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 강림제.(9)
* * *
현성과 이그니타의 애증의 대화가 마무리되고, 알렉세이가 예배당의 문을 부수고 들어오고 있을 때.
신전 지하 깊은 곳에서는 마신의 심장을 차지하기 위한 고대 리치 칼바리아와 마신의 심장을 지키기 위한 교황과 발키리 자매가 맞붙고 있었다.
칼바리아가 주문을 외자 그의 손 위에서 생겨난 무수히 많은 검은 구체들이 공중을 날며 간을 보고 있는 발키리 자매들을 향해 마치 포탄이 쏘아지듯 날아갔다.
펑! 퍼벙! 퍼버벙! 펑!! 퍼버버벙!
닿지 않았음에도 발키리들의 근처에 가면 터지는 구체들에, 발키리들이 신성 보호막을 몸에 둘러 자신들의 몸을 보호했다.
보호막으로 칼바리아의 암흑 마법을 막으면서, 신성력으로 빛의 창을 만들어 그를 향해 쏘는 그녀들.
칼바리아 또한 지지 않고 계속해서 구체를 쏘아보내 빛의 창을 격추시켰다.
칼바리아의 눈에서 나오는 자색의 불꽃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발키리 자매들만을 좇고 있을 때,
“너무 공중에만 신경쓰는 건 아닌가?”
자신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듯 교황이 위에서 아래로 박수를 치듯 손뼉을 치자,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백금빛을 내뿜는 망치가 공중에 생성되더니 그대로 칼바리아를 짓누를 듯 내리 꽂혔다.
가소롭다는 듯 칼바리아가 빛의 망치를 막기 위해 구체를 쏘아 보내던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흑색의 마법진이 그의 손 위에 생성되었다.
떵!
쇠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마법진과 충돌한 망치가 튕겨나가며 파캉! 하는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빛의 입자로 흩어졌다.
이어, 칼바리아가 빛의 망치를 막은 손을 내려 그대로 교황을 향해 내밀며 마법을 영창했다.
“흑광의 뇌전.”
다시 한 번 거대한 검은 마법진이 그의 손바닥 앞에 펼쳐지더니.
파지지직!!
원명은 블랙 라이트닝이란 암흑 마법이었지만, 영창식을 줄여 실용성을 높인 칼바리아만의 여러 갈래로 뻗은 흑광의 뇌전이 교황을 향해 쏘아졌다.
조금이라도 닿았다가는 찌릿하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거라는 듯 매섭게 달려드는 뇌전을 보며, 교황 또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꽈지지직!
교황의 앞에 생겨난 황금빛을 내뿜는 거대한 방패가 검은 번개를 가로막았고, 뇌전은 전하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금방 저 날파리들을 처리하고 상대해 줄 텐데, 누가 노인네 아니랄까 그 조금을 못 기다리는군.”
공중의 발키리들을 상대하면서도 여유로운 모습으로, 칼바리아가 그의 눈을 교황에게 향했다.
“나이는 자네가 더 많지 않나?”
그렇게 말한 교황이 마치 쓰레기통에 가볍게 쓰레기를 버리듯 오른손을 까딱이자, 발키리들이 내던지던 빛의 창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말뚝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크기의 황금빛의 창이 공기를 찢으며 칼바리아를 향해 쇄도했다.
“하긴, 그렇군.”
칼바리아가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황금빛의 창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자 빛의 망치를 막았을 때처럼 검은색의 거대한 마법진이 그의 손앞에 생성되었다.
“암흑의 용이여...”
마법식을 영창하면서도 왼손으로는 계속해서 구체를 쏘아 보내며 공중에서 계속해서 그의 빈틈을 노리는 발키리 자매들의 견제도 잊지 않았다.
”그대의 힘을 빌리는 자가 청하노니. 나의 적에게 모든 것을 심연의 끝으로 보내버리는 그대의 숨결을!”
번쩍!
눈부신 검은빛을 내뿜은 마법진에서 나온 것은 하나의 거대한 검은 용의 머리였다.
쇄도하는 빛의 창을 향해 그 입을 쩌억 벌린 용의 입에서 검은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마법으로 재현되긴 했지만 위력은 다를 바 없는, 드래곤의 브레스였다.
“모두들..! 온다!”
저 두 개의 마법이 격돌하면 후폭풍이 강하게 몰아칠 것을 눈치 챈 브륀힐데가 다른 자매들에게 소리쳤고, 그녀들은 하얗게 빛나는 자신들의 날개로 자신을 감싸 곧 이어 올 후폭풍에 대비했다.
콰과과과과광!!!
그녀들의 예상대로, 말뚝과 브레스가 맞부딪치자 그로 인한 거대한 충격파가 신전의 지하를 휩쓸었다.
“큭..!”
자칫 정신을 놓았다가는 날아가 버릴 만큼 거대한 충격파에, 발키리 자매들은 최대한 몸을 웅크리며 어떻게든 충격파를 버티는데 성공했다.
“...”
“...”
그렇게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 서로의 마법이 상쇄되었다는 것을 눈치 챈 교황과 칼바리아는 잠시 서로를 응시하더니.
쉴 시간은 없다는 듯 각자의 손에서 각자의 속성을 의미하는 빛이 번쩍였다.
* * *
암흑의 구체와 빛의 창.
