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강림제.(6)
* * *
“저 동상에서 느껴지는 마력, 어디서 얻었지?”
다리가 풀린 듯 주저앉아 있는 리사의 앞에 쭈그려 앉은 나는 천신의 동상을 가리켰다.\ 리사는 예상하고 있던 질문이 아니라는 듯 벙찐 표정을 지었다.
“어, 어... 그걸 먼저 물어보시는 건가요?”
“왜, 무슨 문제 있어?”
“아, 아뇨... 그건 아닌데... 전 처음에 얘기했던 계획에 대해 먼저 물어보실 줄 알았거든요.”
“그건 이번 질문 다음.”
지금 내겐 붉은 달인지 뭔지가 성국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가보다 천신의 동상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마력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게 먼저였으니까.
“그래서, 대답은?”
잠시 생각하는 듯 흐음... 거리며 고개를 기울이는 리사.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젓는다.
“...죄송해요. 저것에 대해선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마력의 파편을 받아 천신의 동상을 거꾸로 한 뒤에 동상의 손에 넣으라는 지시를 이행했을 뿐이니까요. 그러면 현성님이 마력을 느끼고 올 거라고...”
“누가?”
“저보다 서열이 높으신 분이요.”
그렇게 말하며 리사가 천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시늉을 했다.
“그 서열이 높은 분은 누군데?”
“죄, 죄송해요... 사실 그분에 대해서도 잘 몰라요... 그분이 간부 서열 2위라는 것 밖에는요. 저. 저희 간부들은 간부 회의 때가 아니면 서로 교류가 거의 없는데, 그분은 간부 회의에도 얼굴을 잘 비치시지 않으셨거든요...”
“회의에 얼굴을 비치지 않는데 간부 취급을 해준다고? 너희들 조직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반발 같은 건 안 일어나?”
제대로 된 실력이 있는지도 모르는 자가 자신보다 위에 있으면 반발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붉은 달의 대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게 마족이니, 약육강식을 주된 모토로 삼고 있는 그들로서는 그것에 관해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바, 반발이 일어날 수 있을 리가요... 부, 붉은 달에 있는 모든 인원이 그분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리사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떠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꽤나 거물인 것 같았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스승에 대한 실마리를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상대는 전 세계가 찾고 있는데도 박멸되지 않는 조직의 서열 2위.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난 지금 계약 상 아카데미에 소속되어 있는 존재. 움직임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처럼 아카데미를 소환수들에게 맡기고 돌아다니면 되긴 했다.
하지만 소환수들에게만 맡기기에는 다크 나이트 때처럼 그들도 저지하지 못 하는 강력한 상대가 아카데미를 노릴 수도 있었기에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고대룡에게 맡기면 되는 게 아닌가 할 텐데, 실레스틴은 제대로 싸울 수가 없는 몸이고 스카지나는 홀몸이 아니기에 그렇게 막 부려먹을 수가 없었다.
발키리 자매처럼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아도 되는 녀석들이면 몰라도, 소환수들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소환사가 된 것도 수적 이점을 챙기려는 의도가 다분했으니까.
그리고...
내 소환수 중에 서류 작업을 잘 하는 녀석은 없거든.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거짓말은 아니지?”
만에 하나이지만 그녀가 지금까지 했던 말들이 시간을 끌기 위한 의도일 수도 있었기에, 마력을 조금 내뿜으며 위협을 해봤다.
“저, 정말이에요..! 제,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억울한 듯 손을 휘젓는 그녀. 그녀의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진짜 모르는 것 같았다.
...결국 허탕인가. 실마리 좀 얻어 보나 했더니만.
“하아...”
가까워지는 것 같으면서도 멀어지는 느낌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죄, 죄송해요..! 죽이지만 말아주세요..!”
“응?”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그녀를 보니, 아까까지 여유가 넘쳐흐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겁에 질린 강아지마냥 덜덜 떨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 비통함의 한숨이 그녀에겐 도움이 되지 못 하는 쓸모없는 것에 대한 실망의 한숨으로 들렸던 것 같다.
“안 죽여. 아직 2번째 질문에 대한 답도 못 들었잖아.”
“그, 그럼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전부 들으시면 죽이실 건가요..?”
“안 죽인다니까. 그보다, 아까부터 왜 그렇게 벌벌 떨어?”
진동모드도 아니고.
“그, 그게... 지금 제가 느끼는 현성님의 마력은 마치 시조께서 눈앞에 강림하셨을 때 같은 느낌이라...”
리사가 내 눈을 피해 고개를 돌리며 떨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흡혈귀인 그녀가 시조의 흡혈귀를 눈앞에 뒀을 때의 공포나 경외심 같은 그런 감정들을 지금의 내게서 느끼고 있고, 그로 인해 본능적으로 몸이 떨린다, 이거지?
아무래도 마력을 개방한 게 원인인 것 같았다.
금지 마법을 썼으면 아주 기절을 했겠네.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대화가 성립되지 않거나 성립이 되도 덜덜 떨리는 그녀의 이에 뭐라고 말하는지 못 알아들을 것 같았기에,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마력을 집어넣었다.
