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떠돌이들-76화 (76/178)

〈 76화 〉 달의 추락 (2)

* * *

"아스터."

"..."

하루 종일 저런 모습이었다. 창가에 놓인 의자에 앉아 끼니도 거르고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는 아스터. 마치 륀에겐 얼굴도 보여주기 싫다는 듯이. 말을 걸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 륀은 그게 너무나 가슴 아팠다.

도대체 왜. 왜 이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둘은 사이좋은 자매였다. 이 세상 무엇을 주더라도 바꿀 수 없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륀은 그 어떤 것이든 포기할 수 있었다. 설령 이 세상 전부를 적으로 돌리더라도 상관없었다.

그 마음은 어린 시절 착한 동생을 괴롭혔던 미안함과 속죄였으며, 8살 이후로 얼굴조차 보지 못했던 그리움의 발로였으며, 이 세상 단 하나뿐인 동생에 대한 사랑이었다. 각오는 된 지 오래다.

하나, 그 결과가 이런 것이라니 이 무슨 운명이 장난인가 싶었다. 이 모든 것은 친애하는 동생 아스터를 위한 것이었으나, 지금 그것이 아스터와 자신의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끝까지 버틸 생각이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볼 생각이었다.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마음씨 곱고 여린 자신의 동생을 저런 남자에게 넘겨줄 수는 없으니. 언젠가는 아스터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언니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 먼저 자. ...좋은 꿈 꾸고."

"..."

아스터는 미동도 없이 어두컴컴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만 쳐다봤다. 그녀의 귀에 말이 들렸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륀은 마음 같아선 당장 아스터를 끌어안고 펑펑 울며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고 싶었다. 이미 늦었지만.

'아냐. 이런 마음 품어선 안 돼. 내가 똑바로 버티기만 하면 돼. 어차피 오래가진 않을 거야.'

그렇게 자신을 다잡아 본다. 그랬다. 서창공 자신도 말했지 않은가. 키스도 못 하는 여잘 평생 붙들고 있을 생각은 없다고. 당장이라면 마법 교수를 자신의 여자로 삼았다는 정신적인 만족감은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이틀.

계속 그에게 철벽을 친다면 분명 흥미가 떨어지리라. 바라볼 수만 있을 뿐 향기도 맡지 못하고, 꺾어 들고 갈 수도 없는 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누군가 묻는다면 자신은 그의 연인이라고 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다음을 결코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녀도 지켜야 하는 조항은 있다. 그중의 하나가 동침 요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락. 벌써부터 그의 추잡한 욕망이 느껴지는 듯해 몸서리가 쳐졌다. 그렇지만 거부할 수는 없다. 창공의 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지금의 행동이 그것을 증명했다.

"후우우..."

이윽고 문 앞에 선 그녀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성교육은 받았지만, 남자와 동침은커녕 연애를 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창공은 결코 자신의 순결을 빼앗을 수는 없을 테니. 입술도 순결한 채로 남으리라.

강제로 취하려 한다면, 그땐 계약이고 뭐고 없었다. 목숨을 빼앗은 다음 아스터를 데리고 떠나면 되니까. 마법사를 기만하려 한 죄는 컸다.

'그래. 이건... 그냥 자위 같은 거야. 자위를 한다고 생각하자. 나는 그냥 기분 좋아지면 되는 거고, 그는 욕망을 해소할 수 없는 괴로운 밤을 보내게 되겠지.'

륀은 그렇게 합리화를 했다. 확실히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은 편했다. 그랬다. 이건 그저 자위에 불과했다. 성직자도 아닌데, 자위 좀 한다고 해서 어떤 흠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성욕을 해소할 기회도 되니 긍정적으로 마음먹기만 한다면 크게 나쁘진 않았다.

적어도 그녀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끼이이...

나무 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고, 륀은 누가 볼세라 재빨리 방 안으로 들어간 다음 문을 닫았다.

"왔네?"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던 창공이 그녀를 바라보고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물론 륀은 전혀 반갑지 않았기에, 그저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오늘부터 너와 밤을 함께 지낼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해."

