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시우를 만나다 (3)
* * *
"아니 씨발 진짜."
어택이 헛웃음과 함께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분노에 찬 어투는 결코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딘가 허탈에 가까운, 동시에 감탄에 가까운. 혹은 그 사이 어느 지점에 위치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만 웃는 것이 아니었다. 히사시도 마찬가지로 웃음을 흘렸다. 어택처럼 욕설까진 아니더라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 뭔가 어이없는, 상정 이외의 것을 맞닥뜨린 사람의 반응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창공의 가랑이에 꽂혀 있었다. 정확히는, 거기에서 덜렁거리는 그의 물건에. 창공은 그런 그들을 잠시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고선 김이 올라오는 탕에 몸을 담갔다.
괜찮은 노천탕이었다. 주위를 밝히는 조명이 전구가 아니라 등불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언젠가 일본에 갔을 때 경험한 온천과도 경합을 벌일 만했다.
"한두 번 보나?"
"야. 볼 때마다 어이가 없어서 그런다."
어택과 히사시는 다시 저희들끼리 킬킬대기 시작했다. 창공도 어이가 없었는지 피식거렸다. 비록 저 둘이 그의 성기를 보고 웃는 것이었으나, 불쾌할 이유가 없었다. 작아서가 아니라 너무 커서 어이가 없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동안 여관이라던가 성당, 왕성에서 같이 욕탕을 이용할 기회가 있었으니 이미 서로의 몸은 꿰고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성 지향성이 없더라도 화장실에 가면 괜히 남의 크기를 곁눈질하는 것이 남자의 슬픈 습성일진대, 홀딱 벗는 욕탕에선 오죽하랴.
185cm의 어택과 173cm의 히사시는 제 키와 몸집에 걸맞은 크기의 물건을 가지고 있었으나, 창공의 것은 독보적인 면이 있었다.
"존나 창공이가 대단하긴 대단하다니까."
"킥킥킥... 서 상이요? 그건 맞죠."
"머리도 좋아. 활도 잘 쏴. 몸도 저만하면 탄탄하고."
"어 상이 너무 괴물 같은 덩치인 거죠. 제가 보기에 서 상 정도면..."
"네가 말랐다고는 생각 안 하냐?"
평소 일행 내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어택이었으나, 결국 그도 갓 이십 대 중반에 진입한 청년에 불과했다. 이렇듯 남자들만 있는 때엔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히사시도 마찬가지. 살기 위해 십장을 도맡아 하긴 했으나 원래가 전면에 나서는 성격은 못 되었다. 그러나 일행으로 인정받은 뒤로 어택과 함께라면 나름 대담하고 장난기 있는 면을 드러냈다.
"저 정도면 평균이라고 할 수 있죠."
"평균? 멸치들 중에서? 하하... 지랄 말고. 어쨌든 얼굴도 잘 생겨. 시우 씨한텐 조금 딸리긴 하는데."
"아이씨, 딸리기는."
창공이 작게 반발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이건 그도 인정하는 부분이었으니, 유감은 없었다.
"근데 시발 고추도 크네? 세상 진짜 존나 불공평하다."
"어 상. 한시우 상도..."
"보진 않았지만 꽤 클걸? 생각해 봐. 그 얼굴에 작으면 너무 언밸런스 아니냐고."
"풉킥킥킥킥."
상상이라도 했는지 히사시가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창공과 시우 둘에 대해선 열등감이나 질투심도 생기지 않았다. 무의식중에 이 둘은 마치 구름 위나 다른 세상에 있는, 그들과는 다른 무언가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농담거리는 될 수 있었다. 창공이 괜히 불쾌감을 표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공적인 자리에서 리더로서의 자신을 깎아내리는 행위라면 몰라도, 이런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언행을 제한하는 것은 쓸데없는 불만을 유발할 위험이 있었으니까. 적어도 그의 지론에 따르면 말이다.
"그나저나, 확실히 다른 사람들도 여기 오긴 온 거네요."
"갑자기?"
"생각해 보세요. 그동안 저희끼리 뭉쳐 다니느라 그랬는진 몰라도, 저는 이 세상에 지구인들은 저희들 밖에는 없는 것처럼 느꼈었는데요."
"하긴 그러네."
창공이 히사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실제로 지금껏 그들이 만난 지구인이라고는 탄광에서 같이 노역하던 이들 외엔 전무했다. 그나마도 지금에 와선 생사조차 알 수 없으니.
