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남나유 외전 혼자만의 섹스
* * *
나는 지금 섹스 중이다.
그러니까, 소파에 등을 기대고 한 손에는 닭다리를, 한 손에는 500ml 맥주캔을 쥐고 TV를 보고 있다는 말이다.
치맥은 섹스다. 이게 섹스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섹스란 말인가?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섹스라는 것은 번식과 애정 표현에 그 목적을 둔 남녀 간의 행위로써, 음경을 질 내에 삽입하고 왕복 운동을 통해 정자와 난자를 만나게 하는 것이 바로 섹스고, 이외의 것들은 그저 비유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내가 볼 때 그것은 틀렸다. 얼마나 많이 배운 사람이 한 말인진 모르겠지만, 치맥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가엾고 딱한 사람 같으니. 거짓을 붙들고 진실이라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한가?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치맥이 섹스라면, 가족끼리 치킨을 시켜 먹는 건 집단근친난교냐고.
맞다. 가족끼리 치킨을 시켜 먹는 건 근친 난교다.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지만 나는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고 굳게 믿는다.
"푸하핫."
예능 프로 속 개그맨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널따란 공허한 차가운 거실에 잠시 동안 머물던 내 웃음소리는 다시 사라지고,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다시 집안을 점령했다.
나 홀로 있는 집은 외롭다. 그래서 혼자 살기엔 큰 집을 샀다. 60평쯤 되는 집으로.
듣기로 집이 좁으면 더 외로움을 느낀다고 해서 그렇게 샀는데, 아무래도 속은 것 같았다.
전혀 외로움이 줄어들지 않아. 늘어나지도 않지만. 사실 여기서 더 늘어나기엔 다 커져버린 나의 외로움이니까.
혼자.
혼자 산대도 그렇게 불편한 점은 없다.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니까. 전화만 하면, 어플을 켜서 버튼 몇 개만 누르면 필요한 모든 것이 다 배달되니까.
청소? 사람을 쓰려면 쓸 수 있지만 그건 그냥 나 혼자 한다. 어차피 맨날 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하는 셈 치고 하면 즐겁게 할 수 있다.
운동.
웨이트도 좋지만, 런닝이 최고다. 런닝머신 계기판 위에서 늘어나는 거리와 소모된 칼로리를 보고 있으면 잡생각이 없어진다.
외로움도 없어진다. 그 순간만큼은. 내 심장이 뛰고 있음을 그제야 안다. 숨을 헐떡이며 내가 호흡하고 있음을 인지한다.
하지만 운동도 완벽하지 않다. 현실에서 이탈함으로써 살아있음을 느끼는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니까. 심장과 숨은 다시 멈추게 되니까. 필연적으로.
대학.
솔직히 별로 가고 싶진 않았다. 서울에 내 명의로 된 건물만 스무 개가 넘는다.자산이 부동산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런 내가 대학을 나와서 뭘 하겠는가? 그래도 고졸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무시한단다. 그래서 갔다. 학과는 나하고 안 맞았지만.
사람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외롭긴 왜 외롭겠는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탓이다.
우선 집에 돌아오면 날 맞아줄 가족이 없다. 난 외동딸이고, 어릴 때 돌아가신 부모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사진 속에 부모님 얼굴이 남아있긴 하다. 그런데 그건 사진이 기억하는 거지, 내가 기억하는 게 아니니까.
나는 부모님 얼굴을 사진으로 배웠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 저게 진짜 부모님 얼굴인지. 그냥 그렇다니까 그런 줄 안다.
그분들은 납골당에 제대로 모셔놓았다. 그것도 아무렇게나 모셔놓은 게 아니다. 납골당에도 선호되는 자리가 있다는 걸 아는가?
사람들의 시선이 딱 닿는 높이에 있는 칸이 제일 비싸다. 대충 3천 정도 들었다. 원래는 다른 곳에 계셨는데, 내가 나이 먹고 옮겨드렸다.
잘 가지는 않는다. 기억 속에도 없는 분들이니까. 사진을 봐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부모님과의 추억이 내겐 없으니까. 난 어쩌면 이 세상에 혼자 태어난 게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람들?
사람들이야 많다. 내 사람들이 없는 탓이다. 친구? 연락처에 전화번호가 저장된 것으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에겐 친구만 백 명이 넘는다.
그런데 그건 아니지 않은가.
처음엔 내가 돈이 많으니까, 좀 베풀어주면 친구가 될 수 있을 줄로 알았다.
먹을 거 얻어먹은 그 '친구들'은 평생 동안 내 곁에 있을 것처럼 굴더니, 그저 그때뿐이었다.
물주 노릇을 그만두자 나에게 남은 건 오직 그들의 연락처... 사람은 없었다.
따라서 그런 짓은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그만두었다. 대신 남자를 사귀기로 했다. 남자는 좀 다를까 싶어서. 확실히 다르긴 달랐다.
둘이 간 노래방에서 내 가슴에 손을 뻗으려고 했으니까. 그것도 사귀기로 한 첫날에!
당황해서 마이크로 머리를 찍어버렸더니, 다음 날 학교에 그 애 엄마라는 사람이 와서 나와 선생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더라.