파캉! 하고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입고 있던 제복이 검은빛의 입자로 공중으로 흩어지며 검은색 옷과 갈색 바지의 평상복 차림으로 돌아왔다.
“이 정도면 됐냐?”
“휴... 감사합니다... 너무 공기가 무거워서 숨도 못 쉴 뻔했거든요.”
가슴을 쓸어내리며, 리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방금 얘기했던 성국에서의 계획에 대해 말해봐.”
“그건...”
리사가 입을 열려던 찰나.
“그건 제가 말씀드리죠.”
단상의 위에서 들려온 여인의 목소리가 리사의 목소리를 가로막았다.
...내가 기척을 눈치 채지 못 했다고?
마력을 다시 억눌러 감각을 느끼는 게 마력을 개방했을 때보다 약해졌긴 해도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 단상 위의 새로이 추가되는 기척을 느끼지 못 할 리가 없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2가지였다.
내가 스승의 생각에 너무 집중하고 있어 미처 신경을 쓰지 못 했던가. 아니면...
마력을 억누르고 있는 상태의 나보다 강하던가.
스승에게 훈련을 받고 난 뒤로는 마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A랭크 상위 모험가 정도는 가볍게 이길 정도의 경지에 이른 나다.
그런 평소의 나보다 강하다는 건, 최소 S랭크 급이라는 소리였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단상으로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는 적발의 여인이 뒤집혀져있는 천신의 동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고 있는 것은 옆가슴이 드러나고 있는 매혹적인 붉은 드레스였다.
마치 사교회라도 온 것 같은 복장.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단상 위의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내 목소리가 들린 듯, 뒤돌아있던 그녀가 천천히 우리를 향해 돌아섰다.
이내 그녀의 얼굴이 완전히 내 눈에 들어왔고,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내 눈이 나도 모르게 가늘어지며 그녀를 노려보게 되었다.
“...당신이 아니라 너라고 불렀어야 했나.”
내가 적의를 담아 그녀를 노려보자, 입을 삐죽 내밀며 너무하다는 듯 말했다.
“너무하시네요. 그래도 한때 주먹을 맞부딪혔던 상대인데.”
“실레스틴을 그렇게 만들어놓고 너무하다는 소리가 나와?”
“그건 정당한 결투에 의한 결과였잖아요~”
“정당한 결투는 개뿔.”
눈앞의 그녀를 보며, 아까 전에 리사가 했던 반발이 있을 리가 없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마음 속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스카지나나 실레스틴과 같은 고대룡 중 하나, 불을 맡고 있는 고대염룡 이그니타.
그것이 눈앞의 그녀의 정체였다.
“이, 이그니타 님...”
그녀의 정체를 확인한 리사가 방금 전처럼 덜덜 떨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녀가 시조에게 피를 받은 적월의 흡혈귀라고 하지만 고대룡과는 근본부터 달랐다.
고작해야 몇 백 년 살아온 그녀와 달리 고대룡은 기본이 몇 천이니까.
“리사. 이리 와.”
떨고 있는 리사에게 이그니타가 애완동물을 부르듯 손을 까딱였다.
방금까지 덜덜 떨고 있던 리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빛의 속도로 몸을 일으켜 단상 위로 날아올랐다.
“고생했어. 이만 들어가 쉬어.”
그렇게 말하며 이그니타가 손가락을 튕기자 붉은 색의 포탈이 생성되었다.
“저... 아무 말씀 안 하시는 건가요..?”
“응?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니?”
“아, 아니에요! 바, 바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리사가 다시 한 번 빛의 속도로 포탈을 넘어 사라졌다.
지금 리사를 따라 저 안으로 들어가면 필시 붉은 달의 본거지로 갈 수 있을 터.
하지만 내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 그녀에게 들을 말이 있었으니까.
“오빠. 쫓을까?”
어느새 내 뒤에 온 루나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 또한 저 포탈의 너머가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찾는 붉은 달의 본거지임을 눈치 챈 것 같았다.
“아니. 아직 저기에 발을 들이기엔 너무 일러.”
그리고 본거지로 들어가려는 것을 이그니타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도 없고.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루나가 내 뒤에 몸을 숨겼다. 꽤나 모양이 빠지는 모양새였지만, 눈앞에 있는 게 고대룡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기절을 안 한 것만으로도 용한 거지.
“그래서, 넌 무슨 일로 내 눈앞에 나타난 건데?”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그녀 대신 말씀드리겠다고요. 붉은 달이 성국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를요.”
“그럼 냉큼 얘기하고 꺼져. 네 얼굴을 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두들겨 패고 싶은 심정이니까.”
말에 분노를 가득 담아 그녀에게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후훗, 하고 작게 웃을 뿐이었다.
“그럴게요. 저도 당신이 성국에 와 있다는 말을 듣고 잠시 얼굴만 보러 온 것뿐이니까. 아직 당신을 제대로 만나기에는 제가 당신과 어울리지 않거든요.”
흠흠. 작게 목을 고른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저희의 계획은 말이죠, 강림제를 틈타 마신의 심장에 담긴 마신의 힘을 흡수, 그런 다음 고대 리치의 불사의 군대와 협업해 성국에 혼란을 일으켜 신성력을 봉인당해 아무것도 하지 못 하는 성녀를 납치하는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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