"난 안 그래. 어디 마음껏 해 봐. 결국 오늘 밤의 마무리는 당신의 수음으로 끝날 테니까. 그리고 내일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겠지. 당신은 절대 날 가질 수 없고, 괴롭기만 할 뿐이라고.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네."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씻었어?"

"그래."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굴욕적인 샤워였다. 반강제로 연인이 된 남자의 동침 요구에 몸을 씻는 자신의 모습은 정말 납득하기 어려웠다. 해서 그녀는 자신의 몸에 물을 끼얹으며 그저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씻을 뿐이라고 수없이 되뇌어야 했다.

"벗어."

"여기서?"

"그럼 복도에서 벗을래? 벗어. 내 눈앞에서. 당장."

"크읏..."

륀도 륀이었지만, 역시 창공도 창공이었다. 아무리 비즈니스적인, 그저 형식적일 뿐인 연인 관계라곤 해도 지금의 태도는 마치 창녀를 부리듯 하는 데가 있었다.

"싫으면 나가도 돼. 약속은 없던 걸로 해 줄 테니까. 단, 그렇게 되면 난 아스터를..."

"알았어. 알았다고."

톡. 톡. 톡.

파란색 드레스 셔츠의 단추가 하나하나 풀려나간다. 하얀 목과 움푹 패인 쇄골 부분, 순백의 브래지어에 싸인 탐스러운 가슴, 매끈한 배와 자그맣고 앙증맞은 배꼽이 차례대로 드러났다.

"후..."

그녀는 근처에 있던 의자의 등받이에 셔츠와 넥타이를 걸어놓았다. 차디찬 밤공기가 노출된 피부를 자꾸만 괴롭혔다. 그러나 탈의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으로 그녀는 치마의 단추를 끌렀다.

툭.

회색 스커트가 바닥에 떨어졌다. 허리에서 골반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 치부를 가린 자그만 팬티. 두 다리를 감싼 하얀 스타킹과 거기에 연결된 가터벨트까지. 륀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발갛게 물들었다.

이제까지 그 어떤 남자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속옷 차림. 그녀의 몸을 핥듯이 바라보는 창공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륀은 자연스레 두 팔로 가슴과 가랑이를 가렸다. 하지만 알기나 할까. 오히려 그 모습이 더 남자를 흥분시킨다는 것을.

"다... 벗었어."

"장난해? 그건 옷 아니야?"

"무, 무슨... 윽. 알았다고."

그렇게 그녀가 브래지어에 손을 대는 순간이었다.

"아니다. 속옷은 남긴 채로 하는 것도 재밌겠네."

"미친 변태 같으니. 당신이랑 만난 그날을 저주해."

"그래그래. 시작하기 전에 다시 한번 확인할게. 네가 나와 같이 밤을 보내기로 한 이상, 나는 네 처녀와 입술을 제외하고선 네 몸에 대한 모든 권리가 있어. 동의하지?"

"도대체 뭘 시키려는진 모르겠지만, 어디 마음껏 해 보라고. 뭐, 할 수 있는 것도 없겠지만."

은근히 자신만만한 표정의 륀. 그것이 자신을 옭아매는 사슬이 될 줄도 모르고. 창공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가방 안에서 관장 용구를 꺼냈다. 곧바로 자신을 침대에 눕히고 능욕할 줄로 알았던 륀이 일순간 당황했다.

"잠깐. 그건 대체?"

"어차피 넌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없을 텐데. 그렇긴 해도 말해주지 못할 건 없지. 지금부터 관장을 할 거야."

"...뭐?"

그녀의 머리가 아득해졌다. 관장? 관장이라니. 물론 그녀도 관장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게 갑자기 왜 나온단 말인가. 관장은 단순히 의료 행위일 뿐이었다. 적어도 그녀의 얇은 성지식에 의하면 그랬다.

"못 들었어? 관장한다니까. 네 더러운 뒷구멍과 내장을 깨끗하게 만들고, 거길 차근차근 개발해 줄게. 보아하니 학구열이 꽤나 높은 것 같은데, 그럼 너도 즐길 수 있을 거야. 미지의 지식을 습득하는 건 학자들에게 있어 바라마지않는 일 아니야?"

