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33화 (133/146)

〈 133화 〉 빛의 뒤에서 움직이는 그림자.

* * *

“드디어 내일이군요.”

그렇게 중얼거린 흑발의 여인이 홍차가 들어있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홀짝였다.

차의 맛이 만족스러웠는지 감미롭다는 표정으로 찻잔을 내려놓은 그녀가 맞은편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어떻게, 준비는 다 됐나요?”

그녀의 시선에 위치해 있는 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이었다. 준비가 다 됐냐는 그녀의 물음에, 검은 로브가 굵은 남성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걱정할 거 없다. 이미 내 군대가 포탈을 타고 넘어갈 준비를 끝냈으니. 남은 건 성국 내에 잠입해있는 그들이 잘 해내느냐지.”

“그들이라면 잘 해낼 거랍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 교황의 눈을 몇 년이나 피해가면서 계획쪽은 착실하게 이행했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상대의 찻잔을 보더니.

“그런데, 홍차는 싫어하시는 건가요? 모처럼의 손님이라 고급 찻잎을 사용했는데.”

라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놀리는 건가?”

그렇게 말하며 후드를 벗는 남성. 그 안에는 사람의 얼굴 대신 새하얀 두개골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리치인 걸 모르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가 말할 때마다 턱 관절이 덜그럭 거리며 움직였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인간은 아닌 듯한 모습이었지만, 여인은 그저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후훗, 농담이에요. 칼바리아님.”

“...전 마왕군 간부를 상대로 그렇게 농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손으로 꼽을 정도일거다.”

전 마왕군 4 간부 중 한 명이자 인마 전쟁 때 죽지 않는 불사의 군대를 일으켜 몇 개의 왕국을 괴멸시킨 고대 리치인 칼바리아. 그것이 그의 정체였다.

누가 봐도 흉흉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는 그. 그런 그를 눈앞에 두고도 여인은 태평했다.

“그 중 하나는 저라는 거군요. 그거 영광인데요? 그러면 나머지 아홉 개의 손가락은 누구인가요?”

홍차를 또 한 모금 홀짝이며, 여인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딸깍. 뼈로 된 검지손가락이 움찔했다. 얼굴 근육이 있었다면 필시 찡그리고 있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그가 덜그럭 거리며 입을 열었다.

“일단은 성녀와 교황이 있겠지. 물론 그들이 나와 농담을 주고받을 만한 사이는 아니지만.”

언데드인 그와 그런 언데드들을 성불시키는 자들이 한 곳에 모여 농담 따먹기를 한다니. 빈말로도 있다고 할 수 없었다.

그녀 또한 그렇게 생각했지만 잠시나마 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웃고 떠드는 일을 상상해보았고,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에 입을 가리며 작게 웃었다.

“...그들만 아니었어도 내 불사의 군대가 막히는 일은 없었을 텐데.”

주먹 쥔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전쟁 때의 기억이 되살아난 탓이었다.

“그렇죠. 그들이 마계에서 건너온 저희들의 존재를 신성력으로 눈치채고 발 빠르게 대처해서 마왕군이 대륙의 서쪽밖에 못 차지하게 한 결정적인 원인이 된 거니까요. 뭐, 이제는 그 서쪽에도 마족의 영토는 없지만요.”

아쉽다는 듯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발 빠르게 초월자들과 다른 나라들에 소식을 전달하지 않았다면 마왕님의 염원이었던 세계 정복을 이뤄낼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번 일이 중요한 거 아니겠나. 그 증오스런 녀석들에게 복수의 기회가 찾아온 거니까.”

달칵달칵. 그의 해골 손이 덜덜 떨렸다.

두개골뿐이라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지만 복수심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여인은 알 수 있었다.

“교황은 모종의 사고로 제 힘을 낼 수 없는 상태이니 전쟁 때처럼 밀리진 않을 거고, 성녀의 신성력은 그녀가 맡아 봉인시킬 테니 발키리나 여타 성국의 병력 정도로는 내 불사의 군대를 막지 못할 거다. 하지만...”

말끝을 흐리는 칼바리아를 보며, 실비아는 그가 무언가 탐탁치 않아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뭐 걸리는 거라도 있으신 건가요? 마신의 심장에 대한 계획을 말하시지 않으신 걸로 보아 그쪽인 것 같은데, 맞나요?”

칼바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당신 같은 마족이나 나 같은 리치가 아니라 인간이잖나.”

칼바리아의 말을 듣고 있던 여인이 이해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인간이라 마신의 심장에 담긴 마신의 마력을 제어하지 못 할 까봐 걱정이신 건가요? 걱정 마세요~ 잘 적응하도록 수를 써놨으니까요.”

“수라면?”

“인간이어서 문제면 인간이 아니게 만들면 되잖아요? 그리고 우리한테는 그런 걸 가능하게 하는 게 있고요.”

“...마신의 파편을 그에게 흡수시킨 건가.”

“심장을 담을 수 있을 정도의 파편을 만드느라 너무 커져버린 마수로 인해 마을 하나가 사라졌지만요. 그리고, 만에 하나 잘못되어서 폭주하거나 터지더라도 상관없잖아요? 어차피 성국 내부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역할이 전부인데.”