"근데 이렇게 한시우 상을 만나고 보니까 새로운 기분이 드네요. 묘하게 불쾌하긴 하지만."
"불쾌?"
히사시는 그를 바라보는 어택을 향해 손사래를 쳤다.
"아뇨아뇨. 한시우 상이 불쾌하다는 게 아니라... 가끔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사실 이건 전부 다 꿈이고, 자고 일어나면 익숙한 천장이 보일 것만 같은."
"아."
"그렇잖아요. 그동안 만난 사람들은 다 이세계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지구인을 만나고 나니까 현실감이 확 오는 거죠. 이건 꿈이나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고. 현실이라고."
"..."
창공과 어택은 히사시의 말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어떤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무심코, 무심코 그런 것이었다. 그들의 생은 하루하루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을 강제로 인정하는 행위의 연속이었다.
"아니 근데 시발."
어택이 갑자기 고개를 내리며 히사시를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히사시가 움찔거렸다.
"갑자기 왜 맞는 말로 사람 기분을 더럽게 만들지? 창공아. 안 그러냐?"
"그러게요. 그 새끼 좀 붙잡아 봐요."
"예? 자, 잠깐. 잠깐만요! 온천에서 장난은...!"
그날 히사시는, 물고문이란 어떤 것인지 뼛속 깊숙이 새겼다.
* * *
"..."
여탕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어떤 상황이든 말이 없으면 말을 지어내는 나유와는 달리, 나머지 세 여인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는 입을 닫는 것이 생활화가 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퀴탄에 관련된 일이라면 방언 터지듯 1시간을 넘게 떠들 수 있는 아스터가 있었으나, 그 주제만큼은 나유조차 꺼내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아직까진 서로 어색한 사이였다. 그나마 나유와 아린이 말을 편하게 꺼낼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아스터였다. 금기의 그 주제만 아니라면 뭐든 좋았고, 나유는 이런 분위기가 너무 견디기 어려웠다.
"저... 아스터."
"네, 나유 님."
"아까부터 궁금했던 건데... 도대체 그 문신은 정체가 뭐야?"
"아하, 하긴 모르시는 게 당연해요."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던 아스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줄기가 흐르는 그녀의 아랫배에는 검은색 문양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문인지 치구는 나유처럼 음모 없이 말끔했다.
선 굵은 하트 모양이 중앙을 차지하고, 양옆에서 깃털이 달린 날개가 뻗어 나와 둥글게 감싸 안는 형태를 취한 문신. 몸을 함부로 굴릴 리 없는 아스터였으나, 보기에 따라 그것은 음란하기 짝이 없는 탕녀나 새길 법한 것처럼 보였다.
신경이 미치도록 쓰였지만 혹시나 무례가 될까 언급을 자제하던 아린도 참기가 어려웠던지 아스터의 아랫배에 새겨진 문신을 응시했다. 륀은 한 번 슬쩍 보고 한숨만 내쉬는 것이, 그 정체를 알긴 알지만 그다지 마음에 드는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아스터는 언제나 그러하듯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두 손으로 문양을 살포시 감쌌다.
"사제서품을 받은 성직자들이 몸에 새기는 성문이에요."
"성문...?"
"사제로서의 각오를 드러내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자신이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사목의 요소를 추상화해서 모양을 만들죠. 제 경우는 사랑이에요."
"그러면 꼭... 거기에다가 새겨야 하는 건가요?"
아스터는 아린의 질문에 고개를 가벼이 저었다.
"사제의 자유에 맡기고 있어요. 보통은 등에 새기죠. 어떤 분은 손등이나 얼굴에 새기셨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아스터 씨는 왜..."
"아, 그건... 이 아래에 자궁이 있잖아요? 언젠가 저와 제가 사랑하는 분의 아이가 자랄 곳. 여기에 사랑의 문양을 새기면, 아기에게 사랑이 전달될 거라는 생각에... 꺅!"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그녀는 양 뺨을 감싸 쥐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유와 아린은 헛웃음을 참느라 고개를 푹 숙였고, 륀은 다시 한번 긴 한숨소리를 냈다.
"아스터... 많이 변했다는 말 취소. 넌 옛날의 그 순진한 꼬마 아스터가 맞아."
"어, 언니!"
