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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떠돌이들-84화 (84/178)

〈 84화 〉 엘랑 비탈 (5)

* * *

창공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환희의 불길이 모든 것을 다 불살라버릴 기세로 타올랐다. 그러나 그는 눈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고 감정을 절제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주인님 소리 한 번 들었다고 모든 것이 다 끝났다면 이 고생을 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아직 륀이 자신에게 완전히 복종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창공이다. 자존심 강하고, 긍지 높고, 필요하다면 살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치우는 여자다. 한동안 유리한 입지에 서서 일방적인 공세를 퍼붓기는 하였으나 도무지 륀이 그것만으로 굴복했다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주인님이 뭐 어쩌라고. 말이야 얼마든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어낼 수 있지.'

그는 개의치 않고 철저하게 그녀를 굴복시켜나갈 예정이었다. 륀의 유일한 약점. 아스터. 그 어처구니없는 약점을 계속 쥐고는 있지만, 그게 과연 언제까지 갈지에 대해선 확신이 없었다.

자존심이 강하다면 자존심을 꺾고, 높은 긍지는 무력감을 주입시켜 깎아내린다. 그리고 오늘 밤의 즐거운 산책이야말로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창공은 생각했다.

"산책은 즐거운 거야. 그렇지?"

"...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으나, 떨림은 확실하게 전해져왔다.

"그런데 산책 가기 전에 해야 할 게 있어."

창공은 가방 안에서 애널 플러그를 꺼내 꼼꼼히 윤활유를 발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륀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자. 스스로 넣어 볼래?"

륀이 멍하니 그것을 바라봤지만, 그는 재촉하듯 그녀의 얼굴 앞에 자꾸만 플러그를 들이밀었다.

"얼른. 안 받으면 벌로 엉덩이 맞을 거야. 아니면 맞고 싶어?"

"넣을게요..."

떨리는 손이 플러그를 향해 서서히 뻗어졌으나 무엇이 불만스러웠던지 창공이 플러그를 거두어들였다.

"대답 똑바로 해야지."

"무슨."

"넣을게요, 주인님. 한 번 해 봐."

"..."

순간 쏘아지는 반항의 눈빛. 하지만 그것은 잠시. 아주 잠시일 뿐이었다. 힘없이 고개를 떨군 륀의 입에서 고운, 그러나 어딘가 애처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넣을게요... 주인님..."

"잘했어. 앞으로는 말끝마다 꼬박꼬박 붙이는 거야?"

"...네, 주인님."

"착하다."

창공은 마치 애완동물을 조련하듯이 그녀를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일순간 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것은 분노였을까. 아니면 굴욕이었을까.

"쪼그려 앉고 한 번 넣어 봐."

실제로도 말 잘 듣는 애완동물 같았다. 착실히 창공의 말을 따라 쪼그려 앉고 플러그를 엉덩이에 갖다 대는 륀을 보면 말이다. 발개진 얼굴. 꽉 닫힌 눈. 앙다물린 입술.

고운 금발의 음모로 장식된 어여쁘고 도톰한 음순은 쪼그려 앉은 탓인지 약간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뒷구멍에 끝단이 대인 플러그. 창공은 의자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고 즐겁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감상했다.

"읏... 앗..."

그녀가 손에 힘을 주고 플러그를 밀어 넣었지만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조준이 잘못된 탓이었다. 사실 이게 정상이다. 보이지 않는 곳이고, 볼 수도 없는 곳인데다 한 번도 자의로 항문에 뭘 넣어 본 적이 없으니 자연스레 어색할 수밖에.

오히려 한 번에 성공했다면 창공은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에 크게 의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게 륀은 한동안 플러그와 씨름했다. 때때로는 정확한 위치에 맞닿을 때도 있었지만 똑바로 힘을 주지 못해 미끄러진 것을 그녀가 잘못 조준한 것이라고 생각한 탓에 들어가지 못했다.

"하으으... 크읏..."

게다가 쪼그려 앉아서 뒤로 뭔가를 집어넣는 것은 근본적으로 쉽고 자연스러운 자세가 아니다. 륀의 다리가 저려오고, 허리가 아파왔다. 금세 그녀의 몸 곳곳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창공은 담배를 꽉 물고 연기를 깊숙이 빨아들이며 달뜬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여자가 스스로 뒷구멍에 플러그를 집어넣으려 애를 쓰는 모습 자체로도 흥분이 되었지만, 땀이 나면서 자연스레 풍기는 그녀의 육향 때문이었다.