잘 되면 좋고 안 되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지. 우리의 목표는 성국이 혼란한 틈을 타 성녀를 습격, 신성력을 빼앗거나 그녀를 데려온다. 이니까.내 불사의 군대마저 성녀의 신성력을 빼앗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건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조금만 참으세요. 마왕님만 부활하시면 다시 불사의 군대가 세상을 집어삼킬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작게 미소를 지은 그녀가 차를 홀짝였다.

“그럼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은요?”

“다음이라니 무슨 말이지?”

“아까 칼바리아님께서 말씀하신, 칼바리아님께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사람들이요.”

여인이 10개의 손가락을 펼쳤고, 그 중에 2개를 접으며 말했다.

“교황과 성녀를 말씀하셨으니 아직 여덟 명이 남았잖아요. 다른 사람도 아닌 마왕군 간부와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는 사람들을 알고 싶은데 말이죠.”

그렇게 물어오는 그녀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덜그럭거리는 칼바리아의 턱관절.

“...그만큼 수가 적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걸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이 어디있나?”

“에이, 그래도 몇 명은 더 기억에 있으실 거잖아요. 모처럼 좋은 차도 준비했는데 얘기 좀 더 해주세요.”

“됐다. 떠올리기 싫은 녀석들뿐이니.”

“에~”

­쾅!

그때, 문이 강하게 열리며 흰색의 고딕 로리타 타입의 옷을 입은 갈색 양갈래 머리의 소녀가 응접실의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실비아 언니이~!!”

그대로 의자에 앉아 있는 흑발의 여인에게로 돌진해 품에 안기는 소녀. 여인의 품에서 얼굴을 비비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리리스. 손님이 와 계시잖니. 그만하고 내려오렴.”

“손님?”

리리스라고 불린 소녀가 고개를 돌려 칼바리아에게 시선을 향했다. 해골뿐인 그의 머리를 보더니 삐죽. 입을 내미는 리리스.

“뭐야, 사골! 여긴 어쩐 일이야? 우리 언니 귀찮게 하러 온 거야?"

화륵. 목소리를 낮게 깔은 그의 비어있는 두 눈에 붉은 불꽃이 일었다.

“...내가 전에 분명히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그가 분노했다는 뜻이었다. 얼굴 근육이 없기에, 감정이 격렬해 졌을 때 격렬해진 감정에 따라 마력이 불꽃의 색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골. 그것은 그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였기 때문이었다.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에는 보통 사람이었다면 위압감에 숨조차 쉬지 못 할 정도의 마력이 담겨있었지만.

“응~ 눈에서 불 피워봤자 하나도 안 무서워~ 풉키풉키! 오또케 고대 리치 별명이 사골? 아하하하!”

리리스는 그만두기는커녕 오히려 꺄하하! 웃으며 누가 지었는지 참 잘 지었다며 계속해서 놀렸다.

­뭐야, 이걸로 국물을 못 우려내는 거야? 에이, 괜히 뽑았잖아? 오랜만에 시원한 국물 좀 먹나 했더니만. 야, 미안하다. 뭣 하면 다시 붙여줄까? 근데 어차피 리치라 필요없으려나?

­까드득.

그녀 때문에 다시 떠오른 과거의 기억에, 악몽에 이가 갈리며 당장이라도 마법을 쏴버리고 싶을 정도의 욱하는 감정이 밀려들어왔지만, 이내 정신 계열 마법으로 자신을 진정시켰다.

지금 그녀와 싸워봤자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그녀 또한 전 마왕군 간부였고, 그들의 실력은 비등했으니까.

인마 전쟁 때 마력으로 만들어진 무수히 많으면서도 무수히 재생하는 인형들의 군세와 자신의 마력이 담긴 ‘실’로 연합군을 조종해 곤혹을 치르게 만든, 훗날 사람들이 일컬길 광기의 인형술사 리리스.

그것이 그녀의 이름이자 이명이었다.

“그만하렴, 리리스. 큰일을 앞두신 분께 그러는 거 아니야.”

실비아의 제지에 리리스는 볼을 부풀렸지만 언니의 말을 듣지 않을 수는 없었는지, 다시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리리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실비아가 용서해달라는 듯 말했다.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저 아이도 당신을 싫어해서 그러는 건 아니니까요.”

“...상관없다. 어차피 꼬맹이일 뿐이니까.”

나이는 그와 비슷했으나 하는 짓은 영락없는 아이인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쉰 그의 눈에서 불꽃이 사라졌다.

“그보다, 더 할 말이 없으면 이만 돌아가도 되겠나?”

“어머, 벌써 가시게요? 곧 있으면 자정인데 밤참은 드시고 가시지.”

실비아가 그렇게 말하며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듣지 못 했던 이야기들을 듣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음식을 먹어본 게 육 백 년 전이라. 그럼.”

칼바리아는 관심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붉은 달에게 영광을.”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튕기자, 검은빛이 번쩍였고, 이내 그의 모습이 응접실의 안에서 사라졌다.

“여전히 성격이 급하신 분이라니까. 오래도 사신 분이 뭐가 그리 급하신지.”

