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알펜시아 산맥 (7)
* * *
"헉... 허억..."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 땀이 턱 끝에 모였다가 방울지어 떨어진다. 아직 하늘엔 붉은 기가 남아 있었지만 해는 떨어졌기에 기온은 점점 내려가는 중이었다. 나무들 사이로 부는 서늘한 바람에도 창공의 몸에서 배어 나오는 땀은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다.
"후... 시발."
그는 지금 품에 아린을 공주님 끌어안듯이 안고서 산을 타고 있었다. 창공도 이게 비효율적인 자세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화살에 맞은 데다 의식이 없는 그녀를 등에 업거나 파이어맨즈 캐리로 들쳐맬 수는 없었다. 그나마 아린의 몸이 가벼우니 다행이지, 나유였으면 팔이 빠질 뻔했다.
끊임없이 나오는 땀만큼이나 짜증도 샘솟았다. 두 팔로는 아린을 들고, 몸에는 두 개의 활을 걸치고, 허리엔 또 두 개의 화살통을 맸다. 혹시나 증거가 될까 들고 가는 로저의 물건이었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도망치면서도 특징적인 지형지물은 눈여겨봤었고, 그것들을 지표 삼아 착실히 따라가다 보니 물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동굴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은근히 걱정도 됐다. 분명 동료들은 그가 낸 소리를 듣고 동굴에서 나왔으리라. 높은 확률로 교전이 있었을 터. 과연 그들이 이겼을 것인가? 혹시 부상자가 있진 않을까?
'어쨌든 이기긴 이겼어야 하는데...'
그리고 그런 창공에게 화답하듯, 저 멀리서 일행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공아아아아아!"
"서창고오오옹!"
"서 상!"
"미스터 서! 들리는가!"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호선이 그어졌다. 저렇게 소리치며 그를 찾아다닐 수 있다는 건, 부상이 있더라도 큰 부상은 아닌 데다가 높은 확률로 이 근처의 안전까지 확보되었다는 뜻이니까.
"나 여깄어! 누가 와서 좀 도와줘!"
창공이 대답하자 환호성이 들려왔다.
"와! 우와! 내가 뭐랬어! 살아있을 거라니까!"
"여기! 이쪽에!"
이미 사위는 어둑어둑해진 뒤였다. 밝기는 가까이 있는 사람의 얼굴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 그는 계속 소리치며 자신의 위치를 알렸다. 이윽고 일행들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창고... 세상에. 아린아!"
반가운 얼굴로 나타났던 나유가 창공의 품에 안겨 축 늘어진 아린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일행들도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형. 아린이 좀 받아 줘요. 팔 빠질 거 같애. 등에 화살 맞았으니까 조심하고."
"...고생했어."
창공은 어택에게 아린을 인계했다. 그가 아린을 조심스레 품에 안아들었다. 나유와 히사시는 아린의 상태를 살피고, 자작이 창공에게 다가왔다.
"자네가 무사해서 다행일세. 우리도 전투를 치렀어. 우선 동굴에 가세나."
"거긴 안전합니까?"
"도망친 자들은 없었네. 적어도 우리가 본 바로는. 어차피 김 양도 다친 것 같으니 쉬긴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작의 말은 타당했다. 동굴로 복귀한 일행은 바로 불을 피우고 물을 덥혔다. 나유가 바람막이를 벗어 땅바닥에 깔자 어택이 그 위에 아린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어떡해... 어떡해..."
나유가 그녀의 옆에 꿇어앉아 어쩔 줄 몰라 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숨은 붙어있었다. 의식이 없고 호흡이 약하긴 했지만 말이다. 온 일행이 그녀에게 모여들었다.
"대신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창공이 침착한 목소리로 자작에게 물었다. 이 자리에서 부상과 그 치료에 대한 지식이 있으리라 추측되는 사람은 군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어택과 카벨 자작. 그리고 화살에 맞았다면 어택보다는 자작이 더 도움이 되리라.
"우선 상처 부위를 확인해야 하네. 뽑을 수 있는 상처면 뽑는 게 좋겠지. 김 양에겐 미안하지만 상의를 벗겨야 하네."
"그렇게 하죠."
