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떠돌이들-97화 (97/178)

〈 97화 〉 밤하늘 (4)

* * *

터벅터벅...

륀이 옛 인연을 만나고, 나유가 창공과 밤을 보내고 있을 무렵, 긴 로브를 입고 머리에는 후드를 푹 눌러쓴 채 튜리의 밤거리를 걷는 사람이 있었다.

후드와 로브가 상당히 펑퍼짐했던 탓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였고 정면에서 바라봐도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팔소매 아래로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작고 하얀 손에서 이 사람의 성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으으... 떨려...'

아스터 퐁파두르. 평소 휘황찬란한 백색의 사제복을 입고 다니던 그녀는 오늘 어쩐 일인지 검은 로브로 자신을 가렸다. 자신의 신분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며 사제임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그녀가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그러나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보통 사제들은 가지 않을 것이라 대중들이 생각하는 장소. 그리고 아스터 자신조차 평생토록 갈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장소에 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사제들이 가지 않지만, 그곳이 대중들이라고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드는 곳도 못 된다. 그곳에 간다며 자랑스레 떠벌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출입이 범죄는 아니나 떳떳할 수는 없는 곳. 그렇기에 대로변에서 벗어나 적당한 골목길에 위치한 곳.

[여성 신경증 치료소]

이세계의 성인용품점이었다.

'심호흡, 심호흡을 하자.'

잠시 동안 그 앞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던 아스터는 이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문을 살며시 열었다. 출입을 알리는 종이 딸랑거리며 울리자, 그녀는 심장이 철렁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자신이 이곳에 들어간다고 온 세상에 알려지는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으로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후드를 올리고 살며시 주변 선반을 살펴보던 아스터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남성의 성기를 본뜬 음란한 기구들, 그리고 도대체 어디에 써야 할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 도구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결코 성적으로 무지하진 않은 아스터였지만 역시 이런 경험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각오의 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런 세계와는 너무나 멀리 동떨어진 곳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우으으... 부끄러워...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아... 어쩌지...'

"어서 오세요. ...손님?"

"앗, 네! 네...!"

"어머나. 어여쁜 손님이시구려."

카운터에는 딱 봐도 나이가 지긋한 백발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이건 아스터에겐 엄청난 위안이 되어 주었는데, 만약에 남자 직원에게 성인 용품에 대해 문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그대로 도망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게... 그러니까... 안녕하세요오..."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도 시뇨리나처럼 젊었을 때엔 대단했다우."

아스터는 부끄러움과는 별개로 저 노인이 자신을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 가게에서 그녀 같은 옷차림은 딱히 이상한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여성의 자위나 성욕은 남성에 비해 음성적일 수밖에 없고, 자신의 성욕을 자연스레 피로할 수 있는 여성은 그러한 남성보다 파격적으로 수가 적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이 성인용품점에 올 때엔 아스터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오는 게 오히려 정상이었다.

당연히 아스터가 그것을 알았을 리 없다. 설령 알았더라도 큰 도움은 안 되었겠지만.

"마음 편하게 있어요. 여긴 우리 둘뿐이니까."

"가,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시뇨리나는 뭘 찾으시우?"

"아..."

드디어 입 밖으로 말을 꺼내야 할 순간이 도래했다. 아스터는 몸을 달달 떨며 그 말을 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상대는 성별도 같고 노인인데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노련한 직원은 차분하게 아스터를 기다려 주었다. 사실 아스터 정도면 양호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심한 경우 졸도해 바닥에 쓰러진 여인까지 나왔으니 말이다.

"하... 하... 항... 하으..."

"..."

"항... 무, 문... ...요."

"시뇨리나. 차분하게 말해 보시우."

치사량의 수치심을 느끼며, 아스터는 쥐어짜듯 목소리를 냈다.

"항문...! 을... 어... 아으..."

"아하, 항문. 그러니까 뒷구멍을 쓰시려고?"

"으으... 네에..."

이미 후드는 충분히 내려와 있었건만, 붙잡고 더욱 힘을 주어 머리를 덮는 아스터.

"혹시나 해서 묻는데, 경험은?"

"없... 어요..."

"아가씨는 처녀지요? 그러니까, 남자와 한 번도 몸을 섞어 본 적이 없는 순결한 몸이냐는 거라우."

"...네..."

"흐으음. 아가씨 혼자 적적한 밤을 지낼 때 쓰시려고? 아니면 다른 사람이?"

"제가 연모하는 분을 위해서... 준비... 하려고..."

"청춘이구료!"

직원은 박수라도 쳐 주고 싶었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스스로 자신의 항문을 따먹기 좋게 풀어서 바칠 거라니, 이 무슨 지극한 사랑이란 말인가. 참으로 복받은 남자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알아서 물품을 골라 주었다.

"다 담았는데... 그쪽 구멍으로 즐기기 전엔 필히 관장을 해야 한다우. 관장이 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거고, 혼자서 쓰기 편하도록 관장액 주입기가 작게 나왔으니 두 번으로 나눠서 주입해야 한다우."

"감사합니다..."

