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30화 (130/146)

〈 130화 〉 딸의 방문.

* * *

윤기가 흐르는 옅은 파란색의 머리칼과 내 얼굴이 헤엄치고 있는 푸른 눈동자.

입에 넣고 빨아들여보고 싶은 말랑말랑해 보이는 볼살.

당장이라도 두 팔로 꼬옥 껴안아주고 싶은, 6살 정도 되어보이는 앙증맞은 몸.

인간이 아님을 증명하는 듯한 푸른색의 꼬리와 한 쌍의 푸른색 뿔.

“리리에?”

피는 이어져있지 않지만 내 딸로 삼고 있는 아이인 리리에였다.

“히히.”

뭐가 그리 좋은지 헤실헤실 웃고 있어 그녀의 귀여움이 한층 더 부각되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우리 딸, 잘 잤어?’ 라면서 반갑게 맞이해주며 안아 올린다음 저 말랑말랑한 볼에 볼을 비비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얘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분명 자동인형 메이드인 아인 자매에게 맡기고 왔을 텐데?

급히 출발 계획을 짜고 출발했기에 미처 리리에에겐 성국에 간다고 말하지 못 했다.

내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을 알면 리리에가 나를 찾다가 학교 자체를 얼려버릴 수도 있었기에, 잠시 갔다 올 곳이 있으니 며칠만 리리에 좀 돌봐달라고, 실레스틴을 타고 오면서 급히 전언을 날렸다.

분명 그랬을 텐데, 어째서 지금의 그녀가 내 배 위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걸까.

리리에에게 물어보기 전에, 일단 침대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계속 복부에 자극이 오는 자세로 있다간 나중에 배가 땡길 수도 있었으니까.

“읏차.”

내 배위에서 싱글벙글 미소를 짓고 있는 리리에를 두 팔로 안아들고,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왔다.

“헤헤. 아빠아~”

이틀 만에 내 얼굴을 봐서 기쁜지 내 볼에 자신의 볼을 비비기 시작하는 리리에.

방금까지 뒤숭숭한 꿈으로 인해 찝찝하던 기분이 한 순간에 날아갔고,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입에는 미소가 걸렸다.

“우리 딸, 여긴 어떻게 왔어?”

“아빠 찾으러 돌아다녔는데 안 보였어! 그래서 메이드 언니한테 물어보니 아빠가 여기 왔대! 그래서...”

내게서 볼을 떼더니 팔을 휘적휘적 저으며 열심히 설명을 하기 시작하는 리리에.

“그래서 내가 데려왔어.”

하지만 근처에서 들려온 소녀의 목소리가 그녀의 설명을 끊었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의자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한 명의 소녀를 볼 수 있었다.

입고 있는 것은 흰색의 원피스. 하늘하늘한 의상이 그녀의 초록색 머리칼과 어우러져 꽃다운 나이의 소녀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소녀가 불리기엔 좀 나이가 많았지만.

“실레스틴?”

스카지나와 같은 고대룡이자 바람을 맡고 있는 고대풍룡 실레스틴.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한 그녀가 그곳에 있었다.

“네가 데려왔다고?”

“네 부탁에 따라 몰래 아카데미를 확인하던 와중에 어제 아침부터 아빠~ 아빠~ 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게 보이더라. 네가 없다는 것을 알아채자 울려고 하는 걸 네 자동인형 메이드가 진땀을 빼며 달래더라. 그래서...”

“그래서 진짜로 울기 전에 그녀들 앞에 나타나 데리고 온 거구나.”

“밤에 도착한 나머지 성문이 닫혀 있어서 숲속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에 바로 들어온 거야. 내가 결계를 부수고라도 들어가려는 리리에를 막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모르지.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뭐?”

싸늘해진 실레스틴의 눈을 보며, 나는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농담이야, 농담. 당연히 고마워하고 있지.”

“하여간 말만 잘해.”

“그게 내 장점이지.”

