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떠돌이들-81화 (81/178)

〈 81화 〉 엘랑 비탈 (2)

* * *

나만 홀로 남은 방. 침대 위에 앉은 채로 심호흡을 한다.

침착하자.

그리고 천천히.

왼손으로 살며시 파이프를 잡고, 오른손을 쌈지에 넣어 담뱃잎을 한 꼬집 잡아넣어 준다. 그리고 검지를 이용해 누른다. 오래된 책의 책장을 넘길 때처럼 조심스럽게.

적당히 다져졌으면 다시 한 꼬집 담뱃잎을 채우고... 이번엔 적당히 힘을 줘서.

다시 한 꼬집. 마지막으로는 세게. 땅을 다지는 느낌으로. 그러면서도 동시에 너무 지나치지 않게.

이걸로 완성이다.

"Ignem."

담배가 발간빛을 내며 타오르면 그제서야 부리를 입에 물고 조심스럽게 빨아들인다. 절대 세게 빨면 안 된다. 연소가 가속화되며 온도가 올라가니까. 입안에 화상을 입을뿐더러, 파이프를 손으로 잡을 수조차 없게 된다.

그렇다고 약하게 빨아서도 안 된다. 불이 꺼져버리니까. 물론 도구 없이 수시로 불을 붙일 수 있는 나 같은 마법사들에겐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지만 그래도 원칙은 그렇다는 이야기다.

적당히. 제대로. 천천히.

불만 붙이고 피우면 되는 궐련과는 달리 파이프는 신경 써야 할 점이 아주 많다. 피운 다음에는 반드시 청소도 해 주어야 하고. 그럼에도 나는 파이프를 피운다.

담배를 연통 안에 채워 넣고, 적당한 세기로 다지고, 적당한 세기로 빨아들이고, 다 피운 다음 파이프가 식으면 청소 도구로 연통 안쪽을 긁어내고, 물부리 안쪽을 청소하고.

이런 번거롭고 귀찮은 과정은 내게 하나의 의식이 된 지 오래다. 마치 사제가 성사를 집전하는 것처럼. 이 순간만큼은 난 세상 모든 것들에게서 분리되어 나만의 우주를 거닐 수 있다. 연구를 하다 막힐 때도, 대인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담배 하나면 된다.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어.

"하아아..."

그러나 인간은 평생토록 고심하다 죽는 생물. 그 굴레에선 벗어날 수 없다. 평생을 그럴진대, 어떤 날에는 사이사이의 망중한마저 긴장을 놓지 못한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아스터. 너의 그 모습을 두고 내가 어떻게 한순간이라도 편할 수 있을까.

난 지금 네게 최악의 언니겠지.

하지만 언젠간 네가 날 이해할 수 있을 때가 올 거야.

"후..."

생각 한 번에 날숨 한 번. 저 흩어지는 담배 연기처럼 이 복잡하게 얽힌 마음도 흩어지길 바라며.

...아무래도 오늘은 끝까지 편할 수 없겠는걸.

내 아래쪽... 엉덩이 사이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이물감. 신경 쓰지 않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그 남자는 내가 단 한순간도 마음 놓고 쉬게 두지 않으려는 걸까.

최대한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며 다시 연기를 빨아들인다.

내가 너무 성급했었어. 바보 같은 결정이었어. 덕분에 그 남자는 내 몸을 자기 마음대로 갖고 놀고 있지. 나는 인형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당하고만 있고. 그나마 내가 걸었던 제한만큼은 철저히 지킨다는 게 다행일까.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일 순 있을 거야.

생각하자.

그리고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내 몸은 이미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어. 너무나 끔찍하지만... 그와의 행위에서 여자로서의 기쁨을 느끼고 있는 건 분명해.

아아... 슬프게도.

뒷구멍을 쑤셔질 때마다 달콤한 신음 소리를 내는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궁이 있는 아랫배를 자극당할 때마다 영문 모를 열락에 허벅지에 이는 경련이 지금도 생생하다.

가슴을, 그리고 젖꼭지를 괴롭혀질 때마다 찌릿한 쾌감에 심장이 불길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리고... 그에게 엉덩이를 맞고 비난당할 때마다 흥분하는 변태 같은 내가 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게 나란 말야?

그래. 이게 나야. 인정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어. 일어나는 현상을 관측하고도 인정하기 싫다며 못 본 체한다면 연구자로서의 자격은 없는 거니까.

