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알펜시아 궁술 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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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펜시아인들은 활을 잘 쏜다고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알펜시아에선 세 살 먹은 어린아이도 어머니의 손 대신 활대를 잡는다는 말이 있을까.
물론 실제로는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어쨌든 알펜시아라고 하면 활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그곳의 사람들도 은근히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곤 한다. 심지어 활을 쏘지 못하는 알펜시아인들도 말이다.
그런 그들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알펜시아 궁술 제전이다. 이 제전은 알펜시아의 각 지방에서 정기적으로 2년에 한 번씩 열리며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비정기적으로 개최되기도 한다. 다만 아무래도 권위는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쪽이 높다는 듯하다.
특히 수도 룬덴에서 열리는 제전은 알펜시아의 국왕이 직접 주관하는 만큼 제일 권위 있으며, 순위권에 든 이들에 대한 특전도 크다고 알려져 있다.
이 제전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을 꼽아보라면, 참가가 지극히 자유롭다는 것이다. 국적, 신분, 성별 등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에게 공평히 참가 자격을 부여한다. 그리고 알펜시아의 신민들은 우승자가 타국에서 온 이라 할지라도 진심으로 축하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들이라고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타국인이 우승하는 것이 즐겁기만 할까. 필시 불쾌히 생각하는 이들도 많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알펜시아인들은 궁술 제전의 가치를 더욱 드높이는 것이다. 궁술 제전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궁술을 평가하는 자리이기에.
정말인지, 활을 사랑하는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에방겔로스 페레오스 저, [술자리에서 떠들고 싶어 하는 당신을 위한 활에 대한 잡학 상식] 中
성당에서 그들에게 내어준 방은 두 개였다. 각 성별로 나뉘어 휴식을 취한 그들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선 그날 할 일을 준비했다. 창공은 궁술 제전, 아린은 버스킹, 나머지 일행들은 아르바이트.
특히 일자리를 알아본 셋은 운 좋게도 같은 식당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어택은 창고를 정리하고, 나유와 히사시는 주방에서 잡일을 하게 될 거라는 점이 조금은 달랐지만 어쨌든 다행이었다.
아린? 창공은 그녀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렇게까지 자신있게 나서는 이상 어느정도 실력이야 있으리라.
하지만 프로라 불리는 사람들도 연습을 하루 빼먹으면 바로 티가 난다고 하는 게 악기 연주다. 프로들도 그럴진대 일개 사회과학대생인 그녀는 오죽할까. 차라리 망신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어쨌거나 판단은 그에게 맡긴다고 했으니 엄정하게 평가할 생각이었다. 첫날이라고 봐주는 것은 없다. 남들 일당만큼도 챙기지 못한다면 바로 근로 전선에 투입할 뿐.
그렇게 일행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성당을 나서서 가야 할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제 구청의 공무원에게 듣기로 성당을 정면으로 바라보고선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라고 했던가.
사실 그 정도 안내로도 이미 차고 넘쳤다. 활잡이들이 우르르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으니.
창공도 그들 무리 중 하나가 되어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성당에서 준 아침은 빵과 묽은 수프였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그는 너무 든든하게 먹으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편이었기에, 중요한 일을 앞두고선 일부러 식사량을 줄이는 버릇이 있었다.
"제전에 참가하시는 분들은 이곳으로 와주십시오!"
어느 정도 길을 따라 걷자 과연 그 공무원의 말대로 안내원들이 잔뜩 서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안내를 따라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가자 넓게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이곳이 바로 아잔틴 사격장인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족히 수천 명은 넘게 모여있었다. 선수들부터 관중들까지. 남녀노소와 국적을 가리지 않고 한데 모인 이들이 떠들어대니 그 소음이 대단했다.
"주목! 주목! 1조부터 30조까지 모여주십시오! 번호가 쓰인 팻말을 주목해 주십시오!"
접수했을 때 배정받은 그의 조는 24조였다. 저 한쪽 구석에 24가 크게 적힌 팻말을 든 사람이 보였고, 그 사람의 앞으로 하나둘씩 활잡이들이 모여들었다.
