총괄 선생을 하는 대신에, 암부를 움직여주기로 했거든.”

암부에 대해서는 성녀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내가 과거에 암부와 맞부딪쳤던 썰도 예전에 풀어줬으니까.

“암부를 움직일 만한 일이라면...”

나와 오랫동안 교제를 해왔고 똑똑한 그녀라면 정보의 대가인 그들을 움직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을 터.

내 예상대로, 얼마가지 않아 성녀의 작은 입에서 정답이 흘러나왔다.

“설마, 아직도 그녀를 찾고 있는 건가요?

놀란 표정은 덤이었다.

“그 정도면 완전 스토커 아니에요?”

“그러게나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징글징글하다 나도. 쫓기 싫은데 말이야.”

누군진 모르겠지만 빨리 나와 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래서, 진척은 있었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 한숨을 쉬고 있었겠니.”

아카데미에 들어온 지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은데, 아직도 암부에게서 내게 전해진 소식이 하나도 없었다.

조그마한거라도 괜찮으니 좀 줬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레이를 고쳐준 보답으로 아이테르 그 사람이 잘 말해놓겠다 했으니 조만간 큰 거 올 거라 기대해봐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고 있자, 성녀가 볼을 부풀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왜?”

“부러워서요.”

그렇게 말하며 입을 삐죽 내미는 게 귀여웠다.

“부럽다니?”

“어떻게 보면 현성님의 머릿속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인 거잖아요. 찾기 전까진 계속 생각을 하실 테니 잊어버릴 리도 없고요.”

...설마 질투하는 건가?

“생각은 하긴 하지만, 너희들과 같은 애정이 아닌 증오라...”

“너희들?”

“...너, 너. 너.”

싸늘해진 눈빛이 나를 급속도로 얼려버릴 듯 내게 향했기에, 재빨리 말을 바꿨다.

“이번만 봐드릴게요.”

“...고마워.”

왜 내가 고마워해야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심한 일을 당할 수도 있었기에 그녀에게 맞춰주기로 했다.

잠시 후, 다시 이야기보따리가 풀리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내가 교류해왔던 여성들의 주제로 넘어갔다.

“원나잇들은 아니었지. 지금도 편지를 주고 받고 있고, 예전엔 심심할 땐 찾아가기도 했으니까.”

“두 자릿수의 애인 분들을 모두 챙기는 건 힘드실텐데, 이참에 몇 명은 줄이는 게 어때요?”

이참에 라이벌 좀 줄여보겠다는 듯 성녀가 뻔한 속셈이 가득담긴 얼굴로 말했다.

“내 사정을 듣고도 나만 바라보겠다고 선언한 얘들인데, 어떻게 그래.”

내 과거를 들려주며 사정을 설명했음에도 괜찮다며 언제까지건 기다리겠다고 말한 그녀들이다. 그런 그녀들을 배신한다? 말도 안 되지.

“아니, 그리고. 도대체 내 애인이 두 자릿수라는 건 어디서 나온 거야? 설마 발키리나 다른 소환수들도 애인으로 치는 거야?”

“아닌가요?”

“걔네들은 애인이 아니라 가족이지 가족.”

“그래도 두 자릿수는 넘지 않나요?”

그렇게 말하며 성녀가 후보군을 나열하며 손가락을 폈다가 접기 시작했다.

“숲지기... 황녀... 왕녀... 여우... 대마녀... 등등 제가 아는 분만해도 두 자릿수는 넘기는데요?”

...다 아는 사람들이구먼.

“...그래, 그런 걸로 치자. 그나저나 하나만 묻겠는데.”

“소문의 출처는 프리무스 님이에요.”

“고맙다.”

이번엔 딱밤을 두 대만 때려야겠군.

* * *

교류해 왔던 여성들에 관한 얘기를 했으니 다음으로 이어진 건 당연히 성교에 대한 것들이었다.

“할 때 가장 좋았던 건 역시 구미호였지.”

특히 꼬리로 내 몸을 문질거려 주는 게 정말 기분 좋았어.

내 성생활 썰을 들으며, 성녀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도 성녀만 아니었다면 처음을 현성님께 바쳤을 텐데... 현성님, 다음 성녀는 언제쯤 나올까요?”

천신교의 신자들이 들었다면 뒷목을 잡을 것 같은 소리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거야 천신의 마음에 달렸겠지.”

“너무 늦게 나오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암...”

