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살아가는 방식 (4)
* * *
창공을 흡족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고개를 넘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도중 나유와 어택이 아스터에게 다가가 검술을 가르쳐달라 청한 것이다.
아스터는 고개를 끄덕여 허락의 뜻을 나타냈지만, 동시에 우려도 표했다.
"제 검술은 극단적으로 찌르기에 치우쳐진 검술이라, 여러분들이 저와 같은 무기를 사용하시지 않으면 저에게 배우셔도 그다지 효용이 없을 것 같은데요..."
그녀는 자신의 검을 에스터크라 칭했다. 그것은 마치 펜싱 경기에서 사용하는 검처럼 뾰족하고 낭창낭창하게 휘어졌다.
확실히 그녀에게서 배운다 한들 바스타드 소드를 잡은 나유나 부지깽이를 잡은 어택에겐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배움을 청했다. 하나라도 모르는 것보단 낫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아스터도 그들의 의기를 장히 샀는지 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바로 진검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근처에서 주워 온 적당한 나뭇가지를 손에 쥔 셋은 바로 대련을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대련을 하는 것은 좀 더 검술에 대해 익힌 다음이 되겠지만, 시간이 없다는 것을 유념하던 아스터는 이것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결론 내렸다.
일단 잡고서 휘두르게 하고 미흡한 부분을 즉각 즉각 교정해 주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아얏!"
나뭇가지 끝에 명치를 찔린 나유가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일어나세요. 빨리."
아스터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 내용은 가차없었다. 그녀에 따르면, 사제들은 수련 과정에서 무기를 다루는 법에 대해 배운다고 한다.
적당한 취미나 심신 단련 정도로 배우는 게 아니라 전장에 투입되더라도 한 명의 전사로서 싸울 수 있는 수준이 될 때까지 말이다.
현대 지구와는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제들의 방식이었다.
"으윽...!"
어택도 아스터에겐 당해내지 못했다. 그녀는 상대방을 쓰러뜨린 뒤 자세라던가 무기를 휘두르는 법에 대해 지적했는데, 나유와 어택은 그녀의 말을 주의 깊게 경청했다.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는 그녀의 말과는 달리 수업은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었다.
심지어 히사시도 수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 모습에서 뭐라도 하겠다는 열의가 느껴졌다.
나머지 한 사람. 담배를 피우던 창공의 눈에 들어온 건 바로 아린이었다. 그녀는 바이올린과 활을 끌어안고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창공은 꽁초를 바닥에 던진 다음 발로 비벼 불을 껐다.
"아린아."
"아... 오빠..."
아린의 표정은 복잡했다. 당혹감과 미안함, 답답함으로 물든 그녀의 얼굴.
"그래서 도대체 아까 뭘 말하고 싶었던 거야? 살인은 나쁘다? 물론 좋은 건 아니지. 근데 여긴 우리가 살던 한국이 아니잖아. 현대 법치국가가 아니라고. 정글이야, 정글. 방금도 봤잖아. 내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죽이지 않으면, 죽어. 공권력의 개입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어떻게든 자력구제가 필요했어."
"네. 오빠 말이 맞아요. 하지만 오빠는 이렇게도 말했잖아요. 우리는 지구로 돌아갈 거라고."
"맞아. 꼭 돌아갈 거야."
"그냥... 걱정이 됐어요. 언제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진 모르겠어요. 아마 조만간은 아니겠죠. 결국 우린 사람을 죽이게 될 거예요. 나유 언니도, 택이 오빠도, 고다 씨도. 그리고..."
그녀가 차마 하지 못한 말은 자신도 결국 누군가를 죽이게 될 거라는 말이었을까. 하지만 창공은 정말로 그렇게 될지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이런 나약한 사고방식으로 퍽이나.'
아린의 눈빛이 우울해졌다.
"정글. 네. 맞아요. 정글이에요. 정글에는 정글의 법칙이 있겠죠. 그런데 오빠. 제가 걱정되는 건 그거예요. 정글에 완전히 적응해버리고, 정글에 무감각해진 우리가 지구에 돌아간다면... 그때도 우리는 우리일까요."
"탁상공론이야."
창공은 그녀의 말을 일축했다.
"그런 고민은 우리가 무사히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해야지. 난 지구로 돌아갈 거야. 그러기 위해선 얼마든지 사람에게 활을 겨눌 수 있고."
"반드시 죽일 필요까진 없잖아요. 혹시 그 사람을 제압할 수는 없었나요?"
"말은 쉽겠지. 말하는 너는 쉽겠지."
