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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29화 (129/146)

〈 129화 〉 또 다시, 꿈.

* * *

...분명 그렇게 눈을 감았을 텐데.

할 것도 없는 하루가 될 것 같았기에 관광계획을 짜고 잠에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땅 위에 두 발로 서 있었다.

시간대는 밤인 것인지, 주변을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들이 없었다면 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반딧불에 의지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나무들로 가득했다. 구불구불한 나무도 있었고, 곧게 뻗어있는 나무도 있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자 싱그러운 풀내음이 내 코를 간질였다.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상쾌한 기분이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이 낮이었다면 눈으로도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여긴 어디야?”

성국 근처의 숲인가. 생각을 해봤지만 내가 있는 여관에서 가장 가까운 숲도 꽤나 거리가 있었으므로 ‘몽유병’으로 치기에는 무리가 컸다.

그리고 애초에 내가 몽유병에 걸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꿈.

지금 내가 서 있는 장소가 내 기억 속의 장소이고, 꿈의 형태로 내가 그곳에 서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번엔 또 무슨 장면으로 나를 괴롭히려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며칠 전에 최악의 악몽을 다시 마주했는데 말이다.

꿈의 신이라는 놈이 있다면 한 대 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빨리 반지를 받던가 해야지 원. 뭐가 나올지 무서워서 잠도 못 자겠네.

일단 어느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지는 알아야 했기에,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주변을 탐색했다.

익숙한 흙냄새와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느낌. 그리고.

­호우~ 호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부엉이 소리.

뭔가 마음에 드는 울음소리는 아니지만, 부엉이들의 존재로 인해 이곳이 어딘지 확신할 수 있었다.

“스승과 살던 곳인가.”

악몽의 원인이 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스승과 둘이서 살던 곳. ‘밤의 눈’이라는 숲이었다.

동쪽의 아벨 왕국과 서쪽의 제국 사이에 있는 넓은 숲으로, 모험가들의 기피대상 1순위인 지역이다.

들어서면 너무나도 넓은 숲을 헤매다가 길을 잃기 일쑤고, 그러다가 숲에 사는 마수나 마물들에게 목숨을 잃기도 했으니까.

게다가 밤의 눈에서 죽으면 마신의 품에서 죽는 거나 마찬가지이기에, 천신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아서 더욱 기피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 최소 A랭크로 이루어진 파티가 아니면 발을 들일 엄두도 못 내는, 모험가들의 무덤이라고도 불리는 장소다.

물론

어떻게 부엉이만 보고 그걸 아냐고, 부엉이라면 어느 숲에나 있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부엉이들은 특유의 생김새와 야행성이라는 것 때문에 마신이 세상을 감시하는 의도로 보낸 사자라고 여겨지고 있어서 취급이 좋지 않았고, 결국에는 이 숲을 제외하고는 살지 않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무들을 차지하고 있는 많은 수의 부엉이들을 보자 이곳이 밤의 눈이라는 숲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주변에 부숴지거나 불탄 나무들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 사건보다 과거인 것 같았다.

그 사건 때 숲의 4분의 1을 불태워버렸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때 당시에는 공작이었던 왕성 귀족 사람들과 싸울 때 4분의 1을 더 부숴 반밖에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꿈의 이정표가 가르키는 곳은 한 곳 뿐이었다.

자박자박.

얼마간 걸었을까. 저 멀리 통나무집이 한 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저 통나무집, 은근히 ‘여왕의 요람’이란 통나무집과 비슷하게 생겼다.

장작을 패기 위한 그루터기나 빨래를 매달기 위한 줄까지. 다른 게 있다면 그네가 없다는 정도려나.

통나무집을 짓는데도 그들만의 국룰이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비슷하게 생긴 게 그저 우연일 뿐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통나무집의 안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꿈이기에 노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지금이 밤이라면 분명 한창 거사를 치르고 있을 텐데.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야동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고 싶진 않았다. 직접 했을 때의 감각이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는데 보는 것만으로는 감질맛만 나지 않겠어.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분위기를 살폈다. 혹시나 신음소리가 들린다면 잠시 밖에 있을 생각이었다.

