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왕실의 의뢰
* * *
"명예로 살 수는 있어도, 명예만으로 살 수는 없는 법."
[키트라 제국 멸망전] 中
아스터는 비아투 탄광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그곳으로 향하는 공도는 이미 전부 폐쇄된 후였고, 위험하다는 말과 함께 출입을 통제당했기 때문이다.
"혹시 이 근처에서 에트로지들을 보신 적이 있나요?"
결국 그녀가 다음으로 택한 방법은 통제구역 바깥쪽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수소문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글쎄요. 저는 잘."
"모릅니다."
사실인지 거짓말인진 알 수 없었지만 주민들은 하나같이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란 말인가. 결국 도망친 대다수는 다시 잡혀 강제 노동을 당하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추격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까?
아스터는 머리를 감싸 쥐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그녀의 정신력은 한계에 몰려있었다. 마지막으로 숙면을 취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고자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급하게 왔건만, 너무나 허무했다.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그녀는 스스로의 무력과 무능을 자책하며 신께 기도를 올렸다. 만약 살아있다면 고통받지 않고 평안하길. 만약 죽었다면 영혼이나마 그들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편히 안식에 들 수 있길.
"아스터 퐁파두르 사제님. 맞습니까?"
마을 광장 한구석에 꿇어앉아 기도를 하던 아스터에게 병사들을 거느린 기사가 다가왔다. 그녀는 이제 이 땅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끝났음을 예감했다.
"네. 맞습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이곳에서 떠나주셨으면 합니다. 최근 이곳의 치안이 좋지 않아, 혹여라도 사제님이 불행한 일을 당하실까 심히 걱정됩니다."
"그런가요."
"지금 바로 떠나주시길 바랍니다. 더 이상은 사제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럼 가시는 길 평안하시길."
아스터는 무릎을 꿇은 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목소리는 정중했지만 그 내용은 은근한 협박이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여러분... 이 죄는 무겁게 저를 짓누르겠죠...'
이 시점에서 조사를 강행한다면, 아마 그 길은 죽음으로 이어져 있으리라. 순교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쯤에서 발을 떼기로 마음먹었다.
아마 트리스카 정부에선 그녀를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뭘 해보기도 전에 처분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예를 들자면 간첩 혐의로 그녀를 체포한 다음 즉결 처분하고, 교황청에 항의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는 죽음이 아니었다. 아스터의 입장에서 보면, 무의미한 순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죄책감을 거둘 수 없었다.
"자비로우신 나의 주님. 우리 인간이 정녕 죄짓지 않고 살아갈 순 없단 말입니까... 이 보속을 어찌 하면 되리오리까... 죽어서 지옥의 겁화에 백만 년을 타오르는 것보다, 죽기 전에 얼마나 더 많은 죄를 짓게 될지 두렵기만 합니다."
아스터는 그렇게 중얼거리고선 마부석에 올랐다. 북대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녀는 그 위에서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신분을 증명할 만한 서류를 가지고 계십니까?"
"마법사인 거 보면 모르시겠나요."
트리스카와 비바 연방의 국경지대. 트리스카 측 검문소에서 지팡이를 짚은 륀이 짜증 서린 목소리로 검문대원에게 대답했다.
그녀도 당연히 그 검문대원이 좋아서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긴 여행길과 잡힐 듯 말 듯 잡히지 않는 동생의 행방 때문에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아뇨, 내가 말이 심했군요. 무례를 사과드려요, 무슈."
륀은 가방 속에서 잡히는 서류 중 하나를 집어 들어 건넸다. 그녀의 신원은 여러 개가 있었고, 증명서도 여러 개였다. 위장 신분이 여러 개란 말은 아니었고, 전부 진짜였다.
웨리의 마법 이론 정교수, 마법 이론 학회 정회원, 아퀴탄 마법 학회 정회원, 아퀴탄 왕실 명예 자문 위원, 몽펠리도 대학 산술학 겸임교수.
"실례했습니다. 마탑의 교수이실 줄은..."
"아, 이번엔 그건가."
"예?"
"아니에요. 그럼 통과해도 되는 거죠?"
"물론입니다."
