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알펜시아 산맥 (5)
* * *
"개씹..."
창공은 황급히 화살을 집어 들었다. 활과 화살통은 물론이요, 보호 장구까지 착용하고 있었기에 맨몸으로 적과 상대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아린이 문제였다. 단검 하나 외엔 무장이 없었으니. 어차피 그녀에겐 제대로 된 무기가 있었어도 상황은 비슷했겠지만.
병사들은 활을 보자 멈칫했다. 거리는 대략 30m 정도. 숙련된 사수라면 충분히 맞출 수 있는 거리다. 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화살을 메긴 다음 시위를 당겼다. 일단 한 놈이라도 죽여 놓아야 했다.
"오빠! 숙여!"
갑자기 울려 퍼지는 아린의 비명. 의문이 들 법도 했지만 창공은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쉬이익
뭔가 빠른 것이 그의 머리 위를 세차게 지나갔다. 소름이 돋으며 머리카락이 곤두세워졌다.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화살이다.
"뛰어!"
창공은 수통을 내팽개친 다음 아린의 손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가장 최선은 일행이 있는 동굴까지 돌아가는 것. 하지만 화살이 날아온 방향은 바로 동굴이 있는 방향이었다. 길이 차단당한 것이다.
계곡이 앞을 가로막은 상황에서, 그와 그녀가 달아날 수 있는 방향은 딱 한쪽 밖에는 없었다.
"적이다아아아!"
그가 미친 듯이 달음박질하며 온 산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소리쳤다. 부디 동굴에 있는 일행들이 듣길 바랐다. 일행이 있다는 걸 들키게 되지 않냐고? 어차피 수통 개수를 보면 머릿수까지 들통날 사실이었다.
슈웅 탁!
그의 귓가를 스친 화살이 나무에 박혔다. 나무에 꽂혀 떨리며 파르르 소리를 내는 화살. 갈색과 파란색이 섞인 깃털로 만들어진 화살깃. 약초꾼을 사살한 자들과 똑같은 놈들이었다.
귓바퀴에서 뜨거운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하지만 아픈 느낌은 들지 않았다. 통각을 느끼기엔 너무나 상황이 급박했기 때문이다.
"손 놓을 테니까 알아서 달려!"
숲속에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달리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창공과 아린의 신장 차이는 25cm. 보폭도 완전히 달랐다. 당연히 아린이 창공보다 느리다. 만약 그녀가 잡히게 되면?
'그건 어쩔 수 없지.'
일단 지금은 사는 게 중요했다. 저 뒤에서 '잡아라!' '쫓아!' 같은 소리가 들려왔지만 얌전히 잡혀 줄 생각은 당연히 추호도 없었다.
"김아린! 바짝 붙어!"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린을 불렀다. 도망갈 때 뒤를 돌아보는 것만큼 바보 같은 행동은 없기 때문이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그것을 갈음했다.
숨이 차오르고 시야가 좁아진다. 어느샌가 귀에는 자신의 헐떡이는 숨소리 외엔 들려오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동굴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모른다. 확실한 건 단 하나. 발을 멈추면 죽는다.
'씨발, 씨발...'
오만 생각이 들었다. 바로 도망칠 게 아니라 활잡이를 한 번 쏘아주고 도망쳤어야 했나? 활잡이가 아니라면 앞에 있던 놈이라도...
아린을 데려온 것도 후회되었다. 차라리 어택이었다면... 아니면 나유라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씨발.'
이미 때는 늦었으니 말이다.
* * *
"뭐 하는 놈들이지?"
"몰라."
녹색 옷에 가죽 갑옷을 덧댄 차림을 한 이들이 두 남녀가 달아난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번엔 놓치면 안 되는데. 저번에 그 약초꾼 기억나? 화살을 맞고 끝까지 도망친 그 남자 말야."
"음. 주군께서 아시면 크게 상심하실 거야. 어떻게든 잡았어야 했는데... 로저가 쏜 화살이니 살아남진 못했겠지만."
"그랬겠지... 이거 봐. 수통이 여섯 개가 있어."
"놈들에게 일행이 더 있다는 거겠지. 방금 그놈 달아날 때 크게 소리친 거 기억나?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곳에 놈들의 거처가 있다는 뜻이야."
"나머지 동료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야겠어. 곧 놈의 일행이 이쪽으로 몰려올 거야. 방금 그 두 연놈들을 추적하러 간 게 누구지?"
"로저. 팀. 켈리."
"여자는 별 볼 일 없어 보였지? 남자가 활을 들긴 했지만..."