츤데레적인 면모를 보이는 실레스틴에게 대충 대답해 준 뒤에 리리에에게 비행기를 태워줬고, 꺄르르 웃는 리리에를 보며 이틀 치의 딸바보 성분을 충전했다.

그래, 이게 행복이지. 꿈은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사랑스런 딸의 애교나 받도록 하자.

그런 내 모습을 실레스틴이 한심스럽다는 듯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하아... 내가 어쩌다 이런 인간의 소환수가 됐는지...”

후회된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실레스틴을 뒤로하고, 리리에를 둥가둥가 해주고 있던 와중이었다.

아침을 먹고 돌아왔는지 벌컥. 하고 방문이 열리며 평상복 차림의 성녀가 돌아왔다.

“아, 일어나계셨네요?”

“일이 있었거든.”

“아쉽네요. 계속 주무시고 계셨으면 주무시는 얼굴을 구경하려 했는데... 어라?”

아쉽다는 표정을 짓던 그녀는 내 팔에 안겨있는 리리에를 보더니 내가 아침에 리리에를 처음 봤을 때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리리에님?”

“에델린 언니다!”

성녀를 본 리리에가 환한 미소를 짓더니 내 품에서 폴짝 뛰어내렸고, 성녀를 향해 달려가면서 가볍게 튀어 올라 성녀에게 안겨들었다.

“앗..?”

성녀는 당황해하며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 했지만, 특유의 성능 좋은 에어백이 있었기에 겨우겨우 리리에를 품에 안는데 성공했다.

“헤헤헤~ 에델린 언니~”

오랜만에 본 성녀가 반갑다는 듯 나한테 한 것처럼 성녀의 볼에 자신의 볼을 비비는 리리에.

그런 리리에의 애교를 받으면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어째서 리리에가 지금 여기에 있는가?’ 라는 의문이 담긴 얼굴을 내게 향했다.

“내가 보고 싶어서 찾아왔대.”

“현성님을 뵈러 아카데미에서 여기까지 오셨다고요?”

나를 찾으러 성국에 왔다는 리리에의 말에, 성녀가 충격에 빠진 얼굴을 했다.

우리가 실레스틴을 타고 와서 그렇지, 내가 머물고 있는 아카데미에서 성국까지의 거리는 중간 중간에 있는 도시와 마을을 거쳐 4에서 5일 정도 걸린다.

아무리 리리에가 용족이라도 그 정도의 거리를 혼자서 올 정도의 능력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성녀도 알고 있기에 저렇게 놀란 표정을 짓는 거겠지.

“응! 실레스틴 언니가 태워다줬어!”

당연히 그것을 알 리가 없는 리리에는 그렇게 말하며 실레스틴이 있는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성녀의 고개가 실레스틴이 앉아있는 곳을 향해 돌아갔고, 이내 심드렁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있는 실레스틴과 눈이 마주쳤다.

상대가 진짜 실레스틴임을 확인하자, 성녀가 품에 안고 있던 리리에를 바닥에 살며시 내려놓더니 그녀를 향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천신의 딸이 고대룡을 뵙습니다.”

“응. 그래.”

성녀의 인사가 귀찮다는 듯 대충 손을 내젓는 실레스틴.

쌀쌀맞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녀 나름대로의 호의 표시다.

애초에 호의가 없다면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았을 테니까.

게다가 그녀는 지고의 존재라 불리며 뭇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존재.

그런 그녀가 아무리 천신의 환생이라고 불리지만 ‘인간’인 성녀의 인사를 받아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세상 사람 누구에게 물어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당연히 성녀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불쾌하다는 내색 하나 없이 오히려 감사함을 담아 인사를 했고, 허리를 편 뒤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빠, 아빠. 에델린 언니가 왜 실레스틴 언니한테 허리를 숙이는 거야?”

어느새 내 옆에 온 리리에가 성녀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리리에의 눈에는 둘 다 동급의 ‘언니’이기에 실레스틴이 높은 사람인양 예의를 차리는 성녀가 이상해 보였던 거겠지.

