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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40화 (140/146)

〈 140화 〉 강림제.(7)

* * *

­뚜벅. 뚜벅.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만이 존재하는 신전의 지하 깊은 곳으로 가는 계단.

그 계단을, 한 명의 남성이 내려가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지내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여기저기 주름이 생겨 있는 나이 지긋한 중년의 얼굴.

그 얼굴에는 여기저기 검흔상이 남아있었으며 게 중에는 아직 피가 흘러내리고 있는 상처도 있었다.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방금 있던 두 번의 싸움으로 헝클어진 백발과 나이에 맞는 하얀 수염.

흰 머리는 마치 브릿지를 넣은 듯 여기저기 붉게 물들어 있었으며 그것은 수염의 반쪽 또한 마찬가지였다.

입고 있는 것은 순청색의 평상복으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었다.

지금의 옷은 여기저기 핏자국들이 스며들어 순청색의 사이사이 보라색이 섞여있었지만.

성국을 지탱하는 기둥이라고 불리는 3명의 팔라딘 중 한 명인 페레우스 무러스. 그것이 그의 정체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성국의 팔라딘’인 페레우스 무러스가 아니었다.

그의 진짜 정체는 마신의 심장에 담겨 있는 마신의 마력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성국에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수십 년을 버텨온, 붉은 달의 일원이었으니까.

도착지점까지 어느 정도 남았는지도 모를,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계속해서 내려가며, 페레우스는 품속에서 은은하게 보랏빛을 내뿜고 있는 작고 둥근 돌로 보이는 물건을 꺼냈다.

‘마신의 심장을 흡수하기 전에 이걸 깨뜨리라고 했었지. 갑작스럽게 큰 힘이 필요할 때도 용이하게 쓰일 거라고 했고.’

그는 전 마왕군 간부이자 붉은 달 서열 5위인 리리스가 그에게 도움이 될 거라며 이 돌을 건네며 말했던 게 생각났다.

지금도 이렇게 강력한 힘을 지녔는데 이 이상 갑작스럽게 큰 힘이 필요할 일이 왜 생기겠냐고 생각했지만, 만에 하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혹시나 떨어뜨릴라 소중하게 손에 감싸쥐는 페레우스.

단 한 번의 마력 주입으로 깨뜨릴 수 있게 극한까지 마력을 주입해놓은 뒤, 옷의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다.

그렇게 얼마나 내려왔을까.

지루함에 계단을 하나하나 세는 것도 잊어버렸을 정도에 이르렀을 때, 계단이 끊겼다.

‘이제야 다 온 건가. 뭐 이리 깊이도 숨겨놓은 건지. 나이도 지긋한 노인네가.’

한숨을 내쉬며, 지금 이곳에는 없는 교황에게 원망의 말을 보냈다.

그렇게 마지막 계단을 밟고 내려온 페레우스의 눈앞에는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을 법한 작은 나무문이 있었다.

그 문을 열자, 눈부신 하얀 빛이 그의 눈에 내리꽂혔다.

“큭..!?”

갑작스런 빛에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가리는 페레우스.

잠시 후, 빛이 사라지고 시각이 돌아온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마치 성국을 지탱하고 있는 듯 보이는 무수히 많은 거대한 하얀 석재 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넓은 공간이었다.

‘신전의 지하에 마신의 심장을 봉인하는 공간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넓을 줄이야...’

마치 오르간이 연주하는 웅장한 성가가 들려올 법한 신성한 분위기를 풍기는 하얀 공간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가며 성국에 입성한 뒤 처음 오는 장소를 탐색했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수십 미터에 달하는 하얀 석재 기둥들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것들과 ‘있어야 할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어느새 그의 시선은 그 ‘있어야 할 것’을 향해있었다.

‘저게... 마신의 심장?’

기둥들의 끝, 하얀 석재 제단의 위에는 보랏빛을 내뿜는 심장 형태의 무언가가 빛의 사슬에 묶인 채로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있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이따금씩 두근거리며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었다.

“...”

꿀꺽. 페레우스 자신도 모르게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가 서 있는 곳과는 꽤 멀리 있는데다가 성녀의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사슬로 봉인되어있기까지 했지만 확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저 안에 들어있는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세상의 그 누구도 자신을 막지 못 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들었다.

‘저 힘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아무리 보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저 안에 담긴 건 마신의 힘이다.

강력한 힘을 담으려면 그 힘을 담는 그릇 또한 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도 강대한 힘으로 인해 오히려 힘에 먹혀버려 폭주하거나 몸이 적응을 하지 못 해 터져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리 자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오늘 이 순간을 위해 몇 십년을 성국에서 보냈으니까.

게다가 자신이 마신의 힘을 얻지 못 한다면 성국의 결계도 부수지 못 해 불사의 군대가 성국을 습격한다는 원초의 계획도 실행하지 못하게 된다.

가장 큰 변수인 진현성을 막는 리사가 얼마나 버틸 지도 모르기에, 실패하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페레우스가 천천히 마신의 심장을 향해 걸어갔다.

“역시 자네였던 겐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알게 되니 충격이 더 크구먼.”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나이 지긋한 노인의 목소리. 페레우스의 고개가 팟. 하고 돌아간다.

“당신들은..!”

