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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떠돌이들-75화 (75/178)

〈 75화 〉 달의 추락

* * *

"허리가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아­ 하는 탄성이 테이블을 무겁게 짓눌렀다. 출발 준비를 하던 일행들은 아무래도 하루를 쉬어가야겠다며 갑작스러운 소식을 전한 창공에게 의문을 표했지만, 그의 해명에 안타까움을 표할 수밖엔 없었다.

특히나 아린과 나유는 문제의 원인이 마치 자신들에게 있는 것인 양 살며시 시선을 내리깔고 테이블 위만 바라보았다.

'하긴 온천에서 조금 격렬하긴 했지...'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제 남자가 자길 안아주다 허리가 삐끗했다고 광고를 할 순 없으니 나유는 피곤한 것처럼 하품을 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아린은 괜히 새빨개진 귀를 감추며 이미 텅 빈 물컵을 입가에 갖다 댔다.

"치료해 드릴까요?"

아스터가 걱정되는 목소리로 창공에게 조심스레 제안했다. 그녀의 말에 창공은 순간적으로 포커페이스를 흐트러뜨릴 뻔했다. 그러고 보니 치료사가 있었는데 말이다.

"맞네. 네가 있었지. 한 번 부탁해도 될까?"

"부탁이라뇨. 당연한데요."

방에 가있으라고 해놓고 본의 아니게 아스터를 바람맞힌 창공이었지만, 아스터는 급한 일이 있었다는 변명에 미소를 지으며 이해해 주었다. 이제 곧 일어나게 될 일도 그녀가 이해하게 될진 미지수였지만.

어쨌거나 창공이 멀쩡한 허리를 짚으며 천천히 일어나자 아스터가 다가와 그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이내 신비로운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의 몸 안에 그대로 흡수되었다.

"조금 괜찮으신가요?"

괜찮기야 원래부터 괜찮았다. 그러나 일행의 발을 묶어놓아야 하는 창공은 술수를 쓰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 모니터링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아프다고 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신성력을 이용한 치료는 응급처치에 불과하다는 아스터의 말이 있고 하니 꾸미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다.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는 상태를 확인하는 것처럼 상체를 이리저리 비틀었다. 하늘이 도왔음일까. 타이밍 좋게 창공의 허리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다.

뚜둑!

"아악!"

그가 허리를 짚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의심하는 일행은 아무도 없었다. 평소 저런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창공이다. 심지어 히사시는 창공이 칼에 찔리더라도 신음 소리 한 번 안 낼 것 같은 사람이라 생각할 정도였으니... 그런 그가 저렇게 고통에 신음하니 도대체 얼마나 아플까 절로 걱정만 됐다.

"야, 창공아... 괜찮냐?"

"창공아!"

"오빠..."

일행들이 그에게 걱정이 한가득 담긴 시선을 보냈지만, 아스터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창공은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 아스터. 미안한데 한 번만 더 부탁해."

"네. 창공 님. 오늘은 쉬시는 게 좋겠어요. 아시겠지만 제 치료는 완전한 치유까진 아니라서... 그래도 내일이면 다시 원래대로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

이것으로 대충 위장은 되었으리라.

"제가 할 얘기는 끝났습니다. 보시다시피 상태가 이래서. 내일은 출발할 수 있도록 몸 관리 잘 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조금은 갑작스럽지만, 륀이 모두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아, 젠장.'

륀이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끔찍한 기분이었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동생에게 네가 사랑하는 남자는 내가 선점했으니 꿈도 꾸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자기가 망신을 당하는 건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아스터... 사랑하는 동생에게 몹쓸 짓을 해야 한다는 자괴감이 그녀의 마음을 잠식했다. 하지만 이것은 약속. 그녀가 지켜야만 하는 것.

"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아마 누군가에겐, 아니. 모두에게 뜬금없는 이야기가 될 테지만."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이 순간을 위해 연신 파이프를 입에 물고 뻑뻑댔지만 그것으로도 모자란 모양이었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드러날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예의상 말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긴장하지 마."

자꾸만 군말을 섞는 륀에게 창공이 날카로운 미소를 보냈다. 마치 비웃음처럼 보이는 그 표정이 륀의 내장을 뒤틀리게 했다. 다 이 남자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엎어진 물이요, 내뱉은 주문이다.

