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떠돌이들-16화 (16/178)

〈 16화 〉 살아가는 방식

* * *

"원래부터 악인인 사람은 없습니다. 피고인도 원래부터 악인이 되고 싶었겠습니까. 단지 어려운 상황이 평범한 이를 악인으로 만들었을 뿐이니 선처하는 게 옳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 하여 모두가 악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잘못이 피고인에게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나, 분명한 사실은 피고인 스스로가 악인이 되기를 선택했단 겁니다."

­어느 법정 서기의 기록 中­

창공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떴다. 나유는 방으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 있었던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지만, 시트에 남은 흔적들을 보면 분명 꿈은 아니었다.

대충 씻고 옷을 입은 창공은 1층으로 내려갔다. 마침 아침밥시간에 딱 맞게 내려왔는지, 테이블에는 나유를 제외한 셋이 벌써 앉아있었다.

"어, 잘 잤어? 안 내려오면 가서 깨우려고 했더니."

어택이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창공을 보고선 인사했다.

"뭐 잘 잤죠... 아린아. 나유는?"

"씻고 내려온대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더니, 아린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유가 내려왔다.

"좋은 아침!"

나유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윽고 의자를 빼낸 그녀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런데 그녀에게서 갑자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아윽!"

"꺄악!"

나유가 갑작스럽게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자 깜짝 놀란 아린이 소리 질렀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나유의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아니 왜... 그러세요? 어디 아파요?"

히사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유를 쳐다봤다. 나유는 식은땀을 흘리며 작게 손을 내저었다. 창공은 그녀가 아파하는 이유를 짐작했지만 딱히 내색하진 않았다.

어젯밤에 둘이 섹스했다고 동네방네 광고할 필요는 없었고, 어차피 며칠 지나면 나아질 테니까.

그를 제외한 다른 일행들은 나유를 걱정했지만 어쨌든 그녀가 괜찮다고 거듭 말하니 더 물을 수도 없었다.

그러던 와중 기다리던 아침 식사가 등장했다. 빵은 어제와 똑같았지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갓 나온 모양이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드세요."

접시를 내려놓은 주인장이 물러가자 일행은 빵을 손에 얹고 입김을 후후 불었다. 막 오븐에서 나온 뜨끈한 빵에 짭짤한 버터를 발라먹는 그 맛이란...

"그러고 보니까 이거, 호밀이네요."

빵을 반쯤 먹은 아린이 단면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과연 호밀빵이었다.

그냥 밀로 만든 빵보다 평가가 박하고 맛도 훨씬 덜하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오히려 현대에서 먹었던 빵보다 더 맛있게 먹었었고, 또 맛있게 먹고 있었다.

창공 생각에 이건 아마도 그동안 그들이 식사 같지도 않은 식사만 주구장창 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기야 밀빵이면 어떻고 호밀빵이면 어떻겠는가. 적어도 탄광에서 주던 그 말라비틀어진 빵보다 수천 배는 훨씬 나았다.

빵 뒤에는 묽은 수프가 나왔다. 미약하게 채소 향이 나는 수프에는 간이 알맞게 되어 있었고, 건더기는 없었지만 그마저도 맛있었다.

"이게 맛이 없어지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나유가 중얼거렸다. 히사시가 그녀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네?"

"맛있는 거 먹다가 보면 언젠가 이런 음식들은 맛이 없어지지 않을까요? 아니 왜, 수프도 고기 잔뜩 들어간 찐한 거라던가..."

"아... 하긴."

아린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런 음식들은 엄밀히 말해 그들이 현대에서 생활하던 때라면 어쩌다 한 번 먹더라도 다시 찾진 않을 그런 수준이었다.

따라서 원래 기준으로는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한 식사를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충분히 맛있었다.

"그런데 우리 중에 요리할 줄 아는 사람은 없나? 맨날 외식할 수는 없잖아."

"사실 제가 할 줄은 압니다만."

일행의 시선이 히사시에게 몰렸다. 히사시는 살짝 당황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자취하다가 보니."

아린이 대답했다.

"기대할게요."

식사를 끝낸 일행은 테이블에서 일어섰는데, 나유가 의자에 앉은 채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한숨을 쉰 창공은 그녀에게 다가가 겨드랑이 아래로 자신의 팔을 넣었다.