그곳에서 먼 산을 바라보며 귀를 열어놓고 있으려니, 같이 참가한 일행들과 떠드는 사람부터 긴장하지 말자는 혼잣말을 미친 듯이 되뇌는 사람까지 다양한 이들이 있었다.
창공은 그들 가운데서 충분히 두각을 드러낼 자신이 있었다. 취미로 활을 쏘긴 했지만 규범이 극도로 체계화된 현대에서도 대회 우승을 차지한 그였다.
당연히 아마추어 대회이긴 했지만, 그렇게 치면 이곳 다이셀리시아에선 활로 돈을 벌어서 먹고사는 프로들이 있겠는가? 아마도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훈련 과정을 거친 자들은 적어도 참가 인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민들 중에선 찾아보기 어려울 거라는 게 그의 예상이었다. 물론 그들도 활을 잘 쏘는 친족에게 어려서부터 활을 배웠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는 프로 출신에게 지도를 받은 적이 있었다.
결국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자신감으로 이어졌다는 말이다. 현대식 리커브 보우는 아니었지만 이미 그는 이 활로도 잘 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번 증명해 보였다. 감각은 어디 안 가는 법이다.
"다 모인 것 같군요!"
24조 인원들 앞에서 길쭉한 명단을 손에 든 사람이 말했다.
"호명했을 때 앞으로 나오시지 않는 분은 자동 탈락 처리됩니다! 그럼 지금부터 방식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저 앞의 과녁이 보이십니까?"
네모난 널빤지가 과녁인 모양이었다. 30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그 중간에는 과녁이 그려져있었다. 그런데 그 과녁은 흔히 보던 것처럼 여러 동심원으로 나누어져 다른 색깔이 칠해진 과녁이 아니라, 단색의 원으로 된 과녁이었다.
"여러분이 예선전에 진출할 수 있는 실력이 되는지 저 과녁으로 검증하겠습니다! 기회는 단 한 번! 저 과녁 안에 화살을 명중시킨다면 예선전으로 진출합니다! 충분히 이해가 가셨으리라 생각하고,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호명하면 앞으로! 미스터 아민!"
첫 타자로 불린 아민이라는 사람은 긴장했는지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 떨어대고 있었다. 이미 결과가 보이는 듯했다.
"으아아..."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그의 화살은 과녁 너머로 날아갔다. 고개를 숙인 아민은 털레털레 사격장을 벗어났다.
'이게 거름망이 되네?'
창공에겐 솔직히 놀라웠다. 물론 양옆의 사로에서도 다른 조가 사격하고 있는 데다가, 사방의 소음 때문에 시끄러워 집중하기가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래도 겨우 30m 떨어진 표적이 아닌가. 게다가 점수를 매기는 것도 아니고 그저 과녁 안에 꽂아 넣기만 하라는 건데 말이다.
이 정도면 옆 사람과 오늘 저녁밥으로 뭘 먹을지 떠들면서도 충분히 맞출 수 있는 거리라는 게 창공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 이, 이게 왜 안 맞지...?"
"한 번만! 한 번만 기회를 더 주쇼! 긴장 때문에..."
"안 되니까 가세요."
추하게 재도전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담당자들은 무표정으로 고개만 저어댔다.
물론 그런 이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훌륭하게 과녁의 정가운데에 화살을 꽂는 사람도 있었고, 또 팔이 부들부들 떨릴 때까지 시위를 놓지 못하더니 결국에는 명중시키는 사람도 있었다.
"미스터... 서!"
"여기 있습니다."
드디어 그의 차례가 왔다. 긴장은 전혀 되지 않았다. 방심? 침 삼킬 때 잘못해서 사레가 들릴까 봐 긴장하는 사람도 있던가? 과녁이 늑대처럼 이리저리 움직인다면 또 모를까, 부동 과녁은 문제도 아니었다.
거리도 가깝고 점수를 매기는 것도 아니니 바람의 영향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활을 들어 시위를 당겼고, 당겨진 시위가 코와 입술을 누르자 바로 사격했다.
퉁!
화살은 단번에 과녁 가운데에 명중했다. 명단을 들고 있던 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깃펜으로 그의 이름 옆에 표시를 했다.