"미친 새끼...! 미쳤어. 넌 미쳤어!"

창공은 낄낄대며 화를 내는 륀을 바라봤다. 주먹을 꼭 쥐고,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는 모습을. 하지만 속옷만 입은 채로 그런 짓을 해 봐야 우습기만 할 뿐이었다.

"배려심이 없구나? 애널 섹스를 즐기는 사람들은 네 생각보다 많아. 미친 새끼라니. 그건 그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잖아. 생각보다 더러운 행위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고. 네가 관장만 제대로 해낸다면 말이지."

"이런 건 납득할 수 없어! 날 뭘로 보는 거야!"

"전부 다 네 잘못이잖아, 륀."

"헛소리!"

"헛소리가 아니지. 어쨌거나 넌 내 연인이니까, 나도 널 상냥하게 대하고 싶었어. 그런데 네가 끝까지 처녀는 못 주겠다니 나보고 뭘 어쩌라고. 이거 밖에 더 있나? 처녀랑 키스만 안 가져가면 된다며. 마법사는 약속을 칼같이 지킨다더니, 다 거짓말이었어? 뭐, 지금이라도 보지 대려면 대. 난 그게 더 간편하고 좋으니까."

그 누가 륀에게 이런 폭거를 저질렀을 것인가. 푸아송 남작령의 귀염둥이 아가씨였을 적은 물론, 교수가 된 그녀에게 그 누가 함부로 대할 수 있었을 것인가. 아무도 없었다. 있을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까지는.

"도대체 당신이라는 남자는... 나를... 여자를 뭘로 보는 거야! 아스터에게도 이러려고 했어? 어? 이러려고 했냐고!"

"싫으면 나가. 꼴 받게 하지 말고. 안 말린다니까? 그리고 아스터? 내 생각에 아스터한테 대 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대 줄 텐데? 그래. 생각해 보니까 그게 좋겠네. 끝내자. 넌 이런 거 안 해서 좋고. 난 아스터랑 해서 좋고. 아스터도 나랑 해서 좋을 거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아, 이쪽 세상에는 이런 말 없나?"

"이익..."

창공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륀은 눈을 꼭 감고 꽉 쥔 채로 부들대던 주먹을 천천히 풀었다.

"어디 한 번 해 봐. 하지만 명심해. 난 절대 당신 같은 남자에게 굴복하지 않아. 아무리 내게 고통을 줘도, 아무리 수치를 줘도 절대로."

"고분고분하니 얼마나 좋아. 그럼 욕실로 따라와."

일행이 묵는 방은 이 여관에서 제일 비싼 방이었다. 당연히 개인 욕실이 딸려 있었다. 공용이 아닌 것이 그나마 륀에게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욕실 안에는 그가 주문했던 따끈한 목욕물이 마련된 상태였다. 물론 몸을 씻는 용도로도 쓰겠으나, 애초에 관장용으로 쓰려 준비한 목욕물이었다. 아무래도 근육의 긴장을 풀어놓으려면 차가운 물로는 조금 무리가 있으니.

창공은 나무 주사기 안에 물을 채우고 관장약을 떨어뜨렸다. 기술력의 한계 때문에 완벽히 밀폐가 안 되어 물이 한두 방울씩 새어 나왔다. 이게 다 돈이 아니겠는가. 어서 집어넣어야 했다.

"등 돌린 다음 다리 벌리고 서."

"..."

그녀는 무표정에 무응답으로 창공의 명령을 수행했다. 그에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마치 목석처럼, 조용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을 보여 그를 기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허리 숙여. 팬티는 완전히 내리는 게 좋아? 아니면 그 부분만 젖힐까?"

말없이 팬티를 젖혀 항문을 훤히 드러내는 륀. 그뿐만 아니라 두 손으로 엉덩이를 벌리고 주사기가 들어오기 쉽도록 한다. 어차피 창공이 시킬 게 뻔했으니 자발적으로 한다고 달라질 게 없었다.

"좋아..."