"일어나."

"아... 고마워."

나유는 창공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걱정하는 아린을 짧게 안심시킨 뒤, 손을 잡고 함께 자신들의 방으로 올라갔다.

창공도 자기 방으로 올라가 아침에 온다고 했던 아스터를 기다리려는데, 어택이 그를 붙잡았다.

"창공아. 나랑 얘기 좀 하자."

"잠깐만요. 담배 좀 가져오고..."

"내 거 줄게. 히사시. 넌 먼저 올라가."

"네."

둘은 벌써 말을 놓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창공도 어택이 제 담배를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창공과 어택은 여관을 나서 뒤편으로 돌아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우..."

어택은 담배 몇 모금을 빠는 동안 말이 없었다. 창공도 딱히 먼저 말을 걸진 않았다.

어차피 자긴 담배만 얻어 피더라도 좋았으니까. 그렇지만 결국 어택은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놓았다.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뭘요?"

"우리 저 산 넘던 중에 만난 그 노인 있잖아. 기억나?"

"기억나죠."

창공은 타들어가는 담배 끝부분을 노려봤다. 도대체 어택은 이 이야기를 왜 꺼내는 걸까. 떠오르는 살인의 기억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물론 그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는 똑같이 행동할 작정이었다. 그게 그가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이었으니.

하지만 아무리 그라고 해도 실제로 결단을 내리고 사람을 죽이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좋아서 살인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영 찝찝한 건 사실이었다. 일상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와중, 어택이 뭐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에 잠겨있던 창공은 어택을 돌아봤다.

"네? 미안한데 잘 못 들었어요."

"...그 노인 지금 살아있냐고 물었어."

"..."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건 그 노인의 생사 그 자체에 대한 궁금증 정도가 아니었다. 어택은 이미 창공이 그 노인에게 어떤 일을 저질렀을 거라고 심증을 굳힌 상태라는 의미였다.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던 창공은 결론을 내렸다.

"글쎄요. 모르죠."

운이 좋으면 절벽에서 떨어졌더라도 살아있을 수도 있으리라. 어쨌든 창공은 빈말로라도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인정해버리면 그 살인을 정당화했던 논리 중 하나가 무너지는 셈이었으니.

오히려 지금 고민되는 건 어택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관한 문제였다. 만약 이 일로 그가 자신에게 적대감을 표출하고 일행들을 선동한다면?

다른 일행들은 차치하고서라도, 그와 일대일로 맞붙어 이길 수 있을 것인가? 근접전으로는 가능성이 그다지 없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까지 상정하던 창공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어택은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적대적인 느낌은 나지 않았다.

"고맙다, 창공아... 우리가 못 하는 일을 해 줘서... 어쩌면 너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는지도 몰라."

"무슨 말인지..."

창공은 속으로 안도하면서도 끝까지 부정했다. 어택도 거기에 대해 별말은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나도 모르겠고. 나도 참 뭔 소리 하는 거냐."

어택은 이 일을 없던 일로 만들기로 했다. 창공도 그것을 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린이 의심했었다는 이야기가 목구멍 밖으로 나올 뻔했지만, 그는 그런 말로 괜히 단합을 깰까 두려워 그것도 묻어놓기로 했다.

입을 다물어서 없는 일로 만드는 건 익숙했다. 그가 몸담았던 직장인 군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어택이 생각하기에 이 일은 없는 일로 만드는 것이 더 유익한 것이었다.

"뜬구름 잡는 소리 해서 미안. 그냥 너랑 담배나 같이 피려고 부른 거야.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도 들을 겸 해서..."

"일단 그 사제가 오면 이야기를 들어봐야죠.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그들은 자연스럽게 주제를 돌렸다.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온 것처럼. 창공은 결백했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도 계속 결백할 생각이었다.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는 거야?"

"이쪽 세계에서 우리가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네가 고생이 많네. ...그래. 알았다. 내가 뭐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하고. 나도 너 도와주려고 노력할 테니까."

"도와주고 있잖아요. 담배로."

두 사람은 낄낄대며 짧아진 꽁초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자리를 떠났다. 여관 뒤편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거의 불타버린 꽁초 두 개를 빼고는.

"좋은 아침이에요."