"죽이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을 잠깐이라도 고려해 봤어요?"
"정신 차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극단적인 해결책이 필요해. 넌 알고서 말하는 거야? 네가 말한 것 같은 방법은. 내가 하지 않은 방법들은. 그 기회비용이 우리 목숨이라고. 불확실한 양자 생존과 확실한 내 생존을 저울질한다면 당연히 후자가 더 무거워. 그리고 그 이득은 너도 취하고 있다고. 그래, 남들이 무기를 잡을 때 편히 악기를 잡고 말하는 너."
창공은 손을 들어 비 오듯이 땀을 흘리고 있는 나유와 어택을 가리켰다.
"지금 네가 한 말은 저 둘을 우습게 만들고 있는 거야."
"그런 식으로 말한 게 아니잖아요. 오빠 말은 너무 극단적이에요."
"아린아."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했다.
"그런 생각 품는 건 좋은데, 다른 사람들 의욕 떨어지게 하지는 마. ...좋아. 너보고 무기 잡고 앞에 나가서 싸우라고는 안 할게. 근데 넌 일행에 어떤 식으로 기여할 건데? 우리 마음속에 있는 삼각형? 빙글빙글 돌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는 역할? 그건 안 돼."
아린은 대놓고 그녀를 비꼬는 소리에도 침묵했다. 대신 그녀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조금 더 우울하게. 이상하게 그 표정을 바라보자 창공은 마음속이 약간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좀 되었으면 좋겠어. 넌 머리 좋으니까 내 말 무슨 말인지 알 거라고 생각해. 만약에 그것도 못 한다고 하면... 난 잘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는 그 말을 남기고 그녀를 떠났다. 담배를 더 태울 생각이었다. 한 개비 한 개비가 피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흐응... 흐아아앙..."
저녁에 도착한 마을의 여관. 모두가 잠든 밤, 침대 위에 네 발로 엎드린 나유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녀에겐 이제 고작 두 번째 섹스였지만 첫 경험에서 보였던 수줍음은 대부분이 희석된 상태였다.
누가 들을 것을 걱정도 하지 않는 양 참지 않고 신음소리를 내는가 하면, 훤히 드러나는 항문이 부끄럽지도 않은 것처럼 후배위에도 선선히 동의를 한 나유.
그녀는 벌써부터 하나의 암컷으로 순조롭게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후우..."
부드럽고 따뜻한 나유의 가슴이 두 손안에 가득 들어왔다. 창공의 손 크기에 딱 맞는 그녀의 가슴은 마치 그를 위해 만들어진 것만 같았다.
엄지와 검지로 그녀의 젖꼭지를 비벼주면 질이 꼬옥 조여오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녀의 몸은 시각적으로도 만족스러웠다. 특히 뒤에서 바라보는 광경이 좋았다. 탄탄하고 매끈한 엉덩이, 그 사이로 수줍게 다물린 뒷구멍, 곧게 뻗은 등뼈와 머리카락 사이로 하얗게 드러나는 목덜미.
허리를 멈추고 이 광경을 한 번 훑어보니 그 시선이 느껴졌는지 질이 다시 한번 조여져왔다. 나유의 보지는 그렇게 끊임없이 사정을 재촉하고 있었다.
창공은 참 이율배반적인 보지라고 생각했다.
사랑한다고 외치며 꼭 안아오듯 자지를 조이는 보짓살. 빨리 자궁에 정액을 잔뜩 처넣고 싶어지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최대한 길게 이 느낌을 즐기고 싶게 만들기도 했다.
사정하지 않고 하루 종일 그녀를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참 괘씸한 노릇이었다. 어느 쪽도 쉬이 선택하지 못하도록 하는 암컷이라니. 창공은 어떻게 나유를 혼내줄까 생각하다가, 검지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목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쭉 아래로 훑어내렸다.
"크흐응..."
나유가 작게 몸을 떨었다. 이윽고 그의 손가락은 골반을 지나, 엉덩이 사이로 미끄러져 항문에 닿았다. 손가락이 항문을 스칠 때 나유는 반사적으로 괄약근을 조였다.
잠깐 스치고 지나가겠지, 생각했던 그녀는 이윽고 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에 놀란 목소리를 냈다.
"하앙...?"
뒷구멍에 지긋이 느껴지는 압박감. 안쪽으로 파고들진 않았지만, 어떻게 보면 보지보다 더 부끄러운 곳을 자극받고 있다는 부끄러움과 느껴선 안 될 것을 느끼는 듯한 감정에서 오는 배덕감이 그녀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우리 나유는 여기가 좋아?"