"1차 심사가 끝나면 2차 심사가 있을 겁니다. 잠시 기다리세요."
담당자는 앞서 통과한 사람에게 했던 말과 같은 말을 건네고선 다음 참가자의 이름을 불렀다.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으려니, 얼마 지나지 않아 심사가 끝났다. 이것으로 실력도 없으면서 한 번 참가해 본 자들은 대충 걸러진 셈이었다.
"2차 심사가 시작됩니다. 규칙은 동일합니다."
규칙은 동일했지만 거리가 조금 더 멀어진 상태였다. 50m 정도 될까. 이제야 좀 할 맛이 생겨나는 기분이었다.
"미스터 알포드!"
"좋았어."
알포드라 불린 사내는 앞에 나가 힘차게 시위를 당겼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화살은... 원에서 벗어나 판자 위에 꽂혔다.
"시발?"
"예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미스터 베일!"
창공의 눈이 빛났다. 그의 자세는 봐줄 만했지만, 무언가가 그의 화살을 빗나가게 한 것이다. 바로 바람이었다.
과녁 뒤쪽으로 낮은 깃대에 걸려있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50m 정도 되면 바람의 영향도 고려해야 했다.
물론 현대 양궁장에선 풍향과 세기를 전광판을 통해 알려주지만, 당연히 여기선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사수들은 오직 깃발의 펄럭임을 통해서만 바람을 가늠해야 한다.
가슴에서 기분 좋은 긴장감이 일어나 옆구리를 살살 간질이는 느낌이 들었다. 적당한 긴장감은 집중에 도움이 된다. 그의 입가에 선 얇은 미소가 살짝 피어올랐다. 이게 활쏘기의 재미였다. 하기야 재미가 없었더라면 취미로 삼지도 않았겠지만.
"미스터 서!"
1차 심사에서도 절반 가까운 인원이 탈락했지만, 이번 2차 심사에서는 셋 중 둘이 탈락하는 식이었다. 그의 차례는 금방 돌아왔다.
"준비되면 사격하시길."
그는 활을 들어올리고선 천천히 시위를 당겼다. 방금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신중한 모습이었다. 그의 시선이 과녁과 깃발 사이를 빠르게 움직였다. 펄럭이던 깃발은 기세가 많이 줄어있었다. 풍향은 좌에서 우. 그는 과녁 중앙에서 약간 왼쪽으로 떨어진 곳을 겨냥했다.
물론 조준기가 없었기에 감으로 조준하는 것이었지만 그의 감은 남들과는 궤를 달리했기에 자신이 있었다.
활이 만작되고, 시위를 놓으려는 그 순간이었다. 미약하게 펄럭이던 깃발이 축 늘어져 흐느적댄다. 바람이 완전히 죽은 것이다.
그가 조준점을 다시 원위치하는 것과 시위가 놓아지는 것은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좋군요!"
창공의 손을 떠난 화살은 과녁 정가운데에 명중했다. 24조의 담당자가 탄성을 질렀다. 활을 사랑하는 알펜시아의 신민으로서 이런 모습을 보면 참기가 어려웠다.
"예선 진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주위에서 부러움의 시선이 쏟아졌다. 자신에게 집중되는 남들의 눈길에도 창공은 당당히 고개를 들었다. 지금 그는 이 시선들을 받을 자격이 있었으니까.
감탄? 부러움? 시샘? 질투? 뭐가 됐든 마음껏 하라지.
2차 심사는 1차보다 빠르게 끝났다. 예선전에 진출할 인원이 정해진 것이다. 이렇게 보니 대기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원래 그런 것이긴 하지만.
"예선 진출자분들은 앞으로 나와주시길 바랍니다."
24조에서 예선전에 진출한 사람은 창공을 포함하여 열넷. 원래 인원을 생각해 본다면 열에 하나가 살아남은 꼴이었다. 탈락한 사람들이 전부 실력이 되지 않아 탈락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회라는 게 그렇다. 실력뿐 아니라 경험도 무시하지 못할 요소다. 일단 지금처럼 간단하게 한 발 쏘는 것부터, 예선에서 본격적으로 남과 경쟁하는 것까지.
