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떠돌이들-20화 (20/178)

〈 20화 〉 보름달이 뜬 밤바다

* * *

"진리는 나의 빛.""진리가 그대를 자유케 하길."마법사들끼리 주고받는 인사말이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마법사들은 스스로를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로 여기고 있다.따라서 그들에게 손에서 불을 뿜어보라던가 하늘을 날아보라던가 같은 말들은 제발 하지 않기를 바란다. 마법사들은 그것을 큰 모욕이라 여기기 때문이다.어찌 됐건 진리를 탐구한다는 그들은 불경하게도 하늘 위에 계신 그분을 신앙하지 않는다.진정한 진리를 찾기 위해선 인간이 신에게서 떨어져 자립할 필요가 있다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그들은 신앙이 진리의 탐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심지어 니케라는 마법사는 "신은 죽었다! 우리가 그를 죽였다!"ㅡ자비로우신 주님, 부디 그들을 용서하소서ㅡ라는 불경한 언사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이런 문제 있는 태도 때문에 마법사들은 교단과 끊임없이 반목하다가 최종적으로는 상호 간에 그 어떠한 간섭을 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대표적인 예로 성직자들에겐 그 어떠한 사유건 웨리의 출입 허가가 나오지 않고, 마법사들 또한 교황령에는 출입하지 못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마법사의 육성 과정은 외부에 공개되어 있지 않다. 다만 단편적으로 알려진 소문들을 취합해 본다면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제자를 찾는 마법사가 거리를 돌아다니다 열 살이 넘지 않은 재능 있는 아이를 발견하면 동의하에 흔히 마탑이라고 부르는 마법의 도시, 웨리로 데리고 가서 교육을 시킨다는 것이다.외부인들에게 알려진 사실은 아쉽게도 이것이 전부다. 어떠한 교육을 받는지, 교육의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기간을 유추할 수 있는 힌트는 존재한다.모 왕실 자문 위원에 따르면, 바깥출입이 완전히 자유로운 마법사들은 교수 이상의 직급을 가진 자들이라고 한다.그리고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비록 표본은 적지만 웨리 바깥에서 활동하는 교수들은 아무리 젊어도 30대 후반의 나이인 것이 밝혀졌다.통상적인 교육 과정을 마치면 바로 교수로 임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가정했을 시, 수련생들이 '마법사'라는 이름을 쓸 수 있기 전까지는 대략 10년에서 20년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이렇게 보면 필자는 마법사가 전혀 부럽지 않다. 웨리가 얼마나 즐거움으로 가득한 도시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공부만 죽어라 하다 30년은 지나야지 바깥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아무튼 교수 이상의 마법사들은 그 뛰어난 재능 때문인지 각 국가의 왕실 자문 위원단이나 일반 대학의 객원교수로 초청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듣기로 마법사들은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 이외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럴 거였으면 뭣하러 그 자리를 수락하는지 필자로서는 도통 이해가... ­에드윈 테일튼 저, [신을 저버린 마법사들] 中­

끼룩대는 갈매기 소리. 짭짤한 바다 내음.

5일간의 여정 끝에 일행은 드디어 옛 아이카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적은 처음 만났던 초보들이 끝이었고, 그 뒤에 노상에서 마주친 이들은 검문검색대가 전부였다.

아스터가 없었더라면 아마 여기까지 올 수 없었으리라.

창공이 일행들의 면면을 슬쩍 보니 다들 감격에 벅찬 표정이었다. 이제 이곳에서 배를 타고 북대륙으로 건너가기만 한다면 일단은 훨씬 안전해지는 셈이었으니.

옛 아이카나는 남대륙에서 북대륙으로 튀어나온 커다란 반도의 북동쪽에 있었고, 거기에서 정동 방향으로 간다면 알펜시아의 항구도시 텔룸이 위치했다.

해는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달이 뜨는 방향으로, 밤이 몰려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그곳에 빛이 있었으니까.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불편한 여행이었을 텐데, 잘 참아주셔서 감사해요."

아스터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감사하단 말은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감사를 표해야 할 쪽은 응당 창공 일행이었다.

"아닙니다. 사제님 덕분에 저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어택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 창공이라고 다르진 않았다.

그도 아스터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 다음, 그녀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두 손이 맞잡아졌다.

"다음에 저희가 만날 수 있을까요."

"전에 있었던 만남도, 지금 있는 헤어짐도 주님께서 주선하시는 것. 그분께서 다시 우리를 만나게 하시려거든... 설령 우리가 대륙 끝과 끝에 떨어져 있다 해도 다시 만나게 되겠죠."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 어려운 상황에 처해 계신다면, 돕겠습니다."

당하면 반드시 갚아주는 성격인 창공. 그의 은혜 갚기는 원수갚기만큼 철저하진 않았지만, 대부분은 갚아주려 노력하는 편이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말씀만으로도 든든해지네요. 제가 어제 드린 것은 잘 가지고 계신가요?"

