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떠돌이들-71화 (71/178)

〈 71화 〉 륀 퐁파두르 외전 ­ 선물

* * *

"축하한다. 이제 어엿한 마법사가 되었구나. 열다섯에 생도 과정을 마치다니. 천재들은 많았지만, 이렇게 빠른 졸업은 웨리 역사를 다 뒤져봐도 얼마 없을 거다."

"뭘. 당연한 결과지."

짠!

유리로 만든 잔이 서로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여덟 살에 집을 떠나, 7년 만에 이뤄낸 쾌거. 내 생도 졸업 논문이 무사히 통과되고, 마법사라는 직함을 당당히 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자린데 당연히 축하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 지도교수인 귀스타브 몽그리브가 조촐한 축하연을 열어주었다. 당연히 오늘의 결과는 내 능력이 뛰어난 덕분이었지만... 솔직히 말해 도움을 많이 받긴 받았으니까. 어쨌거나 감사한 사람이다.

"하아암..."

"자꾸 하품을 하는군."

"상관없잖아. 조금 피곤했을 뿐이야."

그렇게 둘러대긴 했지만, 솔직히 많이 피곤했다. 자유로운 바깥출입을 허용 받는 마법사는 교수 이상의 직급을 가진 마법사들뿐. 저 아퀴탄에서 기다리고 있을 내 가족을 만나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교수를 달아야 했다.

그러려면 기초 과정에 불과한 마법 수련생, 생도 과정을 우선 신속하게 졸업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을 위해 노력한 결과가 7년 만의 졸업이고. 평균적으로 13년은 걸리는 과정인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빠르긴 빠른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나를 천재라고 한다. 뭐... 맞는 말이다. 천재니까 했지, 범재였으면 당연히 불가능한 결과가 아닌가. 하지만 난 단순한 천재가 아니다. 웬만한 노력가는 감히 입도 뻥끗할 수 없는 노력하는 천재다, 이런 뜻이다.

하루에 꼬박꼬박 6시간씩 자면서 날 시기하는 놈들은 마법사라 불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희생한 건지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나불대긴.

그리고 내 만성피로는 그 희생의 대가였다. 분명 졸업 논문을 제출한 뒤로는 마음껏 잤는데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아마 이 피로가 평생 갈 것 같다는 께름칙한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가. 하긴 피곤하겠지."

"그래서 말인데, 파이프가 필요해."

"파이프? 담배 말이냐?"

"그거 말고 무슨 파이프가 있는데. 어쨌든 구해다 줘."

그가 나를 '갑자기 무슨 담배냐' 하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설명을 해야 하나?

"혹시나 해서 말하자면, 담배는 스트레스 해소나 고등적인 사고에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런 게 목적이라면 차라리 필라크 열도산 찻잎을..."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담배라는 게 뭔지."

"아... 그럴 나인가. 괜히 어른들 하는 모든 게 멋져 보이는."

"헛소리나 하긴. 안 맞으면 몇 번 피우다 버릴 생각이야."

"그런 거라면 내가 아는 교수한테 싸구려를 좀 얻어다 주마. 마법약학 교수 중에 파이프 수집인 친구를 아니까."

"싸구려는 됐어. 한 번 하는 거 최고로 해야지. 생미엘 남작령에서 나는 파이프가 좋다고 하더라. 로렌느 숲에서 자라는 향나무가 단단하고 좋대."

"생미엘 남작령의 파이프라면 나도 들은 적이 있지. 원래 초심자는 싸구려 파이프부터 시작하는 법이라곤 하지만... 좋다. 안 그래도 다음 달에 뤼테스에 한 번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그때 사다 주도록 하마."

"뤼테스에는 왜?"

"자문단 업무가 있어서."

"아."

하긴 이 인간, 우리나라의 왕실 자문단 위원이었지.

"그것보다 륀. 설마 생도 과정을 졸업한 것으로 만족할 생각은 없겠지? 너 정도라면 십대에 교수가 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게 아니냐."

"당연하지. 적어도 5년 안에 교수가 될 생각이야."

"정말... 널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 보자마자 느낌이 왔었지. 분명 교수가 될 인재라고 말이다. 몇 번 이야기했지만, 네 앞엣놈들은 석사가 고작이었다. 단 한 놈도 교수는커녕 박사조차 되지 못했단 말이다. 너라면 분명 다르겠지."

