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더블 데이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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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덴의 왕성 안에는 일명 '발렌티안의 서재'라 불리는 도서관이 있다. 성군이면서 동시에 학자로도 유명했던 발렌티안 1세는 본디 왕의 개인 서재였던 공간을 더욱 확장하여 왕성에 있는 이라면 누구든지 이용 가능한 도서관을 만들었다 한다.
지식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발렌티안 왕의 개인적 신념에 따라 건설된 도서관인데, 안타깝게도 학구열이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만인이 공유할 수 없는 가치이기에 왕의 사후 수백 년간 그 이용률이 매우 저조한 형편이었다.
어쨌거나 존경받는 왕이 세운 도서관이니 기존 장서의 관리와 신규 장서의 유입은 꽤나 괜찮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나 많은 고서를 보유한 덕에 다이셀리시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 있다는 마법의 도시 웨리에서 근무하는 교수들도 가끔가다 책의 대여를 요청하는 실정이었다.
아린은 바로 그곳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벽난로 근처의 폭신한 의자에 앉아 무릎에는 담요를 덮고, 옆의 티 테이블에는 딸기를 얹은 생크림 케이크와 홍차 한 잔을 두고서. 그녀에게 독서란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행위였다. 특히나 달달한 디저트와 함께라면.
책에는, 특히 명서나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엔 독학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지혜들이 담겨 있었다. 수천 년 인류 역사의 자랑스러운 결과물이 바로 책 안에 존재했다. 시간 여행이 대수인가. 아린은 책을 통해 시간 여행을 했다.
하루는 플라톤의 곁에서 강의를 듣고, 하루는 카이사르와 함께 갈리아를 누비고, 또 하루는 마키아벨리와 함께 피렌체를 바라본다.
"뭐 읽어?"
"아, 오빠."
그녀는 뒤에서 들려오는 창공의 목소리에 책에서 눈을 떼고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법률에 관하여'. 천 년 전에 쓰인 책인데요, 아직 본격적으로 읽지는 못했어요. 이거 전에 읽었던 건 재판 절차에 대한 소논문이었고..."
"'법률에 관하여'?"
창공은 아린의 반대편에 위치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사서 역할을 하는 시녀가 다가와 다과를 가져와야 할지 물었고, 그는 차 한 잔을 요청했다.
"네. 지금 머리말 부분이거든요. 본문까지 읽어봐야 알겠지만, 저자는 법률을 보고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축복이라는 말을 하고 있네요."
"웃기네. 법률은 철저하게 인간이 탄생시킨 물건인데."
"오빠는 그렇게 생각해요?"
아린이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창공을 바라봤다. 그녀는 책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책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걸 너무나 좋아했다. 내용 그 자체에 대한 토론도 좋고, 거기에서 나아가 그것과 연관된 사회 이슈에 대해 토론하는 것도 좋았다.
그녀만큼은 아니었지만 그건 창공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인 부분이 있었다. 다만 아린이 의견을 나누는 그 자체에 의의를 둔다면, 창공은 제 논리로 상대방을 찍어누르는 데에서 쾌감을 느꼈다.
"'법률에 관하여'... 비슷한 느낌의 제목을 가진 책이 지구에도 있잖아. '법률론.'"
"마르쿠스 키케로?"
"어. 그 사람이 쓴 거."
"백성들의 제도나 법률로 제정되어 있는 것이라면 모두가 정당하다고 여기는 생각은 어리석기 짝이 없네. 그러면 참주들이 제정한 법률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하다는 말인가?"
갑자기 책의 한 구절을 읊는 아린. 창공도 그녀의 말을 받아 뒤를 이었다.
"아테네에서 저 유명한 30인이 법률을 부과하려고 한다면, 또 설령 아테네인들 전부가 참주의 법률을 좋아한다면, 그것만으로 그 법률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역시."
두 남녀는 서로를 마주 보며 옅게 웃음 지었다.
"뭐가 역시야. 유명하잖아. 책 안 읽은 사람도 그건 알 텐데."
"그건 그래요. 그런데 구절을 암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생각하느냐죠. 오빠도 동의해요?"
"그렇게 볼 수 있겠지."
