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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36화 (136/146)

〈 136화 〉 강림제.(3)

* * *

저벅저벅. 자박자박.

누군가가 보낸 마력의 초대장을 따라 기운이 향하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나를, 우리를 부른 자가 누구일까. 생각했다.

처음으로 생각이 든 것은 교황, 그 영감이었다.

보통 종교에서 이런 커 보이는 사건이 있을 때는 대체로 교황이 범인이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이런 흉흉한 마력을 내뿜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건 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성국을, 천신을 생각하는 마음만은 진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다음으로는 3명의 팔라딘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 신전에 남아있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알렉세이는 아닌 것 같았다. 그의 머릿속엔 근육 밖에 들어있지 않으니까.

페레우스 무러스. 그 아저씨도 아닌 것 같았다. 얼핏 기억하기로, 그 아저씨는 열 몇 살 때부터 성국의 성기사로 있으면서 팔라딘의 위치까지 올라갔다고 알고 있다.

만약 그 아저씨가 범인이라면 그 나이까지 이 정도의 기운을 숨기면서 존버를 탔다는 건데, 그 정도면 고대룡인 스카지나도 박수를 치면서 인정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플뢰르도 아니다. 다른 2명은 내 기억, 경험에 따라 생각한 것에 불과했지만, 플뢰르에 대한 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 그녀는 절대로, 이런 일을 벌일 수가 없다.

배신했다면 가장 빨리 티가 날 것이고, 그 티는 세계 급 사건으로 번질 테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굴까.

저 기운의 너머에 있는 사람이 누가 됐든 나한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 같았다.

“누가 우리를 부르는 지 궁금하다는 얼굴이네?”

갑자기 얼굴을 불쑥. 내 눈앞에 들이민 루아가, 아니, 루나가 말했다. 나를 올려다보며 말하느라 그녀의 긴 분홍머리가 사르르. 고개를 따라 흘러내린다.

“궁금할 수밖에 없잖아.”

다른 곳도 아니고 천신교의 성지인 성국에서 빛과 전혀 반대되는 흉흉하고도 어두운 기운을 풍겨대고 있으니까.

“오빠랑 같은 기운이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나를 부르고 있는 미지의 마력은 내 마력과 너무나도 비슷하다고, 나는 느끼고 있었다.

마치 저 기운의 끝에 있는 사람이 스승인 것 같이 말이다.

스승이 이런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지만, 0.01퍼센트의 확률이라도 있다면 나는 향할 것이다.

만약 스승이 아니더라도, 그 마력을 어디서 얻었는지를 물어보면 조금의 단서라도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오빠, 얼굴이 무서워.”

스승의 단서를 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진지해진 걸까. 루나가 귀신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 미안.”

요즘들어 진지해지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아서 문제다. 자꾸 옛날 성격이 나오려 하니 원.

“그나저나, 괜찮을까?”

“신전의 꼭대기에 있는 애들?”

“응.”

루나가 뒤를, 방금 내려와 밖으로 나온 신전의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레이가 있으니 괜찮겠지.”

의문의 기운을 따라 출발하기 전에, 레이한테는 꼭대기 방에 남아있어 달라고 말했다.

방의 밖에서 흉흉한 기운을 보내온 것을 보면 필시 앉아서 대화나 하자고 부른 것은 아닐 테니까.

그리고 우리 일행 중에 가장 강한 셋이 한 번에 움직이면 혹시나 있을 남아있는 얘들을 지키는데 하자가 생기잖아.

이것이 나나 다른 강자들을 꾀어내기 위한 미끼일 수도 있으니까.

앞마당 멀티 먹어서 천천히 진격하고 있는데 본진에 셔틀 리버라도 맞으면 안 되잖아.

스포어 콜로니라도 하나 세워놔야 안심이 되지.

나야 내 몸 간수는 항상 잘 하고, 루나 또한 루나인 상태에서는 걱정할 게 없어 보였기에, 데려올 사람을 루나로 정한 것이었다.

첫 만남의 대련에서 나도 모르게 본래의 힘을 사용하게 했으니 말이다.

물론 아주 조금, 새끼손톱의 일부분 정도의 힘이었지만, 고작해야 16살의 소녀에게 사용한 것은 맞으니...

레인 아르테미아, 그 남자가 힘을 쓴 걸 모른 체 해줬기에 망정이지, 내가 그녀들을 상대로 스승에게 받은 마력까지 사용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분명 체통도 지키지 않고 배를 움켜잡은 채 바닥을 굴렀을 거다.

그리고, 만약 신전의 고위층이 범인일 경우엔, 성녀에게 마력 억제제를 받아가는 레이에 대해 알고 있고 정보를 캐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여기서는 우리 둘만 가는 게 맞았다.

뭐,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나나 루나나 쾅쾅 터트리며 싸우는 타입이다보니 지켜야 할 대상인 그녀들까지 휘말릴 걸 걱정해서였지만.

