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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34화 (134/146)

〈 134화 〉 강림제.(1)

* * *

“으...”

무언가 내 몸을 짓누르는 느낌에 잠에서 깬 나는 몽롱함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잠에서 막 깬 탓에 뿌연 눈앞이 선명해지기를 기다리며 몇 번 눈을 깜빡거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당연히 내가 머물고 있는 방의 천장이었다. 벌써 3번째 보는 만큼 익숙한 천장이라는 대사가 잘 어울렸다.

도대체 이번엔 뭐가 내 잠을 방해한 걸까.

의문의 답답함에 잠에서 깨기 전에 어떠한 꿈도 꾸지 않았다. 분명 자연적으로 깼다면 상쾌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일단 상반신을 일으키기로 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건 천장밖에 없었으니까.

“..?”

하지만 왜인지 내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리부터 시작해서 몸통을 지나 팔을 거쳐 손까지. 하나하나 마치 침대와 하나가 되기라도 한 듯 말이다.

게다가 몸을 짓누르는 느낌도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게 말로만 듣던 가위에 눌렸다는 건가?

얼핏 기억하기로 가위 눌림의 증상으로 몸을 움직이려 해도 원인모를 압박감에 움직여지지 않는다고 했다.

마치 지금 내 상황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보기로 했다.

만약 가위에 눌린 거라면 목소리도 안 나올 테니까.

너무 큰 소리를 내면 옆에서 자고 있을 레이나 리리에가 깰 수도 있기 때문에 작은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아주 잘 나온다.

목소리가 잘 나오는 걸 보니, 가위에 눌린 건 아닌 것 같다.

가위에 눌린 게 아니라는 걸 확인했으니 하품이 절로 나왔고, 대충 어느 정도의 시간이 되었나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기로 했다.

햇빛이 들어오고 있다면 아침이겠고 달빛이 들어오고 있다면 아직 새벽이란 뜻이니까.

방금 잠에서 막 깬 탓에 시야가 뿌예서 시계가 잘 안 보였기에 생각한 답이었고,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

창문에 커튼이 쳐져 있는 것을 보기 전까지 말이다.

하지만 커튼이 쳐져 있음으로 인해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아침형 인간인 레이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일어났다면 분명 커튼을 거둔 다음에 아침 운동을 하던 뭘 하든 했을 테니까.

그 가설은 내 오른팔에 느껴지는 레이의 가슴으로 추정되는 부드러운 감촉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늦은 밤, 혹은 이른 아침이라는 소리인데.

확실하게 시간을 알기 위해 감각을 귀로 집중시켰다.

창문 너머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 아래에서 들려오는 마리아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 같은 발소리.

각종 소리들로 보아 지금이 이른 아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별로 잠도 자지 못한 늦은 밤이라면 수면을 방해받아 짜증이 났을 텐데, 이른 아침이라면 [아 ㅋㅋ 아침은 어쩔 수 없지. 그냥 일어나야겠다.] 라면서 유쾌하게 넘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 그러면 시간도 대충 확인했겠다. 이젠 내 몸이 어째서 가위에 눌린 게 아닌데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건지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살짝 들어 몸을 살피자, 내 몸 전체가 속박되어있었다.

안는 배게 마냥 내 몸을 차지한 소녀들과 리리에 때문에 말이다.

내 왼팔과 왼 다리는 라네즈와 라헨느 자매가.

내 오른팔은 아까 느꼈듯 레이가.

그리고 내 가슴에서 배로 이어지는 부분에는 내 몸을 침대로 삼아 새근거리며 자고 있는, 당장이라도 껴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리리에가.

그나저나 레이나 리리에는 내 옆에서 잤으니까 그렇다고 쳐도, 라네즈나 라헨느가 이러는 건 오랜만인데.

아카데미에 있을 때 허구한 날 내 방에 침입해 내 몸을 안는 베개로 쓰던 녀석들.

성국에 온 이틀 동안은 잠잠하나 싶었는데 역시는 역시였다.

아니, 오히려 성국이라는 낯선 장소에 와서 이틀 동안 자매끼리 잔 게 대견한 건가?

