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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아카데미에서 나 혼자 선생님이다-145화 (145/146)

〈 145화 〉 강림제.(12)

* * *

신전의 지하를 가득 메웠던 자색의 광휘가 사라졌다.

방금까지 빛의 사슬로 봉인되어 있었던 거대한 마신의 심장은 온데간데없었고, 은발의 남성이 서 있을 뿐이었다.

폭발적인 힘을 갑자기 얻은 여파인지 상반신의 옷은 완전히 사라져 탄탄한 근육질의 상체가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양 관자놀이에서 솟아올라있는 한 쌍의 검은 뿔이, 마치 왕관을 쓴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마신의 힘을 얻어 자신의 달라진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은발의 남성이, 방금 전 마신의 심장을 잡았던 중년 남성과 동인인물이라고 말한다면 누구라도 믿지 못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다.

“이것이... 마신의 힘...”

라고 중얼거리며 온몸에 넘쳐흐르는 마력을 여지없이 만끽하고 있는 은발의 남성이.

방금까지 50대 중후반의 중년 남성이자, 성국의 팔라딘이었던, 페레우스 무러스였으니까.

“큭... 크큭...”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던 페레우스의 입에 호선이 그려지더니 몸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하!!!”

방금까지 빈사상태의 사람이라고는 믿지 못 할 정도로 쩌렁쩌렁한 페레우스의 웃음소리가 지하에 울려 퍼졌다.

­쾅!

단지 크게 웃기만 했을 뿐인데, 너무나도 강력한 마력을 지닌 탓에 그의 주위에서 충격파가 방출되었다.

현성의 뒤에 있는 발키리 자매들이나 교황은 충격파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큭..!”

하지만 칼바리아는 달랐다.

방금 전, 페레우스가 마신의 심장을 향할 때 현성이 막지 못 하게 시선을 끄느라 마나를 거의 다 써버렸으니까.

게다가 발키리 자매나 교황처럼 그를 지켜줄 사람도 없었기에, 충격파에 몸이 밀려 근처의 기둥에 닿을 때까지 굴렀다.

“페레우스..! 그쯤하고 어서 성국의 결계를 무너뜨려라..!”

그들의 계획은 마신의 힘을 얻은 페레우스가 성국의 결계를 부수고 칼바리아가 불사의 군대를 일으켜 성국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최종목표인 성녀를 붉은 달의 본거지로 데려가는 것.

그렇기에 칼바리아는 페레우스가 성국의 결계를 부수는 것을 재촉하고 있었다.

불사의 군대에게서 마나를 흡수해 자신의 회복도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칼바리아가 있는 곳을 바라보는 페레우스의 반응은 싸늘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뭐..?”

무슨 소리냐는 듯 칼바리아의 두 눈에서 무지갯빛 불꽃이 흔들거렸다.

“그게 말이죠. 우리의 계획은 마신의 심장을 손에 넣은 다음, 칼바리아 님의 불사의 군대와 협업해 성녀를 납치하는 거였잖아요?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는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

“이런 말이죠.”

칼바리아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 했다.

자색의 빛이 번쩍이나 싶었더니, 어느새 칼바리아의 앞에 나타난 페레우스가 그의 해골 입을 손으로 막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굳이 협업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제가 당신의 힘을 흡수하면 당신의 불사의 군대도 제 것이 되는 건데.”

“...!!”

“솔직히, 고대 리치라고 불릴 정도면 많이 사셨지 않습니까. 칼바리아 님은 여기서 현성님께 사망한 걸로 처리될 테니까, 편히 잠드시길.”

­슈우우우...

칼바리아에게서 빠져나온 무지갯빛 마력이 페레우스의 손을 타고 페레우스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

칼바리아가 버둥거리며 최후의 발버둥을 쳐보지만, 현성과의 싸움으로 인해 마나 고갈 상태였던 그가 마신의 힘을 가진 페레우스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축. 늘어지는 칼바리아의 몸뚱이. 늘어진 양 팔이 힘없이 흐느적거린다.

움직이는 것 기껏해야 까딱거리는 검지손가락 뿐.

“역시 고대 리치는 고대 리치인가요. 그 단시간에 이 정도나 마나를 회복했을 줄이야.”

대단하다는 듯 페레우스가 미소를 지었다.

“잘 먹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칼바리아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리치의 원천인 마나를 전부 흡수당한 칼바리아는 이제 리치도 무엇도 아닌 그저 하나의 해골 모형으로서 다시는 움직일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그저 해골덩어리가 된 칼바리아를 내던지며, 자신의 몸에 들어온 칼바리아의 마나가 마치 극상의 진미라도 되는 양 혀로 입술을 훑는 페레우스.

­슈아아악!!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파공음에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동시에, 자색 빛의 창이 그가 방금까지 있던 자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상향된 반응속도가 아니었다면 분명 피하지 못 했을 공격이었다.

‘빠르네.’

페레우스에게 자색빛의 창을 날려보낸 장본인인 현성은 페레우스가 마신의 심장을 흡수함으로서 바뀐 게 몸만은 아니라는 것을 방금 전 공격을 피한 것으로 눈치챘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 남아있었군요.”

가늘게 떠진 페레우스의 눈에서, 자색의 눈동자가 현성을 응시한다.