"예쁜 사랑 하시구료!"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한 뒤 후다닥 가게를 나온 아스터는 로브 자락에 온갖 기구들이 담긴 종이봉투를 감추고선 잰걸음으로 여관을 향해 이동했다.

진심으로 누가 알아차릴까 두려웠지만 거리를 메운 인파 속으로 섞인 아스터를 신경 쓰는 사람은 딱히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그녀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휴우우..."

자기 방에 들어온 아스터는 문에 벽을 기대고 주저앉아 한숨을 토해냈다. 이제야 온몸이 땀에 젖은 게 느껴졌다.

방은 그녀 혼자서 쓰는 1인실이었다. 륀이 다른 곳에서 자고 오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들은 그렇지 않더라도 각방을 쓸 작정이었는데, 아무래도 껄끄러운 관계가 된 둘이 같은 방을 쓰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럼... 시작을... 아으으..."

사라락...

아스터의 살결에 옷이 스치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그녀의 하얀 나신이 드러났다. 큼지막한 가슴, 문신이 새겨진 아랫배, 털 한올 없는 음부, 매끈하게 뻗은 다리... 이제부터 아스터는 자신의 몸을 창공에게 바치기 좋도록 만들어야 했다.

미리 준비해 놓은 목욕물로 깨끗하게 씻은 다음, 관장기구에 따스한 물을 채우고 관장액을 떨어뜨린다.

"으... 이런 모습 남한테는 죽어도 못 보여줘... 아아...! 용서하세요, 주님..."

욕실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아스터는 다리를 벌리고 허리를 둥글게 말아올려 항문이 드러나도록 했다. 그런 다음 관장기구의 뾰족한 입구를 항문에다가 꽂으려 시도했지만, 처음이고 보이지도 않아서 그런지 자꾸만 빗나갔다.

"흐읏... 후웃..."

그렇게 몇 번을 시도한 끝에 간신히 성공한 아스터는 피스톤 손잡이를 천천히 눌렀다. 따스한 관장액이 뒷구멍을 통해 들어와 그녀의 뱃속을 묵직한 느낌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이내 첫 번째 용액이 완전히 주입되었고, 두 번째를 주입해야 했다. 이건 전보다는 조금 쉬웠다. 그렇게 관장액을 전부 주입한 아스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초초하게 기다렸다.

꾸르륵, 꾸르륵!

곧이어 뱃속에서 소리가 나며 신호가 왔다. 보통 일을 볼 때와는 다른... 마치 칼로 찌르는 듯한 날카롭고 쎄한 느낌. 지금이라도 당장 배출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만 같은 고통이 아스터의 아랫배를 살살 괴롭혔다.

"아... 아핫, 하아아..."

아스터는 제 배를 움켜쥐고 허리를 숙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변기에 앉아 뱃속의 관장액을 내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빨리 끝내버리면 효과가 없다는 직원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어떻게든 참아야 했다.

그렇게 4분 정도 지났을까. 더는 참을 수 없던 아스터는 쪼르르 변기로 달려가 앉았다.

"흐아아아아아..."

절로 입에서 신음이 토해졌다. 그렇게 잠시 거친 숨을 몰아쉬던 아스터는 이내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깨닫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느껴지는 부끄러움은 똑같았지만.

'으으으... 나는 성직자인데...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사제인데... 그치만 혼전순결을 지키면서 창공 님께 나를 드리려면 이 방법 밖에는 없으니까...'

오늘따라 교단의 규칙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혼전순결.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왔던 규칙이고, 성직자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규칙이 그녀의 사랑을 방해하고 있었다.

'하늘에 계신 주님... 죄 많은 처녀를 용서해 주세요... 지극한 사랑에 몸을 떠는 저를 용서해 주세요... 당신의 자비로움에 간청 드립니다...'

한동안 두 손을 맞잡고 고개 숙여 기도하던 아스터는 다시 관장기구를 붙잡고 일어나 물을 채웠다.

이제 그곳에 관장액을 섞고, 바닥에 누워 다리를 벌린다. 힘들고, 고역스럽고, 수치스럽지만 이 과정을 거쳐야만 순결을 지키면서도 창공에게 안길 수 있었다.

"버틸 거야... 버텨서 창공 님께 사랑받고 말 거야..."

그녀의 경쟁 상대는 륀뿐만이 아니었다. 나유와 아린까지. 네 명의 여자가 한 명의 남자를 두고 다투는 것이다. 아스터 개인적으로는 상대방이 사랑을 속삭이거나 따스한 손을 꼭 맞잡아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지만 창공의 사랑을 얻기 위해선 그럴 수 없었다.

이런 점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는 아스터는 다시 한번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관장에 임했다.

'다른 곳도 잘 느끼도록 만들어야 할까...? 역시 그렇겠지...?'

애널뿐만이 아니다. 유두나 클리토리스 같은 성감대도 착실히 개발해야 창공을 더욱 흡족하게 만들 수 있다. 그곳도 처녀와는 관련이 없으니 아스터는 괜찮다고 합리화를 했다.

'앞으로 밤마다 바빠지겠네. 난 할 수 있다! 아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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