적어도 살결의 향기에선 퐁파두르 쌍둥이가 나유와 아린보다 나았다. 포근하고, 달콤하고, 동시에 어딘가 몽환적인 데가 있는 사향 비슷한 냄새. 륀의 머리카락에 코를 대고 향기를 맡고 있노라면, 그녀를 범하는 것도 멈추고 밤새도록 그것만 맡고 싶은 때도 있을 정도였다.

목덜미에서 흐른 땀이 몸을 타고 내려가 둥그런 가슴을 또르르 타고 미끄러져 젖꼭지 끝에 맺히고, 가슴 밑에서 배어 나온 땀은 배를 거쳐 보지털 사이로 모습을 감춘다.

"하아... 하아... 으으읏...!"

륀의 숨이 점점 더 거칠어졌다. 결코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은 아니다. 저 힘들어하는 표정을 보면 분명했다. 하지만 창공은 그녀를 바라보며 혹시 저 모습이 자신을 유혹하기 위해 위장된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의심과 회의에 시달려야 했다.

"...인님..."

"뭐라고?"

"주... 인님... 그... 너..."

"..."

끝이 뭉개지며 무슨 말인지는 확연히 들리지 않았으나, 창공은 어떤 말이 나오려 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넣어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끝내 그녀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아니에요..."

"그래? 아니라니 뭐. 열심히 해."

그리고 창공도 굳이 그녀를 도와줄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보기 좋은 광경을 계속해서 보여주겠다는데 왜 말리겠는가. 게다가 이젠 방 안에 꽉 들어찬 그녀의 향기까지. 사실 그녀의 몸에 손을 댔다가 그대로 범하게 될까 봐 마음을 가라앉힐 필요도 있었다.

"후우우... 하아... 하아아... 흐읍...!"

계속해서 혼자 노력하는 륀. 하지만 야속하게도 플러그는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데구르르...

땅에 떨어진 플러그가 방바닥을 구르는 소리와 함께, 결국 륀은 앞으로 쓰러져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숨을 헐떡였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한 창공은 그녀를 안아들어 침대에 엎드리게 한 다음 플러그를 집어 들었다.

"엉덩이 벌려."

"네, 주인님..."

그녀는 반항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스스로 엉덩이를 벌려 뒷구멍을 드러냈다. 앵두처럼 새빨간 그곳. 오밀조밀한 주름들이 귀엽게 꿈틀거리며 창공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애널 플러그를 박아 넣으려던 창공은 괜한 장난기가 들어 륀의 뒷구멍에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댔다.

"하나... 둘..."

"주인님...?"

"아, 별거 아니고 우리 륀 뒷보지는 주름이 몇 개나 되나 세어 보려고. 셋... 넷... 다섯..."

"그, 그만!"

륀이 화들짝 놀라며 엉덩이를 벌리고 있던 손을 치우려 했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던 창공이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만? 그만이 아니잖아? 말이 짧네."

"그만해 주세요, 주인님... 제발...!"

이런저런 일을 당했고 또 당하고 있는 륀이었지만, 그래도 분명히 처녀는 맞았다. 남자와의 성경험을 처음으로 한 것도 겨우 이틀 전 일이다. 처녀 특유의 수줍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자의 몸에서 제일 은밀하고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구멍을 스스로 벌리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나오니 당장에라도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만할까?"

"네... 제발..."

"싫은데. 그래도 네 몸인데 뒷보지 주름 개수 정도는 알고 있는 편이 좋지 않을까?"

"알고 싶지 않아요... 제발요, 주인님..."

"반항하는 거야?"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주인님..."

침대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애처롭게 애원하는 소리는 정말 들어줄 만한 것이었다.

"음. 그러면 네 말을 들어줄 테니까, 너도 내 말 하나 들어주는 게 맞겠지?"

"어떤 말씀을..."

"네 입술을 원해, 륀. 거기도 내게 바쳐야겠어."

"입... 술은..."