흑의 마법진과 백금의 망치.
흑색의 번개와 황금빛 방패.
검은 용의 숨결과 황금의 말뚝.
암흑 마법과 신성 마법이 맞부딪치며, 마치 성국의 병력과 칼바리아의 불사의 군대가 맞붙었던, 인마 전쟁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차원이 다른 싸움을 보며, 페레우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싸움은, 싸움 축에도 끼지 못 하는 거였나...’
알렉세이와 플뢰르와 싸우기 전의 전력의 자신이었어도 지금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지는 못한다고, 그는 확신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마신의 심장에 담긴 힘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흘낏. 심장이 있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몸을 회복해 틈을 봐서 마신의 심장을 강탈할 생각이었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마법들의 격돌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마신의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교황이었으니까.
아무리 현성에 의해 전성기 때처럼 힘을 휘두르지는 못할지언정 그가 성국 내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전력의 페레우스라도 그를 뚫는 건 쉽지 않을 텐데, 가뜩이나 힘을 소진할 대로 소진한 상태니.
칼바리아와 그들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 회복해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을 게 분명했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칼바리아가 저들을 처리할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흑광과 백광이 번쩍거리며 화려한 싸움을 펼쳤다.
싸움의 양상은 언뜻 보기에 비슷비슷해보였지만, 칼바리아가 조금씩 밀리고 있는 상태였다.
암흑 마법을 계속해서 쏘아보내고 있지만 발키리들의 보호막과 교황의 방패를 뚫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총 일곱.
아무리 칼바리아가 리치 중의 리치인 고대 리치라고 한들 성국 최고 실력자들을 한꺼번에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 증거로, 발키리들이 쏘아 보낸 빛의 창들이 하나 둘, 칼바리아의 방어 마법진을 뚫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의 공방이 계속 되던 중.
파캉!
칼바리아가 그의 주변에 펼쳐두었던 방어 마법진이 계속되는 상반된 속성의 공격에 버티지 못 하고 깨져버렸다.
‘지금이다..!’
유지하던 마법진이 깨진 여파로 잠시 흔들리는 칼바리아의 몸.
아무리 마법에 능통한 고대 리치라도 저 순간에 방어 마법을 두르기에는 무리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발키리 자매들이 처음으로 생긴 틈에 일제히 빛의 창을 손에 들더니 자신이 빛의 화살이 되어 칼바리아를 향해 쇄도했다.
* * *
쾅!!
충돌의 여파로 여기저기 무너진 바닥에서 자욱하게 흙먼지가 일었다.
자욱하게 일어난 흙먼지 때문에 싸움의 결과를 볼 수 없게 된 페레우스는 흙먼지가 일어나기 전에 보였던 장면으로 싸움의 결과를 예측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칼바리아가 진 건가..?’
마지막 상황은 분명 잠시지만 균형을 잃은 칼바리아를 향해 빛의 화살이 되어 쇄도하던 발키리 자매들의 모습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에는 그다지 능통하다고 말할 수 없는 칼바리아가 방금의 공격을 피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터.
그렇기에 페레우스는 설마 하던 칼바리아의 패배를 상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후의 수단이었던 칼바리아조차 패배한다면 그에게 남은 것은 작전의 실패라는 암울한 미래 뿐.
그 미래가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생각에 페레우스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역시 하나만으론 무린가.”
흙먼지 속에서, 예상 외라는 듯 한숨을 내쉬는 칼바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에서 휘몰아친 냉기가 흙먼지를 전부 날려버렸고, 그제야 페레우스는 눈앞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가각. 가가각.
발키리 자매들이 내지른 빛의 창은, 칼바리아의 심장부근을 노리고 있는 6개의 빛의 창은, 똑같이 그의 심장 부근에서 생성되어있는 얼음 덩어리에 막혀있었다.
“큭..!”
더 찔러 넣으려고 힘을 써봤지만 쉽사리 깨질 생각을 하지 않는 얼음 덩어리.
“자네들의 찡그린 얼굴을 보는 건 전혀 기쁘지 않으니...”
화륵.
타오르고 있던 불꽃이 자색에서 푸른 색으로 바뀌었다.
“떨어지거라.”
그의 떨어지라는 말과 동시에 칼바리아에게서 강력한 냉기의 폭풍이 방출되었다.
칼바리아에게서 방출되는, 주변을 얼려버리는 강력한 냉기에, 발키리 자매는 날개를 펄럭이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반도 안 남았지만 천신의 권속에 전성기 때의 힘은 내지 못하지만 교황은 교황인가. 암흑 계열 마법 하나만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군.”
그렇게 말하며 쯧. 혀를 차는 칼바리아.
페레우스나 발키리 자매들, 그리고 교황이 한 가지 잊고 있던 게 있었다.
흑빛의 구체. 흑광의 뇌전. 흑룡의 브레스. 방어 암흑 마법진.
지금까지 칼바리아가, 모든 마법에 능통한 고대 리치인 그가 사용했던 마법들은 모두 암흑 계열의 마법들뿐이었다는 것을.
“슬슬 진심을 다해야겠군. 잘못하다간 천신 강림의 시간에 늦을 테니.”
그렇게 말하는 칼바리아의 눈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의 색깔은.
모든 속성들이 합쳐져 있음을 뜻하는, 영롱한 무지개 색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