"흠! 흠! 실은 여기 서창공과 사귀... 게 되어... 서..."

"응, 맞아. 오늘 아침에 륀이 고백했어."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거드는 창공. 륀은 그저 죽고 싶다는 듯 눈을 꼭 감고 머리를 떨구었다.

"..."

쥐 죽은 듯 조용하다는 표현이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없었다. 아무런 맥락도, 암시도 없이 툭 튀어나온 폭탄 발언. 독가스가 살포되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몰살당했다 해도 이것보단 덜 조용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진짜 미친놈 아니야 이거.'

'이게 사람인가.'

그나마 어택과 히사시는 속으로 체념한 지 오래였다.

'아! 별다른 노력이 없이도 여자가 꼬이는 남자가 있구나!' 정도라고 할까. 사실 이 둘은 지나가는 여자가 갑자기 창공에게 열렬한 사랑 고백을 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여자들.

아린과 나유는 사고 활동이 말 그대로 수초 간 정지함을 느꼈다. 차라리 아스터가 고백했고, 받아들였다고 했으면 또 모른다. 어차피 그건 아스터의 소동도 있고 해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한데 륀? 갑자기 고백을 해?

'와... 지가 동생 뜯어말릴 땐 언제고. 이러려고 그때 아스터가 고백한다는 거 그렇게 뭐라고 했구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진짜 뻔뻔하다.'

그녀들이 륀을 바라보는 시선은 당연히 곱지 않았다. 단순히 얄미운 연적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었다. 이건 말하자면 위선이 아닌가.

[잠시만. 잠시만. 아스터. 너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뭐야? 서창공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이 세상에는 미련이 없는 사람이라니까? 솔직히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떠날 사람이야.]

[그의 마음은 이곳에 있지 않아, 아스터.]

온천에서 륀이 아스터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선했다. 그날 저 말들을 들었을 땐 약간이나마 고마운 감도 없잖아 있었더랬다. 나유와 아린도 창공을 나누는 일이 즐겁지 않았으니.

그런데 이건 뭔가. 자기는 동생에게 온갖 이성적인 척은 다 해놓고 뒤로는 창공에게 고백을 하다니. 이게 교수의 방편이라면, 참으로 졸렬한 데가 있지 않은가.

창공이 받아들였다니 일단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 받아들였다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두 여인은 굴러온 돌을 반갑게 맞이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그녀들이 세 번째 여자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취했던 건 그게 아스터라는 생각에서였다. 착하디착한. 친절하디 친절한 그녀라면 조금 정도는... 하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만들어 줄 정도의 사람이었으니까.

문제는 창공이 새로 들인 여자가 아스터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 쌍둥이 자매인데 인성이 이렇게 차이가 나?'

그 나유마저 얼굴을 돌리고 차갑게 웃었다.

'아스터 씨... 불쌍해. 충격이 클 텐데...'

아린은 아스터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그녀의 하늘색 눈동자는 명백히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동공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그뿐인가. 입술은 바보처럼 벌어져 바람 새어 나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고백을 결심했을 때, 처음으로 찾아온 사랑에 파르르 떨며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으리라.

용기를 내어 창공의 방 안에 들어가 다소곳이 앉았을 때,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며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것이 헛되었다.

'아... 니야...'

쌍둥이가 한 남자에게 처첩으로 들어가는 일이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니, 나중에라도 창공에게 고백한다면?

'언니... 왜...?'

아니. 분명 그랬다. 륀은 그녀가 창공과 교제하는 것을 썩 탐탁지 않아 했다. 그때는 그저 가족으로서 에트로지와의 연애가 염려가 되어 반대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미운 감정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절절할 정도로 언니에게서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보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 아스터에게서 창공을 막는 것이 아니라, 창공에게서 아스터를 막는 것이었다. 동생과 남자를 나누기 싫은 언니의 마음에서 비롯된 행위였다.

'아니지? 언니... 아니지...? 언니는 내가 걱정돼서...'

그녀는 떨리는 눈의 초점을 필사적으로 바로잡으며 륀과 시선을 맞대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 노력도 헛되어, 고개를 푹 숙여 가슴에 묻은 륀은 아스터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제발. 제발 뭐라고 좀 해 줘...!'

필사적인 외침은 단지 소리 없는 아우성일 뿐. 그 뒤로 창공은 무어라 몇 마디를 했지만 아스터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자리는 그렇게 파했고, 각자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공과 륀, 어택과 히사시, 나유와 아린...