하지만 긴장은 숨길 수 없었는지 륀의 항문이 자꾸만 조여졌다 풀어졌다를 반복했다. 가터벨트 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애널은 착색 없이 깨끗한 분홍빛에, 주름이 세밀하게 박힌 귀여운 구멍이었다.

허리를 굽힌 탓에 마치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탐스러운 엉덩이. 부드럽게 굽은 허리 라인. 스타킹에 감싸인 채 역 V자로 뻗은 두 다리. 약속이고 뭐고 이대로 팬티를 내려버린 채 보지에 박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들게 하는 뒤태였다.

하지만 어지간하면 약속은 지켜야 하는 법. 그는 준비한 윤활용 기름을 손가락에 찍은 다음 앞에 드러난 뒷구멍에 갖다 댔다.

움찔!

손가락이 닿자, 괄약근이 세게 조여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창공은 륀의 애널 주름 하나하나 세심하게 도포했다. 물론 주사기 입구에도. 이제 준비는 끝난 셈이었다.

"힘 풀어."

탁! 탁!

그는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원래 주사 맞기 전엔 다 이렇게 하지 않는가. 주사를 놓는 곳은 조금 달랐지만. 어쨌거나 효과가 있는 탓인지 괄약근의 긴장이 풀어지는 듯했다. 이 틈을 타서 주사기를 항문에 밀어 넣으니 쑥, 하고 꽂힌다.

"크..."

따뜻한 물이 뱃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느낌이 들자 륀이 이를 악물었다. 이제 와서 항문을 꼬옥 조여보지만 오히려 관장액이 새지 않도록 도움만 줄 뿐. 주사기는 꽤 용량이 큰 편이었다. 2파인트. 대략 1리터에 달한다.

"뺄 테니까 새지 않게 잘 조여."

"빼기나... 해...!"

관장액이 전부 주입되고, 주사기가 빠져나왔다. 륀은 다시 팬티를 원래대로 돌려놓고 허리를 똑바로 세웠다. 굴욕으로 엉망진창이 된 그녀의 얼굴이 너무나 잘 보였다. 창공은 지대한 만족감을 느꼈다.

"앞으로 10분만 참자."

"한 번이면 끝나는 거지?"

"무슨 소리야. 한 번으로는 안 되지."

"이걸 여러 번이나 한다고?"

"이제부터 매일 하게 될 테니까 익숙해지는 게 좋을걸?"

그를 노려보는 두 눈동자의 안에서 마치 푸른 화염이 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열기도 전달하지 못했으며, 창공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못하는 무기력한 화염일 뿐이었다.

게다가 이 눈빛은 오래가지 못했다.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자 륀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마 지금 배 안쪽에서 터질 것 같은 느낌이 전해지고 있으리라.

"10분... 됐나?"

"무슨 소리. 3분 조금 안 됐어."

"거짓말...!"

"진짠데. 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계를 확인한 륀이 입술을 꽉 깨문다. 몸에선 삐질삐질 땀이 흘러나오고, 딱 붙은 두 다리가 초조하게 떨렸다.

"며... 몇 분이나..."

"4분."

"아... 으윽..."

무슨 일이 있어도 평정을 유지하겠다 마음을 먹은 그녀였으나, 그 결심은 5분도 안되어 깨져버렸다.

"10분은 안 됐는데, 정 못 참겠으면 부탁해 보던가. 제발 싸게 해달라고."

"절대로!"

"아, 그래."

창공은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몸을 떠는 륀을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내심 속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관장을 받아 본 적은 없지만, 그가 알기로 누구를 막론하고 정말 10분을 버티는 사람은 없었다. 10분이 뭔가. 5분도 안 된다.

그런데 륀은 오직 악으로 깡으로 그 10분을 다 버틸 기세였다. 정말 대단한 자제심이요, 인내력이다.

"10분. 잘 참았어."

"나가...!"

그는 순순히 욕실을 나가주었다. 물론 그러지 않는 편이 더 재미있고 굴욕을 줄 수 있긴 하겠지만 남이 일보는 것을 보는 취미는 없었다.

