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27화 (127/146)

〈 127화 〉 그 날의 진상.

* * *

“한 여자 때문에 그 난리를 치신 거라고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흘리는 브륀힐데.

“음? 아직 제대로 된 얘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짓는 겐가?”

교황이 벌써부터 놀라면 안 된다는 듯 끌끌거리며 웃었다.

“방금 하신 문장만 들어도 누구나 저와 같은 표정을 지을 것 같습니다만.”

세계적으로 일어난 대사건들을 모아놓은 책에도 적혀있는 성국 반파 사건이 고작 여자 한 명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니.

사랑싸움치고는 너무 스케일이 큰 게 아닌가.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를 보며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짓는 교황. 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사건의 앞뒤를 전부 자르고 들으면 이 미친 인간들이 여자 하나 때문에 뭔 짓을 저지른 건가 싶겠지. 이해하네.”

“아뇨... 그게...”

속마음이 들킨 것에 잠시 부정을 하던 그녀였지만.

“사랑싸움치고는 너무 큰일을 벌인 게 아닌가 싶은 얼굴이었네만, 아닌가?”

“네... 맞아요...”

너무나도 정확히 맞춰버린 탓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몇 십년 동안 함께 지내와 서로가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한 말이지만, 사랑싸움은 아니었네. 내 몸과 마음은 천신께 바쳤으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

대답을 하지 않고 잠시 뜸을 들이는 교황. 그때 당시를 떠올리듯 아련한 표정이었다.

브륀힐데는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재촉할 수는 없었기에 손가락과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교황이 입을 열 때까지 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한숨을 내쉰 교황이 입을 열었다.

“앨리아. 라는 이름을 아는가?”

교황의 입에서 나온 ‘앨리아’라는 누군가의 이름으로 보이는 듯한 단어에 브륀힐데는 뇌를 굴리며 생각해보았다.

‘앨리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얼마간 뇌를 굴렸을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개의 기억이 있었다.

­앨리아님께 영광을!

4년 전, 세상이 반으로 나뉘어 싸웠던 대전쟁인 인마 전쟁. 그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웠을 때 들었던 마족의 외침.

“...”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브륀힐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생각이 났나보군.”

“마왕...”

교황이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 앨리아. 그녀의 이후 처분을 두고 나와 그가 대립했던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네.”

사건의 진상을 들은 브륀힐데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하지만 마왕은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리고 그때 분명 마왕의 마력이 사라진 것을 느꼈는데...”

신성력을 지닌 자들은 마족의 마력을 느끼는 것에 특화되어있다. 게다가 상대는 마족 중에서도 가장 강한 자인 마왕이었다.

처음 그녀가 대륙에 발을 디뎠을 때 제일 먼저 그녀의 존재를 눈치 채고 방비한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마왕이 살아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고, 브륀힐데는 생각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성녀를 마주했을 때, 아주 희미하게 느껴졌지.”

“뭐가요?”

“마왕의 마력이 말이네.”

“그게 어째서 성녀님께..?”

“나도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마왕을 잡은 직후에 성녀가 현성을 위해 그의 마력을 억제하는 용도로 자신의 신성력을 담은 반지를 만들어줬다고 하더군.”

이해했다는 듯 브륀힐데가 아. 하며 입을 벌렸다.

“그때 흘러들어온 거군요. 마력을 억누르려면 방출되는 마력을 한 번은 건드려야 하니까요. 잠깐, 그렇다면 마왕의 마력이 소멸한 것처럼 느껴졌던 이유가...”

“마왕의 마력보다 더 큰 마력이 그녀를 집어 삼켰기 때문이었지.”

“집어삼켰다는 건 설마...?”

“그래. 그 날 그 자리에 있었던 그가. 마왕 앨리아를 자신의 소환수로 삼은 걸세. 그걸 눈치챈 나는 성녀를 보내 그를 데려오게 시켰지.”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교황은 그 날의 이야기를 천천히 읊기 시작했다.

* * *

4년 전 성국.

“...내가 잘 못 들은 건 아니지?”

3년 전에 스카지나와 함께 와 봤던 응접실의 안에서, 검은 머리의 청년 진현성은 반대편 소파에 앉아있는 흰 머리의 노인, 교황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매가 사냥감을 노려보는 듯한 날카로운 눈동자에 교황의 호위 기사 2명은 그의 눈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릴 지경이라 갑옷을 입고 있어 눈을 피하는 게 보이지 않는다는 게 안심이 될 정도였다.

“귀가 안 좋은 건 아닐 텐데. 다시 말해줘야 하는가?”

하지만 교황은 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마찬가지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 교황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던 현성은.

“나이가 들어서 치매가 온 건 아닌 것 같네.”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신성력으로 정신도 강화하고 있는데 치매 같은 게 올 리가 있나.”

교황 또한 끌끌거리며 웃었다.

그들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있었지만 그들의 기싸움으로 인해 응접실 안의 분위기는 여느 때보다 무거워졌다.

'나, 나가고 싶다...‘

‘제발 누가 좀 들어오던가 해 줘..! 이왕이면 성녀님으로..!’