"사실 현대 사회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인 측면이 있잖아요. 키케로가 말했던 것처럼 참주는 아니지만, 국민의 대표이자 대리인 국회의원들이 법을 제정해요. 그런데 그 법들이 다 올바르고 정의로운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잖아요? 저는 법을 통해서 사회에 정의를 구현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그녀는 창공을 독서 토론에 끌어들였다. 이세계에 떨어지고 난 다음에 있었던 고민과 고통은 모두 사라지고, 대학생일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정의로운 법률을 만들지 못한다면, 키케로가 말했던 대로 사람들이 그 의원을 얼마나 좋아하든, 법률을 얼마나 좋아하든 그건 법률로써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정의롭지 못해서?"
"정의롭지 못한 법률은 그 자체로 자격이 없으니까요. 법률은 만인의 정의에 기초해야 해요."
"지금 정의 얘기했는데, 그러면 저 구절 뒤에 나오는 정의가 성문법에 대한 복종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키케로의 말에도 동의하겠네?"
"당연하죠. 진짜 정의는 여기 있으니까."
아린은 손을 들어 제 가슴께를 짚었다.
"인간의 본성. 물론 본성에는 선한 본성도 있고 악한 인성도 있죠.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어디까지나 정의는 선한 본성에 기초한다는 거예요."
"틀렸어."
창공이 한 마디로 아린의 주장을 일축한다. 그녀는 생긋, 웃었다.
"왜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정의가 바로 성문법에 대한 복종이니까."
"위험한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인기에 영합해서 제 이득만을 취하려는 독재자를 비호하는 말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런데도?"
"정의라는 건 말야. 백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의 정의가 있고, 만 사람이 있으면 만 가지의 정의가 있어. 네 말에 따르면 한국의 법률은 오천만 가지의 정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거고. 그럼 그건 더 이상 법률이 아니야. 그냥 쓰레기지. 오천만 국민이 각자 하나씩 와서 한 마디씩 낙서를 끄적이고 간 담벼락에 불과해."
"보편적인 정의라는 게 있잖아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인 주장은 다수결로 나타나고, 그게 바로 투표야. 따라서 투표를 통해 당선된 국회의원이 제정하는 법률이 보편적인 정의고, 그 법률에 복종하는 게 바로 만인이 공통적으로 따를 수 있는 정의야."
"궤변이에요. 반드시 그 후보의 주장에 100% 동의하기 때문에 표를 던지진 않잖아요."
"그럼 출마하던가. 자격 조건만 갖추면 피선거권은 보장하고 있잖아."
"그게 불가능하니까 대표를 뽑아서 투표를 하는 거죠. 그리고 대표로 뽑혔으면, 자기가 대표하는 사람들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해야죠. 한 번 국회의원이 됐다고 끝난 게 아니니까요. 대표라는 건 그런 거고."
하지만 창공은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듯 도리질을 했다.
"자꾸 대표의 잘못으로만 몰아가는데, 사실 그거 아주 잘못된 생각이거든. 주인대리인 문제 알아?"
"네."
"당연히 대리인이 도덕적 해이를 일으키면 안 되겠지. 그런데 주인이 똑바로 감시를 해야 그런 일이 없지 않겠어?"
"그 도덕적 해이는 정보의 불균형 때문에 일어나는 거잖아요. 뭘 말하려는진 알겠는데, 그렇다고 주인 잘못으로 몰아가서도 안 돼요. 근본적으로 가장 큰 잘못을 한 건 대리인이에요."
"아니. 그건 현명하고 지엄하신 국민들 잘못이야... 우리 이러다 원래 주제에서 벗어날 거 같은데."
"전 이런 거 좋아해요. 주제에서 벗어나서 아예 다른 소리를 해도 되니까, 오빠 생각을 듣고 싶어요."
"의식의 흐름대로 말해도 된다는 거지. 그럼 계속한다? 사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아무 정치적 활동도 안 하는 주제에 정치인들을 욕하는 건 아주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위라고 할 수 있어."
"그런 말은 조금..."
"아니 진짜라니까? 독재국가나 권위주의 국가에서 그런 말을 하면 그건 이해가 가. 손발 다 묶이고 두드려 맞기만 하는 거니까. 그런데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정치를 할 수 있는 나라에서, 주인으로서 자각 없이 아무 행동도 안 하면서 대리인이 도덕적 해이를 일으킨다고 비난을 해? 대리인 이전에 주인이 똑바로 책임을 다해야지."
