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떠돌이들-10화 (10/178)

〈 10화 〉 탈출 (5)

* * *

딱히 늑대와 눈을 마주치고 싶어서 마주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늑대도 마찬가지. 사수는 발사 후에도 표적을 바라보고, 맹수는 사냥감을 바라볼 뿐.

[깨갱!]

늑대가 고통에 울부짖으며 바닥을 굴렀다. 명중이었다.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던 창공은 차오르는 희열에 주먹을 꽉 쥐고 허공에 휘둘렀다.

"그렇지!"

"맞았어? 맞은 거지!"

나유가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기적 같은 명중.

늑대 입장에선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었겠지만 창공 일행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늑대는 낑낑대며 제자리에서 몸부림을 칠 뿐, 어떤 위협도 되지 못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아우우우우우우!]

[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하울링이 다시 들려왔다. 이번엔 여러 방향에서, 여러 마리의 울음소리였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다시 차갑게 식어버렸다. 솔직히 일행들도 알고 있었다.

방금 그 명중은 창공의 실력도 있었겠지만 어디까지나 기막힌 운에 의한 것이었다고.

그리고 그 운이 다시금 발동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심지어 창공이 또 하나를 맞춘다 하더라도 결국엔 근접전으로 최소 한 마리 이상은 감당해야 했다.

"아 씨, 이거 졸라 무겁네 진짜... 휘두르다 팔 빠지는 거 아니야?"

나유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툴툴거렸다.

평소에 운동을 즐겨 하던 그녀였지만 무기는 바벨과 느낌이 또 다른 법이었다.

"진짜 안 바꿔줘도 돼?"

어택이 여차하면 부지깽이와 검을 교환하려 했으나 나유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익숙해져야지 뭐."

"모두 조용. 이번엔 반대편에서 두 마리."

창공이 통에서 화살을 꺼내 시위에 먹이며 말했다.

아린을 슬쩍 바라보니, 바이올린을 두 손으로 꽉 쥔 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단검 뽑으라고 할까?'

그렇게 생각도 들었지만, 그는 그 생각을 고이 접어두었다.

단검 잡는다고 제대로 휘두르기나 하겠는가. 가죽을 뚫고 찔러 넣는 것도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차라리 길이가 더 긴 바이올린 비슷한 저 악기가 나을 수도 있었다. 여차하면 어택이 도와줄 수도 있을 거고...

"창공아. 늑대들은?"

"저 새끼들 저 멀리서 어슬렁거리기만 하는데요."

"맞출 수 있겠어?"

"저 거리까진 안 닿아요."

창공은 어택의 기대 가득한 물음에도 고개를 내저었다.

방금 화살에 맞아 죽은 자신들의 동료를 보기라도 했는지, 저 늑대들은 100m는 넘어 보이는 곳에서 양옆으로 왔다 갔다만 하고 있었다.

속사는 해 본 적이 없는 그였기에 섣불리 쏘았다가 그다음 화살을 장전하는 시간에 늑대들이 야영지에 접근한다면 치명적이었다.

맞든 안 맞든 유효사거리 안쪽으로 들어온 다음에 쏘는 게 훨씬 나았다.

게다가 창공은 저 멀리에서 타오르는 두 쌍의 안광뿐 아니라, 방금 그가 맞추었던 늑대가 있었던 방향도 수시로 돌아보고 있었다.

야영지를 습격하려는 늑대들이 저 두 마리가 끝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늑대들은 머리가 좋으니 양동 작전도 충분히 가능했다.

"날 샐 때까지 저러는 건 아니겠죠..."

히사시가 중얼거렸다. 만약 늑대들이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그것은 좋은 작전이었다.

지금 일행은 상당히 지친 상태였으니까.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 정신적으로 괴롭힘당하다 새벽녘에 습격당한다면 다들 늑대 밥이 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야영지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 탁 트인 평야에서 무슨 수로 맹수 두 마리를 상대한단 말인가.

진퇴양난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최고의 결과는 늑대들이 그들을 포기하고 그냥 돌아가 주는 것이었지만 그건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비교적 현실적인 기댓값은 늑대들이 접근하고, 창공에게 다시 천운이 따라 적어도 한 마리를 쏘아 죽이는 것.

"..."

인간 하나와 두 늑대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마치 이 상태로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심장의 박동만이 지금 시간이 멈춘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팽팽한 긴장 상황.

이것을 먼저 깬 건 늑대들 쪽이었다. 두 마리가 각자 나뉘어 야영지로 빠르게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온다!"

창공은 그렇게 외치며 다시 활을 들어 시위를 당겼다.

그런데 늑대의 움직임이 방금 전과는 달랐다.

화살에 맞았던 늑대는 일직선으로 달리다 화살에 맞고 죽었지만, 지금 그가 조준하고 있는 늑대는 지그재그로 계속 방향을 전환하며 야영지에 접근하고 있었다.

"씨발."

욕설이 절로 나왔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만작 상태에서 계속 버틸 수는 없었다.