아스터가 일행을 바라보며 밝게 인사했다. 그녀가 여관에 찾아오자 일행들은 한 방에 모여서 둥글게 모여앉아 이름과 나이를 소개했다.

그러고 보니 경황이 없어 아스터와 통성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더랬다. 그녀는 스스로를 21세의 아퀴탄 출신 사제라 소개했다.

"성함이 서창공... 제 무례를 용서하세요. 그렇다면 무슈, 성과 이름이..."

짐작은 했었지만 이 세상에선 이름이 먼저, 성이 뒤에 오는 것이 보통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한국식 작명은 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으리라.

"성이 먼저 옵니다. 서. 이름은 창공. 그리고 그렇게 일일이 무슈라고 붙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좀 어색해서..."

"그렇군요... 성이 맨 앞에 오는 건 노르마크식 작명법과 유사하네요."

"아, 이렇게 이름을 짓는 나라가 이 세상에도 있습니까?"

"네... 조금 이따가 지도에서 보여드릴게요. 그럼 나머지 분들은 성함이 어떻게 되실까요?"

그렇게 상호간에 간략히 소개를 마치고, 아스터는 품 속에서 종이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정말 간략하게 그려진 세계지도였다.

지도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두 대륙과 하나의 큰 섬이었다. 어느 쪽이 북대륙이고 또 남대륙인지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자, 지도를 가져왔어요. 우선 여기가 우리가 지금 있는 누베 남작령이고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짚었다. 비바 연방이라 표시된 나라의 남쪽 경계에 위치한 곳이었다.

아스터는 현 위치를 짚은 손가락을 지도 위에서 죽 미끄러뜨려 북대륙 쪽으로 길게 뻗어진 반도 끄트머리에서 멈춰세웠다.

"여기가 옛 아이카나라고 불리는 곳이에요. 이곳에서 아이카나 해협을 건너면 바로 북대륙이죠. 일단 옛 아이카나까지 여러분들을 데려다 드릴 거예요. 여러분들은 거기에서 배를 타고 알펜시아로 건너가시면 된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북대륙 전체가 여러분들에게 호의적일 거라고는 못 하겠어요. 부끄럽고 죄송하지만요."

아스터는 솔직히 털어놓았다. 오히려 그 점이 창공에겐 가산점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창공은 북대륙으로 건너가면 모든 일이 다 술술 풀릴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적어도 저희 교단이 존재하는 한, 여러분 에트로지를 노예로 부리거나 차별하는 행위는 좌시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죠."

일행들의 눈빛이 한 층 더 진지해졌다. 북대륙으로 한시라도 빨리 건너가는 것.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던 목표가 기정사실로 변한 것이다.

지도를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하던 아린이 아스터에게 말했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어떤가요? 안전한가요?"

"아쉽게도, 비바 연방의 정세가 불안정해요. 공화주의자들이 대거 난동을 일으키고 있거든요. 때맞춰 도적들도 준동하고 있는 터라... 다만 영지 중심이나 도시 안까지 침범하고 있진 못하기 때문에 공도를 따라가는 게 유일한 방안이 될 거예요. 충돌은 각오해야 하겠지만요."

창공은 그녀의 말을 듣고서 시위를 항상 메기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걸어가면 한 달이 조금 안 되게 걸리겠지만, 다행히 비바 주교구에서 마차를 지원받았거든요. 일주일 안쪽으로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거예요."

"오오..."

히사시가 감탄했다. 다른 일행들도 소리 내어 감탄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내심 흡족스러워했다. 정말인지 아스터와 만난 것은 천운이었다.

"그나저나 공화주의자라니... 멋지네요."

아린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스터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멋진... 가요? 전 잘 모르겠던데."

"...아. 죄송해요. 딱히 의미는 없었어요."

아린이 황급히 발언을 정정했다. 만약 이 세상 사람들이 왕정을 지극히 정상적인 체제로, 공화정을 역도들이나 품을 발상으로 여긴다면 그녀의 발언은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친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다행인 점은 아스터는 별생각이 없었는지 추궁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제가 방금 말씀드린 노르마크는 여기고요..."

그녀는 북대륙에서도 맨 북쪽 끝에 있는 나라를 가리켰다. 영토는 그럭저럭 넓었지만 위아래로는 산맥에, 양옆으로는 이웃 국가에 꽉 가로막힌 모양이었다.