"네. 그 또한 감사드립니다."

아스터가 어제 그들에게 건넨 것. 그것은 한 장의 종이였다. 그 종이에는 교황청 복음화성 사제 아스터 퐁파두르가 그들의 신분을 보증한다는 내용과 함께 허락하는 한 최대한의 편의를 베풀어주길 간청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내용 끝에다가 멋들어진 솜씨로 어떤 문양을 그렸는데, 성당에 찾아가 이것을 보여준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창공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교단 인사들끼리 통하는 어떤 상징인 것 같았다.

"하루만 더 우리랑 같이 있다가 가요. 네?"

나유가 촉촉한 눈망울로 아스터에게 말했다. 그새 정이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스터는 미소 지으며, 동시에 단호하게 거절의 뜻을 나타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트리스카 탄광에서 여러분들과는 따로 탈출한 에트로지 분들이 걱정되는군요. 한시바삐 출발해야겠죠. 가서 만약 살아계시다면 한 분이라도 더 구출하는 것이 저의 현재 소명이니까요."

"아..."

아린이 감명받은 표정으로 아스터를 바라봤다. 아스터 또한 미소 지으며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여러분들께 아직 못 드린 게 있었네요."

그녀는 전에 들렀던 마을에서 구매한 가죽 주머니를 품에서 꺼냈다. 꽤 묵직해 보이는 게 안에 무언가가 들어있는 모양새였다. 창공이 그것을 받아 끄러보니 안에는 주화가 가득 들어있었다.

"약소하지만, 얼마 담아 두었답니다. 꼭 아껴 쓰셔야 해요?"

"아스터 씨..."

"여러분이 이곳 다이셀리시아에 오셔서 처음 마주한 것은 인간의 적대감이었지요. 원망을 많이 하셨을 거예요. 하지만 신께선 늘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신답니다. 그것은 제가 드리는 게 아니에요. 주님께서 내리신 은총을 미천한 사제인 제가 전달한 것이죠. 부디 세상의 차가움보다, 따뜻함을 더 많이 느끼시는 앞날이 되길 간절히 기도할게요."

아스터는 깊숙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만나지 않게 하시려거든 하늘에서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영원한 축복이 함께 하기를,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하시려거든 지상에서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영원한 행복이 가득하기를."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마부석에 올라 그대로 마차를 몰고 떠났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살아있는 동안 다시 만나는 것도, 만나지 않는 것도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기에.

아쉬움은 길 위에 남겨두고 소명을 완수하러 떠나는 것이다.

창공 일행은 누구 하나랄 것 없이 그녀의 뒤를 묵묵히 바라봤다. 인파와 건물이 그들과 그녀의 사이를 가려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나유와 히사시는 눈물을 글썽거렸고, 아린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우리도 이제 움직이죠. 배 타러 가야 하니까."

하지만 창공은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었다. 뱃삯은 아스터가 내주었고, 따로 돈주머니도 받았지만 이 돈은 무한정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언젠간 바닥을 드러낼 주머니. 그전에 북대륙에서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기에,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린 어택은 작별의 여운에서 벗어나 다른 일행들을 독려했다. 항구에는 배 여러 척이 정박해 있었다.

그리고 그 배들 사이로 보이는 수평선 위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북대륙이었다.

"이제 진짜 가는 거네요."

히사시가 중얼거렸다. 기대감도 있었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막막함이 더 컸다. 북대륙이라고 기회의 땅이기만 한 것은 절대로 아니리라.

그들의 편의를 봐주던 아스터가 떠났으니 이젠 정말로 모든 일을 그들 스스로 처리해야 했다.

"텔룸으로 가는 손님들! 텔룸으로 가는 손님들은 이쪽으로 오셔서 표를 보여주십시오! 곧 배가 출항합니다! 화물은 인당 하나씩! 두 개 이상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항구의 직원이 현문 앞에서 크게 외쳐대고 있었다. 보아하니 저 큰 범선이 그들이 타고 갈 배인 모양이었다.

"다섯 분! 확인했습니다! 편안한 여행 되십쇼!"

일행은 그에게 표를 보여준 다음 현문을 타고 올라가 배에 승선했다.

처음 비바 연방 내로 들어갈 때라던가 공도 중간중간에서 검색대가 까탈스럽게 군 것과는 달리, 제 나라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에겐 특별히 검사를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곧 출항한다는 것이 빈말이 아닌 듯, 갑판 위의 선원들과 육상 요원들이 홋줄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스터 씨가 한나절 정도 걸린다던데, 일단 우리 선실에다가 짐이나 좀 풀어놓을까요?"

아스터에게 듣자 하니 이 세상의 시간 또한 24진법과 60진법을 쓰는 모양이었다. 다만 여전히 창공의 전자시계는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지 못했다.