그가 못 버티던가, 활이 못 버티던가 둘 중 하니일 뿐이니까.

투웅!

시위가 놓아지고 화살이 세차게 날아갔다. 하지만 탄착지점은 늑대에게서 족히 10m는 떨어진 곳이었다.

그래도 창공은 낙담하지 않았다. 아니, 낙담할 틈도 없었다. 그는 시위를 놓자마자 다음 화살을 집어 들어 활에 메겼으니까.

활은 끼긱대며 다시 둥글게 굽어졌다. 그 사이에 주파하던 늑대는 상당히 거리를 좁혀, 이젠 거리가 30m도 채 되지 않았다.

20m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일까. 실질적으로 요격하는 화살은 이게 마지막이었다.

"저기!"

나유가 소리쳤다. 일행에게도 접근하는 늑대가 보이는 것이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위험도 커지지만, 화살이 명중할 확률도 올라갔다.

20m라면 창공은 10발 중에 8,9발은 엑스텐을 쏠 자신이 있었다.

투웅!

화살이 다시 쏘아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던 전의 두 화살과는 달리, 이번 화살은 직선 궤도로 아래를 향해 날아갔다.

시위를 놓음과 동시에 느낌이 왔다. 제대로 날아갔다는 느낌이.

[커엉!]

하지만 늑대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화살을 피했다. 달려오다가 갑자기 옆으로 굴러버린 것이다.

화살은 아슬아슬하게 0.5초 전만 하더라도 늑대가 있었던 자리에 꽂혔다. 애석한 한 발이었다.

"이야압!"

어택의 기합과, 묵직한 막대기가 공중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쪽 늑대는 접근한 모양이었다. 창공이 그쪽에는 신경을 못 썼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어느 쪽에 집중해야 하나? 어택과 아린? 나유와 히사시?

어느 쪽이든 빨리 결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어택이 줄 수 있었다.

"오빠!"

"난 괜찮으니까 꽉 잡고 다시 접근하면 휘둘러!"

아린의 비명과 어택의 격려. 늑대가 바로 덮치려다 한발 물러선 모양이었다.

일행들 중 근접전에서 제일 나은 건 누가 봐도 어택이었다.

그게 맹수 상대로 얼마나 통할진 미지수였지만, 어쨌든 그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흡!"

창공은 다시 화살을 장전하고 시위를 당겼다. 땅바닥을 굴렀던 늑대는 이미 일어난 상태였다.

그는 늑대를 지향하고 만작과 동시에 화살을 쏘았다. 이런 근거리에선 머리로 계산하고 쏠 시간이 없었다.

오로지 감각. 감각만이 조준기였다.

"맞았나?!"

히사시가 소리쳤다. 늑대의 꼬리가 한 번 휘날리는 것을 보고 외친 것이었다.

다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움찔하긴 했어도 행동거지에는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아마 화살이 꼬리에 스친 것이겠지.

하지만 창공은 다시 침착하게 화살을 장전했다. 이번엔 맞출 자신이 있었다.

저 늑대도 다음엔 맞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으리라.

어떤 판단을 할진 몰라도, 그 판단이 화살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이 정도 거리에서는 말이다.

그렇게 시위를 당기려는 순간, 등 뒤에서 아린의 비명이 들려왔다.

"오빠아아!"

[크아아앙!]

기어이 늑대가 저쪽을 덮친 것이었다. 창공이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어택은 땅에 쓰러져있고, 늑대가 그 위에 올라타 어택의 머리에 이빨을 들이밀고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어택은 부지깽이를 두 손으로 잡고 늑대의 입에 물려서 버티고 있었지만, 오래갈 수는 없었다.

아린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악기로 끊임없이 늑대의 머리를 내리치고 있었다.

퍽! 퍽!

하지만 악기보다 늑대의 두개골이 더 단단했다.

늑대도 어택만 제압하면 아린은 훨씬 쉽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그녀가 자신의 머리를 치든 말든 상관도 하지 않고 계속 버티며 어택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김아린! 피해!"

창공은 이 광경을 보자마자 몸을 돌려 시위를 당겼다.

세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아린은 창공을 보고 몸을 날렸다.

팽팽히 당겨진 시위가 창공의 코와 입술에 닿았다.

검지, 중지, 약지가 펴지며 장력이 잔뜩 들어간 시위를 해방시켰다.

퍼억!

[끼이이잉!]

늑대가 고통에 신음하며 바닥을 굴렀다. 그 과정에서 화살대가 부러졌지만, 화살촉은 늑대의 몸 더 깊숙한 곳에 제대로 박혀들어갔다.

아린은 이 광경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나 악기를 집어던지고 허리에서 단검을 뽑아들었다.

"으아아아!"

그녀는 두 손으로 단검을 움켜쥐고 온몸의 체중을 실어 쓰러지듯이 늑대에게 단검을 꽂아 넣었다.

마침 늑대의 부드러운 배 부분이 하늘을 향해 노출되었고, 아린의 단검은 정확히 배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갔다.

