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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31화 (131/146)

〈 131화 〉 딸. 밥. 그리고 소녀.

* * *

리리에를 안아 든 채로 1층으로 내려오자, 이미 대부분은 아침식사를 마쳤는지 한산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빠! 아빠!”

자리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던 중, 리리에가 나를 툭툭 건드렸다.

“왜?”

“저기 좀 바바!”

왜 그러는가 싶어서 그녀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내 눈을 의심할 만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잘 안 올 것 같은 구석진 자리에 대충 눈대중으로 보기에도 십 몇 인분은 될 것 같은 접시의 산이 쌓여있었으니까.

‘이미 다 먹은’ 접시의 산만 십 몇 인분이었다.

아직도 테이블의 위에는 스튜, 샐러드, 고기, 빵 등 산더미 같은 음식이 남아있었으니까.

물론 여기까지라면 손님 중 대식가가 있어 아침부터 거하게 먹는구나.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테이블에 앉아있는 건 한 명의 소녀였다.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대충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다.

뭐라 그리 급한지 음식을 허겁지겁 삼키느라 이리저리 찰랑이는 흑발.

마치 누가 보면 안 된다는 듯 주변의 동향을 파악하는 듯 음식을 먹다가도 움직이는 머리.

음식이 들어갈 때마다 부르르 몸을 떠는 것으로 보아 맛의 희열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마리아가 하는 음식들이 맛있긴 하지.

“저 언니, 엄청 먹어!”

“쉿. 손가락질 하는 거 아니야.”

리리에가 그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단하다는 표정을 짓기에, 나는 예의없이 그러는 거 아니라며 작게 그녀를 타일렀다.

‘그나저나 저 뒷모습, 묘하게 익숙한데?’

찰랑이는 흑발이나 입고 있는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평상복, 그리고...

그녀 본인은 눈치채지 못 하고 있는 것 같은, 상의에서 삐져나온 채 좌우로 살랑이고 있는 검은색의 꼬리.

아무리 봐도 레이였다.

성녀와 같이 올라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저렇게 많은 양의 음식을 처리하고 있었을 줄이야.

“하아~ 맛있다아..!”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고기를 해결하고 접시의 산에 접시를 추가한 레이로 추정되는 소녀가 행복하다는 듯 기쁨의 숨을 내쉬었다.

목소리마저 레이가 맞았다.

곧바로 다음 음식으로 손을 향하는 레이. 바구니에 담겨있는 빵을 한 손에 하나씩 집어 들더니, 입에 쑤셔넣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를 불러야할지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그녀를 부른다면 분명 보이지 않고 싶었던 모습을 들켜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부르지 않는다면 그냥 그녀에게서 조금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아 조용히 식사를 하고 올라가면 되는 거고.

라고 생각은 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있었다.

대부분 도도한 모습만 보여주던 녀석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건 못 참지.

“아빠? 얼굴이 이상해. 어디 아파?”

“응? 아니야. 아무것도. 아빠는 괜찮아.”

그녀를 놀릴 생각에 너무 신이 났는지, 나도 모르게 히죽거리는 얼굴을 얼굴 근육을 이리저리 움직여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놨다.

어느새 빵을 다 해치우고 2번째 고기로 목표를 향한 레이를 부르려던 찰나, 그녀를 놀릴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그냥 부르는 것보다 앞에 가서 앉으면 더 생생한 반응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그녀의 앞자리에 착석한다면 잠시 상황파악을 하느라 뇌정지가 온 그녀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부끄러움의 향연. 이 얼마나 좋은 울림인가.

레이가 해치운 접시를 가져가기 위해 마리아가 우리를 지나치며 인사를 하려 했지만, 내가 손가락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레이에게 우리가 근처에 있다는 티를 내지 않았다.

“아빠, 우리 어디 앉아? 나 배고파!”

슬슬 진짜로 배가 고파오는지 칭얼대기 시작하는 리리에를 달랬다.

“그래 그래, 마침 저기 레이 언니가 밥을 먹고 있으니 같이 먹으면 되겠네. 대신 언니를 방해하면 안 되니 조용히 가서 앉는 거야, 알겠지?”

“응!”

리리에는 레이가 방금 그녀가 가리켰던 ‘언니’라는 사실을 그새 까먹었는지 그저 레이와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나하는 것 같았다.

저렇게 껴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으니 말이다.

이로서 방해가 될 법한 인물들은 전부 내 수중에 집어넣었다. 남은 건 차려진 만찬을 맛있게 먹는 것 뿐.

타이밍 좋게 애들이 들어오거나 내려오지 않는 한 내 계획은 100퍼센트 성공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레이가 있는 테이블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나 감이 좋은 그녀가 내 기척을 눈치 챌 새라 기척을 지우는 마법까지 걸어가면서.

사람 하나 놀리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거냐고, 세레나가 옆에 있었으면 태클을 걸었겠지.

하지만 스승 왈. 항상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

순진한 소녀를 놀리는데 사용하라고 말한 거 아니냐고 또 태클을 걸었겠지만, 스승이 지금 상황에 처했다면 분명 나와 같은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 스승에게 배운 거니까.

그녀의 바로 앞, 테이블에 앉을 때까지도 그녀는 음식에 정신이 팔린 건지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 하고 있었다.

어느덧 만화 고기를 지나 스테이크로 향하기 시작한 그녀의 식기들.