"그 셋이면 충분해. 젠장, 웬 이상한 놈들이 꼬여선. 어쨌거나 왕자는 이 근처에서 사라졌어. 분명 여기 어딘가 있을 거야."
"놈들이 왕자를 구출하러 온 놈들이라면... 이거 일이 이상하게 꼬이는군."
* * *
"헉... 헉..."
얼마나 뛰었을까? 창공은 자리에 멈춰 서서 나무를 짚고 숨을 헐떡였다. 아린도 그럭저럭 잘 따라온 모양이었다. 비틀거리며 속도를 줄인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린아. 허억... 일어... 일어나. 후우. 앉으면 더 힘들어."
뛰다가 힘들다고 주저앉으면 일어나기 어렵다. 게다가 모르긴 몰라도 추적이 붙었을 것이다. 화살을 회수하려고 할 테니까. 이미 한 번 실수를 한 놈들이다. 두 번은 하지 않으려 들겠지.
"후... 일어나라고."
창공이 답답한 표정으로 아린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린은 멍하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야. 짜증나게 할래?"
이상했다. 아린은 이런 식으로 얼타는 사람이 아니다. 최악의 상태였던 트리스카 탈출 때에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그를 따라왔고, 엎어진 늑대의 배에 단검을 꽂아 넣었던 그녀가 아닌가.
"오빠..."
그녀가 입술을 달싹여 소리 냈다. 작고,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위태위태한 목소리. 뭔가 잘못됐다.
"업어, 업어 줘... 요..."
"김아린?"
"안 될... 것 같... 업어... 줘. 요..."
아린의 목소리엔 힘이 하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날카로운 얼음 비수가 되어 그의 가슴을 싸늘하게 찔렀다.
창공은 그녀의 옆에 무릎을 꿇고 한쪽 팔로 그녀의 몸을 받쳤다. 그러자 이제 한계라는 듯이 아린의 상체가 앞쪽으로 수그려졌다.
드러나는 그녀의 작은 등. 그리고 그곳에 꽂힌 화살. 단단히 박힌 탓인지 외부 출혈은 크지 않았지만 새빨간 피는 블라우스의 하얀 색깔을 착실히 먹어치우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의 생각엔 이대로 그녀를 버리고 도망치는 게 상책이었다. 위치로 보아 화살은 폐에 닿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어차피 구하더라도 이 산중에서 제대로 치료하긴 어려웠다.
'버리고 가면 시간 좀 끌어주겠지?'
초조. 착잡. 입술이 꽉 깨물리고 목에서 진땀이 배어 나왔다. 그에게 안긴 채로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아린을 버리는 것이다.
'어차피 산에서 만난 노인도 절벽에서 밀어버렸어. 이게 그거랑 다를 게 뭐야? 게다가 내가 죽이는 것도 아니야. 저놈들이 죽이는 거지. 화살도 내가 안 쐈어.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창공은 다시 아린을 내려다봤다. 그녀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좋잖은가? 괜히 날 버리지 말라면서 찝찝하게 만들 일도 없고. 그는 아린을 땅바닥에 눕혔다. 물론 등은 하늘을 향한 채였다.
이제 도망가기만 하면 된다. 이미 시간을 많이 지체한 상황. 조금이라도 거리를 벌리려면 당장 출발해야 한다.
"...애미."
아니, 이미 늦었다. 조금이라도 지체한 상황에서 이미 늦었다. 도망가 봤자 동굴 방향으로 향하지도 못하는 이상 조난은 확정적이다. 게다가 아린은 그가 절벽에서 밀어버렸던 노인보다 적어도 수십 배의 가치가 있었다.
때때로 답답하고 짜증도 났지만 그녀는 그것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자신에게 있음을 스스로 입증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영원히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떤 식으로든 끝장은 봐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속에서 움직이는 목표를 저격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담배가 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담배.'
창공의 머리에 스치는 어떤 생각이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손을 들어 바람 방향을 확인했다. 아주 강하진 않았지만 그들이 도망쳐 온 방향으로 불고 있었다. 즉, 추적자들이 다가오는 방향이다.
아린을 들쳐매고 근처 수풀 밑에 숨겼다. 그녀가 작게 신음했지만 깨어날 기미는 없었다. 다음으로 그는 발을 움직여 흙바닥을 노출시킨 뒤에 담뱃갑에서 담배를 모조리 꺼내 불을 붙였다. 일곱 개비의 담배. 지금은 그의 생명줄이다. 아니, 생명줄이길 바랐다.
"먹혀야 하는데."