갑옷의 무게가 2배는 더 늘어난 느낌에 호위 기사들은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 기사들의 고충을 알 리가 없는 현성은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 때 잠깐 본 걸 제외하면 3년 만에 보는 건데 성녀까지 보내면서 무슨 얘기를 하나 했더니...”

“우리한테는 중요한 얘기가 아닌가.”

“우리가 아니라 당신이겠지.”

불만스럽다는 듯 현성이 하. 하며 아니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어떻게 안 거야? 내 마력에 묻혀서 분명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했는데.”

“힘을 억누르겠답시고 반지에 성녀의 마력을 담지 않았나.”

“...그때 조금이지만 흘러들어간 건가.”

현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거기서 꼬리가 밟힐 거란 생각을 하지 못 했다는 얼굴이었다.

“쓸데없이 눈치만 빨라가지고.”

쯧. 하며 현성이 혀를 찼다.

“그래서, 대답은?”

아랑곳하지 않고, 본래의 대화 주제를 이어가는 교황.

“당연히 거절이지. 뭘 물어?”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 현성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 같은 골방 늙은이한테 넘겨줄 녀석이었으면, 애초부터 소환수로 삼지 않았어.”

“역시 그런가.”

예상했다는 듯 교황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나? 어째서 그녀를 소환수로 삼은 거지?”

“어째서라니?”

현성이 그의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그녀는 전쟁을 일으켜 세계에 해악을 끼친 존재이네. 그런 그녀를 살려서 데리고 있다는 게 알려진다면...”

필시 반발하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지금의 자신처럼. 그러다 보면 분명 쓸데없는 살생이 생길 테니 그 싹을 미리 잘라내야 한다.

교황은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성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꼬우면 찾아오라 그래.”

당당하게 선언했다.

“세계 전부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는데도?”

“상관없어. 그 정도 각오도 하지 않고서 마왕을 소환수로 삼는다는 짓을 할 리가 없잖아?”

“오만하군.”

“강자의 특권이지.”

“그렇다면 자네를 강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야겠군.”

방금까지 온화하던 교황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그의 몸에서 황금빛의 신성력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힘으로라도 빼앗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역시 그렇게 되는 건가.”

한숨을 내쉰 현성이 잠깐 눈을 감았다 뜨자, 검은색이었던 그의 눈동자가 보랏빛으로 물들어있었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도 보랏빛의 마력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직.

마력과 신성력이 부딪치며 전하를 생성해냈다.

“잘 됐네. 당신하고는 제대로 붙어보고 싶었거든.”

그렇게 말하며 현성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목을 우두둑. 풀기 시작했다.

“우연이군.”

교황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쭉 폈다. 우두둑 소리와 함께 허리가 펴졌다.

“나 또한 자네와 붙어보고 싶었거든. 3년 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를 바라보며 흉악한 미소를 짓는 그들과 맞부딪치는 마력과 신성력을 보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호위 성기사들은 재빨리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쾅!!

얼마 지나지 않아 굉음과 함께 응접실의 문이 박살나며 세계의 대사건들을 모아놓은 책에 적힌 성국 반파 사건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

* * *

“후...”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에 서 있던 현성이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쟁이라도 일어난 듯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진 상태였고,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어딜봐도 큰 싸움의 흔적이었다. 하지만 현성의 몸에는 얼굴에 난 작은 상처와 옷에 묻은 먼지들 의외에는 전투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망할 영감. 곱게 질 것이지 발악을 하고 있어.”

뺨을 손으로 훑은 현성은 손에 피가 묻어있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뺨에 상처까지 나고. 스승이 알면 혼내겠네.”

“커헉..! 쿨럭! 쿨럭!”

그때, 근처에서 노인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기침소리의 근원지로 간 현성은 기침을 하고 있는 노인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우웩.”

노인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서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만 봐도 누가 승자고 누가 패자인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내가 한 공격이지만 정말 무지막지하네. 그냥 금지마법 쓸 걸 그랬나.’

“영감. 살아있어?”

잔해의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턱을 괸 현성이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보면... 모르겠느냐...”

힘겹게 피를 토해가며 말하는 노인을 보며, 현성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정하네. 역시 신성력이 사기야. 누군 회복마법도 빌려서 쓰는데 말이야.”

“이게 어딜 봐서 정정한..! 쿨럭! 쿨럭!”

“너무 말하지 마. 성녀가 저 멀리서 뛰어오고 있으니 그때까진 버텨야 할 거 아니야. 내 회복마법은 빌린 거라 한계가 있거든.”

노인의 목숨이 온전한 것을 확인한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바지를 털었다.

“어쨌든, 내가 이겼으니 앨리아는 내가 데리고 간다. 또 불만나오면 그땐 세로로 베어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어째서..!”

등을 돌려 떠나가려던 현성은 뒤에서 들려오는 노인의 외침에 발걸음을 멈췄다.

“어째서... 살린 거지..? 확실하게 죽이려면... 죽일 수 있었을 텐데..?”

고민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아깝다는 듯 고개를 반쯤 돌린 현성이 입을 열었다.

"당신이 죽으면 성녀가 슬퍼할 테니까."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