창공이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아직 그곳으로 쾌감을 느낄 단계는 아니었기에 나유는 침대보에 머리를 박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댔다.
"거... 거긴... 건드리지 마아..."
"자꾸 그러니까 더 건드리고 싶은데? ...어디, 우리 나유 이쪽은 어떻게 생겼나 한 번 볼까?"
"앗..."
가슴을 어루만지던 손이 떨어지고, 두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엉덩이를 가득 벌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항문이 그의 시선에 훤히 드러난다고 생각하니 아무리 나유라도 부끄러움에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창공을 제지하지도 못했다. 만약 싫어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녀의 모든 것을 그에게 주고 있다는 행복감 때문에.
두 감정이 나유를 끊임없이 괴롭혔고, 거기에서 오는 혼란은 그녀에게 의외의 말을 내뱉게 했다.
"사랑해..."
당신을 사랑해요. 날 버리지 말아 줘요. 내 모든 걸 가져가고 있잖아요.
"우리 나유는 나 사랑해?"
창공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자꾸만 뒷구멍을 괴롭혔다. 이해가 가는 듯하면서도 가지 않았다.
도대체 사랑이란 게 뭐길래 남자와 자 본 경험이라고는 고작 두 번뿐인, 처녀 딱지를 막 뗀 여자가 항문을 공략당하면서도 순순히 따르는지...
"사랑해. 영원히..."
"그렇게 사랑하면 여기로도 할 수 있겠네? 내가 하고 싶다고 하면."
손가락이 마치 파고들 것처럼 압박해왔다. 섹스고 뭐고 뺨 맞을 수도 있는 질문이었지만 창공은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나유의 대답은 과연 그의 생각대로였다.
"응... 너라면... 네가 원한다면..."
"나유야."
그는 작게 떨리는 나유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무리하지 마. 네가 싫으면 안 할게."
"싫은 건 아닌데에..."
"난 널 아끼고 싶어."
사랑하는 연인으로 아껴주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는 나유를 가능한 범위 내에선 최대한 배려할 생각이었다. 그녀의 보지를 내버려 두고 애먼 곳에 삽입할 이유는 없었다.
아직 그녀는 개발 중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퍼포먼스를 가끔 해줘서 사이가 더 돈독해진다면 나쁠 것도 없지 않은가?
"창공아... 넌 정말... 하응...!"
찔꺽.
자지가 그녀의 안에서 빠져나왔다. 창공은 나유를 침대 위에 똑바로 눕혔다. 마무리는 정상위로 할 생각이었다.
끝까지 그녀를 뒤로 맛보지 못하는 것은 아깝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었으니까.
"마지막은 서로 마주 보면서."
"응...! 키스해 줘... 사랑해..."
네가 원한다면.
창공은 그녀에게 입 맞추며 다시 자지를 찔러 넣었다. 나유가 두 팔과 두 다리로 그를 꽉 끌어안았다.
입이 막혀버리자 온몸으로 사랑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죄책감? 그건 딱히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창공은 나유에게 사랑한다고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었다. 적어도 자기 곁에 있는 여자에게 그런 종류의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그게 창공이 생각하는 자신의 의무였다. 그렇지 않은 이상, 그가 그녀에게 딱히 미안한 감정을 지닐 이유는 없었다.
대신 그는 그녀에게 황홀한 밤과 사랑하는 사람을 제공해 주고 있었으니까. 도움이 많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믿음직한 주변인으로 아껴줄 의향이 있었으니까.
그 결과 언젠가 나유도 전 여자친구처럼 차갑게 식어버린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나유야... 나 슬슬..."
올라오는 사정감이 그를 상념에서 일깨웠다. 쾌락에 잠식된 나유의 얼굴에 한 줄기 갈등이 침범했다.
질내사정을 갈구하는 동물적 본능과 아기가 생길 위험에 대해 열변하는 이성.
"안전한... 날이긴 한데..."
결국 나유는 본능에 져버렸다. 딱 잘라서 이야기하지 못하고 저렇게 돌려서 말한다는 건 결국 안에 사정해달란 뜻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창공은 이런 상황에선 지극히 이성적인 남자였다.
"아까 말했지?"
그가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널 아껴주고 싶다고."
"...고마워."
나유가 눈물 한 방울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생에서 처음 만난, 그녀에게 가족과도 같은 사람. 그 사람이 그여서 그녀는 너무나 행복했다.
창공은 다시 허리를 힘차게 움직였다. 나유는 아래에서 느껴지는 쾌감과 충만감에 눈을 꼭 감고 신음을 흘렸다.
