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26화 (126/146)

〈 126화 〉 누군가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그래서, 이 여자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들의 얘기를 엇들은 수녀를 기절시킨 남성의 실루엣이 고개를 돌리며 자신의 뒤에 있을. 방금까지 자신과 대화하던 여성에게 물었다.

“죽이나?”

구름이 달을 가린 탓에 그녀의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여성의 실루엣이 고개를 젓는 게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아니. 기억만 지워놔. 내가 숙소에 데려다 놓을 테니까. 거사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괜히 소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잖아?”

“그건 그렇군.”

남성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쪽 무릎을 굽혔고, 쓰러져 있는 수녀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며 주문을 영창했다.

“딜리트.(Delete)"

그러자 검은빛이 그의 손바닥에서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검은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남성이 몸을 일으켰고, 그것을 본 여성이 그에게 다가왔다.

“다 끝났어?”

“한 시간 정도의 기억을 지웠다. 나머지는 부탁하지.”

“그래. 맡겨둬.”

남성을 지나친 여성이 수녀를 향해 걸어가더니, 그녀를 들쳐 업었다.

“그런데, 아까 말했던 변수는 뭐야?”

수녀를 들쳐 업은 상태로 수녀의 방이 어딜까 생각하고 있던 와중 문득 떠오른 방금 전에 끊긴 얘기에 여성이 남성에게 물었다.

“계획에 방해될 만한 인물에 대한 얘기다.”

“방해? 뭐, 왕성 귀족 사람들을 얘기하는 거야? 아까 기념품을 사고 있는 걸 봤는데.”

남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저녁 즈음에 돌아갔다. 그리고 그들 정도로는 문제가 되지 않아.”

“그러면 뭔데.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슬슬 졸리기 시작했으니까.”

하품을 하는 여성을 보며 한숨을 내쉰 남성이 말을 이어갔다.

“진현성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나?”

“진현성? 어...”

잠시 고민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여성은 생각이 나지 않았는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는데?”

“그러면 성국 반파 사건에 대해선 알고 있나?”

“아~ 그건 알지!”

아는 게 나와서 기쁘다는 듯 여성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 사건 때문에, 아니지. 덕분에라고 해야 되나? 여하튼, 그 덕에 우리가 이번 성국 침략 작전을 세울 수 있던 거잖아. 듣기로는 우리가 노리고 있는 마신의 심장을 선수 쳐 마신의 마력을 얻은 녀석들이 날뛰어서 교황과 팔라딘을 포함한 성국의 병력들이 그 놈들을 막느라 고군분투했다고 하던데.”

대단하다는 듯 여성이 큭큭거리며 감탄사가 섞인 웃음소리를 지어냈다.

“결국 지긴 했지만 대단했지. 그 교황을 빈사상태로 만들 줄이야. 게다가 교황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병력들도 쓸어버렸고. 그런데 그게 왜?”

“네 말대로, 세간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건 절반만 맞는 얘기다.”

“응? 절반만이라니?”

“교황과 팔라딘을 포함한 성국의 병력들이 고군분투하고 교황과 대부분이 크게 다친 건 맞지만, 마신의 심장에서 받은 마력을 이용한 자들이 있다는 것은 거짓이니까.”

그렇게 말한 그의 몸이 돌연 움찔. 떨렸다.

마치 그때의 일을 직접 겪어보기라도 한 것처럼 두려움이 묻어나오는 그의 분위기에, 여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아니다. 아무것도.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성국을 반파시킨 사건의 범인은 단 한 명의 남성이었다.”

“설마 그 한 명이...”

“방금 말했던 진현성이라는 남자다.”

“...그거 정말이야? 혼자서 그런 일을 벌였다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여성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남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아까 말했잖나. 교황과 팔라딘을 포함한 성국의 병력이 그를 상대했다고.”

“아, 맞다. 잊고 있었네.”

까먹고 있던 것이 멋쩍었는지, 여성이 웃음을 흘렸다.

알고 지낸 지가 몇 년인데 그걸 까먹냐고 말한 남성이 말을 이어갔다.

“어째서 그가 그런 일을 벌였는지는 교황을 제외하고는 모르는 일이지. 문제는 그런 그가 지금 성국에 들어와 있다는 거네.”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변수가 맞네.”

갑작스럽게 생긴 변수가 탐탁치 않는다는 듯 그녀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어쩔 건데? 4년 동안 세운 계획을 이대로 포기할 거야? 간부들이 화낼 것 같은데?”

“그럴 순 없죠.”

그때, 그들의 뒤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에 그들의 고개가 홱! 하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돌아갔다.

“...깜짝이야. 당신이었구나. 기척 좀 내고 다니지 그래?”

아는 사람이었는지 여성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놀라게 해서 죄송하네요. 직업병이라 어쩔 수 없으니 양해부탁드립니다.”

전혀 미안함이 느껴지지 않는 사과에 놀란 심장을 진정시킨 여성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됐어. 그나저나 뭔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방금 했던 그의 말대로라면 괴물 중의 괴물이 우리의 계획을 방해한다는 건데 말이야.”

“진현성이란 남자에 대해서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약점도요. 그러니 그는 제게 맡겨주시길.”

자신있다는 듯 말하는 여성을 보며 남성이 말했다.

“괜찮겠나? 이미 2번이나 진 걸로 아는데.”

“보는 눈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힘을 숨긴 것뿐입니다. 보는 눈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당일에는 전력을 다할 생각이니 걱정 마시길.”

“알겠다. 자네에게 맡기지. 다만 이번 일이 실패하면 우리에게 다음은 없다는 것만 알아두게.”