그러나 아스터만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남아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 * *

'여기 어디 있었는데...'

전자시계 액정은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쨌거나 여행은 고된 법. 일행들은 전부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창공에겐 딱 좋은 기회였다. 공식적으로 그는 허리가 아파 거동할 수 없는 상태. 그런데 바깥에 나왔다가 걸려버리면 변명하기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는 지금 몰래 여관을 나와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지금쯤 같은 방에 있을 륀과 아스터를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찌 우습지 아니할까. 메마른 땅처럼 쩍쩍 갈라지고 있을 륀의 마음. 슬픔이, 저 어두컴컴한 심해처럼 한없이 차갑고 무거운 슬픔이 작심하고 있을 아스터의 마음.

또, 일행들의 심증도 있다. 어택과 히사시야 차치하고서라도, 분명 륀을 바라보는 나유 아린의 눈동자는 좋은 감정을 담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고립이 되는 것이다. 대놓고 밀어내지는 않는, 그렇다고 가깝게 붙지도 못하는. 보이지 않는 벽이 륀과 나머지 일행의 사이를 가로막았을 때...

그렇게 륀이 무언가를 포기하고 내려놓았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창공의 작업은 빛을 발하게 되리라.

'여기 있네.'

가게들 사이 어느 구석. 미묘한 위치에 있어 잘 보이지 않는 가게. 그러나 찾으려 작정하고 보면 분명히 있긴 있는 가게.

성인용품점이다. 글라키스의 지갑을 훔치다 호되게 당한 그 꼬마를 쫓아 들어간 골목 어귀에 있던 것을 창공이 한 번 보고 지나친 것을, 오늘 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당연히 간판에 노골적으로 성인용품점이라 쓰여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가게의 상호명은 이러했다.

[신경증 치료소]

얼핏 보면 현대의 정신과 의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이곳은 분명한 성인용품점이었다. 이곳 다이셀리시아에선 여성의 히스테리는 자궁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으로, 이것을 적절히 해결한다면 자연스레 히스테리 또한 치료될 수 있다는 관념이 존재했다고 한다.

지금은 낭설로 밝혀졌지만, 어쨌거나 그 덕분에 히스테리를 치료하기 위한 '의료 기구'들이 발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성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자궁의 불균형과 히스테리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터무니없는 이론으로 밝혀진 뒤에도 이 의료 기구들은 다른 용도로서 살아남게 되었다.

그러나 대놓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때 사람들은 '왜 있잖아...'나 '그거 말야...'등으로 돌려 말하며 마치 가섭존자가 석가세존이 들어 올린 꽃을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듯이 이심전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결국 이렇게 된 것이다. 사장된 이론이건 어쨌건 신경증 치료소는 여성의 히스테리를 치유할 수 있는 의료 기구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어쨌거나 공식적으로는 말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의학 기술이 죄는 아니지 않은가.

"...어서 오쇼."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저편에서 나이 지긋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게 안은 온갖 성인 용품으로 가득했다. 그렇다곤 해도, 결국 대부분은 딜도 종류일 수밖에 없다. 현대의 성인용품점에 비하면 역시 초라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수십 호밖에 안 되는 이 작은 마을에 위치한 성인용품점이 꽤나 규모가 크다는 것이었다.

"에트로지? 돈은 있나?"

가게 주인이 그의 얼굴을 보고 지불 능력을 의심하자, 창공은 돈주머니를 쳐서 확인시켜주었다. 노인의 얼굴에 만족이 떠오른다.

"손님이로군!"

"꽤나 본격적인 가게로군요. 한적한 마을인데 이게 다 팔립니까?"

"한적한 마을이니까 팔리는 게지. 이곳에 뭐가 있겠나? 해가 지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술을 마시거나, 떡을 치는 것밖엔 없네. 오히려 이런 곳이 장사하기엔 최적이라고 할 수 있어."

"납득이 갑니다."

묘하게 수긍이 가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뭘 찾나? 애인에게 선물할 거? 크기는 여러 개 있으니 알아서 하시게."