상대를, 아니. 상대들을 확인한 페레우스가 얼굴을 찌푸렸다.

‘강림제 당일인데도 안 보인다 했더니...’

강한 힘을 가지려는 자는 그에 따른 시련을 넘어야 한다고 했던가.

왜인지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그 생각에, 페레우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 * *

“허억..! 허억..!”

마력으로 만든 보랏빛 검을 손에 쥔 채로, 페레우스가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알렉세이와 플뢰르를 상대하면서 꽤나 체력을 소비한데다가 눈앞의 적들은 그들에 전혀 뒤지지 않는, 오히려 그들을 능가하는 강함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쐐애액!!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빛의 화살이 페레우스를 향해 쇄도했다.

“큭..!”

가까스로 몸을 틀어 피하는데 성공하는 페레우스.

하지만 이어 두 번째 빛의 화살이 그를 향해 쇄도했고, 첫 번째의 화살도 간신히 피했던 그가 두 번째의 화살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커헉..!!”

몸에 느껴지는 둔탁한 충격과 함께 그의 몸이 날아가 근처의 기둥에 박혔다.

“하아... 하아...”

“이만 포기하시죠.”

기둥에 등을 기댄 자세로 주저앉아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그에게 하늘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공중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6명의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입고 있는 것은 순백색의 경갑옷이지만 신성력이 담겨 있어 판금 갑옷 이상의 방어력을 자랑했다.

실제로 페레우스의 공격이 거의 통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녀들의 등에는 한 쌍의 하얗게 빛나는 날개가 펼쳐져 있었으며, 날갯짓을 할 때마다 황금색의 머리칼이 찰랑였다.

천신의 권속이라고 불리는 13명의 발키리 자매. 그들 중 6명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들은 이내 날개를 펄럭이며 바닥으로 내려앉았고, 그녀들 중 맏언니인 브륀힐데가 앞으로 걸어 나와 페레우스에게 말했다.

“저희도 못 이기는 지금의 당신이, 성하께 닿을 수나 있겠습니까?”

그녀의 말대로 지금 페레우스의 상태로 발키리 자매를 동시에 상대해서 이기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어찌저찌 운이 좋아서, 최선을 다해서, 그녀들을 이겼다고 쳐도, 아직 최후의 관문이 남아있었다.

대륙에서 손꼽히는 강자 중 한 명이자 성국의 1인자인, 교황이 말이다.

“이대로 포기하신다면, 지금까지의 정을 봐서 사형은 면하게 해달라고 성하께 말씀드려보겠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하시겠다면...”

그녀의 말과 함께 하얀 빛이 번쩍이며 기다란 빛의 창이 생성되었다. 이 이상 반항하면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눈앞의 시련을 타개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 그의 상태는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었고, 발키리 자매나 교황은 최고조인 상태였으니까.

물론 교황은 이전 현성과의 싸움으로 많이 쇠약해진 상태였지만, 어차피 발키리들조차 넘을 수 없었기에 페레우스에게 있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여기까지인가...’

한숨을 내쉰 페레우스가 항복 선언을 하려던 찰나.

­툭..

방금 받은 충격으로 인해 살짝 찢어진 옷에서 작은 회색의 돌이 정확히 그의 손으로 굴러 떨어졌다.

­마신의 심장을 흡수하기 전에 이 마석을 깨. 그래야 흡수가 용이할 테니까. 아, 그리고 혹시나 위급한 상황이 왔을 때에도 써도 돼. 어느 쪽이든 이 마석은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낼 테니까.

이어 기억 깊은 곳에서 재생되는 리리스의 말.

발키리들과의 빠른 템포의 싸움 때문에 잊고 있었던, 최후의 수단이었다.

‘아직 우리의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군..!’

차오르는 희열에 페레우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 모습을 본 브륀힐데는 갑자기 180도 바뀐 그의 분위기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그 불안감은 그의 오른손에서 작은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보랏빛의 돌에서 나오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의 페레우스가 저 돌을 손에 쥐게 해서는 안 된다는 느낌에, 브륀힐데는 재빨리 빛의 창을 내질렀다.

하지만...

­콰직!!

페레우스가 마석을 깨뜨리는 게 먼저였다.

마석이 깨지면서 페레우스의 앞에 보랏빛 포탈이 생성되었고 포탈에서 튀어나온 뼈만 있는 사람의 손에 브륀힐데가 내지른 빛의 창이 잡혔다.

“큭..!”

뼈의 손에게서 창을 빼앗으려 힘을 주는 브륀힐데. 하지만 창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창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빛의 창인가. 오랜만이군. 몇 백년 전에는 이것에 꽤나 고생했었지.”

포탈의 안에서,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모두 물러나!!”

브륀힐데의 신호에 모든 발키리들이 날개를 펼치며 뒤로 크게 물러났다.

그녀들 모두 포탈의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직! 파지직!

팔 하나 정도 통과할 수 있던 포탈의 크기는 어느새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커졌고, 그 정도면 된다는 듯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이어, 포탈의 밖으로, 로브를 입고 있는 해골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수고했다, 페레우스. 나머지는 내게 맡기도록.”

그렇게 말하는 고대 리치 칼바리아의 두 눈에서는 자색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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