어차피 구절구절 설명해봤자 어린 그녀로서는 이해하지 못 할 테니 대충 대답하며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런 게 있어. 그런데, 밥은 먹었어?”

아이라면 절대로 거절하지 못 하는 화제로.

“밥! 아직 안 먹었어! 배고파!”

역시 애는 애라는 듯 밥 얘기에 방금까지 하던 생각은 어디 갔는지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아빠랑 같이 밥 먹으러 갈까?”

“응!”

그렇게 말하며 두 팔을 벌리는 리리에.

안아서 데려가 달라는 신호였기에, 나는 그녀를 안아 올렸다.

“너희는 어쩔래?”

이왕 같은 자리에 모인 겸 식사라도 한 번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성녀와 실레스틴에게 물었다.

“저는 신전으로 돌아가서 먹으면 되요. 곧 온다고 방금 리사에게 전언이 왔거든요. 그러니 편히 드시고 오세요. 식사를 하고 오셔도 인사를 할 정도의 시간은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한 성녀가 헤어지는 게 슬프다는 듯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누가 보면 몇 달은 못 보는 곳으로 떠나는 줄 알겠네.

한눈에 봐도 연기라는 게 보였기에, 나는 연기가 너무 어설프다며 그녀를 놀려주었고.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삐죽 내밀었기에 나는 실레스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넌?”

“나도 바로 돌아갈 거라 괜찮아.”

리리에의 부탁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오게 된 거라며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듯 실레스틴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래? 그럼 잘 가. 시간되면 또 보자.”

둘 다 아침을 같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으니 리리에와 단 둘인 아침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방해꾼들이 오지 않는다면 말이지.

세레나라던가, 세레나라던가.

그렇게 리리에를 안아들고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아참.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실레스틴의 목소리가 나를 멈춰세웠다.

“뭔데?”

“혹시, 성국에 도착하고 나서 성국을 나간 적 있어?”

“성국을 나간 적이 있냐고?”

실레스틴의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기억의 톱니바퀴를 굴려 과거의 장면들을 끌어와 보았다.

“아, 한 번 있다.”

레이를 데리고 여왕의 요람이라는 곳에 갔을 때. 그때 성국의 문을 지나서 근처에 있던 숲에 들어갔지.

괜히 레이에 대해 말할 필요는 없었기에, 실레스틴에게 대충 근처의 숲에 갔다왔다고만 말했다.

“그럼 거기서 포탈을 연 적 있어?”

“포탈?”

“한 번 왔던 곳으로 갈 수 있게 해주는, 네 소환수 중에 한 명이 사용하는 마법 말이야.”

“아니? 없는데?”

내가 사용하는 전이 마법은 한 번 내가 발을 들였던 장소이자 다른 장소로 향하는 포탈을 열었을 때만 그 장소가 저장된다.

그 덕에 다크나이트의 습격 때 발빠르게 돌아올 수 있었던 거니까.

하지만 여왕의 요람은 내가 지도에 마력을 흘려넣기 전까진 알지 못했던 곳이다. 당연히 포탈을 열었을 리가 없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실레스틴에게 되물었다.

“그게, 성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네가 말한 성국 근처의 숲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네 마력과 비슷한 마력이 느껴져서 말이야. 그것도 무수히 많이. 마치 군대라도 모여있다는 듯이 말이야. 그래서 네가 포탈을 연 적이 있는지 물었던 거야.”

내 마력과 비슷한 마력들이 근처에서 느껴졌다고? 그것도 무수히 많이?

생각을 해봤지만 딱히 정답이라고 할 만한 게 떠오르진 않았다.

성국의 안에서라면 교황과의 기싸움으로 마력을 사용하긴 했지만 성국의 밖에선 마력을 사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 네 얼빠진 듯한 표정을 보니 너와 관련된 일은 아닌 것 같네.”