담배들이 땅바닥에 놓였다. 연기와 함께 냄새가 잔뜩 올라와 바람에 실려 날아갔다. 이제 정말로 시간이 많지 않았다.
* * *
"앞쪽에서 바람이 부는군."
맨 앞에서 추격조를 이끌던 로저가 속삭였다. 며칠 전엔 약초꾼을 쐈고, 방금 전엔 여자를 쏜 그다. 먼젓번에 화살을 회수하지 못해 얼마나 자책했던가.
알펜 황조롱이의 깃을 붙인 화살은 자체의 값도 값이거니와 그 상징성 때문에 반드시 회수해야만 한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두 남녀를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뭐해?"
로저의 뒤에 바짝 붙어 따르던 켈리가 로저를 바라보며 말했다. 갑자기 냄새를 맡는 로저의 모습이 기묘하긴 했다.
"방금 그놈 기억해?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어. 그건 쉽게 빠지는 냄새가 아니지."
"그래도 그렇지 숲속에서 담배 냄새를 맡는다고?"
"무작정 따라갈 수는 없잖아. 실력은 모르지만 활을 들고 있었으니... 냄새가 나는군."
풀냄새, 흙냄새가 장악한 숲 한가운데. 하지만 로저의 코는 그 사이에서 바람을 타고 실려온 담배 냄새를 포착했다. 팀과 켈리가 묵묵히 칼을 빼들었다. 칼날엔 재가 잔뜩 묻어있었다. 반사광을 줄이기 위함이다.
"천천히 접근한다."
그들의 신발 밑창에는 두꺼운 흡음재가 덧대어져 있었지만, 온갖 낙엽이나 나뭇가지 때문에 소리를 완전히 죽이는 것은 어려웠다. 따라서 추격조는 아주 천천히. 천천히 풍상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사람 키만큼 자란 수풀이 그들을 마주했다. 이 너머에서 담배 냄새가 진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도망을 포기하고 생애 마지막 담배를 피우는 것일까?
'꽤나 낭만 있는 놈이군.'
로저가 소리 없이 웃으며 화살을 장전했다. 오랫동안 그와 함께한 동료인 켈리와 팀은 말하지 않아도 이미 뜻이 통한 뒤다.
수풀 너머를 향해 화살을 쏘면, 팀과 켈리가 단숨에 달려나간다. 상대도 무장했으니만큼 위험성은 있었지만 이미 그들은 넘으면 안 될 선을 몇 번이고 넘은 뒤였다. 망설임은 없다.
퉁! 사사삭!
화살이 수풀을 헤치고 저 너머로 사라졌다. 두 검사는 화살을 뒤쫓아 번개같이 달려나갔다. 화살에 맞았다면 이미 끝난 거고, 맞지 않았더라도 검으로 베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 너머엔 아무도 없었다. 그럼 이 지독한 담배 냄새는? 두 사람의 시선이 땅바닥에 놓인 채 반쯤 타들어간 일곱 개비의 담배에 향했다. 소름이 손끝에서 신경을 타고 머리끝까지 질주한다.
"숨어어어!"
켈리와 팀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치며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저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파란 불빛이 보였다.
* * *
창공은 아린이 쓰러졌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는 그곳에 있는 수풀 사이에 몸을 숨기고선 화살을 메겼다.
궁수들은 눈썰미가 좋다. 멀리 있는 표적을 맞히려 집중하다가 보면 자연히 그렇게 된다. 그리고 그는 상대 궁수의 실력을 믿고 있었다. 정말로 변경백이 주모자인진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범인이 아무나 대원으로 차출했겠는가?
그는 계곡에서 담배를 물고 있었다. 상대 궁수도 반드시 그것을 보았을 터였다. 그렇다면 상대는 담배 냄새에 유념하고 있으리라는 게 창공의 생각이었다. 실력 있는 추적자라면 응당 시각이나 청각 이외의 감각까지 활용해야 하는 법이다.
끼이이익...
활대가 소리를 내며 천천히 굽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재빠르게 쏘려면 어느 정도 당겨놓아야 했다. 땅에 떨어진 담배를 본다면 분명 상황을 알아차릴 테니까.
"..."
1분도 채 걸리지 않으리라. 담배 냄새를 맡은 적은 속도를 늦추고 조심스레 접근하겠지만 어차피 얼마 안 되는 거리다. 수는 얼마나 될까?
둘? 셋? 아무튼 절대 하나는 아니다. 숲속에서 활잡이를 상대로 한 명을 보내는 건 있을 수 없으니.
