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떠돌이들-63화 (63/178)

〈 63화 〉 막간

* * *

"이자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오. 그들을 위해 이 세상이 마련한 적수는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라오."

일곱 남녀가 결박되어 꿇어앉아 있었다. 눈빛은 매섭고 표정은 험악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꿇려진 곳 앞에 설치된 단 위에서, 찬란한 금발 머리의 미남이 그들을 손가락질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들 또한 세상의 균형을 담당하는 추의 하나. 추라는 것은 언제, 어디에 놓이냐에 따라 저울이 수평을 이루게도 하고, 무너뜨리게 하기도 한다오. 하나 그들이 놓여질 저울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소. 그렇기에 이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오."

단 아래에 일곱이 있는 것처럼, 단 위에도 일곱 남녀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마치 승리한 영웅처럼 위풍당당했기에 두 집단은 유사하기는 커녕 너무나 대조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왕관을 쓰고 있는 남자가 금발 머리에게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걸었다. 사실 일곱 남녀 전원이 머리에 왕관을 쓴 채였지만.

"친구여, 그대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구려..."

"한 마디로, 미래를 위해 마련된 악이라는 것이오. 후손들을 위해 마련된 시련이라고나 할까. 이들을 죽여 사지를 찢고 불태워 흔적도 없이 재를 흩어놓는다 해도, 먼 훗날 이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오."

"그래서."

또 다른 사내가 말했다.

"지금 이것들을 죽이자는 거요, 말자는 거요? 어쨌든 살려둘 수는 없소."

"그대의 마음대로 하시오. 그러나 우리의 일은 끝났소. 정확히 말하면, 성공했지. 이자들의 생사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오."

"그렇다면 그 수수께끼 같은 말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소? 어쨌든 이놈들의 얼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소. 이놈들에게 죽은 내 장졸들을 생각하면... 여봐라! 당장 끌어다가 죽을 때까지 날카로운 칼로 살점을 하나하나 저며라! 천 번의 칼질이 있을 때까지 죽어선 아니 된다!"

"명을 받잡습니다!"

기사들이 사형수들을 붙잡아 일으켜 세운 다음, 형장으로 질질 끌고 갔다. 그들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왕관을 쓴 일곱 남녀를 쏘아봤지만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 귀 큰 놈아! 우리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그래! 다시 돌아와 주마! 너희들의 나라를 짓밟고, 너희들의 후손을 갈가리 찢어 죽이러 다시 돌아올 것이다! 우리가 받은 천 번의 칼질은 만 번의 칼질로 되갚아 줄 것이야!"

* * *

"대저 이 세상은 균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문제가 있으면 답이 있고, 선이 있으면 악이 있으며, 신이 있으면 악마가 있노라."

"마지막은 빼."

흑발의 여인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교단에 따르면 악마 같은 건 없어. 전지전능한 신은 대적자를 허락하지 않았다지."

"인간이 바로 악마다."

백발의 남자, 글라키스가 무심한 표정으로 여인에게 답했다.

"신의 축복을 받아 탄생했으나, 혹자는 자유의지로 악을 행하고, 혹자는 불신을 행하고, 혹자는 믿음을 등에 업고 거짓을 행하니 이게 과연 신의 자식이란 말인가."

"당신 말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악마가 아닌데?"

"인간은 다시 두 부류로 나뉘어지지. 이미 악마인 자. 악마가 될 자."

"이천 년이 지났는데 헛소릴 하는 건 여전하네."

"쓸데 없이 말꼬리 잡지 마라, 아우다치아. 말이 빗나가기 시작한 건 너 때문이지 않은가."

글라키스는 바닥에 놓여진 작은 상자를 집어들었다. 포장지를 뜯으니, 그 안에는 멋들어진 파이프가 하나 들어있었다.

"풀라산 파이프로군. 그곳의 장인들은 여전히 좋은 품질의 파이프를 만들어 내는 모양이다."

"담배 좋아하는 것도 여전하고."

"아우다치아. 이제 그만 옷이나 입고 말해라. 아직도 네가 땅속에 묻힌 줄 아나?"

"뭐가 어때서. 보는 사람도 없는데."

아우다치아라 불린 여인은 한 남성의 시체 위에 알몸으로 앉아있었다. 수치심도 없는지 다리를 벌려 치부를 훤히 보이고 있는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흙이 잔뜩 묻은 채였다. 마치 방금 전까지 흙바닥 위를 굴렀던 사람처럼.

"내가 보고 있지 않나."

"왜, 따먹을래?"

"생각 없다."

"그리고 넌 사람도 아니잖아, 글라키스. 이천 년이 지났는데 살아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널 먼저 꺼낸 것을 후회하게 만드는군."

"하여간 농담 따위는 통하지도 않는 꼴통 얼음덩어리 같으니."

그녀는 투덜거리며 근처에 널브러진 여성의 시체에서 옷을 벗겨냈다. 혹시 몰라 옷에는 상처가 없도록 조심스레 죽였는데, 노력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며. 한편 글라키스는 짐들을 뒤지더니 기어코 연초 쌈지와 성냥을 발견해냈다.

파이프 안에 연초를 집어넣어 조심스레 다진 다음, 성냥으로 불을 붙인다. 연기를 빨아들이는 글라키스의 표정이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보아하니 깨어난 지 꽤 된 것 같은데, 그동안 담배는 입에도 안 댔나 봐?"

"죽음에서 일어나자마자 바쁘게 움직였는데 느긋하게 파이프를 피울 시간이 있었겠나. 그동안 내가 피운 것들은 싸구려 궐련이었다. 담배라 부를 수 없는 것이지."

"어차피 그 연초를 종이에 말아서 피우는 거 아닌가?"