"앗, 앙. 하악... 으응...! 윽... 크응...!"
"으읏..."
보지에서 뽑혀 나온 자지 끝에서 정액이 쏘아졌다. 창공은 그녀의 아랫배에 대부분의 정액을 흘렸다. 마치 자궁에 정액을 넣지 못한 것이 분하기라도 한 것처럼.
나유는 온몸을 떨며 잔존한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
"후우..."
이윽고 뒷정리가 끝난 그들은 같이 침대에 걸터앉아 맞담배를 피웠다. 정말인지, 나유는 만족스러운 여자였다.
애정 가득한 담배 키스를 받을 때면 다시 그녀를 눕히고 엉망진창으로 유린하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다.
하지만 급할 건 없었다. 천천히. 천천히. 어차피 이 세상에 있는 이상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질 수도 없으니까.
"그런데 창공아."
"응?"
나유가 조심스레 말했다.
"아린이 있잖아... 너무 미워하지는 마."
"내가 언제 미워했다고?"
미워한 적은 없다. 미워지려고 하는 게 문제지.
"그러면 다행이긴 한데... 아린이도 많이 답답할 거야. 아까 침대 위에 웅크리고 앉아서 생각 많이 하더라. 밥도 잘 못 먹었고."
"...에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좀 곤란해. 봐. 너랑 택이 형은 아스터 씨한테 싸우는 법을 배우고, 히사시는 자기가 요리할 줄 안다고 했으니까 여차하면 잡일에 써먹을 수도 있어. 그런데 아린이는? 솔직히 지금 보면 어떤 식으로 기여를 할지 모르겠단 말야."
"그치만 아린이도 뭔가 생각이 있을 거야... 아, 맞다. 아린이가 침대 위에서 웅크렸다고 했잖아. 그러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연주를 하더라고. 너무 듣기 좋은 거 있지."
"음... 그래서?"
"신기하지 않아? 아린이 말로는 바이올린이랑 거의 비슷하다고 하긴 했는데, 그래도 다른 악기잖아. 일행들 중에 악기 다루는 사람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창공은 해적 단원 중에 악기를 다루는 해골바가지가 나오는 어느 만화를 떠올리고선 쓴웃음을 지었다. 차라리 그 해골은 검을 잘 쓰기라도 하지.
그나저나 나유는 왜 이렇게 아린을 변호하는 걸까. 그것도 뜬금없이. 그와 아린 사이에 흐르는 불편한 기류를 감지하기야 했겠지만...
'아린이도 곁에 있는 사람으로 보는 건가.'
나유는 정이 많다. 거기에는 성장 과정에서 생긴 트라우마가 영향을 끼쳤다. 한 번 사람의 손을 잡으면 어지간해선 놓지 않으려고 한다.
어택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일행의 단합에 기여하는 셈이다.
어택이 일행들 간에 결정적인 분열이 생기기 전에 멈추는 스토퍼 역할을 한다면, 나유는 일행을 단순한 사람들의 모임에서 그 이상의 무언가로 끈끈하게 연결해 주는 본드 같은 역할을 맡으려 한다고 볼 수 있었다.
여기서 창공에게 장난기가 슬며시 치밀어 올랐다. 어쨌거나 나유는 여자였다. 창공을 사랑하는 여자.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의 독점욕은 무서운 법이다.
"나유야. 그러면 하나 물어볼 거 있는데... 만약이다?"
"응."
"내가 아린이랑 사귄다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재밌잖아. 같은 학과 1년 차이 선후배고. 꽤 괜찮은 CC로 보일걸? 아, 너한테도 가끔 신경은 쓸게."
"윽...!"
나유가 눈을 감고선 팔짱을 꼈다. 창공은 흥미진진하게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난... 음..."
"안 되겠어?"
"아니. 괜찮아. 아린이랑 커플이 돼도. 내가 말했잖아. 지금 나한테 찾아온 봄이 영원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한다고. 그런데 나, 그냥은 안 끝나."
"무슨 말이야?"
"난 말야. 봄이 내게서 떠나간다고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어떻게든 다시 되찾을 거라고. 널 계속 유혹할 거야. 내가 널 더 많이 사랑해 줄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떠나가도."
그게 너로구나.
창공은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녹을 생각이 없는 얼음. 식을 생각이 없는 불. 이율배반. 모순적인 두 삶의 방식.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어울렸다. 너무나 다른 둘이기에 함께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응?"
"아니, 아냐."
부모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을, 사랑을 느끼기 전에 부모를 잃은 너에게서 느낄 수 있을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