한 번 해 봤다는 게 별 건 아니지만 의외로 당락을 가르는 요소가 될 수 있었다.
어쨌거나 모여든 진출자들 앞 단상에 안경을 쓴 남자가 올라와 그들에게 다음 절차에 대해 설명했다.
"예선은 내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열리게 됩니다. 예선전 조 편성 결과도 그때 통보됩니다. 특히 내일은 귀빈들께서 왕림하셔서 축사를 해주실 예정이니, 사격하는 데 지장은 없되 무례가 되지 않는 복장으로 와주시길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무례가 되나 마나, 어차피 창공에게 복장이라곤 그가 지금 입고 있는 남방셔츠에 면바지 하나밖엔 없었다.
이세계에서 보편적인 복장은 결코 아니었지만 어쩌겠는가. 부디 그의 옷을 걸고넘어지는 사람이 없길 바랄 뿐.
이렇게 오늘 그가 할 일은 끝나게 되었다. 관중들은 다들 내일 있을 예선을 기대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갔지만 선수들은 아니었다.
물론 상기된 얼굴로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을 다짐하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탈락에 낙담한 사람, 긴장에 매몰되어 얼굴이 굳은 사람, 잔뜩 흥분해 씩씩거리며 얼굴을 붉히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아무리 그런들 소용없었지만. 창공은 시위를 풀고선 그들의 얼굴을 감상하며 담배를 피웠다.
목적을 달성한 뒤에 피는 담배는 맛있었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피는 담배는 더욱 맛있었다.
얼추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그도 발걸음을 옮겼다. 사격장에 남아 내일 있을 예선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와는 관련 없는 일이었다.
창공은 지구에서도 시험이 연달아 있을 때엔 공부를 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어차피 실력은 평소의 준비에서 나오지, 벼락치기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이것도 똑같았다.
당장 내일이 예선인데 활을 쏜다? 실력은 하루아침에 늘지 않는다. 감각은 오늘 쏜 두 발이면 충분히 유지할 수 있었다.
'다들 뭐하고 있으려나.'
돛대를 물고 길을 걸으려니 그런 생각이 났다. 그래, 돛대였다. 물론 한 갑 살 예정이다. 공금을 사사로이 쓰는 거 아니냐고? 괜찮다. 그가 담배 산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으니까.
'나유랑 고다는 접시 열심히 닦고 있을 거고... 택이 형은 창고에서 물건 정리한다고 그랬고. 아린이는...'
아린에게 생각이 미치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게 되겠느냔 말이다.
'시발, 되든 안 되든.'
그는 이 길로 성당에 가서 잠이나 잘 생각이었다. 성당이 있는 스트렌드 광장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제보다 사람들이 더 북적이는 느낌이었다. 하긴 사격장에서 내려간 사람들이 큰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곳이 이곳이었으니.
그런데 모인 인파에 비해 광장이 조용한 느낌이다. 뭔가 구경거리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아, 귀를 기울여보니 익숙한 음악이 들려왔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4악장. 모차르트가 남긴 불멸의 현악 세레나데.
그가 제일 좋아하는 클래식은 베토벤의 음악이었지만, 역시 모차르트도 좋았다. 초밥으로 비유하자면 베토벤은 묵직하고 화려한 히카리모노 계열 초밥이고, 모차르트는 깔끔하고 우아한 시로미 계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간에 모차르트의 음악이라면 이세계에서도 충분히 먹힐 만했다.
'그래도 베토벤이 최고야.'
이세계에서 들리는 모차르트의 음악. 진짜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비하면 미숙한 점이 간간히 들려왔지만 제법 괜찮은 솜씨였다. 누가 연주하는진 몰라도...
'...?'
창공은 인파를 헤치며 음악이 들리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거기에 있었다. 따스한 갈색 꽁지머리. 하얀 블라우스. 검정 나팔바지.
아린은 눈을 감고 칼란드라를 켜고 있었다. 단명한 천재가 남긴 세레나데가 그녀의 손끝에서, 다이셀리시아 최초로 연주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앞, 로브를 둥글게 말아서 만든 임시 바구니 안에는 구리 동전이 가득했다.
그의 시선은 그곳에 꽂힌 채로 떨어질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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