부엌 방향에 불이 켜져 있는 걸로 봐서 아직 거사를 치르기 전인 것 같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부엌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틈에서 얼굴만 살짝 내밀어 부엌 안의 상황을 살폈다.

“저건...”

제일 먼저 들어온 건 식탁처럼 보이는 나무로 만든 테이블에 착석하고 있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흑발의 소년이었다.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것과 식탁에 올려져 있는 게 김이 나고 있는 찻잔인 것으로 보아 스승이 좋아하는 홍차를 마셨던 것으로 보인다.

스승은 홍차 외에는 마시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뒷모습만 보이고 있는 흑발의 소녀가...

내 스승이라는 소리였다.

“윽..!”

스승의 존재를 인식하자 갑자기 가슴이 옥죄는 듯한 느낌에 가슴을 움켜잡았다.

“허억... 허억...”

숨이 가빠져오며 눈앞이 핑글. 돌기 시작했다. 간신히 벽을 잡고 몸을 지탱해 몸이 주저앉는 것은 피했다.

합일을 해 치유 마법이라도 써보려 했지만 꿈이라 그런지 여의치가 않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숨을 고르며 진정이 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가 돌아왔고 숨도 안정되기 시작했다.

가슴이 옥죄이던 느낌도 답답한 정도로 격하되었다.

어째서 갑자기 온갖 고통이 몰려들은 걸까. 생각을 해봤지만 뾰족한 답은 내지 못 했다.

한숨을 내쉬며 부엌으로 걸어들어가 식탁에 참여했다.

마치 나한테 앉아서 감상하라는 듯 과거의 나와 스승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식탁의 가운데에 은은하게 하얀빛을 내뿜고 있는 의자가 놓여있었으니까.

생각하지 말고 그저 보라는 말인가.

누가 가져다 놨는지 배려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만난다면 꼭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

자리에 앉아, 스승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자수정마냥 빛나는 보라빛의 눈동자. 화장하나 안 해도 윤기를 자랑하는 새하얀 피부. 한창 때의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청순한 외모.

장장 6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이렇게 맛있기만 한데 뭐가 쓰다고 그래.

흑발의 소녀, 스승이 찻잔을 들어 홍차를 홀짝이더니 뭐가 문제냐는 듯한 얼굴로 찻잔을 흔들어보였다.

­이런 걸 뭐하러 먹는지 난 정말 모르겠어.

그렇게 말한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접시에 놓여있는 과자를 하나 집어먹었다.

‘그래 이거지.’라며 만족한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나.

­그러고보니 스승.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꿀꺽. 과자를 삼킨 내가 스승에게 물었다.

­뭔데? 쓰리 사이즈가 궁금할 시간은 지나지 않았어?

그렇게 말하며 가슴을 양 손으로 받치는 스승. 탄력이 있는 가슴이 그녀의 손에 올려져 흔들린다.

­쓰리 사이즈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으니까 물어봐도 소용없잖아.

실없는 소리라는 듯 한숨을 내쉬는 나. 과자를 하나 더 집어먹더니 말을 이어간다.

­어째서 나한테 마력을 넘긴 거야?

사뭇 진지한 얼굴로 묻는 나를 보며, 스승이 고개를 갸웃했다.

­네가 강해지고 싶다며. 세상을 전부 적으로 돌려도 최소한 무승부는 낼 정도의 힘을 가지고 싶다면서? 그 패기가 마음에 들어서 준 건데, 왜?

원하는 것을 얻었는데 뭐가 문제냐고 묻는 듯한 얼굴로, 스승이 대답했다.

­아니... 달라고 해서 주는 사람이 어딨어?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내가 되물었다.

이 세계에 불려와서 제일 처음으로 배운 게 공짜란 없다는 것이었으니까.

­그것도 보통 마력이 아니라...

­그래서, 싫어? 싫으면 돌려주던가.

내놓으라는 듯 스승이 손을 내밀었다. 내가 바로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귀엽다는 듯 피식. 웃었다. 이어서 홍차를 한 모금 홀짝였고, 아련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가능성을 봤으니까 준 거야. 쓰레기 중의 쓰레기들만 모인 개미굴에서 아득바득 살아가던 너를 봤을 때 말이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돌려 말하지 말고 제대로 설명해주면 안 되는 거야?