나는...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거야. 그 남자와 잠자리를 가진 건 겨우 두 번. 그 사이에 내 마음이 꺾여나간 게 느껴져.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한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이대로 가면 난 언젠가... 그것도 가까운 시일 내에 굴복하게 되겠지.

[그러면 안 되나?]

순간, 내게 말을 거는 소리가 들려온다.

[받아들여. 솔직히 기분 좋잖아.]

"웃기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뭐지? 그게 싫으면 당장 이 관계를 끝내면 되는데.]

"그딴 남자에게 아스터를 넘길 순 없어."

[아니. 넌 그냥 서창공이 주는 쾌락이 좋은 거야. 방금 인정하자며. 너는 항문에 남성기가 쑤셔 박혀져 기뻐하며 울고, 엉덩이를 맞을 땐 쾌락에 몸서리치는 변태에 불과하다니까. 넌 그걸 네 동생과 나누기 싫은 거라고.]

돌겠네. 내가 피는 연초에는 환청 작용을 일으키는 성분이 없는데.

[지금이라도 가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그에게 복종해. 마음을 활짝 열고 전부를 받아들여.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쾌락이 널 맞이할 테니까. 도대체 뭐가 문제야?]

"헛소리...!"

[집중해. 네 엉덩이에서 지금 느껴지는 감각에. 솔직해지자구. 짜릿짜릿한 감각이 올라오고 있지 않아?]

"크..."

[지난밤 기억해? 그의 밑에 깔려서, 너는 녹아내렸어. 지금 네 구멍에 들어가 있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그의 물건으로... 뜨겁고. 단단하고. 장벽 너머로 자궁을 압박당하는 기분은 어땠어?]

밤의 기억이 떠오른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계속 생생하게 펼쳐진다. 더러운 구멍을 쑤셔지며 엉덩이를 맞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고, 여자의 행복을 느꼈던 지난밤이.

애달픈 한숨이 입에서 흘러나온다. 난 그제서야 내가 자꾸만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풀었다 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이물감에서 만족을 얻고 있다는 사실도.

[바로 그거야.]

목소리가 다시 한번 나를 강타했다. 아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이건... 내 목소리였다.

[그건 전혀 부끄러운 게 아니야. 딱 한 번만 패배를 인정하면 돼. 그에게... 주인님께 몸과 마음을 전부 내어드리면 너는 아무 생각도 할 필요가 없어. 그다음엔 주인님이 알아서 해 주실 테니까.]

"아... 아아..."

멍하니 벌어진 내 입에서 파이프가 미끄러져 빠져나가더니...

따악!

바닥에 떨어지며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주워야 한다. 주워야 하는데...

[뒷구멍도 그렇게 기분이 좋은데, 앞구멍은 얼마나 좋을까? 주인님이 네 처녀를 가져가시고, 아기씨를 자궁으로 듬뿍 담아내는 거야. 그렇게 계속 씨앗을 받다가 보면, 언젠가는 새로운 생명이 네 뱃속에서 크게 되겠지. 이름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만약에 딸을 낳게 되면... 아스터라고 이름 짓는 건 어때?]

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고개를 푹 숙였다. 시야가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입에서는 침이 뚝뚝, 떨어진다.

"아읏... 하아아... 응크읏..."

[그래. 그렇게 하자. 그렇게 하면 정말 기분 좋을 텐데. 아스터도 용서해 줄 거야. 아니, 오히려 언니가 아이를 낳았다며 기뻐할걸? 예전부터 그랬잖아. 아스터의 물건 중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빼앗은 적이 많으면서. 어릴 적에 있었던 일이라며 부정하려고 하지 마. 말하자면 아스터는... 네가 필요한 걸 잠시 맡아서 보관하는 역할이야. 봐. 걔도 그걸 아니까 아무 말도 못 했잖아.]

"크하앙... 으흐흐응..."

[이번에도 비슷한 일을 할 뿐이야. 아니, 오히려 더 쉽지. 아스터는 주인님을 가진 적이 없어. 오히려 네가 주인님께 선택받은 거라구.]

마음이 무너질 것만 같아. 전부 포기하고 싶어져.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돼? 처녀만 지키면 된다고? 이미 내 몸은 더럽혀졌는걸. 그럴 바엔... 그냥 다 놓아버리고 기분 좋아지면 안 될까?