"당연한 말을."

다시 한번 내 스승과 잔을 맞부딪히고, 루비색 포도주 한 모금을 목으로 넘긴다. 찌르르한 알코올 냄새. 노곤한 몸에 알큰한 기가 돌고, 코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이 따끈해졌다.

"주말이 되면 지팡이나 주문하러 가는 게 좋겠군. 이젠 필요하지 않겠나."

"응. 상수리나무로 할 생각이야."

"좋은 선택이다."

"누가 고른 건데."

마법사가 쓰는 지팡이는 보통 나무로 만든다. 중요한 건 지팡이보단 사람이니 어떤 나무로든지 만들 수 있지만, 대체로 유실수를 깎아 만드는 편이다. 유실수는 그렇지 않은 나무에 비해 마나 저항이 낮다는 특징을 가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마나가 잘 흐른다는 뜻이다. 이것을 도마율이 높다고 표현하는데, 가장 도마율이 높은 물체는 금이다.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금. 하지만 그건 내구도가 약할뿐더러, 통짜 순금으로 지팡이를 만드는 미친 마법사가 어디 있겠는가?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있긴 있었다. 671년 전에 클라우디오 발레리우스라는...

"그래, 그래. 어쨌든 난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네가 교수가 된다면 아마 좋아서 죽을지도 모르지."

"죽지도 않을 거면서. 교수로 임용될 때까지 쭉 잘 부탁해. 하다가 막히면 물어보러 갈 테니까."

"별말을. 이제 네가 교수가 된다면 마음 편히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겠군."

"제자 더 안 구해?"

"구해봤자 어차피 너보다 더 못한 놈들일 게 뻔하지 않느냐."

"그건 그래."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당연한 사실이다.

"그렇지, 널 위해 좋은 주제들을 선정해 놓았다. 내가 재작년에 발견한 현상 있지 않느냐. 너도 논문을 봐서 알겠지만, 특정 조건 하에서 구리가 금보다 도마율이 높아지는 현상 말이다. 거기에 대해 추가 연구를 한다면 석사 따윈 별거 아닐 거다."

"그건 마공학이잖아."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당연히 마공학이지. 우리 마법공학 교수들은 네가 하루빨리 교수가 되길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데. 네가 내 뒤를 이어준다면, 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아... 이렇게 되나?

하긴 열정적인 마공학 교수니, 당연히 그 제자인 나도 따라서 마공학에 투신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고.

"미안한데, 난 마공학을 전공할 생각이 없어."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아니. 제대로 들었겠지."

잔을 입가로 가져가던 몽그리브 교수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표정도 무섭게 굳었다. 하지만 날 막을 순 없어.

"난 마법 이론 교수가 될 거야."

"왜냐."

"아니 그건 내 맘이잖..."

"왜냐!"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노한 기색을 표출했다. 물론 평소에 마법 이론은 탁상공론만 하는 자들의 학문이라며 좋지 않게 보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학문에 대한 호오는 강제될 수 없는 것을.

"왜냐니. 그야... 재밌으니까."

"겨우 책상물림이나 하겠다고 그 고생을 했단 말이냐!"

"이거 봐. 당신이 내게 배신감을 느끼는 건 알겠어. 그치만 선택권은 분명 나에게 있다고. 내가 뭘 전공할진 내 맘 아냐? 그냥 마법 이론이 재밌게 느껴지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아, 그래. 마공학도 괜찮은 학문이지. 그런데 그냥 난 마법 이론이 더 괜찮게 느껴졌을 뿐야."

몽그리브 교수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가로 걸어갔다. 그렇게 방을 나가나 싶더니, 뒤를 돌아보고 이렇게 통보했다.

"파이프 건은 없는 걸로 하지."

"뭐?"

"그리고 너. 너는 이제부터 내 제자가 아니다. 찾아오지도 마라. 아는 체하지도 마라. 그런 재능을 가지고 기껏해야 마법 이론에 투신하다니, 내가 그동안 헛고생을 한 모양이군."

"이봐!"

쾅.

문이 닫혔다. 방금 전까지 훈훈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시엘 산맥에서 불어오는 싸늘한 북풍과도 같은 한기만이 맴돈다.

* * *

웨리의 커리큘럼은 대충 이렇다. 처음 들어오게 되면 마법 수련생. 일명 생도라고 불리는 과정을 밟게 된다. 생도들은 마나의 운용과 마법의 기초를 배우며 마법사가 되기 위해 수련을 하는데, 졸업하기 위해선 논문을 제출해 그것이 통과되어야 한다.