"이 새끼!"

쓰러져있던 어택도 땅을 짚고 일어나서 늑대에게 달려가 부지깽이로 늑대의 머리를 수없이 내리쳤다.

"죽어! 죽어! 죽어라아아아!"

한쪽 상황이 정리되었다고 느낀 창공은 다시 나유와 히사시 쪽으로 돌아보며 화살을 시위에 메겼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늑대는 마치 그곳에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 상태였다.

"야! 히사시! 뭐야! 늑대 어디 갔어!"

"모,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도망을 쳐서...!"

"도망쳐?"

창공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늑대를 찾았다. 하지만 정말로 늑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히사시의 말대로 늑대는 도망쳤단 말인가? 밑에서 나유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진짜야! 갑자기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니까?"

"어느 쪽으로."

"여기 옆에 바위 돌아서..."

즉, 지금 창공이 올라선 바위와 마주한 바위 모퉁이를 돌아 반대편으로 사라졌단 얘기였다.

도망칠 때도 끝까지 교활한 놈이었다. 이렇게 되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 않은가.

"후우..."

어택과 아린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호흡을 골랐다. 그들이 찌르고 때리던 늑대는 죽어있었다.

근거리에서 화살에 맞고, 배에 단검이 꽂히고, 머리가 부지깽이로 수도 없이 내리쳐졌으니... 역시 맹수라 해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둘 다 일어나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까."

"하아... 하아... 네...!"

"끄응..."

창공은 이번엔 나유와 히사시를 내려다보며 모닥불 쪽으로 붙으라고 말했다.

불을 등지고 서라고 말이다. 불을 계속 바라보면 어두운 곳에서의 시야 적응력이 떨어지니 당연한 조치였다.

그리고 그는 바위 위에 계속 서서 사방을 감시할 생각이었다.

"우와... 십년감수했네. 어디 다친 데들 없어요?"

나유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모닥불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나유야! 피해!"

창공이 크게 외치며 시위를 잡았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바위 뒤에 숨어있던 늑대는 다시 나타나 나유의 허리에 묶인 바람막이를 물고 잡아당겼다.

저항할 틈도 없이 땅바닥에 넘어진 나유는 늑대에게 끌려갔다. 그녀의 손에서 떨어진 칼만 애처로이 바닥을 뒹굴었다.

"꺄아아아아악!"

"나유 언니이이!"

"나유야! 바람막이! 바람막이 묶은 거 풀어!"

어택이 나유에게 달려가며 외쳤다. 하지만 나유는 당황한 나머지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비명만 계속 지를 뿐, 바람막이 매듭을 푼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늑대의 뒷걸음질은 어택의 뜀박질보다 더 빨랐고, 나유는 빠르게 야영지에서 멀어졌다.

창공이 손 놓고 바라만 보는 건 아니었다. 늑대를 조준하고 있었지만, 나유와 늑대가 너무 가까이 붙어있어 섣불리 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나유는 숲속으로 완전히 끌려갈 판이었고, 그렇게 되면 늦어버린다. 설령 나유가 맞더라도 쏘아야 할 때였다.

지금 이 순간, 화살을 쏘기로 결정한 창공의 마음은 파란 새벽의 공기처럼 차갑고, 차분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늑대를 맞춘다. 나유가 맞는다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결정한 그 순간.

다시 세상이 멈춘 기분이 들었다.

일행들이 나유를 목놓아 외치는 소리가 늘어진 카세트테이프에서 나는 소리처럼 불분명해지고 끝 간 데 없이 길어지더니, 이내 들리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며 버둥대는 나유도, 그런 그녀를 끌고서 뒷걸음치는 늑대도 점점 느려지더니 사진기에 찍힌 풍경처럼 그대로 멈췄다.

멈춰버린 세상에서 유일하게 들리던 그의 심장 박동 소리도, 마치 심장이 멈춘 것처럼 들리지 않게 되었다.

창공은 이런 현상을 몇 번 겪어보았다. 양궁 대회에서 말이다. 이럴 때면 그의 시야는 작은 조준기 구멍 너머에 한정되었다.

과녁이 그가 보는 세상의 전부였다. 이렇게 멈춰버린 세상에서 시위를 놓으면, 화살은 반드시 명중했다.

그런데, 지금 그때와는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다. 화살촉이 빛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얀색인가? 아니, 자세히 보니 파란빛이었다.

밤바다에서 빛나는 발광 플랑크톤의, 마치 우주 저편의 별빛과도 같은 파란색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 현상에 대해 의문을 갖기도 전에, 그의 오른손 세 손가락은 저절로 펴졌다. 화살은 소리 없이 날아갔다.

그리고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화살은, 파란빛은 궤적을 그리며 빠른 속도로 늑대에게 날아갔고, 늑대를 통렬하게 꿰뚫었다.

늑대는 화살이 아니라 마치 대포에 맞은 것처럼 산산이 찢겨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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