실비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 언니. 나 궁금한 게 있어.”

실비아의 품 안에서 조용히 있던 리리스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뭐니?”

“언니랑 사골의 대화에서 느낀 건데, 왜인지 언니는 이번 계획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하는 것 같아서.”

움찔. 실비아의 눈썹이 한차례 꿈틀거렸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한 거니?”

“감으로?”

그냥 그런 느낌을 받았다며 고개를 갸웃하는 리리스.

"그래서, 맞아?"

"나중에 알 게 될 거란다."

"그게 뭐야..."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을 표하는 리리스에게 미소를 지어준실비아는 찻잔을 들어 마지막 한 모금을 홀짝였다.

리리스로서는 이해하지 못 할 미소를 찻잔이라는 가면 뒤에 숨긴 채로.

* * *

“후...”

신전의 안에 있는 숙소의 3층, 성녀의 방 안에서, 성녀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워있음에도 잠이 오지 않았던 탓이었다.

‘내일은 아침부터 준비해야 되는데...’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지만, 남몰래 결계를 발동시켜 숙소 주변의 소리를 수집한 결과 꽤나 늦은 시간인 것 같았다.

순찰을 도는 성기사들의 쩔그럭 거리는 갑옷소리만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잠에 들지 못 해 밤을 지새게 된다면 필시 내일 있을 강림제에서 실수를 하고 말 것이다.

그런 생각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잠에 들기 편안한 자세를 찾으려 했지만 그 또한 실패했다.

“성녀님. 들어가도 될까요?”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성녀로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호위기사, 리사의 목소리였다.

성녀는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키며 문에 대고 대답했다.

“들어오세요.”

­끼익.

문이 열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든 리사가 걸어 들어와 침대 근처의 책상에 찻잔을 놓았다.

부드럽고 깨끗한 라벤더의 향이 성녀의 코를 간질였다.

“잠을 못 주무시고 계시는 것 같아 숙면에 좋은 차를 가져왔어요.”

“제가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항상 강림제가 다가오면 안절부절 못 하셨으니까요.”

그 정도는 당연히 안다는 듯 리사가 미소를 지었다.

“처음 강림제의 주역으로서 나서게 됐다고 들으셨을 때 오들오들 떨면서 다른 사람 시키면 안 되냐고 울먹이시던 것도 기억나네요.”

“...그렇게까지 오래된 일까지 기억할 필요는 없잖아요.”

흑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는 과거의 기억에, 성녀가 볼을 부풀리며 볼멘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 리사가 가져온 차를 한 모금 홀짝였다.

따뜻한 온기가 몸을 타고 흐르는 느낌에, 성녀는 아까보다 긴장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고마워요. 덕분에 한시름 덜었네요.”

성녀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감사함을 표했다.

“뭘요. 그러면 전 이만 가볼게요. 좋은 밤 되시길.”

“자, 잠시만요..!”

고개를 가볍게 숙인 리사가 방을 떠나려던 찰나, 성녀가 그녀를 불러세웠다. 무슨 일이냐는 듯 리사의 고개가 기울여졌다.

“그... 동화책 한 권만 읽어주면 안 될까요?”

어렸을 적 자신이 잠에 들지 못 할 때 잠에 들 때까지 리사가 동화책을 읽어줬기에, 그때처럼 동화책을 읽어주면 잠에 더 빨리 들 것 같다는 생각에서 한 말이었다.

“...그 정도로 잠이 안 오면 현성님께 하루만 더 같이 있어달라고 부탁이라도 드려보지 그랬어요?”

그의 옆이라면 분명 주변에 어떤 방해가 있어도 지금처럼 뒤척이는 일없이 잠에 들 수 있었을 거라고, 리사는 생각했다.

실제로 그의 옆에서 잠에 든 성녀가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담아놓은 것 같은 얼굴을 했던 것을 봤으니까.

성녀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라는 듯 우물쭈물,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대답했다.

“그게... 현성님껜 이미 재회의 선물을 크게 받았으니 이 이상 부탁드리는 건 좀 그렇다고 해야 하나... 반지의 건이 있다고 해도 제 신성력을 담기만 하면 되는 거니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걸 빌미로 부탁하기에도 조금...”

아하하. 멋쩍게 웃는 성녀.

얼마나 좋아하면 부탁하는 것조차 실례라고 생각하게 된 걸까.

리사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현성에게 가서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쩔 수 없죠. 대신 한 권 만이에요?”

그리고 그건 거절하지 못 하는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네..!”

성녀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사는 몸만 성인이고 아직 아이 같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근처의 책장에 꽂혀있던 동화책을 한 권 가져왔다.

제목은 부엉이의 숲이었다.

성녀는 이미 들을 준비를 마쳤다는 듯 어느새 찻잔은 다 비워져 있는 상태였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있었다.

근처에 놓여 진 의자를 끌고 와 침대 옆에 앉은 그녀가 동화책의 첫 번째 장을 펼쳤다.

“부엉부엉, 나무에 앉아 있는 부엉이가 울었습니다.”

그렇게 리사의 동화책 낭독회를 들으며, 성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 한 채로.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