왼팔에 부하가 걸리기 시작하고, 핑거탭 너머로 시위의 장력이 전해져온다. 당기는 건 여기까지. 만작 상태로는 그도, 활도 버틸 수 없었다. 창공은 가빠지려는 호흡을 억누르며 눈을 부릅뜨고 목표 지점을 바라봤다.
1초가 1시간처럼 흐른다. 그의 등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땀방울이, 혈관을 질주하는 피가 느껴진다.
슬며시 고개를 드는 두려움과 긴장감. 하지만 그것들은 파도에 쓸리는 모래알처럼 산산이 흩어진다. 누가 됐든 죽인다. 몇 명이든 죽인다. 창공은 머릿속을 순수한 살의로 가득 채웠다.
'...!'
그러자, 화살촉에서 희미하게 파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마나가 발현된 것이다. 가슴에서 시작된 심장 박동이 온 몸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의 몸 전체가 심장이라도 된 것 같았다. 몸 전체에서 박동이 느껴지고, 알 수 없는 기운이 퍼져나간다.
팔과 손가락에도 감각이 있었다. 따가운 탄산이 목구멍을 스칠 때처럼 찌르르한 감각이다. 용암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 같은 뜨거움. 그러나 고통은 없다.
갈가리 찢어 죽이겠다. 화살에 맞았던 늑대처럼. 터뜨려서,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처참하게 죽이겠다. 나를 죽이려고 한 너희를 죽이겠다.
화살은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서슬 푸르게 빛났다. 시위는 점점 당겨지고, 활대가 둥글게 휘었다. 드디어 시야에 검을 든 적들이 나타났다.
"숨어어어!"
핑!
화살이 시위를 떠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파란 선이 그려졌다. 찬연하게 빛나는 혜성은 왼쪽에 선 적의 가슴을 강타했다.
퍼어엉!
폭발과 함께 요란한 소리가 평화롭던 숲을 잔뜩 할퀴었다. 한 대의 화살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창공은 입을 쩍 벌리고 구경하는 대신 잽싸게 화살을 꺼내 장전했다.
연기가 걷히고, 활이 끼긱대며 다시 굽어진다. 하지만 그의 눈에 살아있는 적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주인을 잃어버린 팔과 다리 토막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제서야 창공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척수를 타고 흐르는 짜릿한 감각. 몸이 절로 떨린다. 바로 이거였다.
그는 결과에 만족하며 바로 튀어나가는 대신 잠시 활을 들고 대기했다. 적이 더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마나를 담은 화살의 단점은 공중에 그려지는 궤적 때문에 위치가 들통난다는 데에 있었다.
따라서 남아있는 적이 있다면 그걸 봤을 것이고, 창공의 위치를 파악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는 잠시 동안 사방을 경계했다.
하지만 별다른 낌새는 없었다. 그제서야 창공은 조심스레 자세를 낮추고 탄착지점으로 다가갔다. 저 근처에는 아린이 누워있었다. 그녀의 상태도 확인해야 했다.
다행히 아린의 몸엔 생채기 하나 없었다. 등에 꽂힌 화살을 제외하면 무탈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이긴 했지만...
샥
창공은 아린이 찬 홀스터에서 단검을 꺼내들어 손에 쥐고선 시체 쪼가리가 널린 곳으로 걸어갔다.
자그만 불꽃들이 곳곳에서 마른 잎들을 불사르고 있었다. 괜히 산불이 번지면 큰일이라 발로 적당히 비벼 껐다.
'늑대한테 쐈던 거랑 다른 건가?'
그 화살은 지금처럼 폭발하거나 하진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늑대에게 끌려가던 나유도 성치 못했으리라.
"아... 으윽..."
반쯤 타들어간 수풀 너머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창공은 즉시 자세를 숙이고 천천히 포복으로 기어갔다. 역시 적이 하나 더 있었다. 다만 이제까지 신음하고 있단 말은, 행동 불능 상태란 것일까...
"크흐윽... 흐으..."
잎새들 사이로 바닥에 누워 고통을 호소하는 남자가 보였다. 상태는 처참했다. 불탄 모양인지 옷 곳곳이 그슬린 데다 구멍이 난 자리에는 끔찍한 화상이 잠식한 피부가 보였다.
창공은 다른 적이 더 없음을 확인하고선 수풀을 헤치고 남자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켜며 바닥에 떨어진 활에 손을 갖다 댔지만, 창공이 달려들어 그의 턱주가리를 걷어차는 게 먼저였다.
"커헉..."
"이 씹새끼... 넌 오늘 임자 만났다."
로저는 악의로 가득 찬 목소리에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선 눈을 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