“그건 됐으니 성녀를 걸고 한 약속이나 잊지 마시죠.”

“걱정마라. 성녀의 신성력만 흡수하고 나면 몸뚱아리는 네가 어떻게 하든 신경쓰지 않겠다고 실비아님께서 약속하셨으니까.”

“그러면 교황은 간부에게, 그 진현성이란 남자는 그녀에게 맡기고, 결계석은 내가 맡을 거고, 나머지 팔라딘들은 어쩔 거야?”

“그들도 내가 맡는다. 계획대로 마신의 심장이 강탈당했다는 것을 알면 감이 좋은 그들은 바로 달려올 테니까.”

“둘을 동시에 상대 가능하겠어? 나이에 부치지 않아?”

“마신의 힘과 성녀의 신성력만 손에 넣는다면 나이는 상관할 게 못 된다. 그럼, 더 할 얘기 있나?”

“없습니다.”

“나도 없어~”

“그렇다면 이만 해산하도록 하지. 아무래도 교황 성하께서 기침하신 모양이고, 슬슬 발키리가 이 근처를 순찰할 때가 됐으니까.”

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 여성들은 등을 돌려 각자가 있어야 할 위치로 돌아갔고, 남성 또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왔던 곳인 남성 숙소를 향해.

* * *

“쿨럭! 쿨럭! 쿨럭!”

신전의 남성들이 묵는 숙소, 그 중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 단 한 개의 방.

그런 방 안에서 노인의 기침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기침 소리의 근원지는 노인이 누워있는 침대였다.

“괜찮으십니까?!”

침대 근처에서 경호를 서고 있던 금발의 여인이 황급히 다가오더니 노인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고, 이내 하얀 빛이 그녀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신성력으로 몸을 회복시키는 마법인 ‘힐링’이었다.

마법을 받은 노인의 몸이 하얗게 빛나더니 이내 사그라들었고, 노인은 한결 편안해졌다는 표정을 지었다.

“후우... 고맙네. 아무래도 아까 힘을 쓴 게 무리가 간 모양이야.”

나도 나이가 너무 든 게지. 라며 끌끌거리며 웃는 노인.

“아직 완치도 되지 않으셨는데,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닌가요?”

한숨을 내쉬며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금발의 여인. 13명의 발키리 자매 중 첫째인 브륀힐데였다.

그런 그녀가 보좌하고 있는 눈앞의 노인은 성국의 1인자인 교황이었다.

그의 방은 성국의 최고 권력자가 지내는 방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검소한, 생활에 필요한 침대나 탁자 등, 최소한의 가구만이 들어서 있는 방이었다.

침대 위에서 상체를 일으킨 그가 끌끌대며 웃으며 말했다.

“완치가 될 거라면 진즉에 완치가 됐겠지.”

그렇게 말하며 교황이 잠옷 대용으로 입고 있는 옷의 상의를 걷어 올렸다.

노인치고는 적당히 근육이 탄탄한 상체가 창문을 타고 들어온 달빛을 받아 반짝였지만, 그 모습을 본 브륀힐데는 얼굴을 찡그렸다.

노인의 상체에, 정확히는 배의 중앙 부분에 있는 몸을 양단하듯 나있는 가로줄의 흉터를 봤기 때문이었다.

“...언제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흉터네요.”

“아마 평생 지워지지 않을 걸세.”

그때의 일이 떠올랐는지 교황의 몸이 살짝 떨렸다.

“성녀님의 신성력으로도 한동안 집중 치료를 받으실 정도였으니까요.”

“그가 성녀가 오기 전에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신성력을 평생 못 쓰는 몸이 되어버렸겠지.”

그때의 교황의 모습을 직접 본 브륀힐데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교황에게 뭐라 한 소리를 하려 했지만 다 지나간 일이라는 듯 끌끌대며 웃는 교황의 모습에 입술을 살짝 깨물며 하려던 소리를 삼켰다.

“교황 성하.”

다만 2번째로 하려던 말은, 질문은 참지 않기로 했다.

“말해보게.”

“4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묻는 건 조금 이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진지한 얼굴을 하는 브륀힐데를 보며, 교황은 그녀가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눈치챘다.

“어째서 성국을 반파시킬 정도로, 그대들 발키리 자매가 반으로 나뉘어 싸울 정도의 싸움을 벌였는가. 그것이 궁금한 겐가?”

브륀힐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당시에는 교황 성하의 회복에 전념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최근까지는 성하께서 하신 일이었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것이 쌓이다보니 호기심을 참는 것에도 한계가 온 게로군.”

호기심에 진 게 부끄러웠는지 브륀힐데가 흠흠거리며 헛기침을 했다.

“듣지 말라면 듣지 않겠습니다만...”

교황이 고개를 저었다.

“말 못 해줄 건 없지. 다만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괜찮겠나?”

“교황 성하께서 피곤하시지만 않으신다면 밤을 새도 상관없습니다. 신성력이 있으니까요.”

“누가 자매 아니랄까, 같은 소리를 하는군.”

끌끌거리며 웃은 뒤, 교황이 손녀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처럼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내가 그와 싸우게 된 이유를 말해야겠군. 내가 그와 성국의 반을 파괴하면서까지 싸운 이유는.”

호기심이 해결되는 순간이 오는 기쁨에, 브륀힐데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전부 기억해 놨다가 자매들에게 들려줘야지.’

라며 기대감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지만, 그 생각은 교황의 입에서 나온 다음 소리를 듣고 깔끔하게 사라졌다.

“나와 그가 한 여자를 두고 의견이 대립했기 때문이었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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