대충 흘려듣고, 현성은 다시 한 번 자색빛의 창을 생성해 페레우스를 향해 날렸다.

“...”

예전의 그였다면 분명 피했을 공격이었지만,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진 지금의 자신이라면 분명 저 자색빛의 창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그를 향해 쇄도하는 창을 향해 손을 뻗었고.

­턱.

파공음을 내며 쇄도하던 창을 잡는데 성공했다.

“크... 크크...”

자신의 손에 잡혀 있는 자색빛의 창을 보며, 칼바리아의 몸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7년 전에도, 4년 전에도, 방금 전 마신의 심장을 흡수하기 전까지도 절대 닿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보이던 남자가, 그런 남자의 진심이 담긴 공격이, 자신의 손에 막혔다.

“크크크...”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온다.

느껴지는 희열. 이제는 닿을 수 있음을 넘어 그를 이길 수 있음을 확신하는 페레우스의 몸이, 희열에 떨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며, 현성은 다른 자매들을 치료하고 있던 발키리 자매 중 엘렌을 불렀다.

“엘렌.”

“네, 마스터.”

현성의 곁으로 온 엘렌이 한 쪽 무릎을 꿇으며 현성의 말을 기다렸다.

“다른 자매들하고 저 영감 데리고 여기서 나가서 천신의 눈앞에 대충 놔둬.”

“천신의 눈이라면 신전의 꼭대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곳에 가면 알렉세이가 있을 거야. 눈 안으로는 들어가지 말고. 애들이 놀래니까.”

여전히 시선은 페레우스에게 향한 채로, 현성이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바로 성녀가 있는 곳으로 향해.”

“성녀님께요?”

“성녀의 신성력이 봉인당했다고 하네.”

“..!!”

엘렌의 몸이 움찔. 떨리며 동공이 살짝 커졌다.

“그래서, 너희들이 천신 강림인가 하는 걸 도와줘야 될 것 같아. 그리고 성녀의 신성력이 봉인됨으로서 약해진 성국의 결계도 남몰래 보완해둬야 될 것 같고.”

1년에 한 번 뿐인 대축제를 망치면 되겠어?

그렇게 말하는 현성을 보며, 엘렌은 남몰래 미소를 훔쳤다.

“역시 마스터시네요. 그때 용기를 내서 말씀드려보길 잘했어요.”

“이제 와서 뭘 새삼스럽게.”

그녀를 돌아보는 현성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며, 엘렌은 명을 받들겠다고 말한 다음 자매들에게 향했다.

이내 그녀들의 모습이 하얀 빛과 함께 신전의 지하에서 사라졌고, 현성은 그녀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뒤에 다시 페레우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기다려줘서 고맙다.”

“뭘요. 저도 모처럼 얻은 힘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다른 사람들이 없는 게 편하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자색빛의 창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는 페레우스.

파캉! 하는 소리와 함께 창이 빛의 파편이 되어 공중에 반짝였다.

마치 자신의 힘이 이 정도라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행동.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대충 콧방귀를 뀐 현성은.

“그나저나, 사골을 처리해줘서 고맙다.”

그렇게 말하며 칼바리아였던 것이 널브러져 있는 곳을 향해 턱짓을 하는 현성.

“덕분에 처리할 게 하나로 줄었거든. 아까처럼 협공을 하면 귀찮아질 뻔 했는데 말이지.”

꿈틀. 페레우스의 눈썹이 움찔했다.

협공을 하면 귀찮아진다는 현성의 말.

그 말에는 페레우스가 칼바리아의 힘을 흡수하지 않고 두 명이서 덤빈다고 해도 그저 귀찮을 뿐,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담겨 있었으니까.

“귀찮다고요? 아무리 당신이라도 마신과 고대 리치의 힘을 흡수한 저를 이길 수 있으실 것 같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고맙다.”

”아까부터 자꾸 뭐가 고마운...”

­쿵!!

갑작스럽게 무언가가 그의 오른 어깨를 강하게 내리 누르는 듯 느껴지는 묵직함에, 페레우스의 몸이 오른쪽으로 크게 기울었고, 이내 한쪽 무릎을 꿇게 되었다.

“?!”

“이 마법이 발동할 수 있기까지 시간을 끄는데 도움이 되어줘서 고맙다고. 강하긴 하지만 조건부라 꽤나 까다로운 마법이거든.”

“큭..! 이까짓..!”

입술을 깨물며 힘으로 마력의 짓누름을 깨뜨리려했지만. 왜인지 힘을 줘봐도 그의 몸은 꿈쩍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말했잖아. 조건부라고. 그러니 포기해. 조건이 충족된 이상, 설령 천신이 와도 못 깨는 마법이니까.”

“큭..! 끄아아아..!!”

마력으로 신체강화까지 해봤지만 오히려 그를 짓누르는 무게가 더 강해질 뿐이었다.

‘고대 리치의 힘에다 마신의 힘까지 가졌음에도 저항조차 못 한다고..? 잠깐, 고대 리치의 힘?’

고대 리치 칼바리아에게서 흡수한 힘은 그의 불사의 군대를 일으키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낸 페레우스.

다행이 한 손은 땅에 짚고 있는 자세였기에, 그대로 짚고 있는 오른손에 마력을 집중시키며 머릿속으로 마법을 영창했다.

‘일어나라... 불사의 군대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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