"아까도 말했지만 의도는 알겠어요. 하지만 다시 말해서, 주인대리인의 계약 관계에서 대리인은 대가를 받는 대신 의무를 다하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대가를 못 받은 것도 아니고요. 먼저 계약을 위반한 쪽이 누군데요? 대리인 쪽이에요. 설령 적극적으로 정치적 활동은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 대리인 업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거라고요."
"그런데 아린아. 그거야말로 인간의 본성이야. 이기심. 다른 사람이랑 계약을 할 때엔 상대방의 이기심을 잘 억제할 수 있어야 해. 조금만 감시의 눈길을 늦춰도 딴짓거리를 하거든. 내가 아까 백 사람에겐 백 가지의 정의가 있다고 했지? 그런데 그 서로 다른 백 가지의 정의를 관통하는 한 가지 주제가 있어. 바로 이기심이야."
"오빠 말을 인정하더라도, 인간 사회는 바로 그 이기심을 억제하고 제어하는 방향으로 발달했어요. 이기심이 본능이라면, 그 이기심을 조절하는 것도 본능이라고요."
"정확히는 생존에 대한 본능이지. 어설프게 이기적인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거든. 그런데 이 세상에는 어설프게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해.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게 바로 법이야. 법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자유를 구속하는 형태를 띠고 있어. 바로 그런 이유야."
"상생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다면, 그게 바로 선한 본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생존에는 선도 악도 없어. 태어났으니까 산다, 죽지 못해 산다. 거기에 무슨 선악이 있는데?"
"생 자체에는 선악이 없다는 오빠의 말에 동의해요. 하지만 혼자서 사는 게 아니잖아요. 결국 우리는 최대한 분란 없이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길 원해요. 법치 국가에서 제시하는 방법이 바로 법이고요. 그리고 제대로 된 국가의 법률이라면 권선징악을 내포했고... 이게 선함이 아니면 뭔데요?"
"아니지, 아린아. 권선징악이 아니지. 악한 행위라서 처벌하고, 선한 행위라서 상찬하는 게 아니야. 처벌하기로 합의된 행위니까, 상찬하기로 합의된 행위니까 그렇게 하는 거야. 법은 사회적인 합의라고. 자, 마무리할게. 어차피 어느 지점에선 끝나야 되니까."
그는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완전히 기댔다.
"사람마다 각자 생각하는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생겨나. 갈등은 누군가가 보고 판단해서 해결해야 하는데, 그 판단하는 사람조차 개인의 정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정하게 판단할 수 없어. 그래서 법이 있는 거야. 개인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에 들지 않아도 따르기로 합의된 규칙. 그렇기 때문에 유일한 정의는 바로 제정된 성문법을 지키는 데 있는 거고."
"그럼 오빠는 악법도 법이라고 생각하겠네요?"
"정당한 절차에 따라 제정된 법이라면. 애초에 악법이네 뭐네 하는 건 다 자기들의 기준으로 떠드는 거거든."
"틀렸어요."
아린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네... 오빠 말대로 각자에겐 각자의 정의가 있다는 것엔 동의해요. 하지만, 분명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공통되는, 인류 전체의 공통되는 정의가 있어요. 추상적이고 무형적이죠. 증명할 수 없어요. 이걸 법으로 만드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 있겠죠. 그래도 우린 노력해야 해요. 악법은 고치고, 정의롭지 않은 법은 정의롭게. 그렇지 않으면 더 나은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은 없으니까.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는 그 길을 걷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으니까."
이렇게 두 사람의 토론은 끝났다. 둘 다 서로를 납득시키는 데엔 실패했다.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못했기도 하거니와, 기본적으로 자기 생각에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린은 무척이나 재밌는 토론이었다고 생각했다. 이런 기분을 느껴본 게 얼마 만이던가. 다만 사랑하는 오빠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충분히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사람인데... 하는 생각.
'꼭 오빠 생각을 돌려놓고 말 거야. 이 세상은 살아가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이 아니라,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세상이라고.'