그녀들이 내 곁에 와서 잠을 청하는 게 보호받고 싶어하는 소녀로서의 본능? 그런 거라고 메이드장인 리엘 씨가 말했었다.

안전하기만 한 성국에서 뭐가 불안해서 보호를 받고자 내게 온 건진 몰랐지만, 천사같은 얼굴로 자고 있는 라네즈와 라헨느를 보자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졌다.

가위에 눌린 게 아닌 것임을 알게 된 것도 한몫했다.

그나저나 이제 어쩐다?

내 몸이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도 확인했고, 내 몸을 속박하던 존재들이 내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했으니 이제 다음으로 무엇을 할지가 문제였다.

이대로 다시 잠에 들어도 좋고, 아니면 강림제가 시작하기 전에 산책을 다녀오는 것도 괜찮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산책을 다녀오기 위해 몸을 움직이면 분명 리리에가 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녀의 잠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저렇게 행복한 얼굴로 침까지 흘리면서 자고 있는데, 저걸 어떻게 깨우겠어.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다시 생각해보니 잠들기에도 애매한 시간인 것 같은데.

이대로 다시 잠든다면 분명 강림제가 한창일 시간에 일어날 것 같았다. 레이가 잘 자고 있는 나를 깨울 리가 없었고, 그건 다른 소녀들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생각해둔 2개가 전부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상황.

나는 한숨을 쉬며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3번째 생각인, 레이나 다른 누군가가 깨어날 때까지 말없이 천장만 바라보고 있기.를 실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자니, 갖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배고프다. 이따가 1층에서 밥을 먹어야겠어.

­강림제가 끝나고 하루 더 있다 가야 하는구나.

­리리에 귀엽다. 껴안아주고 싶어.

­가슴의 감촉이 부드러워.

­나중에 저 애들이 왜 저러는 지에 대해 아카데미에 있을 루이네한테 물어봐야지.

등,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헤엄쳤고, 생각들의 도착 지점은 전날 밤 꾼 꿈의 장면이었다.

“...”

­가는 거니?

­잘 가렴.

분명 꿈속이었을 텐데, 과거의 그 장소, 그 시간에 있을 리 없는 ‘지금의 나’를 향해 스승이 말했다.

그것에 관해서는 어제 아침에 리리에의 존재를 확인하기 전에 생각을 해봤지만 ‘누군가 내 꿈을 통해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닌가.’ 라는 가설밖에 내지 못 했다.

모처럼 오랜 시간을 들여 생각함에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선생님~ 들어가도 되나요?”

라며 세레나의 목소리와 함께 노크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발랄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연보라색 머리의 포니테일 소녀, 세레나가 방으로 들어왔다.

“안녕히 주무셨... 아.”

활발하게 인사를 건네던 세레나. 내가 소녀들에게 속박당해 있는 침대 위의 상황을 보더니 인사를 건네던 자세 그대로 굳었다.

하지만 이내 익숙하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고생하시네요.”

아카데미에서 몇 번 봐온 덕분인 것 같았다.

“...너라도 알아주니 고맙다. 루아는?”

“씻고 있어요. 엿볼 거면 지금이 기회인데, 어떠신가요?”

“아침에 훔쳐보는 건 별로야. 부스스하기만 하고 매력이랄게 없거든, 활동을 하고 난 뒤의 저녁 즈음에 훔쳐보는 게 최고지.”

“역시, 처음 뵀을 때부터 느꼈지만 뭘 좀 아시는 분이네요.”

이상한데서 잘 통하는 공감대 형성에, 우리는 작게 웃었다.

“그런데 네가 웬일이냐? 이렇게 일찍 일어나고.”

레이조차 일어나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기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그녀에게 물었다.

세레나가 입을 삐죽 내밀며 불평하듯 말했다.

“전 원래도 일찍 일어나거든요?뭐... 지금은 확실히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긴 했지만요. 하지만 지금 나가야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는걸요!”

“자리라니?”

“강림제의 하이라이트, 성녀님께서 재현하시는 천신의 강림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요!”