"왜 망설이는 거지? 내가 대단한 거 원했어? 그냥 네 입술 좀 내 마음대로 쓰겠다는 거잖아. 생각해 봐. 어차피 이제 네 후장은 허벌이야. 내가 본 여자들 중에서 네 후장이 자지를 제일 맛있게 삼킨다니까?"

"앗, 으..."

"그런데 키스는 안 된다고? 도대체 뭐가 문제야. 처녀만 지키면 되는 거잖아. 첫키스 따위에 그렇게 의미 부여하는 이유가 뭐야?"

"아... 으아..."

창공은 륀이 내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그녀의 애널에 숨을 한 번 불어주었다.

"햐앙!?"

"그래도 난 착한 주인님이니까 륀이 싫다고 하면 안 할게. 어쩔 수 없지, 뭐. 대신 다시 세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다시 세야겠네... 하나. 둘. 셋..."

"드, 드릴게요...!"

륀이 기겁하며 몸을 펄떡였다.

"입술... 주인님께 바칠 테니까... 제발 그만해 주세요..."

"네가 정 그렇다면야. 자, 몸 뒤집어 보자."

그는 륀의 몸이 천장을 보도록 똑바로 돌려눕혔다. 어여쁜 눈동자는 어느새 절망으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네가 좋다고 한 거다. 이제부터 네 입술은 내 마음대로 사용할 거야. 내가 입 맞추자고 하면 입 맞춰야 하고, 자지를 빨라면 빨아야 해. 알았지?"

"...네... 주인님..."

은근슬쩍 펠라치오까지 요구할 속뜻을 내비쳤지만, 륀은 이미 체념한 듯 힘없이 대답할 뿐이다. 창공은 웃으며 손가락으로 륀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머리 좋으니까 기억력도 좋지? 앞으로 죽는 날까지 지금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네. 남자가 네 첫키스를 가져가는 거니까."

'기억하고 싶지 않아... 이런... 거...'

륀이 평소에 바라며 가슴 설레던 이상적인 첫키스. 자신이 침대에 눕고, 사랑하는 남자가 위에서 서서히 내려오며 입술을 훔쳐 가는 것. 그리고 그대로 로맨틱한 첫날밤의 시작.

참 우연하게도 상상하던 것과 겉모습은 같았다. 내용은 끔찍하리니만큼 달랐지만.

창공의 얼굴이 서서히 다가오자, 그녀는 눈을 꼭 감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말캉.

하지만 이내 드는 촉감이 부정을 불가능케 했다. 부드럽고, 따스한 입술의 감촉. 처음에는 살짝 건드리거나 슬며시 누를 뿐이었지만 축축한 혀가 륀의 입술을 벌리려 시도했다.

잠시 반항하는가 싶던 그녀는 자포자기한 채 그대로 창공의 침입을 허용했다. 이윽고 두 남녀의 혀가 섞이고, 진한 키스가 시작되었다.

또르르...

닫힌 눈꺼풀은 배어 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투명한 눈물이 눈꺼풀 사이에서 흘러나와 관자놀이를 타고 저 아래로 사라진다.

"으응... 크흥... 후웅..."

키스가 익숙하지 않은 륀은 어떻게든 숨을 쉬기 위해 자꾸만 소리를 냈고, 그것이 창공을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륀의 따스하고 보드라운 가슴에 창공의 손이 닿고, 유두가 꼬집히거나 비벼지거나 했다.

그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꾸준히 개발 중인 젖꼭지는 부정할 수 없는 열락을 전해주었다.

륀은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혐오스러웠다.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첫키스를 빼앗긴 자신이, 교수라고 하면서 근본도 모를 남자에게 주인님이라 부르게 된 자신이.

그리고... 이런 사실에 마음속 저 깊은 어딘가에서 흥분을 느끼는 자신이.

저 높고 푸른 하늘 위를 날던 륀은 땅 위로 떨어졌다. 그것이 끝인 줄로만 알았는데 밑에는 지하가 있었다. 지하가 끝인 줄로 알았건만, 계속해서 추락했다.

'아... 난 대체 어디까지...'

어느 한여름 밤, 륀 퐁파두르는 절망과 쾌락에 몸을 떨며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영원히 기억될 첫키스를 바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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