"그리고 그게 뭐야... 좀 멀쩡하게 등이나 그런 곳에 새기지 그랬어. 거기에다가 문신을 새기면... 음탕하게 보이잖아!"
"그런 거 아니거든? 성문이거든? 교황 성하께서 축성하신 잉크로 새긴 거거든?"
"아 글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분께선 다 이해해 주실 거야!"
"돌겠다, 아스터. 이 언니는 진짜 돌겠어."
침음을 흘리며 손으로 눈가를 문대던 륀은 천천히 눈을 뜨고 아스터를 응시했다.
"누가. 누가 이해한대. 어? 어떤 남자가 거기에 문신 새긴 여자를 이해한대."
"차, 차, 차, 차... 창공 님!"
"...뭐라고."
"어?"
"네?"
아스터가 내뱉은 발언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마치 창공과 아린이 주도했던 연주회처럼. 아니, 이곳에 있는 세 여인에겐 그 이상의 충격으로 다가오는 말이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륀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얻어맞은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그나마도 그녀니까 입을 여는 게 가능했지, 나유와 아린은 갑자기 터진 핵폭탄과도 같은 충격에 휩싸여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었다.
"창공 님! 내, 내, 내 종소리..."
"종소리는 또 뭔... 아이고. 아이고 머리야."
결국 륀은 제 머리를 부여잡았다.
"잠시만. 잠시만. 아스터. 너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뭐야? 서창공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이 세상에는 미련이 없는 사람이라니까? 솔직히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떠날 사람이야."
"나도 알아. 나도 창공 님이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아는데 그래? 그는 에트로지라고! 아무리 기사 작위를 받았다지만... 아니, 미안."
그녀는 나유와 아린을 바라보며 양해를 구했다.
"당신들을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야. 하지만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소중한 동생이라고."
그러나 두 여인은 화를 내거나 당혹감을 표출하기엔 너무나 큰 황망함에 휩싸여 있었다.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마음은 이곳에 있지 않아, 아스터."
"창공 님의 아이를 낳게 되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어. 아니, 낳을 거야."
"아스터!"
경악의 외침. 륀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다. 자긴 마법 연구에 평생을 바치기로 한 몸이었으니 연애는 진작에 포기했지만, 소중한 동생은 아니었다. 저 순진하고 순수한 동생은 반드시 착해 빠지고, 그녀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남자와 결혼하길 원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아스터의 남자의 모든 것은 아스터여야만 했다.
그런데 서창공? 그는 아니었다. 절대로 아니었다.
물론 그를 그렇게 속속들이 알만큼 깊은 관계를 쌓았는가 하면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그러나 감이라는 게 있다. 짧은 만남 가운데에서도 본 게 있다.
[남을 건드렸으면 쉽게 도망 못 간다는 걸 가르쳐 준 겁니다. 당해서 갚아줬을 뿐이죠.]
도망치는 해적에게 활을 쏜 이유를 물었을 때에 들었던 대답.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지만, 이런 남자는 아스터와 어울리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의 그 눈빛. 륀은 그 눈빛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리 정당방위라 하더라도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이 드는 연민이 있다. 죄책감이 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평온함만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륀의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인간상이었으니.
그러나 그런 남자는 아스터와 어울리는 남자가 아니라고 똑똑히 말할 수 있었다.
"아스터.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언니. 이건 내 문제야. 만약 거절당한다 해도 내가 당해."
자매는 다투고, 나유와 아린은 서로를 멍하니 바라봤다.
* * *
"내일 봐요, 그럼."
"수고했다."
온천에서 나온 창공과 어택은 인사를 나누곤 제 방으로 향했다. 히사시는 온천에 더 있을 모양이었지만, 그만큼 온천을 좋아하지 않는 둘은 어서 방에 들어가 쉬고 싶었다. 더욱이 창공은 아린과 할 일이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그의 방문 앞에선 기대하지도 않았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창공 씨."
"시우 씨."
"할 말이 있는데, 잠깐 시간 괜찮을까요."
"...네. 잠깐이라면."
아린이 오기로 했었지만, 아마 여자이니만큼 자기보단 탕 안에 오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시우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창공은 흔쾌히 제안에 응했다.
시우는 그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마침 그곳엔 그들 이외엔 아무도 없었다. 적막한 가운데 등불 타는 미약한 소리만이 들리고, 두 남자는 의자에 앉아 서로를 바라봤다.