어택이 아린의 상체를 받쳐 들고, 창공이 그녀의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하나 끌렀다. 하얗고 매끄러운 맨살과 하늘색 브래지어가 드러났다. 자작은 민망했는지 시선을 돌렸다.
등에 화살이 꽂혔으니 보통 탈의하는 방법으로는 벗길 수 없었고, 두 팔을 빼낸 다음 위로 들어 올려 옷에 난 구멍으로 화살을 통과시켜야 했다.
이윽고 드러난 상처. 아린의 가녀리고 작은 등에 꽂힌 화살은 너무나 커다래 보였다. 나유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욕설을 뱉어냈다.
"개새끼들... 이렇게 작은 애한테..."
"화살촉은 어떤가? 완전히 살 안으로 파고들었나?"
"삼분의 이... 정도. 꽂혀있습니다."
"그랬으면 폐를 찌르진 않았을 것 같기는 한데... 워낙에 김 양의 몸집이 작고 여리니 확신할 수가 없군. 음."
자작이 잠시 고민했다.
"뽑도록 하세. 뽑은 다음에 조치를 취하세나. 고다. 가방 안에 깨끗한 천은 있는가?"
"아, 네!"
히사시가 미친 듯이 가방을 뒤졌다. 산맥에 오기 전에 시장에서 구매한 품목 중에는 상처를 입었을 때 쓸 치료 도구들도 얼마간 있었다. 곧 히사시는 그의 손에 잡힌 하얀 천을 자작에게 내밀었다.
"약제나 약초는?"
"있긴 하지만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그는 울상을 지으며 주먹의 두 배 정도 되는 주머니를 꺼냈다. 마른 잎들이 잔뜩 들어있는 주머니였다. 일단 상처에 쓰는 약이라고 해서 사기는 샀는데, 도무지 그 용법을 알 수가 없었다.
"한 번 보세."
카벨 자작이 주머니 안에서 이파리를 집어 냄새를 맡았다.
"퀴케어로군. 분명 도움은 될 것이야."
뭔진 몰라도 약이라니 다행이었다. 그가 뜨끈해져 김이 솔솔 올라오는 물에 천을 적시며 말했다.
"어 군. 김 양의 등에서 화살을 뽑아주게. 자네가 힘이 가장 세 보이니 맡기는 일이야. 화살이 꽂힌 각도 그대로. 한 번에 뽑아내야 하네."
어택이 화살을 잡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 수 없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흡!"
이윽고 그가 한 번 힘을 주자, 화살이 쑥 뽑혀 나왔다. 뽑힌 자리에서 피가 울컥, 하고 솟는다. 이제 자작의 차례였다. 그는 물기를 짠 천으로 상처를 조심스레 닦아냈다. 어느 정도 상처가 닦이자 그곳에 대고 꾹 눌렀다.
"미스터 서. 내가 하는 것처럼 눌러주겠나? 너무 세게 하지는 말게나."
"알겠습니다."
그는 창공에게 지혈을 맡긴 다음 어택에게서 화살을 건네받았다. 이윽고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 긴장된 표정으로 화살촉을 입가에 갖다 대더니, 혀를 내밀어 살짝 찍었다.
"퉤엣! 크흠! 독은 아마도 없는 것 같군. 확실하진 않지만..."
약초가 물에 풀어졌다. 자작은 그것을 다시 꺼내 손가락으로 비벼 부순 다음, 동그랗게 뭉쳐 경단처럼 만들었다.
"출혈은 멈춘 것 같나?"
"확인하겠습니다."
창공이 조심스레 천을 떼 상처를 확인했다. 파여진 자리에서는 여전히 피가 방울방울 맺히긴 했지만 걱정될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멈춘 것 같습니다."
"좋아. 어디 보세. ...음. 천만다행히 폐에 닿지는 않은 것 같으이. 알펜 대왕이시여, 부디 그녀를 도우소서."
자작이 약초로 만든 경단을 조금씩 떼어서 아린의 상처에 발랐다. 안에 집어넣기도 하고, 주위에 바르기도 하고, 천에 비비기도 했다.
"한 번 눌러주게. 아까보단 살살."
다시 한번 창공이 천을 들고 아린의 상처를 지긋이 압박했다. 나유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아린의 손을 꼭 붙잡았다. 바라보던 어택이 뭔가를 떠올린 듯 그녀에게 말했다.