그러니 여기서 기다려달라고 말을 했을 때 레이는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동생들을 부탁한다는 내 말에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리리에의 뿔에 마력을 흘려넣으면 내게 신호가 올 거니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나와 루나는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한 것이었다.

신전의 꼭대기에서 내려와 지금가지 걸어오면서, 보인 것은 신전의 고요한 풍경뿐이었다.

강림제의 하이라이트를 위해 전부 다 준비하러 나간 건지, 그 누구하나 지나가지 않았다.

그러니 이렇게 대놓고 기운을 풍기고 있을 수 있는 거겠지.

그렇게 걸음을 옮긴 지 얼마나 지났을까.

계속 기운을 따라 걷던 우리가 도착한 곳은 어느새 보수 공사가 마쳐져 있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예배당이었다.

성녀 납치 사건을 꾸미느라 최대한 성대하게 부수긴 했는데 벌써 고치다니. 역시 마법은 대단한 것 같다.

아마 팔라딘들이 희생을 치르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괜스레 미안해진다.

예배당의 굳게 닫혀 있는 문 사이로는 흉흉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를 부른 내가 여기 안에 있으니 들어올 거면 들어와라. 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

“오빠.”

루나 또한 예배당의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흉흉한 기운을 느꼈는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녀를 거의 매달다시피 한 채로 예배당에 가까이가자, 찌릿. 하고 등을 타고 흐르는 느낌에 나는 예배당의 전역에 결계가 쳐져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예배당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겠지. 아니면...

안에 들어온 나를 다시 못 나가게 하려는 용도이거나.

어느 쪽이든 결계까지 친 걸 보니 평범한 대화는 하지 않을 것 같다.

“들어가자마자 시작될 수도 있으니까 준비하고 있어.”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예배당의 문에 손을 대자 치직. 하고 손에 스파크가 튀었다.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천천히 마력을 흘려보내자.

­끼이익.

무거운 문이 끌리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마력 감지 자동문이라니. 꽤나 편리해보였다.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온 것으로 보아 루나가 꽤나 긴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내 예배당의 문이 완전히 열렸고, 우리들은 예배당의 안으로 발을 들였다.

­쿵!

우리가 예배당의 안에 완전히 들어오자마자 문이 열릴 때와는 다르게 빠르게 닫혔다.

“히익!”

갑작스런 굉음에 루나의 몸이 펄쩍 뛰어올랐다. 루아가 아닌 루나인 상태에서도 놀라긴 하나보다.

“가, 갑자기 소리 지르지 말라고..! 놀랐잖아..!”

소리를 지른 사람은 그녀 밖에 없을 텐데 소리를 지른 것에 대한 화를 내는 루나.

아무래도 놀란 건 루나가 아니라 루아인 것 같았다.

모든 것을 공유하다보니 마음이 여린 루아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소리일 수밖에 없었기에, 화들짝 놀랐고, 그것이 루나에게도 전해졌던 거겠지.

그럼 그렇지.

뻔하다면 뻔한 상황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잠시의 해프닝이 지나간 뒤, 나는 예배당의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분명 밖에는 해가 중천인데 마치 결계로 빛을 막기라도 한 듯 창문을 통해 햇빛이 들어오지 않고 있어 내부는 꽤나 어두웠다.

아예 안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라이트’를 켰겠지.

그리고...

내 시선은 어느새 한 곳에 도달해있었다.

예배당의 정 중앙, 성가대가 성악을 부르는 단상에.

“오빠...”

루나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를 힐끗 바라보자, 그녀 또한 단상의 위에서 눈을 떼지 못 하고 있었다.

그녀와 내 시선이 위치하는 단상의 위에는 손을 모으며 기도하는 모양의 천신의 동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동상은 거꾸로 뒤집어진 상태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동상의 모은 손의 안에서 자색의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나오고 있는 보랏빛이 라이트 마법을 필요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천신교의 중심인 성국에서, 그것도 빛의 신전의 안에서 뒤집어진 천신의 동상.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빛나는 건 마신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자색 빛깔.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한 가지였다.

천신교의 신자는 아니었지만 왜인지 불쾌한 기분이었다.

저 자색의 빛에서 느껴지는 게 스승의 마력이었던 탓일까?

눈에 들어온 건 동상뿐만이 아니었다.

단상의 위에는 여성으로 추측되는 사람이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왜 추측이냐면, 우리에게 등을 돌린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팔이 들려있는 각도와 숙이고 있는 고개로 보아 저 동상에 기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셨다는 티를 너무 크게 내시는 거 아닌가요.”

기도가 방해되서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 여인의 목소리를 낸 여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뭐, 초대한 건 저니까 불평을 할 순 없겠죠. 그래도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는데.”

여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긴 생머리가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사르르. 흘러내렸다.

“그저께에 뵀지만 이 상태의 저는 처음 보실 테니 재차 인사를 올려야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우리를 향해 빙글. 도는 그녀.

이어 입고 있는 자색의 드레스의 양 끝을 살짝 들어올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붉은 달 12간부 중 서열 7위. 리사라고 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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