"온천은 어떻게, 괜찮으셨나요?"
"그만한 돈을 낼 가치가 있었습니다. 제가 안 냈지만."
"하하하..."
시우가 짧게 웃고선 품속에서 담뱃갑을 꺼내 시우에게 내밀었다. 사이좋게 한 개비씩 입에 문 두 남자는 이윽고 연기를 입에서 뿜어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실 말씀이라는 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창공 씨는 일행의 여성분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떻게 생각하냐니..."
"순수하게 그냥 좋은 동료인가요? 아니면 서로 애정을 나누는 연인인가요?"
"그걸 왜 시우 씨가?"
"주제넘은 참견인가요?"
그는 담배를 쭉 빨아들였다. 꽁초 끝이 붉게 타올랐다.
"고생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저도 비슷한 상황이니까."
창공은 그 말을 듣고 태도를 전향적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방금 전 시우의 여자들이 싸우는 모습을 본 탓이다. 확실히 여자 문제는 중요한 문제였다. 밤의 즐거움을 위해 일행을 박살 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창공 씨 일행엔 남자가 셋이네요. 여자는 넷. 연애는 한 사람이랑만? 아니면 문어발?"
"음..."
"개의치 마세요.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전 여자만 다섯이니까."
그의 어투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조용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만만한 기백. 눈을 비비고 다시 본 그는 실로 창공조차 몇 수는 접어야 할 정도의 대가였다. 그렇다면 이 기회는 잡아야 한다. 반드시.
"여럿이면 좋지 않겠습니까."
"하... 하하하..."
시우가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창공도 따라서 웃었다. 뭔가가 통한다는 느낌. 지금 두 남자의 가슴속에 떠오른 느낌이었다.
"창공 씨. 여자가 날 사랑하게 만드는 건 문제가 아니에요. 그렇죠?"
"동의합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죠. 어떻게 관리를 하느냐. 남자 입장에선 여자가 여럿이면 좋을지 몰라도 여자 입장에선 연적이 여럿일 뿐이거든요."
"시우 씨는 어떻게 하십니까?"
"저는 너무 늦어버렸어요. 다들 제 사랑하는 연인들이라 사이에 끼어들기도 못 하고, 전전긍긍하기만 하다 골든 타임을 놓쳐버렸죠. 루미네는... 어휴."
"짜증나십니까?"
"그럴 리가요. 그래도 서로 안 싸우면 좋겠죠. 사실 말은 저렇게 하고 쌀쌀맞게 굴어도 제가 안아주면 녹아내리니까, 그건 문제가 안 돼요. 문제는 그다음. 그건 결국 미봉책일 뿐이고, 근본적으로 제 아내들 간의 문제는 해결이 안 되죠."
"음."
"제가 이렇게 된 건 적극적으로 나서서 초기에 해결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루미네라는 분이 질투가 심한 게 아닌지..."
"그건 일부분 동의하는데, 그래도 제가 컨트롤했어야 하는 게 맞죠. 창공 씨는 저처럼 하지 마세요. 질투심. 네. 당연한 마음이에요. 그러면 그걸 잘 이용해야죠. 어쩔 수 없다면."
"실은 벌써 두 명이랑 사귀고 있습니다."
"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시우.
"그 두 분은 사이가 어떻나요?"
"자기들끼리 좋게 해결 본 것 같습니다. 나유는 인간관계에서 한없이 뒤로 물러서는 타입이라..."
"창공 씨가 이런 경험은 없어서 잘 모르시는구나."
"예?"
"여자들이 말이죠. 아무리 자기들 끼린 사이가 안 좋아도 어지간해선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까지 대놓고 싸우진 않아요. 아 예. 뭐... 루미네는 처음부터 그러긴 했지만. 어쨌든 제 말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창공은 입을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자존심을 굽히고 조언을 새겨들어야 할 때라는 것을 속으로 되뇌며.
"그러다가 방금 제가 말씀드렸던 골든 타임을 놓치고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그다음부턴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거죠. 머리 아파 죽겠어요, 지금."
"...무슨 말씀인진 알겠습니다."