논문 주제는 딱히 정해진 것이 없다. 어차피 심사를 맡는 교수들도 수련생에겐 큰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거창한 발견이나 심오한 연구 주제를 제시할 필요까진 없고, 기존에 알려진 사실에 대한 재확인 정도라면 충분하다.

물론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 수준이 교수들이 보기에 만족스러워야 하니까. 생도들은 웨리에 들어온 지 20년 안에 논문을 통과시켜야만 한다. 그러지 못하면 영영 마법사의 길에 떨어져 나가, 웨리의 잡일꾼으로서 평생 일하게 된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세간에서 떠도는 신비로운 소문과는 달리 웨리엔 무한히 금이 솟아 나오는 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생도들을 육성하는 데 무한정으로 돈을 쓸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어쨌거나 생도 과정을 마치면 드디어 마법사라고 불리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마법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며, 그저 앞으로 학문 활동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 요건을 갖추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다음부터 마법사들은 각자 자신이 전공할 학문을 선택하여 석사 과정을 밟게 된다. 석사를 마치면 박사를 목표로 하고. 물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게으른 자라며 주변의 눈총을 받고, 평생 남의 연구실에서 잡일만 하다 세상을 뜨고 싶다면 상관은 없지만.

박사 학위까지 따면 뭘 하냐고? 거기부턴 정말 개인의 자유다. 그래봤자 이제껏 공부를 하며 친한 관계가 된 교수 밑으로 들어가 연구실장을 하게 되는 게 대다수지만. 혹은, 교수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단계가 점점 올라가더라도 기본적인 과정은 똑같다. 공부를 하고, 논문을 써서, 주변의 인정을 받으면 끝이다.

평생토록 공부만 하며 이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마법사라는 존재다. 바깥사람들이 마법사라고 하면 품는 낭만 따위는 없다. 내가 장담하는데, 아마 마법사를 그저 선망하기만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생활을 단 3일만 체험해도 제발 나가고 싶다며 빌게 될 것이다.

물론 나를 포함한 정말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아니다. 정말 지식과 진리에 미치지 않았다면, 생도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없을 테니.

그리고 내가 전공하기로 마음먹은 학문은 바로 마법 이론이었다.

마법 이론이라는 학문을 간략히 말하자면, 모든 마법학의 토대가 되는 학문이다. 마나라는 미지의 에너지와, 그 마나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마법이라는 현상으로 발현되는지에 대한 연구가 주된 주제다.

따라서 마나의 응용 방식이 주제인 다른 학문들과는 달리 이론에만 매달리는 학문이다. 원소학처럼 손짓만으로 물체를 불태우거나 마법생물학처럼 동물들과 교감하는 것은 관심사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재미있는 학문은 아니다. 아무리 공부를 업으로 삼는 마법사들이라고 해도 선택하고 싶지 않아 하는 학문이 바로 마법 이론이다. 하긴, 이해는 간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 없으니까. 평생 펜과 종이가 친구인 학문이니까.

그러나 난 바로 이 마법 이론을 택했다. 주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모든 마법학의 이론적 기초를 만드는 학문이니만큼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는데, 그에 비해 지원자가 극히 없는 학문이기에 교수도 부족하다. 그렇다는 말은 다른 학문에 비해 교수가 되기 쉽다는 말이다.

그리고 교수가 되면, 바깥출입 권한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내 가족, 내 소중한 동생 아스터를 내 마음대로 만나러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난 이론이 좋다. 이게 바로 마법의 근본이었다. 흔히 펜대만 놀리는 마법사라며 마법 이론을 무시하는데, 그 마법 이론이 없으면 모든 학문은 무너지게 된다. 이렇게 멋진 학문이 있을까? 이걸 전공하지 않겠다는 말은 인생을 손해 보고 산다는 것과 같다.

"의외로군요."

전공을 선택한 학생이 자기 지도교수와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는 날. 브리트 베리스트림 교수는 날 보며 기꺼워하면서도 그 눈동자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륀 퐁파두르. 당신 같은 마법사가 우리 마법 이론을 택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싫으신가요."

"그럴 리가요. 두 팔 벌려 환영해야죠."