듣기로 100년 전 마탑 웨리의 마법사들이 시계를 고안했다는데, 아직도 시계가 전 가정에 보급될 만큼 보편화가 되지 못한 탓이었다.

결국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려거든 큰 도시의 관공서라던가 대학에 가야 했다.

오직 그들만이 시간을 분 단위까지 나누어 움직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양의 위치나 평소 루틴에 따라서 행동하는 형편이었다.

그들의 선실은 당연히 갑판 아래에 있었다. 갑판 위의 격실은 스위트룸 두 칸을 제외하면 승조원들, 그중에서도 사관들의 차지였기 때문이다.

좁은 선실 안에는 그물 침대 여섯 개가 벽에 매달려 있었다. 5인실은 없었고, 4인실에 들어갈 수는 없었기에 6인실을 잡은 것이다.

"택이 오빠. 오빠는 맨 아래."

나유가 웃으며 말했다.

"왜? 위로 올라가기 힘들지 않아?"

"오빠 같은 덩치가 내 위에서 흔들거리면 잠도 안 올 거 같아."

그녀의 말은 정말 그럴듯했다. 그들은 도무지 이 그물 침대의 내구성을 믿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일행들 중에서 1, 2번째로 무거운 어택과 창공이 맨 아래쪽을 할당받았고, 중간 칸은 히사시와 아린의 차지였다.

맨 위쪽은 나유였는데, 올라가기 힘들 거라는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쭉 뻗은 기럭지와 탁월한 운동신경으로 제 자리에 잽싸게 누웠다.

"우와... 이거 생각보다 편한데요? 하루 종일이면 몰라도, 한나절이라면야..."

아린이 감탄했다. 그녀의 말대로 그물침대에선 의외의 안락함이 느껴졌다. 정박 중이라 살살 흔들리는 게 오히려 안락함을 제공했다.

"자기 멀미에 약한 사람들, 약할 것 같은 사람들은 빨리 자는 게 좋을걸?"

어택이 누운 채로 말했다. 해군 출신이니만큼 그가 하는 말은 무게감이 있었다.

"지금은 그냥 흔들침대지? 배 뜨면 엄청 흔들릴 거야."

"한나절이라고 했죠?"

나유가 한 말이었다.

"막 해가 졌으니까, 도착하면 자정 정도 되려나? 그럼 잤다가 일어나서 또 자야겠네. 거기 방이 있어야 되는데..."

"항구도시니까 잠잘 곳은 충분히 있지 않으려나. 아무튼 자 둬."

이 세상에도 입국 수속이라는 게 있을진 미지수였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걱정은 없었다.

지구의 그것마냥 신원 조회해가며 거르지는 않을 테고 또 여차하면 아스터가 준 신원보증서가 있었다.

북대륙은 교단의 세가 강하다니 교황청 직속 사제인 아스터가 준 그 문서라면 아마 먹히고도 남으리라는 생각이 있었다.

[전! 계류색! 걷어!]

선원들이 힘차게 외치는 소리가 격실 안까지 들려오고, 본격적으로 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출항한 것이다.

"..."

사위는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다들 잠이 든 모양이었다. 누군가가 코를 고는 소리도 미약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창공은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설렘이나 긴장감 때문에는 아니었다.

니코틴. 니코틴이 부족했다. 담배를 거의 못 피던 탄광 노예 시절에는 어쩔 수 없기도 했고 매일매일이 극도로 지치기도 해서 자리에 눕기만 하면 잠이 솔솔 왔었더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쨌든 돈만 있으면 담배를 피울 수 있었고, 아스터는 그들 일행을 위해 담뱃값을 내는 데 인색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 몸으로.

"젠장."

일몰 뒤 항해 중의 갑판은 위험하다. 현대 지구의 배처럼 배수량이 큰 배들도 기본적으로는 그런데, 이런 범선이라면야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담배 한 모금이 필요했다.

결국 창공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계단을 통해 갑판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아주 어둡지는 않았다. 보름달이 저 하늘 위에서 환하게 아래를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다에 반사되어 산산이 부서지는 달빛.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 바람을 한껏 떠안고 부푼 돛과 사방을 메우는 파도 소리.

환상적인 광경이었지만 담배가 없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담배 피울 곳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창공의 시야에 익숙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바람에 휘날리는 금발머리의 여인. 그에겐 등만 보이고 있었지만 틀림없었다. 아스터 퐁파두르. 레티오키로 떠난다던 그녀가 여기 있었다. 도대체 어째서?

"아스터 씨?"

창공이 무심결에 아스터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흠칫한 그녀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끝으로 갈수록 곱슬거리는 탐스러운 금발. 하늘의 색을 담은 눈동자. 나유보다 더 큰 가슴... 그렇지만 그녀는 사제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어디선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누구시죠."