[바로 그거야, 륀. 자, 어서 가자. 주인님의 방으로. 아침은 안 드신다고 하셨으니까 거기 계실 거야. 가서 그동안 건방지게 굴었던 것을 참회하고, 주인님에게 귀여움을 받는 착한 아이가 되자.]

"흐그윽... 크흐응..."

"언니?"

순간, 뒤에서 들린 아스터의 목소리와 함께 날 괴롭히던 환청이 사라졌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온 거겠지. 그리고 문을 여니 침대에 걸터앉아 머리를 감싸 쥔 내 모습이...

"세상에... 언니..."

아스터는 내게 황급히 다가와 나를 꼭 안아주었다. 작아 보이기만 하던 네 품은 나를 안을 정도로 커졌구나.

내가 바라던 온기가 여기 있어.

"많이 힘들었구나..."

"아, 아스터... 아스터... 언니가 미, 미, 미..."

"미안해, 언니. 그동안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지?"

왜 네가 사과를 하는 거야.

"아, 아니야. 크흥! 아니야..."

"난 언니 마음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쌀쌀맞게 굴어버린 거구나."

아스터... 아스터...

* * *

쪼옥... 쮸우웁...

"후우... 후우웅..."

아린은 눈을 감고 창공의 자지를 열심히 빨고 있었다. 창공 입장에선 미숙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니 뭐라고 하진 못하겠고... 어쨌거나 의외로 그녀가 먼저 해 준다기에 받는 중이었다.

"으으, 빨리 싸저혀..."

벌써 펠라를 시작한 지 15분 가까이가 경과한 상황. 안 그래도 작은 입으로 큰 자지를 무느라 턱이 빠질 지경인데, 정작 창공이 사정할 기미가 없으니 표정을 살짝 찡그리는 아린.

결국 그녀는 혀끝으로 요도구를 쿡쿡 찌르며 손으로 빠르게 대딸을 쳐주었다. 그녀의 손안에서 자지가 점점 단단해지고, 뜨거워진다. 사정의 전조임을 눈치챈 아린은 입을 벌려 귀두를 한가득 물었다.

이윽고 뜨거운 정액이 그녀의 입안에 잔뜩 흩뿌려졌다. 끈적한데 양까지 많아서 삼키기 곤란했지만 아린은 어떻게든 정액을 받아내 목구멍 저편으로 넘겼다.

쪼오옥!

마지막으로 요도에 남은 정액까지 빨아들인 아린은 귀두와 고환에 입을 맞추었다. 전부 나유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원래 그런 것이라고는 하는데, 아린으로선 진실인지 아닌지 알길은 없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배운 대로 잘 따라 하는 모범생이니까.

"수고했어. 근데 좀 더 연습하는 게 좋겠다."

"뒤에 말만 안 붙였어도 더 듣기 좋았을 텐데."

아린은 귀엽게 푸념하며 창공의 옆에 앉아 그의 팔을 끌어안고 머리를 기대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네가 먼저 한다고 하고."

"몰라서 물어요? 으... 오빠는 진짜 나쁜 놈이야."

"이젠 새롭지도 않네."

"이런 말은 좀 매번 새롭게 새겨 들으라구요. ...어쨌든, 대체 뭐예요. 갑자기 퐁파두르 교수님은 대체 왜. 나유 언니가 말만 안 했지 얼마나 충격받았는지 알아요?"

"나유가 참 착해."

"조금만 덜 착했어도 오빠는 칼 맞았어요."

창공은 어쩐지 오늘 아린의 말투가 평소보다 센 편이라고 생각했다.

"화났냐?"

"네. 솔직히 화나네요. 새 여자 들여서."

"아린아. 혹시 폴리아모리라고 알아?"

"그런 건 싫어요. 난 한 사람과의 플라토닉한 사랑이 좋으니까."

"자지 빨아놓고선 플라토닉이래."

그녀는 몸에 힘을 줘서 창공의 팔을 꺾으려고 시도했지만 전부 헛수고였다.

"어쨌든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요. 그것 때문에 그랬어요. 요새 교수님이랑만 시간 보내는 것 같던데..."

"내가 알아서 해."

창공은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오늘 사용할 도구들을 떠올렸다.

안대. 목줄. 볼개그.

오늘도 즐거운 밤이 될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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