베리스트림 교수가 저런 말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번 연도에 생도 과정을 마친 마법사들은 나를 포함해 총 백스물일곱. 그중에 마법 이론을 택한 마법사는 딱 하나. 그래. 바로 나다. 나뿐이었다.

놀랄 것 없는 게, 평균적으로 한 해에 마법 이론 전공을 택하는 마법사는 평균적으로 둘 정도였다. 아예 지원자가 없는 해도 있었으니 하나 정도면 감지덕지인 셈이다.

그리고 유일한 지원자인 나는 올해 기수 중 최고의 초신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7년 만에 생도 과정을 마친 수재 중의 수재. 당연히 내가 어느 학문을 택할지는 웨리 최대의 관심사였다.

대부분은 내가 몽그리브 교수를 따라 마공학에 투신할 거라 생각했겠지만... 결과는 보다시피 이런 상황.

"우리 마법 이론 학자들은 다른 마법사들에게 책상물림이라며 비웃음을 당하죠. 하지만 그들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어요. 바로 자신들이 쌓은 금자탑은, 우리들 이론가들이 쌓은 토대 위에서밖에 설 수 없다는 것이죠. 남들의 인정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우리가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지는 것. 그 가시밭길을 갈 준비가 되었나요?"

"준비가 되지 않았더라면, 이리 오지도 않았겠죠."

"좋은 각오로군요. 그러면 내일부터 내 연구실로 오도록 해요. 연구할 주제는 많아요."

"교수님. 전 제가 생각해 놓은 주제가 있어서요."

베리스트림 교수가 놀라움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연구 주제? 벌써요? 놀랍군요. 혹시 어떤 주제인지 들을 수 있을까요?"

"시동어 관련 주제에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 * *

역시, 생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천재인 나도 조금은 힘들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여기서 굴할 수는 없었다. 내 목표는 역대 최연소로 교수가 되는 것이었으니. 시간이 부족하다면, 잠을 줄이면 된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 하루에 3시간만 자더라도 무리 없이 생활이 가능하다. 물론 정신을 맑게 하는 차는 필수다. 아, 담배는 포기했다. 애초부터 미지의 것에 대한 흥미였고, 그 정도가 그리 깊지 않았기에 못 하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흥."

도서관에서 마주친 몽그리브 교수가 내 옆을 지나가며 불쾌한 코웃음을 쳤다. 나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아니 이제부터 모르는 사람이라며? 나는 그렇게 해 주고 있는데, 왜 자긴 그렇게 하지 않는 걸까.

하여간에 어지간히 속 좁은 늙은이다. 원래부터 저랬나? 아닌데. 그렇게 졸렬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내가 마공학을 택하지 않은 게 그렇게 섭섭하고 미웠나 보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였지만.

"쿨럭! 쿨럭!"

그렇게 책을 펼치고 있으려니, 저쪽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짜증이 나 뒤를 돌아보니 몽그리브 교수였다.

"으흑! 커험! 콜록!"

노인네가 물 마시다 사레라도 들렸나?

"커헉! 으허어... 쿨럭! 쿨럭!"

아 씨, 진짜.

난 책을 탁, 덮고 그대로 도서관을 나섰다. 이런 날도 있는 법이다. 그래, 그 뒤로도 여러 날이 흘렀다. 16살에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7살에 박사를 땄다.

일단 이 놀라운 성적은 기본적으로 내가 천재라 가능한 것이지만, 연구 주제의 선정도 좋기 때문이었다. 내가 연구하는 모국어와 시동어, 그리고 마법 발현의 상관관계는 지금껏 한 번도 연구된 적이 없는 주제다.

다행히 내 주제는 학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나는 나날이 승승장구했다. 아, 그 뒤로도 몽그리브 교수와는 계속 마주쳤다.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다. 웨리가 넓긴 하지만, 무한한 공간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교수의 표정은 날이 갈수록 어두워져만 갔다. 솔직히 말해 쌤통이었다. 그러니까 왜 그런 말을 해서. 앞으로 웨리의 기린아가 될 사람에게 말이야. 뭐... 안쓰럽기도 했다. 솔직히 그 일이 있기 전까진 나에게 엄청 잘해준 사람이었으니까.

다 옛날이야기지만.

"축하해요, 퐁파두르 교수."

"고마워요."

그래. 다 옛날이야기다. 내가 교수가 된 지금은. 믿어지는가? 19살에 교수가 된 것이다. 나랑 같이 웨리에 들어온 아이들은 아직도 생도인데!