시간이 충분히 지난 뒤, 다시 욕실에 들어가니 륀은 욕조를 꽉 붙잡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첫 번째 관장이 끝났을 뿐이었다. 다시 주사기에 물을 채우고, 관장약을 섞는다.

"일어서. 두 번째 들어가니까."

"..."

그녀는 말없이 일어나 방금 전처럼 허리를 굽히고 엉덩이를 벌렸다. 이윽고 두 번째 관장액이 주입되었다. 처음 관장으로 인해 괄약근은 어느 정도 풀렸을 터. 가면 갈수록 더 참기 어렵다. 하지만 륀은 그것을 죽어라 참고 있었다.

"아흑... 으아앗...."

놀라웠다. 분명 미칠 듯이 괴로울 텐데 말이다. 어서 힘을 풀고 편해지고 싶을 텐데 말이다. 의지로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건만, 버티고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결코 창공의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물론 이조차 창공의 즐거움이었다. 이렇게나 자존심 강한 여자를 기어코 꺾어냈을 때의 그 쾌감을 상상하니 자지가 빳빳하게 발기했다. 피가 잔뜩 몰려 괴로울 정도로.

"10분 됐네."

이번에도 자리를 비우는 창공. 당연히 다시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 그녀의 온몸은 이미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덕분에 유륜과 보지의 윤곽이 속옷 너머로 비쳐 보였지만 륀에겐 그것을 가릴 정신이 없었다.

"일어나. 이제 세 번째."

그럼에도 꿋꿋하게 관장을 받는 륀. 일단 다섯 번으로 횟수를 정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잘 버티는 모습을 보니 괜히 참지 못할 때까지 계속해서 관장을 하고 싶은 생각도 내심 들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농담이 아니라 죽을지도 몰랐기에 생각으로 끝낼 수밖에. 괴로워하는 륀을 보는 것도 충분히 즐거웠기에 이것도 괜찮았다.

"아으으으윽...!"

륀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고통스러워했다. 하얀 어깨가 가련하게 움찔거리고, 발가락도 잔뜩 오므라들었다. 이미 몸은 한계를 넘어섰을 터. 정말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륀. 이제 겨우 세 번째고, 2분이 지났을 뿐이야. 네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한 번 빌어. 제대로 빌어 봐. 제발 싸게 해달라고. 건방지게 행동해서 잘못했다고. 그럼 허락할 테니까."

"크... 하읏! 아흑...!"

"딱 한 번만. 한 번만 빌면 되는데. 그냥 한 번만 자존심 굽히고 내게 빌면 된다고. 힘들지? 배는 터질 것 같고. 륀. 2분 30초 경과했어. 앞으로 7분 30초나 더 남았는데 정말 버틸 수 있을까?"

"꺼... 져엇...!"

"...네 뜻이 그렇다면야."

아마 악마의 속삭임처럼 들렸으리라. 결국 륀은 창공의 제안을 거절했고, 놀랍게도 10분을 다시 버텨냈다. 의외라는 듯이 웃으며 욕실을 나서는 창공.

"아... 아아아아악...!"

문 저편에서 비명에 가까운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네 번째 관장이 그녀를 기다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엔 이미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고, 다리는 몸을 지탱하는 것조차 어려워 보였다.

"생각해 보면 말이지. 이런 고통을 겪을 이유가 있을까? 네가 무슨 성직자도 아니고 그깟 처녀 좀 잃으면 어때. 나중에 정말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남겨두려는 거면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야."

그가 즐겁게 떠벌렸지만 이미 륀에겐 반박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 이상적인 남자라면, 그깟 처녀 신경이나 쓰겠어? 아니 뭐... 정 신경 쓰이면 처녀라고 해서 다 피가 나오는 건 아니거든. 그냥 첫 경험 때 아파하는 척하면서 몸만 조금 비틀어 주면 남자 새끼들은 다 '아! 처녀구나!' 하고 좋아한다니까."

"..."