"마약이나 하던 너로선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겠지."

"하, 여전하네. 진짜."

옷을 챙겨입은 아우다치아는 다시 방금 그 시체 위에 올라앉아 글라키스를 올려다봤다.

"그래... 살아났네. 내가, 네가 다시 살아났어. 그럼 나머지 다섯도?"

"그래. 프리그, 테포르, 오스티아, 에크세라, 피테린까지 전부. 이제 깨우러 갈 것이다."

"그 중에 날 먼저 깨운 이유는? 아하, 역시 날 따먹고 싶었구나?"

"별 이유는 없다. 그저 제일 가까이 있었으니까."

글라키스는 아우다치아의 말을 깔끔히 무시했다.

"하. 그런가. 하긴 넌 그런 남자였지."

그녀는 실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 귀 큰 놈이 했던 말 기억나?"

"엘렌튀네 말인가. 그래, 기억하고 있다."

[이자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오. 그들을 위해 이 세상이 마련한 적수는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라오.]

둘은 잠시동안 말없이 그들이 비참하게 죽기 직전을 떠올렸다.

[이 귀 큰 놈아! 우리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그래! 다시 돌아와 주마! 너희들의 나라를 짓밟고, 너희들의 후손을 갈가리 찢어 죽이러 다시 돌아올 것이다! 우리가 받은 천 번의 칼질은 만 번의 칼질로 되갚아 줄 것이야!]

온몸이 결박된 채 머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던 에크세라의 피맺힌 절규. 그러나 엘렌튀네는 철저히 무시로 답할 뿐,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었다. 그때 느꼈던 그 굴욕과 분노가 아득한 세월을 뛰어넘어 아우다치아의 마음을 괴롭혔다.

"엘피타스. 저주받을 이름의 땅. 당장에라도 짓밟고 싶어. 그놈들의 귀를 잘라 구멍을 뚫어 실에 꿴 다음, 어딘가에 있을 그놈의 무덤에 화환처럼 얹어놓고 싶어."

"언젠간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이를 갈며 증오를 내뿜는 여인과는 달리, 글라키스는 무심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우리 동료들을 깨워야 하고, 수확한 원혼들을 정제할 필요가 있어."

"수확한 원혼?"

"나중에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너희들이 팔자 좋게 땅속에서 늘어져 자는 동안 먼저 깨어나 열심히 일한 나에겐 의외의 성과와, 의외의 만남이 있었지. 감사해 할 필요는 없다."

"감사하다고 해 줄까?"

"됐다."

아우다치아와 마찬가지로 시체 위에 걸터 앉은 글라키스는 눈을 감고 여유롭게 파이프를 피워댔다. 지루해진 아우다치아는 자기도 뭐 갖고 놀 게 없나, 하는 눈빛으로 둘러보다 잘린 손 하나를 집어들었다.

자그맣고 보드라운 아이의 손. 엄지 손가락을 쥐고 빙빙 돌리던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검지와 엄지를 양손으로 잡고 잡아당겼다. 찌지직, 하며 손이 찢겨나간다.

"내 생각인데. 신이라는 양반, 정말 개새끼가 따로 없는 것 같아."

"무슨 개소린가."

"인간은 신의 자식이라며."

"맞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지 않던가."

"이놈들. 우리가 방금 죽인 상단 말야. 얼굴도 본 적 없는 우리에게 몰살당하고, 시체는 우리 장난감이 됐잖아. 전지전능한 애비가 자기 자식을 이렇게 죽게 냅두는 게 어딨어?"

"내가 듣기로, 신은 얼마든지 이런 일을 막을 능력이 되지만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그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여 때때로 이와 같은 악한 일이 일어난다 하더군."

"부모로서 자기 자식 관리도 못 한 주제에 혓바닥만 기네. 그럼 이거 성당 가서 고해성사 하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

"안 된다."

"씨발... 그렇게 사랑하면 다 용서해 줘야지..."

파이프를 입에 물고 있던 글라키스가 희미하게 웃음지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아우다치아 그에게 삿대질을 했다.

"어, 방금 웃었지."

"안 웃었다."

"내가 봤는데?"

"잘못 본 거다. 그동안 파묻혀 있어서 눈에 흙이 들어갔던 탓이지."

"멀쩡하거든?"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멀쩡하다고 주장해 봐야 아무도 믿지 않는다."

"아! 니미!"

아우다치아가 돌멩이를 집어들어 글라키스에게 던졌지만, 그는 몸을 재빨리 기울이는 것으로 간단하게 공격을 피했다. 잠시동안 얄밉게 그를 노려보던 아우다치아는 고개를 저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러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좋네. 빨리 동료들이 보고 싶은걸?"

"프리그도 보고 싶은가?"

"그놈은 빼고."

"나도 그렇다."

의견이 일치한 두 남녀는 사이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깨우면 안 될까?"

"필요한 놈이다."

"그 새끼는 동료 의식이 없어서 싫은데."

"싸가지도 없지."

"너도 마찬가지잖아."

"벗어라, 아우다치아. 태도가 건방지군. 오랜만에 개처럼 내 밑에 깔려서 주제를 자각할 필요가 있겠다."

"씨발, 좆까세요. 이제 보니 나 따먹으려고 먼저 깨운 거 맞네. 하지만 너 같은 냉혈한 새끼한텐 안 박히거든요?"

글라키스는 말없이 일어서서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우다치아는 주먹을 마구 내저으며 저항했지만 배시시 웃는 그 표정에서 진심이 아닌 것이 너무나도 잘 드러나고 있었다.

곧이어 선혈이 낭자하고 시체가 나뒹구는 길바닥을 배경으로 삼아, 두 남녀의 섹스가 펼쳐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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