그녀는 입에 연기가 나는 파이프를 물고서 밑에 다크서클 진하게 새겨진 눈으로 창공을 바라봤다. 그는 그제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아스터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휘영청 뜬 보름달을 배경으로 삼은 그녀는 아스터와 무척이나 똑같이 생겼으나 그 내용물은 아스터가 아니었다. 사실 옷도 아스터와는 달랐다.

우선 그녀는 딱 달라붙는 하늘색 드레스 셔츠에 남색 넥타이를 매고 회색의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머리에는 자그만 검정 고깔모자를 쓴 채였고.

다리에는 하얀 스타킹을 신고 있었는데, 허벅지 위로 그 스타킹을 고정하는 가터벨트의 끈이 치마 끝단과 스타킹 끝단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드러나 있었다.

다만 아스터와 똑같은 점이 있었다. 허리에 칼을 차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른쪽 허리춤에 차고 있다는 점이 달랐지만.

마지막으로 난간에는 검정 로브가 걸쳐져 있었고, 나무로 된 지팡이처럼 생긴 것이 그 옆에 기대어진 상태였다. 아마도 둘 다 그녀의 것이지 싶었다.

"실례했습니다. 이름은 서창공입니다."

"이름이... 설마 에트로지?"

"저희를 그렇게 부른다더군요."

그녀는 파이프를 문 입을 연신 뻐끔거리며 창공을 바라보았다.

"륀 퐁파두르. 웨리의 교수라고 하면 아실런지."

"마법사?"

"어느 정도는 이쪽 세계에 적응하신 것 같네요. 그것보다 방금 부른 이름은... 혹시 저와 아주 똑같이 생긴 사람을 알고 계시나요?"

창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터 퐁파두르. 마탑에 공부하러 떠난 언니가 있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혹시 아스터 씨의 언니 되시는지...?"

"맞아요. 제 동생은 어떻게 알고 계시죠?"

"한동안 같이 여행했었습니다."

"아... 그 바보같이 착한 아스터가 어려움에 처한 당신을 북대륙으로 인도했나 보군요. 그나저나 한동안 같이 여행했었다는 말은, 그 애는 아직도 남대륙에 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나 참. 북대륙으로 간다는 말을 들었다길래 어떻게든 따라잡으려고 아이카나까지 와서 급하게 배를 탔건만. 결국 또 남대륙으로 가야겠네. 이래서야 마법사의 이름이 울겠어."

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옆에까지 걸어간 창공은 거리를 조금 두고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필터가 없는 담배도 자꾸 피다가 보니 담뱃잎들이 입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하는 요령을 터득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걸리는 것 없이 마음 놓고 니코틴을 머리에 공급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담배 연기 너머로 선미 부근에서 항해 중인 배가 한 척 보였다.

앞에 묵직한 충각이 달린 그 배는 꽤나 빠른 속도인 것이 곧 그들이 탄 배를 제칠 기세였다.

"마드모아젤 퐁파두르께선 아스터 씨를 찾고 계신 겁니까?"

"마드모아젤... 퐁파두르 교수라고 부르세요. 그리고 이건 그냥 개인적인 일이에요. 가족이니까."

내 일이니 그 이상으로는 신경 쓰지 말아 달라. 그렇게 말하며 파이프를 피우던 륀은 그것을 입에서 빼내 손에 들고선 창공을 바라봤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무슈. 아스터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나요?"

창공은 륀에게 말을 붙일 기회가 왔음을 느꼈다.

"알고 있습니다만..."

"걱정하지 말아요."

륀은 창공의 애매한 망설임을 대가를 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돈은 지불할 수 있으니까."

그녀는 주머니에서 금빛이 도는 주화 하나를 꺼내 보였다.

"정보가 얼마나 구체적이냐에 따라, 더 내놓을 수도 있어요."

"제가 원하는 건 돈보단..."

쿠웅!

"...!"

굉음과 함께 배에 커다란 진동이 전해져왔다. 창공이 난간을 잡고 있지 않았더라면 바다에 빠졌을 정도로 배가 흔들렸다. 륀도 가까스로 버틴 모양이었다.

데구르르...

난간에 기대어놓았던 그녀의 지팡이가 바닥을 굴렀다.

"젠장, 뭐야!"

"얘들아! 약탈의 시간이다! 남자는 모조리 죽이고 계집들은 끌고 와라!"

마치 그의 의문에 답하는 것처럼 선미 쪽에서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륀은 한숨을 내쉬며 허리에 찬 칼을 뽑았다.

그녀의 칼은 쭉 뻗은 아스터의 에스터크와는 달리 부드럽게 휘어져있었다. 외날인 칼은 달빛을 받아 싸늘한 색을 뿜어냈다.

"해적이네요."

"씨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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