성녀도 슬슬 졸음이 몰려오는지 작게 입을 벌리며 하품을 했다. 순간적으로 저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싶은 충동이 들었기에 검지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하움.”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성녀가 입을 닫았고, 아기가 젖병을 빨듯이 쪽쪽거리며 빨기 시작했다.

거기에만 그치지 않고 혀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손가락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어쩔 때는 강하게 빨면서 고개를 앞뒤로 움직였고, 어쩔 때는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혀로 손가락을 핥았다.

그래. 마치 펠라치오를 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얼마간 내 검지손가락을 유린하던 성녀가 내 손가락을 놔주었을 땐, 내 손가락은 그녀의 침으로 범벅이었다.

츄릅. 다시 한 번 혀로 입술을 핥으며 작게 미소짓는 성녀. 너무나도 고혹적인 모습이었다.

그 덕에 내 아들은 다시 한 번 드릴이 되어 하늘을 뚫을 기세가 되었다.

“어머?”

성녀가 흘낏. 내 사타구니 쪽을 보더니 소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나 제 안에 집어넣으셔놓고 아직도 부족하셨던 건가요? 역시 굴지의 여성분들을 드신 분 답네요.”

이어, 내 귀에 그녀의 얼굴을 가까이하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러면 한 번 더... 하실래요?”

귀를 간질이는 그녀의 목소리와 사타구니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누구라도 꿈속을 헤엄치고 있을 수밖에 없는 늦은 새벽 시간.

그것은 빛의 신전, 트리니티에 상주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왜인지 잠이 오지 않아 정원을 거닐며 꽃을 구경하고 있는 한 명의 수녀가 그 예외였다.

아무래도 꽤나 충격적인 걸 오후에 봤기 때문인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거닐고 있는 중앙 정원을 다른 수녀들과 지나던 중 봤던 교황과 흑발의 청년의 대립.

그 장면이 너무나도 인상적이라 그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잠이 오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잠을 청하기를 포기하고 몰래 숙소를 나와 정원을 거닐며 피로가 몰려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그때.

뚜벅. 뚜벅.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분수대의 뒤에 숨었다.

지금 이 시간에 돌아다닐 법한 사람은 수녀원장이나 팔라딘들 뿐. 그러니 들킨다면 분명 혼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발걸음 소리가 점점 커짐에 따라, 그녀는 걷고 있는 사람이 2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가 됐든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을 때, 어림도 없다는 듯 발소리는 그녀가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설마 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 건가?’

지금이라도 나가서 죄송하다고 빌어야 할까.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행이 그녀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이어, 이 시간에 대화를 하고 있는 그들에 대해 궁금증도 생겼다.

팔라딘들, 혹은 신관과 수녀가 밀회라도 가지는 걸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분수대의 뒤에서 얼굴만 살짝 내밀어 발소리가 멎은 구간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2개의 검은 실루엣뿐이었다. 하필이면 그녀가 얼굴을 내미는 타이밍에 맞춰 구름이 달을 가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실루엣으로 볼 때 한 쪽은 남자, 다른 한 쪽은 여자인 것 같았다. 실루엣 중 한 쪽은 키가 크고 건장한 체형이었고 다른 한 쪽은 가슴 부근이 부풀어있었으니까.

‘뭐라고 하는 거지?’

실루엣과의 거리가 꽤 있어 그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궁금했기에, 그녀는 분수대를 방패삼아 조금 더 전진해보았다.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나?”

희미하지만 대화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걱정 마. 결계석에 장치를 잘 해두었으니까. 당신은 신전 지하에 있는 마신의 심장 쪽을 잘 해결하면 그만이야.”

“그건 걱정마라. 알려준 대로 받아들일 준비는 끝났으니까.”

계획? 결계석? 신전 지하? 마신의 심장? 받아들여?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소리들뿐이었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변수가 하나 있다.”

“교황 말이야? 교황은 아직 몸이 낫지 않아 전성기 때의 힘을 휘두를 수 없다고 하지 않았어? 지금의 그라면 간부가 처리할 수 있다고 했잖아.”

‘어..?’

그들의 대화를 이어듣던 그녀는 교황을 처리할 수 있다. 라는 말이 나오자 지금 그들이 하려는 짓은 교황을, 더 나아가서는 성국을 위험에 빠뜨릴 일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빨리 알려야 해..!’

최대한 빨리 알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성국의 모두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상대가 눈치채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달리기 위해 신성력으로 신체를 강화했고, 땅을 박차며 달리려던 찰나.

“이 시간에 깨어있는 수녀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녀의 바로 뒤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의식은 저 어둠 속으로 깊게 잠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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