반면 창공은 답답함을 느꼈다. 그가 보기에 아린은 너무나 대책 없이 이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전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어렴풋이 느끼고야 있었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면 할수록 그 사실이 확실히 다가왔다.
아무래도 그의 생각에 그와 아린은 만나지 않는 평행선을 달릴 운명이었다.
"그런데... 너 여기 조사하러 온 거 아니었어?"
"조사요?"
"균형의 일그러짐."
"아!"
아린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분명 왕들의 무덤에서 아네르들이 그러지 않았던가. 이 세상을 지탱하는 균형이 어긋났고, 창공 일행은 그것을 다시 돌려놓기 위해 뽑힌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
따라서 아린은 그 일그러짐을 찾으려 왕성에서 자료 조사를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창공은 그녀가 도서관으로 갔다는 말을 듣고 영락없이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반응을 보니 그건 아닌 모양이다.
"아니 그게... 하려고 했는데요."
쉴 새 없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아린.
"여기 오니까 재밌는 책들이 너무 많아 보여서... 죄송해요..."
"죄송할 건 없고. 그나저나 지금 든 생각인데, 역시 읽는 건 문제없나 봐?"
"네. 이 세상의 문자로 쓰인 책이겠지만 보이는 건 한글로 보여요. 간판이나 다른 글자들 읽을 때처럼요."
"우리만 이런 건지, 아니면 지구에서 넘어온 다른 사람들도 그런 건지."
"아마 다른 사람들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 뭐 때문에 이런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편해서 좋네요. 하루아침에 문맹이 됐으면 답답했을 테니까... 말도 잘 통하고."
창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러고 보니 우리 여기서는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없네. 내가 여기 왕이나 각료였으면 지구에서 넘어온 사람들 데려다가 외교관으로 썼을 텐데."
"우와, 그거 좋은 생각이다. 하긴 우리 나름 인재들이네요? 그동안 우리가 거친 나라만 3개국인데 의사소통이 안 되는 때가 없었으니까요."
"맞아. 게다가 글도 읽을 줄 알고. 음, 혹시 우리가 쓴 글도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있으려나."
"이따가 한 번 알아볼게요. 그나저나 멋지지 않아요? 모든 사람들이랑 말이 통한다는 게. 사실 의사소통의 미진함이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잖아요.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린 그런 문제가 더 자주 일어나고요."
"그래서 번역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번역은 원문과 동등한 가치를 가질 수 없으니까."
"네. 그래서 원서 읽으려고 영어 공부도 했고... 이건 조금 딴 얘기지만."
"그래그래. ...나도 여기 온 김에 책이나 읽다가 갈까."
"그렇게 해요. 네? 재밌는 부분 있으면 저랑 또 얘기하고요."
"야, 너랑 얘기하면 피곤해."
아린은 창공의 말에 웃으며 다시 책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다. 사람들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언어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추상적인 것을 주고받는다. 언뜻 보기엔 있을 수 없고 모순적인 행위.
하지만 이게 가능한 이유는 언어는 단순한 음성의 조합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어나 관용어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그 안에는 문화와 역사적인 배경이 담겨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나 개념을 전달할 수 있다. 어떤 문화를 이해하려면, 그 문화권의 언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그렇기에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던 대로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
만약 비트겐슈타인이 그녀를 보았더라면 뭐라 했을까? 이 세상 모든 사람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니... 그녀는 무한한 존재였다. 그녀의 말은 음악과도 같았다. 음악은 전 세계의 공통 언어라는 말이 있다.
어떤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음악이건, 기쁜 음악을 들으면 기쁘고 슬픈 음악을 들으면 슬프다. 말로 통하지 않는 마음도 음악으로는 통할 수 있다. 음악은 무한을 전달하는 무한의 언어.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잠깐... 음악. 바로 그거야.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아린은 담요를 걷고 의자에서 일어나 책을 고르는 창공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얼굴은 알 수 없는 환희에 물들어 있었다.
"오빠."
"어. ...너 왜 그렇게 웃고 있냐?"
"아, 웃고 있나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방법을 찾았다고요. 대관식에서 뭘 하면 좋을지."
"진짜?"
창공은 아린의 표정을 보고 직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분명 정답을 찾아냈다고.
"오빠. 지휘 한 번 해 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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