­나중에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거란다.

그렇게 말한 스승이 더 이상의 대답은 없다는 듯 홍차를 다시 홀짝였다.

­뭐야 그게...

나는 불만이라는 듯 입을 삐죽였지만 스승이 더 말해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포기하고 과자를 하나 더 집어먹었다.

­그러면 하나 더, 소환마법은 도대체 왜 가르치는 거야?

그래. 저 질문도 했었지.

­소환수가 필요가 없을 정도인데 소환사는 소환수의 모든 것을 사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소환사이니라. 막 이러면서 가르치고, 몸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견뎌가며 합일인지 소환수의 힘을 빌리는 마법도 배우고. 솔직하게 말하면, 왜 배우는지 모르겠어.

양 손을 쥐었다폈다하며, ‘이 정도의 힘이 있는데 말이야.’ 라고 말하는 나.

그 모습을 보며, 스승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에 담겨 있는 건 씁쓸함이었다.

­혼자서는, 언젠가 한계가 오거든.

그래. 분명 저렇게 말했지.

그때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도 솔직히 이해가 가진 않는다.

그저 스승의 말에 따라 소환사의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니까. 모험가 카드에도 소환사라고 적혀있고.

그나저나 도대체 뭘 보여주려고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걸까?

설마, 진짜로 이 다음에 치른 밤의 거사를 직관하라고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이내 하얀 빛이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갈 시간이 됐다는 뜻인가?

뭐 정보라도 주는 줄 알았더니 그냥 과거의 일을 재생하는 게 전부였다니. 뭔가 허무한 기분이었다.

그럴 거면 고통은 왜 준 거야?

한숨을 내쉬며 오랜만에 스승의 얼굴을 본 것과 악몽이 아닌 것으로 만족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을 때.

­가는 거니?

라며 누군가를 배웅하는 듯한 스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거의 내가 화장실이라도 가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떠 나의 동태를 살폈지만 나는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한 얼굴로 스승을 보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잘 가렴.

내가 가는 게 아쉽다는 것이 드러나는 씁쓸한 미소.

그녀의 얼굴은, 분명히 그때 당시에는 없을 나를 향해 있었다.

내가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팟! 하며 강한 빛이 내 눈앞에 번쩍였다.

* * *

“...”

눈을 뜨자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내가 신세를 지고 있는 ‘철벽의 요새’라는 이름의 여관의 방의 천장이었다.

“...”

잠을 자고 일어났지만 상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마지막에 들었던 스승의 말.

그건 분명 나를 향해 하는 말이라고,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스승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걸까?

내 기억 속엔 스승이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 저 다음엔 질문이 끝났냐고 물은 다음에 바로 침대로 갔으니까.

그러니 스승이 직접 꿈에 들어온 게 아닌 이상 방금 전의 상황은 어떤 말로도 설명이 불가능했다.

물론 스승이 마음만 먹으면 꿈속에 나타나는 것도 가능하긴 했다. 스승과 했던 수련 중 하나가 꿈속에서 마력을 다루는 연습을 하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스승은 내 꿈에 개입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간 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봤지만 의문만 커져갈 뿐, 해결되는 건 없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는 ‘어쩌면 내가 방금 꾼 꿈이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인 게 아닐까.’ 정도였다.

찜찜함을 느끼며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상체를 일으키려던 찰나.

“어? 아빠 일어났다!”

응?

지금 이곳에서 절대로 들릴 리가 없는 앳된 목소리에 직각에서 반의 반쯤 일으킨 상체를 우뚝 멈췄다.

복근에 자극이 잘 될 법한 자세로 침대의 양 옆을 살폈지만 침대에는 나 혼자 뿐이었다. 성녀와 레이는 일찍 일어나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 참~! 여기야, 여기~!”

다시 들려오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내 아래쪽이었다.

나는 목소리를 따라 내 배를 향해 고개를 숙였고.

“안녕, 아빠!”

내 배에 올라와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인사를 하고 있는 푸른 머리의 소녀를 볼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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