이번에 그녀의 손에 잡힌 건 웨리의 교수임을 증명하는 서류였던 것 같았다. 그녀는 증명서를 받아들어 다시 가방 안에 쑤셔 넣고 관문을 통과하려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무슈, 말씀 좀 여쭐게요."
"앗 네. 마다... 아, 아니. 마드모아젤...?"
어디서 들은 건 있는 모양이었다. 륀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교수라고 부르시길. 혹시 얼마 전에 저와 똑같이 생긴 사제가 통과했던 적이 없나요?"
"...아. 제 근무시간일 때엔 못 봤습니다만, 하얀 옷을 입은 아름다우신 사제님이 통과하셨단 말을 동료에게 들었던 적은 있습니다."
"그런가요? 혹시 언제였는지 알 수 있을까요?"
"들었던 건 이틀 전이었습니다."
"고마워요, 무슈. 진리가 당신을 자유케 하길."
그녀는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국경을 통과했다. 이제 아스터를 찾으려면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비아투 탄광? 수도인 비제트?
'비제트로 가야겠지?'
모르긴 몰라도 그런 일이 있었다면 필시 비아투 탄광 주변은 봉쇄되었으리라. 그렇다면 답은 수도 밖엔 없었다. 그곳에서 출입 허가를 받으려고 할 테니까. 아마 그런 것은 아스터에게 나오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대체 얼마 만에 보는 거야.'
동생과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다. 못 보던 몇 년 사이에 얼마나 변해있을지 기대도 됐다. 륀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수도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했다.
비아투 탄광 방면에서 오던 아스터가 국경을 통과한 것은 그로부터 몇 시간 뒤였다. 애석하게도 륀이 그녀를 찾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검문대원은 근무를 교대한 상태였지만.
우승을 차지한 창공은 각 귀빈들과 악수를 나누며 축하를 받았다. 시상대에 올라 월계관을 쓰고 꽃다발을 들어 올리기도 했고, 뜨거운 박수, 열화와 같은 환호성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단 하나의 생각.
'그래서 돈을 얼마나 준다는 건데?'
관객들과 참가자들이야 그의 활 솜씨를 견식한 것만으로도 크게 만족한 모양이었지만, 그는 절대 아니었다.
어디에 소문이 나서 프로가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듣긴 했지만, 그에게 활은 그저 취미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따라서 1등에게 돌아오는 것이 단순한 명예뿐이라면...
'애미.'
설마 그러진 않으리라. 하지만 이리저리 둘러봐도 금화를 잔뜩 담은 수레라던가, 값나가게 생긴 트로피 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점점 의심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대놓고 인상이 찌푸려지진 않았지만 굳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넨 정말 대단하군."
"예?"
전례 대신 카벨 자작이 감탄하며 말했다. 무슨 개소리냐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숱한 경쟁자들을 꺾고 우승한 자네가 아닌가. 그것도 다른 세상, 다른 나라에서 말일세. 그런데도 그렇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니..."
"아니 그."
"이렇게 또 하나 배워가는군. 정말 대단해."
자작은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창공은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열불을 그저 한숨으로 토해낼 뿐이었다.
행사는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딱히 알맹이는 없었다. 누군가 나와서 선수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우승자인 그를 축하하는 소리도, 관중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드레날린이 떨어졌는지 손가락에선 고통이 살살 차오르고 있었다. 적절한 금융 치료가 있다면 치유될 수 있건만, 그럴 기미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철퇴를 내려치는 듯한 선고가 이어졌다.
"이것으로! 3331년 알펜시아 궁술 제전의 폐막을 선포한다!"
"..."
창공은 지금 당장 머리에 쓴 월계관을 벗어서 자랑스럽게 외치는 포고관에게 집어던지고 싶은 욕망과 싸웠다.
'이런 멍청한 새끼.'
그는 어지간해선 자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오늘 그것이 이루어졌다. 생각해 보니 우승자는 어떤 상금을 받는지 알아보지도 않았더랬다. 그저 국왕 주최 행사니 섭섭하게는 주지 않겠다고 추측했을 뿐...
명백한 실책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에게 남은 게 뭔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명예와 다친 세 손가락뿐이다.
'이러면 일행들 앞에서 돈 벌어오라고 큰소리쳤던 난 뭐가 되냐고.'