내 말은 듣지도 않고 화만 내는데... 솔직히 부러웠다. 부러워 미치는 줄만 알았다.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싶어서. 나에겐 왜 이런 사람이 없는 걸까.
돈으로 사람을 살 수 있다면 통장에 한 푼도 안 남기고 모조리 사버렸을 텐데. 소유권 무기한. 대금은 일시불로.
그 뒤로는 남자를 사귄 적이 없었다. 사실 하루 만에 파탄이 났으니 남자친구가 있었다고 말도 못 하겠지.
남자친구라고 인정도 하고 싶지 않다. 아무튼 난 모쏠이다.
자위도 몇 번인가 해 봤다. 손가락으로 유두를 돌리거나, 팬티 위로 어루만진다거나. 젠장, 허무함만 짙게 들더라. 그래서 때려쳤다.
그래서 유일한 위안은 치맥이었다. 이건 다 먹고 나면 허무하지 않냐고? 왜 아니겠는가.
다만 나도 일순간의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일 뿐이기에. 그리고 치맥은 일순간의 쾌락들 중에서 가히 최고봉이었다. 괜히 이게 섹스겠는가?
누가 한 말마따나 겉은 바삭바삭, 속살은 쫀득쫀득한 것이 먹다 보면 전율이 흐르는...육즙이 혀를 감싸고 캬아! 머스타드 소스에 탁! 하고 발라먹으면 크으! 바로 이 맛이다.
자위 따위와 섹스를 비교하지 마라. 내가 경험자로서 진지하게 충고하는데, 외로우면 섹스해라. 단돈 2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가능하니까.
"얍."
나는 다 마신 맥주캔을 거실 구석 박스에 던졌다. 이미 박스는 반쯤 찬 상태였다.
캔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안착했다. 방금 전 내 웃음소리처럼, 캔이 낸 소리도 사라졌다.
소리로는 이 공간을 따뜻하게 채울 수 없었다.
아, 치킨도 다 떨어졌다. 이제 섹스 끝이냐고? 그렇지 않다. 후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식후땡까지 해야 진정으로 치킨을 다 먹었다고 할 수 있었다.
소파 구석에 던져놓았던 담뱃갑을 주워들며 TV를 껐다.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집안에는 오로지 적막뿐이다. 아니, 원래 적막했던가. 음... 모르겠다.
나는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고 한껏 빨아보니 내 입에서 내뿜어지는 연기 사이로 보이는 도시의 야경이 퍽 아름다웠다.
담배연기가 위층에 올라가지 않냐고? 걱정하지 마라. 여긴 꼭대기 층이다.
아, 담뱃재 떨어지는 건 아랫집에서 지랄하더라. 그래서 재떨이 하나 장만했다.
연기만 창밖으로. 재는 재떨이 안으로.
재밌었다. 평소에는 윗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담뱃재가 떨어지니 지대한 관심을 표출했으니.
그렇게라도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게 재밌어서 계속하려다가 그건 너무 불쌍한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사실 불쌍한 건 나인데 말야.
호의적으로 접근할 땐 받아주지도 않았으면서, 적대적인 접근은 받아주는 사람들. 그 적대적인 접근마저 반가운 나.
어느 교도소에선 재소자들에게 일절 접촉을 하지 않아, 재소자들은 어떻게든 교도관의 관심을 끌어보려 용을 쓴다고 한다.
돌아오는 것이 욕설일지라도, 폭력일지라도, 그것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게 맞다면 나는 감옥 속에서 살고 있는 거겠지. 세상이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
누군가 나를 이곳에서 꺼내주기만 한다면, 나는 내 모든 걸 줄 텐데.
길가에 핀 꽃 한 송이를 꺾어서 나에게 준다면, 나는 온 세상의 꽃을 한 아름 들고 건네줄 텐데.
사람. 사람이 필요했다. 내 편만 들어주지 않아도 좋아. 때로는 나에게 박하게 대해도 좋아.
그냥 곁에 있을 수 있는, 내가 바라볼 수 있고 나를 봐주는 그런 사람이 필요해.
온기가 필요해. 화산에서 뿜어지는 용암처럼 뜨거운 온기도 좋지만, 내 손에 입김을 불었을 때 느껴지는... 자그맣고, 곧 사라지는 온기라도 필요해.
형태는 중요하지 않아. 가족, 애인, 동료, 친구... 어쩌면 이 모든 게 섞인 관계라도.
우연하게 만나서, 내 돈을, 내 몸을 보고 다가오는 게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그런 사이. 그런 사람들.
치맥도 좋아했으면 좋겠다. 술에 취해서 나 그동안 너무 외로웠노라고, 당신이 비록 겨울 같은 사람일지라도 나에겐 봄 같은 사람이라고 넋두리를 늘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돛대도 나누어 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마지막은 너무 이상적인가. 아무튼 그런 사람. 그런 사람들.
그리고 이렇게, 내 입에 물려있던 담배는 불타고 사라졌다.
연기 속으로, 저 하늘 어딘가, 별들이 있는 곳으로. 나는 갈 수 없는 곳에.
혼자만의 섹스는 끝났다. 집안엔 다시 외로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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