"혹시 질문 있는 분?"

"교단의 사제 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세상엔 다른 교단도 있습니까?"

창공의 질문이었다. 아스터는 고개를 저었다.

"유일신 펠라고스 님의 종인 저희 교단 외에 다른 교단은 존재할 수 없답니다."

"그렇다면 다른 질문인데, 교단에서 저희들을 에트로지라고 명명했다죠?"

"네."

"교단에서는 저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겁니까? 저희가 왜, 어떻게 이 세상에 오게 되었는지 교단에서 파악하고 있습니까?"

"음... 제가 알기로는 아니에요. 다만 교황 성하께서 어느 날 기도 중에 복된 계시를 받으셔서 여러분들이 등장할 것을 예측하셨죠.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해요..."

창공은 골똘히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 기도 중에 계시를 받았다는 말은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웠다. 아마도 교황이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 그가 교황청에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고 교황이 만나줄 리가 없었고, 또 만난다 하더라도 순순히 진실을 말해줄 거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어쨌든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힌트를 얻으려면 교황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는 것은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저... 멍청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히사시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이 세상엔 마법이나 몬스터가 있는 겁니까?"

"마법이요? 네. 물론이죠. 몬스터는 완전히 토벌되어 없어진 지 오래지만요. 500년쯤... 되었던가요."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며 히사시를 바라봤던 일행들이 아연실색했다. 마법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헛소린가.

아니, 헛소리일 것도 없었다. 그렇게 치면 지구에서 멀쩡히 살다가 눈을 떠보니 이세계라는 이 상황도 헛소리란 말인가?

"오... 설마 사제님들도 신성력을 발휘해 치료를 하시고..."

"어라? 잘 아시네요?"

"아니... 그... 게임이나 소설에서..."

"게임... 이요...?"

창공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마법도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마법사들이라면 그들이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지도 몰랐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스터에 대한 욕심. 어디까지 치료가 가능한진 모르겠지만, 일행들 중에 치료사가 하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임이 자명했다.

"갑자기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만."

그가 참지 못하고 아스터에게 물었다.

"마법사들은 어디 가서 만날 수 있습니까?"

"그걸 사제인 저한테 물으시면 좀 곤란한데요... 일단 최대한 대답해 드리자면 마법사들은 나르보넨 산맥에 있는 웨리라는 곳에 모여 산답니다. 마탑이라고도 부르죠. 다만 그곳엔 외부인의 출입이 불가능해요."

"아스터 씨는 교황청 직속 사제라고 하셨죠. 혹시 그곳에 출입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죄송하지만 불가능해요."

그녀가 칼같이 대답했다.

"교단에 소속된 사제는 지위와 상황을 막론하고 마탑에 출입할 수 없기 때문에... 물론 마법사들도 교황령에 출입할 수 없지만요. 음... 그 외엔 대학의 교수라거나, 왕실의 자문단으로 일한다고도 들었어요. 대부분은 웨리에서 연구 활동을 하겠지만요."

결국 이것도 운에 맡기는 수밖엔 없었다. 그래도 교황령에 찾아가 교황과 일대일 면담을 하는 것보다는 쉬워 보였다.

"치료가 가능하시다고 하셨는데."

"네."

아스터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라고 하시면 어느 정도의 상처까지 가능한 겁니까?"

"내장에 생긴 병이라던가 사지가 절단된 게 아니라면... 앗, 이건 제 이야기지만요. 대주교님들이나 그 이상 되시는 분들이라면 그런 것들도 치유가 가능하시겠죠. 하지만 저희 사제들의 치료는 응급처치에 불과해요. 혹여 다치게 되시면 성당이 아니라 의사를 찾아주세요."

응급처치만 되더라도 썩 괜찮지 않은가? 다만 교황청 소속인 아스터를 데리고 다닐 명분이 없으니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스터는 더 질문이 있냐는 듯 주변을 둘러봤지만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묻고 싶은 것이야 다들 많았지만 질문이 머릿속에서 뒤엉켜 정리가 잘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자신에게 말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럼 출발하죠. 여관 바깥에 마차를 대기시켜놨어요."

그렇게 일행은 여관을 나섰다. 본격적인 미지의 세계로 한발 내딛는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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