날 위해 마법 이론 학회에서 축하연을 열었다. 십 대 교수가 탄생했다는 말에 저 멀리 지부에까지 나가서 은둔하던 노교수들도 웨리에 모여들어 인사를 건넸다.

아, 기분은 좋았다. 교수가 되고, 축하를 받아서 기분이 좋았지만 드디어 내 마음대로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있다는 게.

더 기분 좋은 일이 뭔지 아는가? 조교수는 생도들에 대한 수업도 맡는다. 즉, 내 동기들의 수업에 내가 교수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그 선망과 질투의 눈빛을 한 몸으로 받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떨려왔다.

내 개인 집무실을 꾸미는 일도 재미있었다. 가구들은 최고로 마련해야 한다. 필기구와 종이도 마찬가지. 방금 사도 10년은 쓴 것처럼, 10년을 싸도 방금 산 것처럼 느낌이 드는 그런 것들 말이다.

재미있었다. 모든 게. 갑자기 들어온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퐁파두르 교수. 여기 있었군."

"무슨 일이죠?"

"몽그리브 교수께서 돌아가셨네."

* * *

타닥... 타닥...

등불 타는 소리가 어둠 사이로 들려온다. 흔들리는 조명 아래, 난 멍하니 앉아 그의 관을 바라봤다.

글쎄. 왜 지금 와서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고, 나랑은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폐암이 있었다고 하더군. 숨겨 왔던 모양이야."

날 이곳까지 데려온 제프리 다이슨 교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런가요."

"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성격이셨지 않은가. 아마 당신이 암에 걸렸단 사실도 그렇게 생각하셨던 거겠지. 자넨 그분 집무실에라도 가 보는 게 어때?"

"네?"

"몽그리브 교수께서 들인 제자 중에 웨리에 남아 있는 사람은 퐁파두르 교수뿐이지 않나."

하긴 나머지는 다 여러 지부로 흩어졌다고 했었나.

"그런가요. 하지만 뭐... 이제 와서. 아시잖아요."

그러자 다이슨 교수가 품 속에서 돌돌 말린 종이 한 장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게 뭐죠?"

"생전에 작성하신 유언장. 며칠 전에 건네받았을 때엔 왜 그러시나 했는데, 이제야 알겠군. 자네에게 주라고 하셨어."

"..."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그 유언장을 받아서, 펼칠 뿐. 내용은 간단명료했다.

[나의 모든 재산은 륀 퐁파두르에게 상속된다.]

"이게..."

"가 보게."

그 뒤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흔들리는 불빛, 어두컴컴한 복도, 가파른 계단...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몽그리브 교수의 집무실 문을 마주하고 있었다.

끼이이...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그대로 문이 열렸다. 주인이 떠난 방엔 오직 어둠과 한기뿐이었다.

"Illubinamant."

지팡이에서 불빛이 쏟아져 나오며 주위를 밝혔다. 안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마공학 관련 책이 빼곡히 꽂힌 책장, 창가에 가지런히 놓인 다기, 옷걸이에 걸린 로브와 모자.

풀썩.

예전에 내가 자주 앉곤 했던 의자도 그 위치 그대로였다. 거기에 앉아 눈을 감으니, 옛날에 그와 나누던 대화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옛 기억의 잔향일 뿐. 다시 눈을 뜨면 언제 그런 것이 있었냐는 것처럼 꿈속의 꿈으로 사라진다.

"이젠 제자 아니라며?"

듣는 사람이 없는 질문을 읊조려 본다. 그의 상속인은 나다. 죽기 전의 변덕이었을까. 그의 몸을 잠식한 병이 마음을 약하게 한 것일까.

이제 와선 다 덧없고 공허한 질문일 뿐이다.

그러던 와중, 내 눈에 들어오는 게 하나 있었다. 번쩍이는 마호가니 책상 위에 놓인 푸른 상자. 내 맹세컨대, 그는 책상 위에 저런 것을 올려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업무가 끝난 그의 책상은 항상 말끔했다. 학술 자료조차 예외가 아닐진대, 저 상자는 뭐란 말인가.

"아."

다가가 상자를 열었다. 젠장... 파이프였다. 로렌느 숲에서 벌채한 향나무로 만든, 생미엘 남작령의 명물.

"망할 노인네가."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