"항문 쪽을 건드리고 싶습니다만. 그쪽에 맞는 도구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

주인이 휘파람을 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는 도구는 있지. 그나저나 자네가? 계집들 엉덩이 두드려 본 경험이 얼마나 많은진 모르겠지만 거긴 함부로 건드리는 곳이 아니야. 초보자 주제에 잘못 건드리다가 결국 질질 새고 마는..."

"여기에도 그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건방진 여자는 뒷구멍이 특효약이라고."

매대를 둘러보던 창공은 주인의 말을 끊고선 고개를 돌려 그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물론이지. 아무리 자존심 강한 계집들도 거기엔 버티지 못해. 아니, 오히려 자존심이 강하기에 버티지 못하는 것일지도. 그래. 자네가 뭐 창관 주인이라도 되나?"

"그런 건 아닙니다만, 조금 기를 꺾어놓고 싶은 여자가 생겼거든요. 꽤나 건방지고, 똑똑하고, 강단 있는 여자를 무릎 꿇리려면 역시 이거 아니겠습니까?"

"...자네... 내가 오랜만에 사내다운 사내를 만났군. 자지에 피가 도는 느낌이야."

"나이가 있는데 조심하셔야죠."

"닥치게. 어디 보자... 일단 뒷구멍을 건드리려면 이게 필요하겠지."

그는 창공을 가게 한구석으로 안내하더니 꽤나 익숙하게 보이는 도구를 손에 쥐었다.

당연하지만 재질은 나무. 마치 주사기를 크게 만들어 놓은 듯한 도구였다.

"바늘 없는 주사기."

"주사기는 또 뭔가?"

"아닙니다."

아무래도 주사기의 발명은 아직인 모양이었다.

"관장 기구일세."

"물로는 조금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하네. 약을 주도록 하지. 물에 적당히 희석시켜서 안에 넣어 주게. 단, 바로 배출하면 안 돼."

"알고 있습니다."

관장액을 주입하고 바로 변기에 앉아버리면 효과가 그다지 없었다. 일단 매뉴얼 상으로는 10분을 참아야 하지만... 10분이 뭔가. 3분도 제대로 견디기 힘들다. 륀이 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상상하니 창공의 기분이 즐거워졌다.

"다음으로... 이건데."

주인장이 딜도에 손을 뻗자, 창공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구멍 안에 들어가는 건 가급적이면 제 몸이어야 합니다."

"그게 자네 기준인가? 하긴, 성벽은 개인마다 다른 법이니. 그래도 이게 있어야 즐거운데..."

"모양 비슷한 것들이 자꾸 이것저것 들어갔다 나오면 제가 각인이 안 되지 않습니까."

"훌륭한 변태를 만났군! 자네가 마음에 들어. 나중에 할 일 없거든 우리 가게를 이어받지 않겠나?"

"됐습니다."

"쯧... 그래도 이건 필요하지?"

다음으로 볼 물건은 애널 플러그였다. 창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페이드 모양처럼 생긴, 항문을 틀어막는 마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필요합니다."

"크기 별로 하나씩?"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주인은 플러그들을 집어 바구니에 담았다. 그 외에도 애널 비즈를 구매했다. 일단 조교 초기에는 어쩔 수 없이 도구의 힘을 빌려야 했다.

다음으로 윤활제. 상당히 중요했다.

"적당히 기름 하나 사다가 쓰게."

"아니 없단 말입니까?"

"미끄러우면 뭐든 상관없지 않나. 귀족 나으리들은 생크림을 쓴다고 들었지만."

그렇다니 어쩔 수 없었다.

"눈가리개는?"

"그건 뒷구멍과 관련이 없지 않은가? 뭐... 손님이 원하신다면야. 혹시나 해서 말인데, 입에 물릴 것도...?"

"주십쇼."

"채찍이나 밧줄은..."

"그것까진 필요 없습니다."

"아쉽군! 아, 대신 그건가? 가죽이 부드럽다네. 예쁜 몸에 상처가 날 일은 없겠지."

물건 담기가 끝나고, 창공은 돈주머니를 끌러 계산을 했다. 당연히 공금이었지만 륀을 조교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공적 업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가게를 나선 창공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경보 시합을 하듯이 걸었다. 여자의 애널을 조교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륀의 순결을 더럽히지 못한다 할지라도 상관없었다. 대신 애널이 뒷보지로 개발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아주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줄 생각이었다. 처녀만은 지키려는 그 마음가짐이 얼마나 덧없고 하찮은 각오였는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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