한숨을 내쉬며, 실레스틴이 더 이상 신경쓰지 말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됐어. 네가 관련이 된 일이 아니니 신경쓰지 않아도 돼. 아마 네 근처에 있다보니 본능적으로 느꼈나보지.”

신경쓰이게 만들어놓고 신경쓰지 말라니. 뭐 저런 놈이, 년이 다있어?

“아빠? 밥 안 먹으러 가?”

어그로만 잔뜩 끌어버린 실레스틴에게 한 소리 해주고 싶었지만, 왜 가만히 서 있냐는 듯한 리리에의 재촉에 대충 알았다고 대답했고, 다시 한 번 잘 가라는 인사와 함께 방문을 나서 1층으로 향했다.

* * *

현성이 리리에를 데리고 방을 나가자 방에는 성녀와 실레스틴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여전히 의자에 앉아있던 실레스틴의 녹빛 눈동자가 성녀를 향했다.

“뭔데요?”

“그 녀석에게 의지할 생각은 없는 거야?”

“네?”

뜬금없는 실레스틴의 질문에, 성녀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마신의 심장을 봉인하는 것과 결계로 성국을 보호하고 있는 거. 둘 다 하느라 힘들잖아? 새까맣던 머리까지 신성력을 무리하게 운용하느라 흰색이 되어버릴 정도니.”

“...아.”

실레스틴의 말대로, 성녀는 자신의 신성력으로 신전 지하에 있는 마신의 심장을 봉인하는 일을 함과 동시에 성국의 결계가 깨지지 않도록 똑같이 신전의 지하에 있는 여러 개의 결계석에 신성력을 쏟아붓고 있는 상태였다.

원래 마신의 심장은 교황이 맡고 있었으나, 현성과의 싸움으로 인해 마신의 심장을 봉인하지 못 할 정도로 약해졌고, 그 때문에 마신의 심장까지 그녀가 맡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 하고 있었지만, 성녀로서 항상 밝고 경건한 모습만 보여왔기에 그 누구도, 심지어 현성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그랬을 텐데, 자기 자신 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알려져 있는 고대룡인 그녀가 성녀의 비밀을 말한 것이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 정도도 못 알아채면 고대룡의 이름이 울겠다.”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하는 실레스틴.

그녀의 모습을 보며 무어라 말할까. 잠시 고민하던 성녀였지만 이내 고개를 젓더니 미소를 지었다.

“전 괜찮아요. 천신께 받은 힘. 천신의 자식들을 위해 쓰고 있는 거니까요.”

뻔하다면 뻔한 대답에, 실레스틴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그런 걸 신경쓰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야.”

“그것 또한 천신의 뜻이겠지요. 그리고...”

“...그 정도 들었으면 됐어.”

더 들어봤자 천신이 어쩌고 저쩌고에 대한 대답만 들을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실레스틴은 결국 말하는 것을 그만두었고, 이내 산들바람이 그녀 주위에 살랑거리며 불기 시작했다.

“가시는 건가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는 듯 성녀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랑 얘기하다간 나도 종교에 빠져들 것 같아서 말이야.”

“안녕히 가세요.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마 네가 살아있는 동안은 강제적인 걸 제외하면 볼 일은 없을 거야.”

질색한다는 표정을 지은 실레스틴. 이내 바람과 함께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한동안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응시하고 있던 성녀는 이내 바람으로 인해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더니, 열려있는 창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문에서 밖을 내려다보자, 어느새 식사를 마친 건지 현성이 푸른 머리의 소녀, 리리에를 안아든 채로 무어라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옆에는 레이를 포함해 그가 상주하고 있는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있었다.

화기애애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성녀는 방금 전 실레스틴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조용히 읊조렸다.

“그리고 현성님은, 저보다 더 힘들지만 저렇게 내색하지 않고 사시고 계시는 걸요.”

쓴웃음을 지은 뒤, 성녀는 조용히 창문을 닫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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