"나유야. 아린이 손은 어때. 차가워?"
"그렇게까진... 안 차가운 것 같은데..."
"오케이."
그녀의 블라우스도 그렇게까지 피에 물든 건 아니었다. 실혈 쇼크에 대한 걱정이 조금은 덜어졌다.
"그런데 대신님. 이 풀은 대체...?"
히사시가 물었다.
"퀴케어. 지혈과 소염에 효능이 있는 약초일세. 하지만 어디까지나 심하지 않은 상처에 한해서 효능을 기대할 수 있지."
"그럼... 이런 상처의 경우엔..."
"효과야 있겠지만 장담할 수는 없네. 다만 화살촉이 깔끔하게 생기지 않았나. 끝이 갈라지거나 했다면 훨씬 심각했을 거라네. 최악의 상황은 아니야. 이제 남은 건 그녀가 잘 버텨주길 바라는 것일세."
나유가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흐으윽... 끅. 크흑. 아린아..."
"괜찮겠지."
창공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도 심란하긴 했지만 이미 그들이 여기서 뭔갈 더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괜찮을까...?"
"음. 그런데 이거 하루 종일 누르고 있어야 하나?"
"잠깐이면 충분하네. 피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만. 내일 아침에 상처를 다시 씻어줘야 하고... 그때 출혈이 얼마 없다면 예후는 괜찮을 걸세. 그나저나 미스터 서.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하지."
"제가 하겠습니다."
히사시가 자원했다. 창공은 그에게 아린을 맡기고 자작과 함께 동굴 밖으로 나갔다.
"실은 방금 전 전투에서 포로를 잡았었다네."
"저도 그랬습니다."
둘은 잠시 서로를 마주보고선 피식했다. 둘 다 포로를 잡았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이겠는가.
"자네도 그를 심문했는가?"
"엘란 변경백령 소속 기사인 로저라고 하더군요."
"역시. 이쪽은 같은 소속인 기사 랜달이었네."
자작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콘워스 변경백이 왜... 대체 왜...?"
"그쪽 포로도 기사들끼리 작당했고, 변경백은 모른다고 둘러댔습니까?"
"자넨 그걸 믿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바보가 아니고서야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네. 도무지 묵묵부답이었지. 어쩔 수 없이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즉결 처분했네."
"저는 더 알아낸 사실이 있습니다."
"어떻게...?"
"다 방법이 있습니다."
자작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창공이 말한 방법은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그라고 그러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는 궁정 귀족이자 이 나라의 전례 대신이었다. 남의 눈앞에서 기사를 함부로 고문할 수는 없었다. 설령 반역죄를 저지른 기사라 할지라도.
"일단 변경백은 자신의 성 안에 있습니다. 아내와 자식을 잃은 슬픔이 매우 크다고 합니다."
"그렇겠지. 아, 콘워스 부인! 당신께서 계셨더라면 과연 오늘과 같은 일이 있었겠습니까?"
그가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다음으로 왕자님 일행과 전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근위대 다섯은 전부 죽였지만, 왕자님의 행방은 찾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근위대가 전부 전사했단 말인가? 그런데 왕자 전하의 행방을 몰라?"
"이 근처에서 전투가 있었고, 근위대는 왕자님을 도주시키는 데 전력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놈들이 이 근처에서 수색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왕자 전하께서... 그렇군. 어쨌든 아직까지 희망은 있는 셈일세. 그런데 왜 변경백은 역심을 품었단 말인가? 누구보다 앞장서 왕실의 방패가 되었던 변경백이?"
창공은 로저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대충 그 이유가 짐작은 갔다. 하지만 확정 지을 수 있는 증거가 없었다.
"변경백의 기사에게서 들었던 이야깁니다만."
"음."
"왕자님께서는 은밀하게 기동하셨지만 변경백이 그것을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로저의 이야기는 이랬다.
왕자가 자신의 영지를 거쳐 산으로 향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변경백은 당시 사별한 아내의 초상화를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미친 듯이 웃더니, 곧 무시무시한 얼굴로 왕자를 척살할 것을 명한 것이다.