분명 포크로 찍어 몇 입 만에 다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포크로 집은 부분을 나이프로 조각을 입에 집어넣는, 귀족식 예법을 잘 따르고 있었다.

조금 더 기다렸어야 했나.

스테이크를 통째로 집어먹는 타이밍에 딱 등장했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은 상황이었겠지만,

하지만 왜일까. 조금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타이밍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더니 감질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반쯤 남은 고기에 포크를 푹. 찍더니 그대로 들어올렸다.

지금이다!

­드르륵.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기 직전에 일부러 의자를 끄는 소리를 크게 냈다. 그 소리에 레이의 입으로 향하던 포크가 우뚝. 멈췄다.

“합석해도 되지?”

이어, 그녀의 대답에 관계없이 합석할 생각이긴 했지만, 예의상 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래야 그녀가 내가 자신의 앞에 앉아있다는 상황을 제대로 인식할 테니까.

“안녕, 레이 언냐!”

여전히 내 품에 안겨 있던 리리에 또한 반갑다는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끔뻑끔뻑.

포크에 찍힌 고깃덩어리를 든 채로, ‘형이 왜 거기서 나와?’라는 표정을 지은 레이의 눈동자가 우리들을 향했다.

* * *

“푸, 푸흡...”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맛있다~!”

리리에는 황홀하다는 얼굴로 만화 고기를 와직와직 찢으며 꿀꺽 삼켰다.

“웃지 마세요.”

레이는 그런 나를 찌릿. 노려봤다.

“푸흐흡...”

하지만 나오려는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진지하게 화를 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심지에 불을 가까이 한 격이 되어버렸다.

“웃지 마시라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점화.

“파하하하하!!”

결국 웃음이 터져버렸다.

방금 전 장면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고기를 입에 넣기 직전의 자세로, 잠시 우리를 멀뚱멀뚱 쳐다보던 레이.

얼마 지나지 않아 만화였으면 특수문자로 처리할 것 같은 괴상한 소리를 낸 그녀의 몸이 펄쩍 튀어오르며 중심을 잃었고, 중심을 잡으려고 했는지 그녀는 팔을 허우적댔지만 실패했고, 그대로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가 굉음과 함께 후두부를 바닥에 박아버렸다.

홀에 있던 여급들과 마리아가 황급히 뛰어와서 괜찮냐고 물어봤을 정도의 큰 소리였다.

카메라만 있었으면 동영상으로 찍어놨다가 ‘생전 고인의 개쩌는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라며 장례식장에서 틀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

거기다가 지금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는, 그녀의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까지.

내가 악마였다면 너무나도 달콤한 악의의 맛에 황홀함을 느꼈을 것 같다.

그 뒤로도 무어라무어라 말하며 화를 내는 레이.

그녀가 내게 이렇게 제대로 된 화를 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나는 성녀의 잔소리로 인해 내게 향하는 정신적인 공격들은 대부분은 면역이었기에, 고양이의 햐악질이나 다름없어 보여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보기 좋네.”

“네?”

갑작스런 내 말에, 화를 내던 레이가 뚝. 말을 멈추고는 나를 바라봤다.

“지금이 훨씬 보기 좋다고.”

방금 한 말대로, 아카데미에 있을 때의 그녀보다 지금이 훨씬 보기 좋았다.

성국에 오기 전에는 거의 감정을 들어내지 않아 데친 숙주나물 마냥 보였는데, 지금은 저렇게 감정을 다 드러내며 씩씩대고 있지 않은가.

그래, 이거지. 저 나잇대의 애들은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그래야지.

그리고 많이 먹기도 하...

내 시선은 레이의 옆에 쌓여있는 접시로 향했다.

음.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많은 것 같네.

나한테 화를 내면서도 음식을 계속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기에, 어느새 그녀의 오른쪽에는 왼쪽과 똑같은 높이의 산이 쌓여 있었다.

도대체 저 음식들이 어디로 다 들어가는 거야?

루아였다면 먹은 게 전부 가슴으로 간 거라는 농담이라도 던질 수 있다. 물론 레이도 또래보단 가슴이 크다고 말할 수 있으나 루아라는 거대한 벽이 있는 이상 그 드립은 그녀에겐 칠 수 없었다.

반이 마족이라 식성도 인간보다 많은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혹시, 저를 위해서 하신 일인건가요?”

레이의 눈동자가 확장되며 빛을 머금었다. 무언가를 미처 생각하지 못 하고 있었다는 얼굴이었다.

“맞아.”

그 무언가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왜인지 맞다고 하면 편해질 것 같으니 맞다고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런 것도 모르고... 화를 내서 죄송합니다.”

잘 통했는지 내게 사과를 하는 레이. 왜인지 얼굴에는 홍조가 머물러 있었다.

“아냐. 처음부터 말을 해줬어야 하는 건데. 사죄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봐.”

삐진 사람이 삐지게 된 원인이 내게 있다면 달래는 데는 이게 직방이지.

“뭐든지요?”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그, 그럼..!”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이 있었다는 듯, 레이의 상체가 황급히 일으켜지며 탕! 하고 테이블을 내리쳤다.

할 말이 뭐길래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무슨 말을 하려나 기다린지 몇 십초 후, 결심을 냈는지 입술을 꽉 깨물고 있던 레이가 입을 열었다.

“오, 오늘 하루는 저와 같이 보내주실 수 있으신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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