당연히 일행들은 앞에선 우승을 축하할망정 상금이 없다고 타박하지야 않겠지만... 사람은 원래 뒤로 호박씨를 까는 존재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이래서야 그의 위상에 크나큰 손상을 피할 수 없을 것만 같아 초조했다.
"왕비 전하!"
한창 상념에 빠져있던 와중, 그의 옆에 있던 자작이 한쪽 무릎을 꿇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뒤를 돌아보니 엘레오노어 왕비가 주위의 시중을 받으며 다가오는 중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다른 세계의 왕족에게 무릎 꿇기는 싫었지만 여기선 맞춰주는 게 맞으리라. 그도 자작을 똑같이 따라했다.
"처음 뵙습니다."
"미스터 서... 라고 했는가. 일단 일어나시게."
"감사합니다."
창공은 자리에서 일어나 왕비를 바라봤다. 물론 눈을 마주친 건 아니었다. 자칫 무례를 저질렀다고 인식할까봐 그녀의 코 끝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망인의 얼굴은 아름답긴 했지만 깊은 슬픔 탓인지 쇠락의 징후가 미세하고 보였다.
"터프 슈터라 불린다지?"
"보잘것없는 허명입니다."
이건 진심이었다.
"그런가... 음."
왕비가 주변을 둘러봤다. 관객들도 많이 빠져나간 사격장은 점차 한산해지고 있었다. 기억에 남을 결승전을 봤으니 빨리 내려가서 술이라도 한잔하고 싶은 것이리라. 귀빈들도 이 자리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고 말이다.
"미스터 서. 그리고 전례 대신. 그대들에게 내 긴히 이를 말이 있네만."
"제게 말입니까?"
"하문하소서."
창공과 자작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렇지만 이곳은 조금 자리가 적절하지 못한 것 같군. 왕성에 가서 이야기하세나. 대신."
"예, 전하."
"마차를 타고 이곳에 왔겠지? 미스터 서를 마차에 태우고 왕성으로 오게. 내 일러둘 터이니 쪽문으로 오게나. 최대한 조용히."
"명을 받들겠나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등을 돌려 걸어가 대기시켜두었던 마차에 올랐다. 영문 모를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직감한 창공은 눈살을 찌푸렸다.
"왕비께선 저를 왕궁으로 왜 부르신단 겁니까? 원래 우승자는 따로 왕궁에서 치하하는 겁니까?"
"이유는 나도 모르겠네. 그리고 우승자를 따로 치하한 적은 없었다네. 다만 올해의 폐막식이 상당히 조촐하게 열린 건 사실이긴 하네만."
"조촐하다고요? 예를 들면...?"
"음. 말에 올라서 룬덴을 한 바퀴 행진한다거나, 국왕 폐하와 함께 식사를 한다거나..."
결국 전부 하잘것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그것참 명예로운 일이라고 비꼬려다가, 약간 비틀어서 질문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승자가 타국인이거나 딱히 명예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대놓고 상금을 요구하는 자들은 없었던가요?"
"내가 알기로 그런 이들은 없었다네. 애초에 그런 것을 바라는 이들이면 궁술의 달인이 되지 못했을 것이야."
창공은 속으로 자작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하기야 프로 스포츠라는 인식이 없다면 왜 명예가 주어졌는데 물질적인 것을 바라느냐고 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대회에서 우승을 했는데 이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일이 이렇게 된 것을. 상금은 얼마나 되냐고 구체적으로 알아보지 못한 그의 잘못도 분명 있으리라.
"내 마차에 타세나."
허무함에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려니, 사격장 안으로 자작의 마차가 당도했다. 그는 상처뿐인 명예를 뒤로하고 자작의 마차에 올랐다.
아스터가 몰던 마차와는 달리 외부와 공간이 제대로 분리된 승차칸이 있었다. 귀족이 타는 마차니 당연하겠지만.
"..."
"..."
마차 안은 오직 덜컹거리는 소리뿐, 둘 중에 상대방에게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하기야 오늘 처음 말을 섞은 남자 둘이 마차 안에 사이좋게 앉아 무슨 나눌 말이 있겠는가?
게다가 창공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일단 왕비라는 사람이 오라니 가긴 간다만, 도대체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부르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정리해 보자.'