"진짜야. 내 말 새겨들어. 굳이 처녀를 지키고 싶다면 난 말리진 않을게. 난 이것도 좋거든. 륀. 진지하게 말하는데, 너 이거 맨날 해야 돼. 한 번으로도 고통스러운 관장을 여러 번을 해야 돼. 네가 10분 못 참고 싸지르잖아? 그럼 난 횟수 안 새고 참을 때까지 계속 관장시킬 거야. 딱 하나 방법이 있지. 나한테 정중하게 빈 다음에 싸는 건 10분 참을 걸로 쳐 줄게."

"..."

"별거 아닌데 왜 못 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그냥...! 보지 대라고. 내가 잘 해 줄 수 있는데. 지금까지 나랑 하고 만족 못 한 여자가 없었다니까?"

"당신..."

"어, 어. 그래. 말해."

힘겹게 열린 그녀의 입술에서 느릿느릿 한 말이 토해졌다.

"이딴... 게... 재밌어...?"

"당연하지. 재미없으면 하겠냐?"

이거야말로 나유나 아린에겐 느낄 수 없는 재미였다. 그야말로 완벽히 약점을 잡힌 여자를 통하면, 단순히 사랑에 빠진 여자에게선 뽑아내는 것이 불가능한 쾌락을 얻을 수 있었다.

"10분 지났네."

그 뒤로도 한동안 신나게 륀을 능욕하던 창공은 웃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아... 하아... 하아..."

관장액을 전부 비운 륀은 벽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쉬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이제 네 번째가 끝났다.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 언제까지 이 굴욕과 고통을 참아야지 해방될 수 있을까?

아니, 생각하기 싫었다. 그저 지금은 닫힌 저 문이 열리지 않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바람은 헛된 것에 불과했다.

"일어나. 겨우 다섯 번째인데 엄살 부리지 말고. 아니면 부탁해. '건방진 여자라 죄송했습니다. 제발 여기서 그만해 주세요.' 하고."

"난... 굴복하지 않아...!"

"그래?"

땀이 줄줄 흐르는 륀의 아름다운 몸. 푹 젖은 속옷은 최소한의 가리개 역할조차 하지 못해, 분홍빛 유두와 금빛 음모가 훤히 비춰졌다. 악취 따위는 나지 않았다. 그 대신 달콤하고 몽환적인 사향 비슷한 향기가 그녀의 몸에서 풍겼다. 쌍둥이의 방에 들어갔을 때 나던 향이 좀 더 농축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거나 말거나, 이번에도 관장액이 그녀의 대장을 채웠다. 이게 마지막이었지만, 창공은 일부러 그녀를 흔들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잘 참고 있어. 솔직히 이렇게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 특별히 알려 줄게. 이제 절반 정도 왔어."

"절... 반..."

"그래, 절반. 이거 끝나고, 앞으로 다섯 번만 더 관장하면 끝이야."

"아... 아아..."

륀의 낯빛이 절망으로 짙게 물들었다.

"대신 이렇게 하자. 무릎 꿇고 고개 숙이면서 잘못했다고 빌어. 암컷 주제에 건방지게 굴어서 죄송하다고 말해. 그럼 이번 관장은 바로 끝내 주고, 앞으로 남은 다섯 번도 한 걸로 쳐 줄 테니까."

그야말로 최후의 시도였다. 창공은 이번에야말로 그녀가 넘어올 거라고 생각했다. 인간이면 넘어오지 않을 수 없다. 정신력이 아무리 강해도 이건 안 된다. 육체가 무너지면 정신도 무너지는 법이니까.

"말... 했... 잖아..."

하지만.

"굴복... 안 해!"

"하."

관장으로 그녀의 정신을 무너뜨릴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아쉬움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건 첫 번째 관문일 뿐, 얼마든지 굴욕과 무기력을 배양할 수 있는 방법은 남아 있었다.

"그럼 어디 버텨 보시던가."

"절... 대... 로..."

시간은 점점 흘렀다. 눈에 초점이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입은 멍청히 벌려져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으나, 륀은 끝까지 버텼다. 단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도록.

그렇게 기어이 10분이 지났다. 창공이 다시 욕실에 들어갔을 때, 륀은 바닥에 드러누워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총 다섯 번, 50분의 관장을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창공은 웃으며 그녀를 품에 안아 들어 올려 침대로 향했다. 아직 밤은 끝나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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