"내가 볼 때 사이가 완만한 것 같다고 방심하지 마세요. 우리는 완벽 초인이 아니잖아요. 아무리 연인이라고 해도 그 사람 속까지 100%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질투가 겉으로 드러날 때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창공 씨. 이미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질투심이란 놈이 말이죠. 써먹기에 따라 도움이 되는 때도 있어요. '내가 저 여자보다도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 예쁨 받고 싶다.' 그 감정을 적절히 이끌어 낼 수만 있다면..."
거기까지 말한 시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꽁초를 입에 물었다.
"그렇지만 결국 해소가 되긴 되어야 하는 거고요."
"완벽하게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요."
"소중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나누었다.
"내일 떠나시나요?"
"네."
"그렇군요. 건투를 빕니다.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도울 테니까."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눈 뒤, 창공은 다시 제 방 앞으로 돌아왔다. 마침 아린이 저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단정하게 묶인 촉촉한 머릿결. 발그레한 뺨. 어딘가 안절부절못하는 듯한 그 모양새.
"아린아."
"아... 오빠... 그..."
"먼저 들어가 있어. 나 잠깐 다녀올 데가 있어서."
"...네."
계획은 변경되었다. 아린을 먼저 방 안으로 들여보낸 창공은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어딘가로 향했다.
* * *
"흐윽... 앗, 아... 아흣..."
창공의 품에 안긴 아린이 몸을 떨며 가볍게 절정했다. 침대 시트는 마치 오줌이라도 싼 것처럼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그렇게... 앗. 안 돼. 또 가요... 가... 오빠아..."
아린은 미칠 지경이었다. 벌써 20분은 넘게 지난 것 같은데, 창공은 그녀의 안에 삽입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그의 품 안에서 성감대를 집중적으로 애무당했다.
처음에는 좋았다. 또 자신의 좁은 구멍으로 창공을 받아들이려면 윤활이 필요하기도 했으니 그저 그와의 키스를 즐기며 행복에 젖어들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다. 유두와 클리를 어루만지는 창공의 손가락이 마치 불에 달군 막대기처럼 느껴졌다. 온몸이 불타는 것 같고, 아랫배 안쪽이 자꾸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애달팠다.
어서 이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은데, 연인은 그렇게 해주지 않는다. 애무를 빙자한 고문이 계속되었다.
찔꺽...
그녀의 질구에선 추잡한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현재 창공은 아린의 지스팟을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중이었다. 자궁구만으로도 아린을 쾌락의 지옥으로 보내버릴 수 있지만, 역시 성감대는 많으면 많을수록 유용한 법이다.
"아... 하아앗... 크흥..."
개발은 순조로웠다. 아린은 무력하게 벌벌 떨며 그에게 몸을 내어주었고, 애액은 끝을 모르고 계속 새어 나와 창공의 손과 침대를 잔뜩 적시고 있었다.
"오빠... 오빠아..."
"왜."
"화, 화장실... 화장실 가고 싶어요..."
"안 돼."
"빨리, 빨리요...! 나올 것... 같단 말이에요... 흐윽!"
아린은 그것을 요의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창공은 드디어 바라던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더욱 거칠게 그녀의 지스팟을 자극하고, 유두를 만지던 손을 내려 클리토리스를 빠르게 문질렀다.
"앗...! 하으윽... 안 돼. 안 돼애애..."
쉴 새 없이 몸을 비트는 아린. 창공에게서 벗어나려 애를 쓰지만 헛된 노력이었다.
"나와... 나온다고요... 흑...! 나와. 나와앗..."
질이 꼭 조여들어 창공의 손가락을 압박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지스팟을 강하게 누른 다음, 거칠게 보지에서 손을 빼냈다. 허리와 목을 한계까지 뒤로 젖힌 아린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으하아아아앙...!"
쪼르르...
힘없이 벌어진 아린의 다리 사이, 요도에서 하얀 물줄기가 새어 나왔다. 양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녀가 느낀 쾌감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텅 비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하아... 하아..."
축 늘어진 아린은 힘없는 숨을 내쉬었다. 사랑하는 오빠 앞에서 소변을 보았다는 수치심이 절정의 쾌락과 뒤섞여 그녀의 온몸을 적셨다.
'이제 몰라...'
그렇게 생각을 포기하고 눈을 감은 아린의 귀에,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 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 아린은 어떻게든 이불로 몸을 가리려 했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창공 또한 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일 테니, 그녀는 그가 방문객을 돌려보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 들어와."
그러나 창공은 아린의 기대를 무참히 배신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