그는 다리를 꼬고선 오른손 검지로 머리를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일단 제전 때문은 아니야. 이제 와서 우승을 치하하느니, 상금을 준다느니 하는 건 더더욱 아닐 거고.'
첫째. 만약 그런 문제였다면 폐막식 때 한 번에 처리했으면 그만이다.
둘째. 따로 왕궁으로 불러서 치하한다고 쳐도, 이런 식으로 부르는 건 아니었다. 그는 국가의 주요 행사에서 우승한 사람이다. 당당히 왕궁의 정문으로 출입했으면 했지, 떳떳하지 못한 사람처럼 쪽문으로 부를 이유가 있는가?
'쪽문.'
그래. 왕비는 그와 자작에게 쪽문을 통과해 왕궁으로 진입하라 일렀다. 이는 그들에게 일어날 일들이 떳떳하지 못하거나, 남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비밀을 기해야 하는 종류의 것임을 뜻한다.
'그럼 그 일이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능성은 그에게 어떠한 해코지를 하는 것. 하지만 굳이? 그는 룬덴에 와서 성당과 사격장 사이를 오갔을 뿐, 특별히 어떠한 법에 저촉될만한 일을 벌인 적은 없었다.
다른 세상에서 온 주제에 자국의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 그 누구도 그런 것을 신경 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심지어 귀족이면서 그에게 밀려 준우승을 차지한 카벨 자작도 진심으로 축하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던가.
'이를 말이 있다고 했지.'
그게 사실이라고 치면 그 말은 어떠한 말인가? 창공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부탁, 혹은 의뢰였다. 그것도 남에게 알려지면 안 되는. 담소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불러다 경을 칠 것도 아니라면 답은 그것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굳이 왕비가 그를 불러서 비밀스럽게 부탁해야 하는 일이란?
'왕자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 거야.'
창공이 내린 결론은 이랬다. 아마 왕자는 현재 실종 상태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리고 그와 대신에게 수색을 맡기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그들인가? 지금 알펜시아의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아주 없을 법한 일도 아니었다.
반란이 일어나 나라가 두 쪽으로 쪼개졌고, 선왕은 진압에 성공했지만 결국 죽고 말았다. 확정 상속인인 왕자가 있긴 하지만, 아직 대관식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알펜시아의 왕위는 비어있는 상황이다.
'왕실의 칼이 되는 왕립 해군 사령관이 충성 맹세를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고 했지. 그땐 별생각 없었는데, 어쩌면 반란이 일단은 진압된 지금에 와서도 이 나라의 귀족들은 근왕파와 반왕파로 나뉘어있을 가능성이 있어.'
이런 상황이라면 왕자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은 공표가 불가능하다. 반란의 불씨가 살아있는 상황에서 대를 이을 왕자가 실종되었다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전에 아린은 이런 추측을 한 적이 있었다. 왕자가 제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 왕립 해군 사령관에게 충성을 다짐 받으려 담판을 지으러 갔다는 것.
그렇다면 이 가정이 사실이라고 했을 때, 왕자는 담판에 실패했고 그 결과 사령관에게 억류된 상태란 말인가? 그리고 왕비는 그 구출을 의뢰하려 하는 것이고?
'아니지. 내가 무슨 첩보 요원도 아니고 그런 일을 시킬 리가 있나. 게다가 왕위를 이어받을 왕자를 억류했다는 건 대놓고 반란을 일으키겠다고 선포하는 거니까, 이미 일이 났어도 크게 났어야 돼.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일을 저지르진 않았을 테니까.'
따라서 창공은 자신도 그럴듯하다고 여겼던 아린의 추측이 결국에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똑같은 이유로, 다른 반왕파 집단에게 붙잡힌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왕자는 다른 곳에 몰래 갔다가 실종된 것이다. 도대체 어디에? 왜?
'짐작이 안 가. 차라리 왕립 해군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단신으로 달려갔다가 일을 당한 거라면 이해라도 가지... 대체 어느 구덩이에 대가릴 처박고 있는 거야.'
일단 창공은 등받이에 등을 편히 기대고 눈을 감았다. 이제 남은 건 자초지종을 듣고 결정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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