어떻게 강림제를 보러와서 강림제에 대해 잘 모르냐며, 세레나가 핀잔을 주었다.

난 반지만 만들고 갈 생각이었지 강림제를 구경하러 온 게 아닌데 말이다.

강림제인 걸 알았다면 4일 정도 아카데미 밖이나 내 집에서 보내다가 반지만 받고 바로 돌아왔을 테니까.

...생각해보니 그렇게 했어도 성녀가 안 놔줬을 것 같긴 한데. 뭐, 그건 그때의 내가 어떻게든 했겠지.

그 이후로도 성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신성하다는 둥, 행사 중 하나인, 퍼레이드 형식처럼 성국을 한 바퀴 도는, 일명 ‘빛의 길’을 걷는 그녀를 뒤따라 걷고 싶다는 둥 반짝이는 눈으로 강림제에 대해서 쏟아내기 시작하는 세레나.

그러더니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뭐, 좋은 자리를 선점해도 방금 말한 것들을 제대로 볼 수는 없지만요.”

“왜?”

“맨 앞자리를 차지해도 전 키가 별로 크지 않아서 성기사들의 틈으로 보는 게 전부거든요.”

아이돌을 제대로 보지 못 하는 소녀팬마냥 침울한 얼굴을 하는 세레나. 꽤나 많이 아쉬운 것 같았다.

“그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

“네?”

무슨 소리냐는 듯 세레나가 되물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머릿속으로 성녀가 남기고 간, 성녀의 친필 사인이 들어있는 편지 봉투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좋은 자리를 선점해뒀거든.”

* * *

­철커덩.

“후우...”

한 눈에 봐도 무거워 보이는 쇳덩어리를, 현성은 바벨이라고 부르는 것을 내려놓은 근육질의 남성, 알렉세이가 숨을 골랐다.

그러더니 전신거울 앞에 서서 흡! 하! 합! 거리는 기합소리를 내며 이런 저런 근육을 과시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기 시작하는 알렉세이.

“음! 오늘도 잘 먹었군!”

울끈불끈. 그의 거대한 근육이 꿈틀대는 것을 보면서 알렉세이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무게를 더 늘려도 되겠어.”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들었던 바벨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바벨에는 100KG이라고 써진 종이가 붙여져 있는 검은색의 플레이트가 양 옆으로 다섯 개씩, 도합 10개가 꽂혀있었다.

하얀 치아가 반짝일 정도의 미소를 지은 그가 땀으로 젖은 몸을 씻어내기 위해 근처의 샤워실로 향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알렉세이. 자신의 물건을 가지고 강림제 준비를 위해 돌아가려던 찰나.

“음?”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인지 주변이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가 운동을 하는 곳이 신전의 중앙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는 하나,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진 않았다. 왜냐하면 이 근처를 지나가야 기도실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강림제 당일. 그가 운동을 하는 아침시간대에 기도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몰려 발소리가 더욱 많이 들렸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귀에 감각을 집중시켜 봐도 주변은 고요하기만 했다.

그래, 마치...

“결계 안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그의 뒤에서 들려오는 중후한 목소리가 알렉세이의 생각을 대신 말해 주었다.

­꿈틀꿈틀.

그의 근육이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뒤에 서 있는 의문의 남성은 적이라고. 그것도 지금 막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적.

그렇게 판단한 이상 알렉세이가 취해야 할 행동은 하나 뿐이었다.

­후우웅!

외적으로 보이는 거구라고는 믿지 못 할 속도로 몸을 튼 알렉세이가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쾅!!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운동실을 휩쓸었다. 여기저기 쇳덩이들이 날아가며 쩔그렁! 소리를 낸다.

직격했다면 제아무리 같은 팔라딘이라도 큰 피해를 입을 정도로 힘을 실은 공격.

하지만 그의 주먹은 상대의 한 손에 막혀있었다. 그리고 알렉세이의 눈에 들어오는 상대의 얼굴,

“당신은..!”

여유롭게 미소를 짓고 있는 상대방과는 달리, 알렉세이의 얼굴에는 경악만이 가득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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