기사들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곧 변경백의 명령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왕의 기사가 아닌 변경백의 기사. 변경백을 위해서라면 그것이 반역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따를 각오가 된 자들이었다.
이윽고 변경백은 예식용으로 마련된 알펜 황조롱이 화살을 로저와 길에게 하사하며 반드시 이 화살로 왕자의 머리를 꿰뚫으라 지시했고, 걸림돌이 있다면 그 누구든지 즉결 처분해도 괜찮다는 말까지 했다.
"그 무슨... 도무지 믿기지가 않네. 이게 도대체... 하..."
자작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렇게 잠시 아무 말도 없던 그는 천천히 얼굴에서 손을 떼어냈다.
"그 이야기는 이제 되었네. 어쨌든 이 산에 더는 변경백의 기사들이 없다는 것은 안심이 되는군."
"더 파견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들은 내일 아침 일찍 산을 내려가도록 하게."
"..."
창공은 묵묵히 자작을 바라봤다.
"변경백은 이미 미치광이 역도가 되었네.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자네들은 김 양을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서 변경백령을 빠져나가게. 나는 혼자서 왕자 전하를 찾을 것이야."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안 하셨습니까?"
"자네들은 이미 훌륭하게 싸우지 않았나. 내일 내가 편지를 써주도록 함세. 들고 가면 보상은 섭섭지 않게 받을 수 있을 터이니."
창공이 기다리던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솔직히 그도 내려가고 싶었다. 이곳은 너무 위험했다. 하지만 그러자니 보상 문제가 걸렸다. 이렇게까지 개고생을 했는데 한 푼도 못 받고 내려간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러신다면... 부디 행운을 빕니다."
"음."
이렇게 이야기가 끝났다. 동굴로 돌아오니 지혈이 끝났는지 히사시가 동굴 벽에 등을 기대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어택은 반팔 차림이었다. 그의 군복 상의는 아린의 몸 위에 덮인 채였다.
"다들 수고했네. 첫날부터 다사다난했지만, 오늘은 이것으로 끝일세."
"불침번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작은 어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인원이 적으니 김 양을 제외하면 전부 서야 하네. 미스터 서. 지금이 몇 시인가?"
"7시 23분입니다."
"8시부터 취침하도록 하세나. 시계가 있으니 정확하게 시간을 알 수 있겠군그래. 두 명씩 짝을 지어 두 시간씩 불침번 임무를 수행해야 하네. 총 다섯이니 그렇게 두 번씩 서면 10시간. 불침번 시간을 제외한 취침 시간은 6시간인가. 그만하면 되겠지?"
"충분합니다."
"순서는 내가 짜도 괜찮겠나?"
다들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미스터 서, 김 양, 고다, 어 군, 본 자작일세. 이의 있는가? ...좋네."
이윽고 자작은 창공 일행에게 내일 아침 내려가도 좋다는 말을 전했다. 보상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이곳에 남아있고 싶은 사람은 없었기에 다들 선선히 동의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모닥불만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느새 8시가 되었다. 창공과 나유를 제외한 일행은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다. 오늘도 피곤한 하루였기에 10분도 안 되어 다들 의식을 놓아버렸다.
"..."
나유는 멍하니 동굴 바깥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그것은 창공도 마찬가지. 무슨 말을 하겠는가.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너무나 지친 상태였다.
'시간 엄청 안 가네.'
창공이 시계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꽤나 깨어있었던 것 같은데 겨우 30분이 지났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동굴 바깥에서 들어오는 달빛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나유를 쳐다봤다. 그런데 그녀는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유야."
불침번이 자면 쓰겠는가. 이건 둘이 불침번을 서는데 그만 깨어있는 게 억울해서는 절대 아니었다.
"나유야. 일어나."
그런데 도통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창공은 한숨을 쉬며 그녀를 직접 깨우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그때, 다리에 힘이 풀리며 휘청거렸다.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어...?"
결국 그는 쓰러지고 말았다. 앉아있다 갑자기 일어서니 힘이 풀린 건가 싶었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바닥에 자욱이 깔린 검은 연기.
그 검은 연기는 그의 몸에서 힘을 빼앗고, 또 정신마저 빼앗으려 했다. 점점 그의 눈이 감기고 의식이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젠... 장..."
그게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